교감연수회가 점암초에서 있다.
연수 후 친목 배구에 저녁식사까지 예정인데, 5시에 식사를 시작한다니
6시면 끝날 것이다. 능가사에서 6시 20분쯤 산행을 시작하면
6봉까지는 8시 반 이전 아주 어둡기 전에 다녀올 수 있을 것이라고 등산화를 챙긴다.
연수회는 길어진다.
젊은 점암초 선생님들과의 배구도 그렇고
조현복 교장이 참석한 식사자리에서 여교감들이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술을 마시지 않은 나는 몸과 생각이 뻣뻣하고 일어나고 싶은 생각에 조바심이 든다.
총무나 회장에게 말하여 일어난 시각이 6시 반이다.
차로 달리듯 가서 운전하고 국립공원 통제소를 보니
다행이 사람이 없다.
두지 넘어 갈까 강산으로 갈까 하던 생각을 접고 능가사 왼쪽으로 운전한다.
캠핑장에 승용차 한 대가 서 있다.
팔영산장 앞에 차를 세우고 신발을 갈아신고
산길로 접어드니 6시 50분이 되어간다.
삼겹살에 저녁을 먹어서인지 다리에 힘이 짱짱하다.
돌들을 밟고 땀흘려 오른다.
흔들바위에는 20분만에 도착한다.
수건을 두르고 사진을 찍고 능선쪽으로 걷는다.
0.5봉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탐방로 아님'을 무시하고 왼쪽으로 돌아 오른다.
푸른 상수리나무 잎사이로 빛을 보내주던 해는 구름 속에 사라졌지만 붉다.
보름인데 달은 원이 아니다.
사진을 찍고 '위험 구간 절벽'을 넘어간다.
하얀 쇠붙이들을 잡지 않으려 해도 잡아진다.
1봉 유영봉에서 땀을 식힌다.
그만 내려갈까, 6봉까지는 가 볼까 고민한다.
해 기운은 사라졌지만 달이 밝으니 바위를 밟고 걸을만하다.
2봉 계단과 쇠줄을 잡고 오른다.
1986년 4월 점암초 5학년 1반 담임을 맡아
능가사옆 참나무 숲으로 소풍을 왔었다.
오후에 6학년도 숲에서 노는데, 난 우리반을 데리고 탑재쪽으로 올랐다.
2반을 맡았던 이양옥 선생님도 반을 데리고 따라오신다.
3월 1일 점암초 발령받고 2주 일요일엔가 두지 사는 내 반 고왕삼이와 이재영, 그리고 왕삼이 형
창삼이랑 그 부모가 싸 준 점심을 갖고 1봉에서부터 산행을 했었다.
그 때는 어디에도 쇠붙이 하나 없었고, 2봉에서 3봉 사이 절벽같은 곳에 줄이 하나 늘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나를 염려하며 잘 올라갔다.
얼마전까지 5학년이 6학년 졸업생들에게 '사그네'를 한다고 떡 등 음식을 짊어지고
정상에서 대접을 했다고 한다.
소 뜯기다가도 정상에 올랐다고 한다.
7봉 지나 어느 바위 위에서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떄 내려왔던 길로 5학년 아이들을 끌고 올라간다.
아이들은 잘 올라간다.
흩어지지 말라고 했지만 산을 아는 아이들과 산을 처음 오르는 아이들이 제각각이다.
7봉(칠성봉)에서 아이들을 소집하여 하산하려고 보니
우리 반 몇 명이 없다.
상촌사는 김병운과 여학생 정경희(?) 그리고 사동의 유종훈이 안 보인다.
나도 부르고 아이들까지 소리모아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겁이 난다. 이 선생님도 걱정을 하시며 날 쳐다보신다.
일단 산아래 마을에 사느 아이들과 이선생님께 먼저 내려가라 하고
찾아본다. 보이지 않는다.
6봉 사이로 탑재에 내려오는데 아이들이 왔다고 한다.
탑재 풀밭에 모두를 모이게 했다.
난 소나무 몽둥이를 준비했다.
1반과 2반을 앉혀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
그리고 모두를 걱정하게 한 벌을 받으라고 하며 몽둥이로 두 대씩 때렸다.
모두 잘 버텼다. 아파하는 아이들을 또 엎드리게 한 후 또 두 대씩을 때렸다.
