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보 기간 : 2004년 9월 3일 14:00 ~ 9월 6일 04:00(62시간) 2) 도보 코스 : 하남시-> 팔당대교->팔당댐->양평->용문->용두리휴게소->도덕고개 ->횡성->황고개->둔내->태기산->봉평->속사->진부->대관령->강릉 3) 구간 총 거리 : 211키로. 4) 도보 거리 : 201키로(힛치 : 약10키로) 5) 도보 참가자 : 용파리, 화랑, 가가멜
1. 작은 도전의 시작
9월 4일 새벽 3시~! 경기도 양평에서 강원도 횡성으로 이어지는 6번 국도를 따라 밤길을 걷다가 이름 모를 작은 휴게소에 들어 와 쉬고 있다 문이 닫혀진지 오래 전인 듯한 이 휴게소엔 주인도 점원도 그리고 손님도 없다 이지러져 가는 달빛이 주변을 으심푸레이 비추고는 있지만 지나가는 자동차도 거의 없고, 주차 되어 있는 자동차가 한대도 없다 또한 계곡을 따라 오르는 언덕배기의 휴게소이기에 주변엔 민가도 없는 황량한 곳이다 온통 산과 울창한 나무 숲으로 둘러 쌓여진 이곳에 금방이라도 크다란 짐승들이 어슬렁 거리며 나타 날 것만 같다 아니 하얀 소복으로 단장한 처녀 귀신이 머리를 풀고 나타 날 듯한 귀곡 산장 같은 휴게소다
희미한 보안등 하나가 건물 한쪽에 설치 되어 있는 자판기를 비추고 있어 깊은 산 속 암자 같은 정적의 분위기를 다소 누구르뜨려 줄 뿐이다 이 자판기에서 따끈한 커피 한잔 뽑아 마시고는 힘 없이 의자에 기대어 반눈을 감은채 내가 지금 걸어 온길을 돌이 켜 본다. 대체 이게 무슨 꼴이람? 왜 새벽에 잠도 자지 않고 깊숙한 산속 폐허 같은 공간에서 추위와 허기를 참아야 할까? 왜 아늑한 집도, 잘도 달리는 나의 애마도 버려두고 이 야밤에 산길을 걷고 있을까? 당장이라도 지금의 도전을 포기하여 버리고 지나가는 차에 구원을 요청 한다면 따뜻한 음식이 있고 온돌이 있는 곳으로 돌아 갈수 있을텐데.... 휴게소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 서울에서 강릉까지 도보를 시작 하려고 내가 집을 나선 때가 어제 오후 1시 였었고 또 집 앞 에서 버스 타고 서울과 하남의 경계 지점에 내려 걷기 시작 했을 때가 오후 2시 였었다 지금이 새벽 3시니깐 걷기 시작 한지 13시간이 지났다 중간에 저녁 식사 하고 잠깐 휴식한다고 1시간을 허비 한 것 외에 12시간을 꼬박 걸었 더니 출발점에서 여기 휴게소 까지 족히 60키로는 될것 같다 초반 무리를 하지 않으려고 시속 5키로 정도의 속도를 유지 했어니 60키로는 충분 하리라~!
븅신~! 혼자서 ~! 먼길을 차타지 않고~! 60키로를 걸었다고 좋아 하는 이 바보~! 머지않아 환갑인데 이게 뭐하는 짓이여~! 이렇게 많이 걸어면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이 도전 끝나고 나면 평생 고생시킨 마누라 호강이라도 시켜 줄 수 있다냐? 대체 뭘 잘 한다고 혼자 잘 난척 걷고 있는 건지? 그래 혼자 뭐든 잘 해 보시라지~! 등등의 무수한 질문을 내 자신에게 스스로 던지면서...!
