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전달: 최성희)
“영전: 조영수 장군 해병대 제 9여단장 (전 제주방어사령관) 취임,”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제주해군기지를 폐쇄하라! 흐린 겨울 아래 2 개의 대조되는 현수막을 봅니다. 강정마을회, 노인회, 청년회, 부녀회가 강정마을 출신 군 장성의 해병대 제 9여단장 취임을 축하합니다. 이 사진을 찍은 것은 2018년 12월 21일입니다. 이 현수막이 언제부터 걸려 있었는지는 정확치 않습니다.
기사들을 찾아보니 조영수 장군은 강정마을 출신입니다. 2017년 12월 준장으로 진급된 바 있네요 (기사 가기). 그리고 1년이 지나 준장에서 여단장으로 진급했군요. 그러고 보니 12월 20일 오전부터 많은 군용차량들이 기지 앞을 지나갔습니다. 이 것과 관련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제주해군기지 앞을 지나가는 군용 차량들, 2018, 12, 20 (사진: 방은미)
그가 진급이 된 것은 관함식 때문이었을까. ‘10년 갈등을 100년 갈등으로 만들은’ 관함식이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정에서 회유,강행된 것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문득 그런 질문을 던져보는데 이것 또한 의문으로만 남습니다.
해병대 제 9여단 (제주부대)은 2015년 12월 1일 제주해군기지 전대가 창설된 날, 같이 창설되었습니다. 2016년 2월 26일 제주해군기지가 완공식을 가지기도 전 입니다. 제주해군기지 기동전단이 남방해양수송로를 보호한다는 목적아래 만들어졌다면 해병대는 이른바 ‘제주통합방위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창설식이 있던 2015년 12월 1일, 이상훈 해병대 사령관은 "9여단 창설을 통해 해병대 제2의 고향이자 발상지인 제주도와 해병대가 다시 한 번 상생·공존하는 가운데 제2 신화창조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 (연합뉴스, 2015, 12, 1) 이라고 말했습니다.
1949년 12월 28일 ‘제주도에 최초로 배치된 해병대는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작전 등에서 무적해병의 신화를 만들었다’ 합니다. 여기에는 ‘제주 출신 해병 3, 4기 3천여 명(여군 126명 포함)’ 이 포함되었습니다. (연합뉴스, 2015, 12, 1) 그러고보니 귀신도 잡는 해병대 제 9여단 (제주부대)의 로고는 제주를 칭칭 감은 용입니다. 제주가 밧줄로 묶여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킵니다.
4.3 70 주년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에서 보듯 그 제주해병은 ‘4.3에서 ‘빨갱이’로 몰렸던’ 청년들을 포함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습니다.’
‘좌와 우의 극렬한 대립이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낳았지만 4.3 희생자들과 제주도민들은 이념이 만든 불신과 증오를 뛰어 넘었습니다.
고 오창기님은 4.3 당시 군경에게 총상을 입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 3기’로 자원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습니다.
아내와 부모, 장모와 처제를 모두 잃었던 고 김태생님은 애국의 혈서를 쓰고 군대에 지원했습니다.
4.3에서 ‘빨갱이’로 몰렸던 청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습니다.’
(4.3 70 주년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 2018)
문재인은 그렇게 4.3 70년과 해병 신화를 접목시켰습니다. 관함식에서 ‘평화의 거점’과 ‘제주해군기지’를 접목시킨 것처럼 (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발언에 국제 평화활동가들은 ‘농담 아니냐’며 할 말을 잃었습니다.)
4.3에서 ‘빨갱이’로 몰려 생존을 위해 해병이 되었던 청년들은 많은 시민들이 학살되었던 인천 상륙 작전에만 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섯알오름 예비검속자 252명을 잔인하게 학살하던 그 자리에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비검속자들로부터 ‘조국을 지켰습니다.’
(위 사진: 카레)
(위 사진: 카레)
강정마을은 ‘평화의 거점’이 되었나 봅니다. 강정마을 출신이 해병대 제 9여단장이 되었으니. 밧줄이 제주를 감싸지 않길 빕니다. 제주해군기지를 폐쇄시키고 제2 공항 (공군기지) 계획을 중단시키고 진정한 비무장평화의 섬 제주를 만들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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