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치 넘어 지리산을 유람하다
남원 구룡계곡에서 실상사까지
남원은 경남 함양과 산청, 하동, 전남 구례와 함께 지리산을 품은 고장이다. 지리산의 거침없는 능선은 아니지만,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이 있고, 고기리삼거리에서 고리봉, 정령치 만복대를 지나 노고단부터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백두대간이 이어진다. 정령치를 넘어서면 달궁과 뱀사골을 거쳐 함양군 마천면과 인접한 실상사를 만날 수 있다. 정령치 넘어 뒤늦게 찾아온 봄을 만나러 가보자.
정령치휴게소와 지리산 능선
주천과 운봉에서 만나는 춘향의 향기
남원의 지리산은 주천면과 운봉읍, 산내면과 인월면에 걸쳐 있다. 지리산 둘레길 역시 주천에서 운봉, 운봉에서 인월, 인월에서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로 이어진다. 어디를 가도 지리산을 빼놓을 수 없는 고장이다. 남원에서 정령치로 가는 길은 주천면을 지나 구룡계곡을 거쳐 운봉으로 가는 고기리삼거리에서 한없이 굽이진 길을 올라야 한다.
고기리삼거리를 기준으로 주천과 운봉에는 춘향의 고장 남원답게 춘향의 향기를 느껴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주천면을 지나 운봉으로 향하는 60번 지방도의 육모정 건너편 높은 언덕에 자리한 춘향묘가 그것이다. 소설 《춘향전》에 등장하는 성춘향의 묘라니? 다소 의아하지만, 1962년 '성옥녀지묘'라 새겨진 묘지석이 발견되어 춘향묘로 새롭게 묘역을 단장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만고열녀성춘향지묘'라 새겨진 검은 비석이 봉분과 함께 남아 있다.
육모정 아래로 내려가면 매년 사월 초파일 아홉 마리 용이 9개의 연못에서 노닐다 승천했다고 전해지는 구룡계곡이 흐른다. 다리를 건너면 용호정을 지나 소나무 숲길로 이어지는 700m의 육모정 자연관찰로가 있어 산책 삼아 다녀오기 좋다.
육모정 자연탐방로로 들어가는 다리에서 본 풍경 [왼쪽/오른쪽]구룡계곡의 계류와 신록이 피어나는 봄 풍경 / 춘향묘 전경
고기리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운봉읍으로 가는 길이다. 삼거리에서 5km 정도 떨어진 운봉읍 행정마을에서는 영화 속 춘향을 만나볼 수 있다. 행정마을 서어나무숲으로 불리는 아담한 숲이다. 200여 년 전 행정마을의 허한 기운을 막기 위해 조성한 인공 숲이다. 이 서어나무숲에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이 촬영되었다. 굵은 서어나무에 매달린 그네를 타고 있는 춘향을 이몽룡이 훔쳐보는 장면이다. 지난 2000년에는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마을숲 대상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운봉읍은 지리산 자락에 인접한 해발 450m 이상의 분지인 탓에 봄이 조금 늦게 찾아온다. 남원 요천의 벚꽃이 우수수 떨어질 때 서어나무숲을 따라 흐르는 남천변에 비로소 벚꽃이 만개한다. 지금은 서어나무숲의 신록이 근육질처럼 단단한 잿빛 수피와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왼쪽/오른쪽]행정마을 서어나무숲과 그네 / 행정마을 서어나무숲 입구
굽이진 길 따라 만나는 아름다운 고개, 정령치
고기리삼거리에서 정령치를 넘어 달궁삼거리까지 737번 지방도가 이어진다. 13km에 이르는 도로는 해발 1,172m의 정령치까지 한없이 굽이진다. 자동차도 힘겨워 털털거릴 정도로 한참을 오른다. 쭉 뻗은 고속도로가 서서히 그리워질 때쯤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정령치는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정씨 성을 가진 장군을 파견하여 지키게 했다는 내용이 서산대사의 <황령암기>에 전한다. 정령치 정상에는 휴게소가 덩그러니 서 있다. 휴게소 앞쪽은 지리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다. 오른쪽부터 반야봉, 토끼봉, 명선봉, 형제봉, 연하봉, 천왕봉 등 굵직한 지리산 봉우리들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정령치 정상에서 본 풍경
휴게소 뒤편으로는 고리봉, 세걸산, 팔랑치를 거쳐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시작된다. 바래봉까지는 9.4km로 매년 5월 바래봉과 팔랑치에 철쭉이 피어나면 산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등산 코스다. 능선 아래로는 고기리삼거리에서 지리산을 파고들듯 이어지는 737번 지방도가 뱀처럼 구불거리며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정령치 정상에서 바래봉 방향으로 개령암지 마애불상군까지 정령치 자연관찰로가 조성돼 있다. 약 1.6km이니 잠깐 다녀오는 것도 좋다.
구름도 쉬어 가는 와운마을 천년송
정령치휴게소에서 달궁삼거리까지 또 한 차례 롤러코스터를 타듯 내려간다. 달궁삼거리에서 구례군 성삼재와 남원시 산내면을 잇는 861번 지방도를 지난다. 산내면으로 방향을 잡으면 달궁과 덕동오토캠핑장을 지나 뱀사골에 이르는데, 탐방로를 따라 3km 정도 가면 해발 800m에 자리 잡은 와운마을이 있다. 반대쪽에서 차가 나오는 것이 걱정될 정도로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는 길을 따라 아슬아슬 가야 한다. 그래도 와운마을을 찾아가는 이유가 있다. 바로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지리산 천년송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와운마을의 '와운'은 말 그대로 구름도 누워서 쉰다는 뜻이다. 해발 800m 고지대인 데다 주변 산세도 험하니 구름도 누워 쉴 법하다.