그러나 아직 더 걸어야 한다 시작 했으니 끝날 때까지 걸어 가보자 자신감을 되찾으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본다.. 이왕 길을 떠났으니 가는데 까지는 더 가 봐야지~! 목표를 세웠어면 끝까지 버티어서 결과를 얻어 내야지~! 그런가 하면 서울을 하루 먼저 출발 하여 걸어서 강릉으로 떠난 화랑이 횡성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이젠 좀 쉬었어니 다시 출발 하자 가야 할 길이 아직 많이도 남아 있다 가려고 생각하는 거리의 3분의 1도 걷지 않았는데 여기서 주져 앉을 순 없다 어차피 시작한 걸음일진대 걷는데 까지 걸어가 보자
2. 6번국도 따라 강원도 횡성으로
휴게소를 뒤로 하고 가파른 언덕 길을 10분 쯤 걸었을까 고갯마루에 다달았는데 강원도라는 입간판이 나를 반겨준다 여기가 경기와 강원도의 행정구역을 구분 해주는 지점이고 또 도덕 고개라고 불리우는 곳이다 강원도 경계에 들어서면 어디에서나 반달곰 한마리가 버티고 서서 “어서 오십시요”라고 인사 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아마 강원도를 상징하는 동물이 반달 곰이기 때문인가 보다
경기 강원도의 경계 도덕 고개에서
이 도덕 고개의 내리막 길을 바지런 스럽게 걸어 내려 간다 고개 하나를 또 넘었다는 기쁨도 잠시 몇고개를 더 넘어야 날이 밝아 질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내리막 길을 따라 모랭이를 돌았더니 다시 언덕이 나오고 그 언덕을 돌아 모랭이로 접어드니 또 내리막 길이 마냥 계속 된다 마냥 계속 되는 길을 따라 밤길을 하염없이 걷고 있다
휴게소를 출발하여 두어 시간을 걸은 듯 한데 날이 밝아 온다 저편 산 기슭 아래 첫 마을이 새벽의 여명 속에서 어렴푸시 나타나고 있는데 어둠이 아직 채 걷히지도 않은 길가엔 새벽 시장 보러 가는 아낙들이 짐을 들고 앉아 읍내로 이어지는 첫차를 기다리며 도란 거리고 있다 캄캄하고 무시 무시했던 험한 산길~! 금방이라도 맹수가 뛰쳐 나와 나의 목 덜미를 물고 늘어질 것만 같았던 이 산길을 야밤 중에 혼자 걸어서 완전히 빠져 나온 것이다 인기척을 느끼는 그 순간 무서웠던 밤길 공포에서 해방 되는 긴 숨이 저절로 쉬어진다 휴~! 긴 한 숨을 내 쉬고는 야간 도보 내내 손에 꽉 쥐고 있었던 과도를 칼집에 꽂고는 “고마운 과도여~! 너는 밤새도록 나를 지켜준 나의 진정한 파숫꾼이자 호위병 이였어”하고 감사 인사를 건네 본다 양평 들머릿 길을 지날 때 주방 기구 점에서 이 칼을 구입하지 않았다면 야간에 산길을 혼자 통과 하지 못했을지도 모를일이다
해뜰 무렵 홍성서 횡성으로 이어지는 5번 국도와 마주쳤다 횡성을 지나야 강릉으로 갈수있기에 방향 바꾸어 횡성으로 진입하는 데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조금 전엔 차량 통행이 거의 끊겼던 어둡고 좁은 2차선 도로를 걸었는데 이젠 차가 덤성 덤성 지나 다니는 밝고 넓은 4차선 도로 위를 걷고 있 기 때문에 느낌이 달라지는가 보다. 이 넓은 도로 따라 여유 롭게 걷다 보니 낯익은 풍경이 펼쳐 진다. 2년 전 여름 춘천 에서 내륙길 따라 목포로 연결되는 이 길을 걸어 도보 여행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주변 풍경 들이 눈에 많이도 익어 있다.그 땐 이 길을 세 사람이 오후에 지나갔었는데 지금은 이른 아침에 혼자 걷고 있다 그 도보 때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며 걷고 있노라니 어느 새 횡성 읍내가 눈 앞에 다가 와 있다 읍내 입구에는 한반도 내륙을 관통하는 중앙 고속 도로가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고 또 횡성 인터 체인지가 자리 잡고 있다 고요한 횡성의 아침
횡성 읍내 초입
횡성 들머리의 다리를 건너니 아침 8시다 이곳에 당도 하길 얼마나 기다리고 고대했던가 양평서 저녁 먹은 후 지금 까지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고 밤새도록 여기까지 걸어 왔다 출발 50키로지점인 용머리 휴게소에서 간식을 준비 해야 겠다고 맘 먹었는데 휴게소 문이 닫혀 버리는 바람에 먹을 간식은 커녕 물 한방울도 준비하지 못하여 허기 쥔 배를 움켜쥐고 밤새도록 걷지 않았는가~! 시골 길이고 야밤이라 중간에 문을 열어 놓은 가게가 있을리 없었기에 읍내에 도달하기 까지 허기와 갈증을 참아가며 걷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애타게 찾았던 구멍가게가 저기에 문을 열어 놓고 나를 반기며 기다리고 있다 배낭일랑 문밖에 팽개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캔맥주 하나랑 빵 한 봉지를 덥석 집어 들고 탁자에 걸터 앉아 조심스럽게 요기를 한다 급히 먹으면 체할 것 같아서 맥주 한모금 마시고 빵 한입 먹고... 그런데 평소 술을 즐겨 마시기는 하지만 이른 아침에 맥주를 마셔보기는 처음인 듯하다 그것도 빵과 곁들여서...
