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대웅전/한떨기 연꽃 ‘염화시중’ 미소 보이다

[17기/智雲/李永植]

<한떨기 연꽃>

사진설명: 대웅전에서 적멸보궁으로 난 창을 통해 한 떨기 연꽃이들어온다. 바로 이순간 염화미소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시다 문득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말없이 대중에게 보이시니 가섭존자만이 미소지었다.

그때 “여래에게 정법안장의 열반묘심이 있으니 이를 마하 가섭에 전하노라.”하였으며, “미래세에 3백만 억의 모든 부처님께 봉사하고 찬탄하고 최후신에 부처가 될 것이라며 수기를 주셨으니” 이것은 불교사의 그 유명한 염화미소의 한 장면이다.

그날 영산으로 갔던 많은 사람들은 꽃비를 맞았을 터이지만, 흩날리는 겨울비를 맞으며 홀로 산문을 들어서자, 마치 영산회상 그 아침의 영축산으로 들어가는 듯 하였다.

그러나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로 유명한 법화경의 그 감동적인 순간을 재현하고 있는 수미단 뒤의 창문은 닫혀있었고, 영축산을 사진에 담기 위해 세 번을 내려갔음에도 번번이 안개가 끼거나 비가 내려 산을 찍을 수 없었다. 아마도 부처님은 내게는 열반묘심의 본각(本覺) 경지를 조금이라도 보여주고 싶지 않으시거나, 아직은 그때가 아닌 모양이다.

선덕여왕 15년(646) 왕명을 받은 자장율사가 신라를 불국토의 나라로 실현시키길 염원하여 세운 ‘영축산 통도사’는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받았다는 불골(佛骨) 불아(佛牙) 불사리(佛舍利) 그리고 금란가사를 금강계단에 봉안. 불지종가(佛之宗家)이자 나라의 큰절(國之大刹)이 되었다.

<불지종찰>

사진설명: 왜 나라의 절이며 불교의 종찰인지 통도사는 말해준다

그러나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를 모셨다는 이유만으로 이 나라의 대찰과 종찰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그러한 절은 이 땅은 물론 인도와 중국에서도 많이 볼 수 있고, “자장율사 역시 100개의 사리를 3곳에 나누어 불사를” 하지 않았던가! 또한 인도 마가다(Magadha)국 왕사성(Rajraha)의 동쪽에 있던 가지굴산의 모습과 닮았다하여 영축산이라 이름붙였다면 그것은 사대사상의 한 예일 뿐이다. 그러나 통도사의 영축산은 인도의 영축산형과 닮은 것이 아니라 통(通)하기 때문에 (此山之形 通於印度靈鷲山形) 영축산이다.

한국불교의 진보적 성취

창건 이래 끊임없이 신·개축이 이루어졌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현재의 대웅전을 설계한 선지식(善知識)과 건축가는 진신사리와 가사의 봉안의미와 해석을 영축산과 통하는 통도사로 성취하고자 하였다. 즉 인도의 영축산은 부처님이 생존해있던 역사상의 한순간밖에 이룩하지 못했던 영산회상의 장소였으나, 이 땅의 영축산은 과거의 일이 아닌 오늘과 미래의 시간과 공간으로서 영축산이 되어 나아간 것이며, 3백만 억의 모든 사람들에게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게 한 종교적 염원과 희구의 실현이었다. 그것은 아름다움은 물론 천광(天光)으로 빛나는 진(眞)과 선(禪)을 구현한 건축의 가치일 뿐 아니라, 인도 땅에서 전래된 종교로서의 불교만이 아닌 독자적으로 승화된 불교를 구축하여 국제적 보편성을 획득한 한국불교의 진보적 성취사례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일주문>

사진설명: 일주문에서 불이문 으로 난 길, 산길을 나타내듯 나무가 우거지고 굽이져 있다. 바로 영축산으로 들어섬을 나타내는 것이다

대원군의 글씨로 유명한 일주문 편액의 영축산 통도사(靈鷲山 通度寺)를 들어서면 경건하면서 아름다운 일주문 돌길이 있다. 그 길 양옆으로 식재된 높은 상록수들과 휘어서 들어오는 길의 모습 때문에 그 길은 마치 절로 들어간다기보다는 영산회상의 설법을 듣기위해 영축산 초입의 산길로 들어선 것 같다. 산길을 지나 천왕문을 들어서면 모든 건물이 어긋나 있어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져있다. 그러한 시각적 변화와 중첩의 효과들은 이곳이 부처님이 계신 장중한 보궁으로 느껴지는 동시에 울창한 숲 속의 나무들이 빽빽하면서도 텅비어 보이 듯. 비유비무(非有非無)의 공간적 체득을 경험하게 한다.

수미산이 ‘활짝’


또한 불이문을 통해 대웅전까지 바라다 보이는 심상치 않은 경관은 연결과 분절을 통해 무명(無明)을 정화시켜 나가듯, 점진적인 동시에 은근하면서 장중한 시각적 깊이와 기대감을 더해준다. 그리하여 극적이기 보다는 자신도 모르게 공간적 흐름에 젖어들게 하여 천왕문을 들어선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하기 충분하다. 그러나 그곳에서 보이는 가장 중요한 경관은 건축적 경관이 아닌, 불이문 지붕 위로 뚜렷하게 보이는 영축산이다. 천왕문을 들어서기 전부터 바라보이는 영축산은 영산회상의 시간과 공간으로 오늘의 우리를 초대하고 있고, 불이문을 통과하는 순간 천왕산은 영축산으로 치환된다. 통도사가 신라시대의 일반적인 남북축으로 탑과 금당을 배치한 것과는 달리 동서의 주축으로 건물을 배치한 이유는 입지적 문제보다는 영축산을 보기 위함이었다.