와운마을 풍경
와운마을 입구에서 목재 데크를 따라가면 지리산 천년송을 만날 수 있다. 5분도 채 안 돼 멀리 한눈에 딱 봐도 천년송이다 싶게 우람한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띈다. 지리산 천년송. 이름은 천년을 산 것 같지만, 실제는 수령 500년쯤 되는 소나무다. 천연기념물 제4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소나무를 끌어안고 기도를 올리는 듯한 모습이 마치 고목에 매달린 매미 같다. 높이 20m, 둘레 4m 정도이니 매미가 아니라 개미처럼 보인다 해도 믿겠다.
지리산 천년송은 일명 '할머니소나무'로 불린다. 주민들이 해마다 당산제를 지내고 있으며,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이 나무를 보러 온다. 할머니소나무에서 약 50m 위쪽에는 이보다 작지만 '할아버지나무'로 불리는 또 다른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비록 떨어져 있으나 오랫동안 해로하며 늙어간 노부부 같아 푸근하고 정감이 간다.
지리산 천년송
문화유산의 보고, 구산선문 중 하나인 실상사
지리산 여러 봉우리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모인 만수천을 끼고 있는 실상사는 지리산 능선을 바라보고 서 있다. 우리나라의 단일 사찰 가운데 가장 많은 문화재를 품고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실상사에 딸린 작은 암자인 백장암에 남아 있는 국보 제10호 백장암 삼층석탑부터 수철화상탑과 탑비, 증각대사탑과 탑비, 동‧서 삼층석탑과 석등 등 국보와 보물급 문화재만 11점에 이른다.
[왼쪽/오른쪽]실상사 동‧서 삼층석탑 / 불국사 석가탑의 상륜부 모델이 된 실상사 삼층석탑 상륜부 실상사의 봄 풍경
실상사는 창건 역사부터 화려한 사찰이다. 통일신라 후기에 들어서기 시작한 구산선문, 즉 교리를 중시하는 교종과 반대로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선종 사상이 수행하기 좋은 산사를 중심으로 퍼지게 되었는데, 그중 실상사가 구산선문 가운데 가장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신라 흥덕왕 때 증각대사 홍척이 창건하고, 뒤이어 수철화상 이후로 크게 이름을 알렸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석물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너른 경내에 동‧서 삼층석탑과 석등, 보광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동‧서 삼층석탑은 상륜부, 즉 피뢰침처럼 뾰족한 쇠로 만든 구조물에 여러 부재를 쌓듯이 끼워놓은 부분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석탑이다.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을 복원할 때 실상사 석탑의 상륜부를 모델로 삼기도 했다. 천왕문 좌측으로 걸어 들어가면 극락전 영역이다. 실상사를 창건하고 선풍을 일으킨 증각대사와 수철화상의 사리를 안치한 탑과 탑비가 극락전 주변에 세워져 있다.
실상사는 석탑, 석등, 부도와 부도비 등 오랜 세월 풍파를 견뎌온 석물들이 온전히 남아 있어 실상사의 역사뿐 아니라 돌로 만든 여러 형태의 문화재를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답사여행지다. 실상사와 가까운 백장암에서는 국보 제10호 백장암 삼층석탑과 보물 제40호 백장암 석등도 만날 수 있다.
보물 제39호 실상사 증각대사탑비 [왼쪽/오른쪽]보물 제33호 실상사 수철화상탑 / 국보 제10호 백장암 삼층석탑
여행정보
춘향묘
주소 : 전북 남원시 주천면 정령치로(육모정 인근)
문의 : 063-620-6175(남원 종합관광안내센터)
서어나무숲
주소 : 전북 남원시 운봉읍 운봉행정길 36-11 인근
문의 : 063-620-6175(남원 종합관광안내센터)
정령치
주소 : 전북 남원시 산내면 덕동리(정령치정상 휴게소)
문의 : 063-625-1172, korean.visitkorea.or.kr
지리산 천년송
주소 : 전북 남원시 산내면 와운길 255(와운마을), korean.visitkorea.or.kr
실상사
주소 :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길 94-129
문의 : 063-636-3031, korean.visitkorea.or.kr
1.주변 음식점
지리산나물밥 : 지리산나물밥 / 남원시 인월면 달오름길 22-7 / 070-7755-2747 / korean.visitkorea.or.kr
현식당 : 추어탕 / 남원시 의총로 8 / 063-626-5163
지산지소자연밥상 : 한식 뷔페 / 남원시 주천면 장안용궁길 37 / 063-634-8849
2.숙소
춘향가 : 남원시 양림길 28-14 / 063-636-4500 / korean.visitkorea.or.kr
스위트호텔 남원 : 남원시 주천면 원천로 217 / 063-630-7100 / korean.visitkorea.or.kr
켄싱턴리조트 남원점 : 남원시 소리길 66 / 063-636-7007 / korean.visitkore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