3. 화랑과 상봉하려던 기대가 어긋나고
요기로 허기를 면하고 나니 화랑과 연락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젯밤 그와 마지막 통화 할때 아침 7~8시 경까지는 내가 횡성읍내에 도착 할 테니 그때 만나 자고 약속을 해 두었기 때문에....
신호를 계속 보내 보지만 도통 전화를 받지 않는다 지금 연락이 되어야 아침도 같이 먹고 또 강릉까지 쉽게 갈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하는데 연락이 되지 않으니 난감하다 읍내에서 마냥 혼자 기다릴 수는 없는 일, 가는데 까지 가다가 나중에 다시 전화 해보자
읍내를 통과 하는 때가 출근 시간 인지라 학생들과 직장인들로 엉켜 거리가 부산하다 그 틈새에 배낭을 메고 지쳐 힘없이 걸어 가고 있는 초라한 용파리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고스톱 치면서 밤을 새운 듯한 깨재재한 얼굴에다가 지칠대로 지쳐 뒤퉁거리며 걸어 가고 있는 영판 노인네의 모습을 말이다 등교하던 학생들이 나를 힐끔 힐끔 쳐다 본다 출근 길을 재촉하든 사람들도 내게 곁눈질을 해 댄다 또 교통 정리하고 있던 순경의 시선이 내 얼굴에 와서 머무르는 듯도 하다 이른 아침에 작은 읍내의 길을 배낭 멘 늙은 나그네가 걸어가고 있으니 모두들 수상쩍은 시선으로 바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다가 작은 가게 앞을 지나 가는데 개 한마리가 나를 보고 짖어 댄다 와이고 ~! 저 눔의 x새끼 까지~! 주변의 시선들이 확연히 내게 몰려 오는 것 같아 챙피스럽다 야이~! 이 똥개 눔아~! 서울서 네놈이 사는 동내까지 80키로가 넘는 거리를 단숨에 걸어왔는데 환영은 못해 주더래도 나를 몰아내지는 말어야 할거 아니냐~ 이 눔아~! 그리구 네놈이 사는 횡성 땅에서 나같이 서울서 횡성까지 걸어 온 놈 있음 나오라고 해 봐~! 하는 자부심으로 읍내를 거의 빠져 나왔다
조~오기에 기사 식당이 보인다 읍내를 더 빠져 나갔다간 식당을 더 만날 수도 없을테니 여기서 아침 식사라도 하자 6천원 하는 두루치기 한그릇 시켜 놓고 또 화랑에게 전화를 해보는데 여전히 대답이 없어 불안 하기 까지 하다 분명 횡성에서 나를 기다리겠다고 어제 서로 약속 했고 또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전화를 받지 않으니 말이다 잠속에 빠져 들었다 해도 이쯤 신호를 보냈다면 분명 전화를 받았을 텐데... 연락이 안된다면 오늘 밤도 무서운 산길을 나 혼자 걸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아니 그렇지만 나를 지켜주는 파숫꾼이자 든든한 호위병인 과도가 있지 않은가 라고 위안 하면서 연락이 되건 안되건 설정한 목표대로 계속 가 보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조금전 간단히 요기를 해선지 아님 너무 지쳐서 인지 밥맛이 완전히 도망을 갔다 원기를 회복하려고 비싸고 기름진 것을 시켰는데 반그릇도 먹지 못했다 본전 생각에 앞서 이틀동안 너무 부실하게 먹었어니 이런 체력으로 목적 달성하는데 차질이 생길 것만 같아 걱정이 된다