<불이문>

사진설명: 불이문 지붕위로 보이는 영축산은 현재 영축산으로 초대한다

천왕문과는 달리 유난히 넓은 문을 통해 불이(不二)의 세계로 들어오면, 호랑이와 흰 코끼리가 지붕을 높이 들어올리고, 좌우로 벽이 없어 넓은 적묵의 건축적 프레임을 통하여 한국건축의 명장면 중의 하나인 건축적 파노라마를 보게 된다. 그것은 천지의 질서인 건축으로 천지와 화(和)를 이룬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곳에서 건축들은 연이어서 대웅전으로 향하고 있고 그 너머로 산이 병풍처럼 넓게 펼쳐져있다. 그 산이 바로 영축산이다. 불이문을 통해 부처님의 세계로 진입한 그곳은 건축적 세계가 아니라 영축산의 영역으로 천지의 의기(義氣)를 담은 수미산의 세계이다.

흔히들 통도사의 대웅전에는 금강계단에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기에 불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법의 상징인 석등 위로 부처님이 좌정하고 계신다. 600년대에 지어지고 18세기 초에 중건된 대웅전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의 요소로 상징되는 네 개의 마당이 하나되어 만자(卍字)형 공간 영역을 구성한다. 그것은 마치 만자(卍字)가 공간과 시간이 한 점에서 만나 비고정적이며 동시적으로 운동하는 것과 같이 천중(天中)의 공간으로 부처님이 계신 전각을 구현하였다. 이와 함께 법당의 내부에는 열려있는 창을 통해 푸른 숲을 배경으로 갓 피어오른 듯한 연꽃 한 송이가 마치 부처님께서 오른손으로 들고 계신 것처럼 있다.

<천왕문>

사진설명: 대웅전과 영축산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진다. 통도사를 만든 건축가는 이를 통해 통도사가 영축산을 구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사리탑을 강조한 불신(佛身)의 재현이 아닌 진신사리의 상징성을 사용하여 실제의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사리와 가사를 봉안한 건축적 해석이었다. 그것은 금강계단 주련의 한시에서도 엿볼 수 있다.

“쌍림에서 열반에 드신 지 몇해인가 묻노니(示跡雙林問幾秋)

문수보살 보배를 모시고 때와 사람을 기다리네(文殊留寶待時求)

부처님 전신사리 오히려 지금도 있으니(全身舍利今猶在)

많은 군생들 예 올리기를 쉬지 않네(潽使群生禮不休)”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지금도 현존하시고 사람들이 예(禮) 올리기를 쉬지 않을 것이라는 염원에서도 알 수 있듯 대웅전의 건축적 희구는 불신(佛身)의 실현이었다. 불상이 아닌 법을 상징하는 석등 위에 일지(一指)가 연꽃 한 송이를 들고 있어 공화(空華)로서 법신(法身)과 화신(化身)을 이룩하였으며, ‘전신사리’는 세세토록 계신 미래불의 보신(報身)으로 삼신(三身)을 실현하였다. 그리하여 영축산 숲을 배경으로 삼세에 걸쳐 비어있는 모습으로 선좌(禪坐)하여 그대는 염화묘심(拈華妙心)의 이치를 아는가 라며 법문을 하고 계신 석가여래를 친견하게 된다.

염화미소 실현하다

<김명국 달마도>

사진설명: 없음으로 달마도를 그렸듯 통도사는 공으로 영산회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마치 김명국이 달마의 얼굴을 담묵으로 그려 비어있는 듯한 달마의 얼굴로 내면의 선심(禪心)까지 표현하여, 단순한 일획만의 그림이 아닌 무(無)를 이룩한 일획의 경지로 실제보다 사실적인 달마를 표현한 것과 같다.

그것은 또한 근대 영미 시단의 스승역활을 했던 에즈라 파운드가 추상적이고 이성적인 언어로서는 사물의 실재는 파악할 수 없다며, 이미지적 언어로 사물의 실재상을 정확히 제시하려 하였던 이미지즘과도 유사하다. 그러나 정적 이미지만을 표현했던 이미지즘과는 달리 통도사의 대웅전은 실제 연꽃을 통해 은근히 유장한 정적이미지는 물론, 경건하면서도 환희심에 찬 동적 이미지와 삼세의 시간적 이미지까지도 실현하여 넘쳐흐르듯 아름답다.

그리하여 진신사리의 상징성과 연꽃의 조각 그리고 창문을 통하는 건축적 장치와 자연의 숲만으로 부처님을 실현하고 있으니, 대웅전의 건축은 곧 인간의 힘으로 이룩한 부처성의 실현이며 관념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영산회상의 부처님을 친견하게 한다. 그것은 조용하여 깊고, 태연하여 높은 그리고 승화되어 밝은 공간으로 인류의 종교건축이 이룩한 최대의 건축적 희열이었다.

〈건축가·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

<적멸보궁>

사진설명: 일주문부터 일관되게 통도사가 영축산을 실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뒤 마지막으로 적멸보궁에 이르러 통도사가 나타내고자하는 뜻은 염화미소의 경지가 현재 이순간 나투는 것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