썩은 듯했던 몽둥이가 부러진다. 남은 부분으로 때린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송선생님이 하시던 2대씩 반복하여 때리기를 맞았던 내가 한 것이다.
끝에서 맞던 경희가 한 대를 더 맞더니 쓰러진다.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니 몸이 풀어진다.
이 선생님은 또 놀라신다.
난 큰 소리를 치며 이선생님께 아이들을 인솔하게 하고
세 명을 남게 한다.
아이들이 내려가고 경희를 업고 같이 내려온다.
몸이 무거운 병운이는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도 아무말도 못하고 따라온다.
물을 건너기 전에 같이 들어가 씻는다.
소풍을 마치기 전에 합류하여 학교로 걸어와 하교를 시킨다.
숙직실에서 남은 음식에 술을 마시고 있는데, 상촌에 사시는 김성빈 주사가 날 불러낸다.
오늘 소풍가서 무슨 일 있었느냐고 하신다.
대충 설명하며 왜 그러시냐 하니, 경희가 아파 들어누웠고,
부모가 매우 화가 나 있다고 하시며 같이 가 보는게 좋겠다고 하신다.
그 분을 따라 조그마한 경희의 집을 찾아가 빌었다.
난 폭력교사라는 낙인을 갖고 5학년을 마쳤고, 다음해엔 6학년을 맡았다.
6학년 소풍 때에도 팔영산을 올랐고, 그 때 힘들어했던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일요일에 산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 부대 이름이 '생고부대'라나. 무슨 뜻이냐 하니 고생을 많이 해서란다.
정오 점수 병운 명석 왕삼이였을까?
몇 번 같이 가려고 했으나 동참 못하고 월요일마다 그 애들에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난, 6학을을 졸업시키지도 못하고, 어이없어하는 선성수 교감의 배웅을 받으면서
신팔우 교장이 오라는 동강초로 옮기고 말았었다.
병운이는 화순에서 초등학교 근무를 잘 하고 있는 걸 아는데
점수나 정오 등이 그립다.
용두를 지날 때마다 그들의 집을 들여다보고 싶은데 지나치고 만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팔영산에 오른다.
보름달빛의 도움을 받는 나는 비겁하다.
3봉 상황봉 앞에서 달을 보며 땀을 식힌다.
봉우리 사이 숲속을 걸을 때는 어둡다.
그래도 디딜 만한 돌이 하얗게 빛나니 걸을 만하다.
두류봉을 오르며 철제 난간을 잡지 않으려 해 본다.
도움을 거절하는 냉혈한이 되지 말자고 몇 번 잡는다.
6봉 두류봉에 앉아 겉옷을 꺼내 입고 구경을 한다.
산에서 내려가고 싶지 않다.
달은 동쪽 중천에 떠 있다.
바위 능선을 환한데 6봉 목재 계단을 내려오자 어둡다.
탑재길을 찾아 몇 번 왔다갔다 한다.
겁이 난다.
랜턴을 챙기지 않았다. 요즘 랜턴 켤 일도 없다.
핸드폰 후레시 앱을 켜니 30% 남짓이 남았다.
불이 훤하다.
밤내 이산을 헤매이다가 내일 아침 햇빛에 돌아가는 생각도 한다.
핸드폰 불빛으로 길 가에 세워진 명구들을 읽으면서 달린다.
'결혼이야말로 참된 연애의 시작이다.
'결혼은 긴 대화이다.'
배터리는 금방금방 줄어든다.
땀이 흐르는데 더 빨리 달린다. 겁쟁이다.
개울을 건너며 어둠 속에서 세수를 한다.
무등의 약수교 아래 어둠 속에서 내 씻던 곳은 이제 국립공원이 되어 불가능하리라.
물이 차 옷 벗는 걸 포기하고 팔영산장앞을 조용히 걷는다.
개가 짖지 않아 다행이다.
시동을 거니 9시 10분, 창문을 열어놓고 운전하며 고흥을 지나다
성룡이나 정준이를 불러 술 한잔 할까 하다가 참고참고 방으로 온다.

























첫댓글 과거와 현제가 공존하는 듯, 그러고 보니 처음 발령받아 의욕이 넘쳐 체벌하다가 학부모 집에 사과하러 갔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팔영산에 한 번 갔다왔는데 글을 보니 또 가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