식당 문을 나오려는데 비틀 뒤퉁 넘어 질듯 하다가 다시 탁자를 붙들고 일어서는데 식당 주인이 내 등뒤에서 "왜그러셔요? , 어디 불편하셔요"하고 묻는다 “아뇨~! 그냥...” 하고 대답 하고는 식당을 빠져 나왔다 그런데 식당 아주머니는 나의 꼬락서니를 보고 무었하는 어떤 사람으로 생각했을까? 옛날 같았어면 간첩으로 오인하여 경찰에 신고 하였을 법하다 지난 겨울 단체 장기 도보 때도 주민의 신고로 경찰이 백차를 타고 나타나 우리를 한총련 운운하며 가는 길을 막아서지 않았었든가 더더군다나 혼자 도보여행 할 땐 더 수상쩍은 시선을 많이도 받는다 등산하는 사람 같지도 않고, 뱀을 찾아다니는 땅꾼 같은 느낌이 들긴 하는데 뱀자루가 없으니 땅꾼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채권 산다고 외치며 다니는 사람은 더더구나 아니고 이웃마을에서 놀러온 마음 착한 아저씨도 아닌 오직 수상 쩍은 사람일 뿐이다
가까스로 식당을 나서니 들판으로 이어지는 넓은 도로가 나를 기다리고있다 이 길을 따라 얼마 쯤이나 걸었을까 아침 식사 한다고 잠시 쉬는 동안 굳어 버려 꼼짝도 못할 듯한 다리가 이젠 풀어지면서 제법 걸음이 빨라진다 언제나 먼길을 걸을땐 이렇다 쉬면 쉴수록 몸이 굳어져 첫 걸음을 내딪을 땐 한발자국도 걷지 못할 것 같지만 어거지로 몸을 추수려 움직이다 보면 다소 몸이 풀리고 20~30분 쯤 걷다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정상 속도 로 걸음이 바뀐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있다 80키로 지점도 지나고 90키로 지점 가까이 까지 걸어 왔는데도 속도는 어제와 별 차이 없다 이 정도의 컨디션이 계속 된다면 무박 200키로 걷기와 3일 이내에 강릉 도달 한다는 두가지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첫번 째 목표만 달성되면 두번째 목표는 어렵지 않게 달성 될 수가 있다 내가 출발 한곳에서 강릉까지 210키로 남짓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아직 속단은 하지 말고 걷는데 까지 걸어 보자 잠자지 않고 200키로를 계속 걸어 본적도 없고 또 체력이 뒷바침 해 줄지를 체크해 본적도 없다 얼마 더 걸어 갈수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이긴 하지만 가는데 까지 가보자
벌판 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뻥뚫린 국도 위로 나혼자 걷고 있다 차량 통행이 뜸한 넓은 4차선 도로를 외롭게 걷고 있어려니 괜스레 입에서 욕이 튀어 나온다 빌어먹을 놈들~! 도로를 확장 하면서 사전에 경제성이나 통행량 같은 기본조사도 하지않고 국가 예산을 집행 하는 똥구멍 같은 높으신 나으리님들 말이다 도로 확장 하기 전에 기초 조사를 하였다면 4차선 국도가 이렇게 텅 비어 있지는 않을텐데... 내가 낸 세금이 낭비되고 있는 것 같아 그놈들을 향해 힘차게 욕찌꺼리를 퍼 부어 본다 “에라이~! 호랑 말코 같은 놈들아~! 이 다음부터는 사전 타당성 조사 꼭 해서 차가 많이 다니는 2차선 도로부터 우선 4차선으로 확장하거라 이 놈들아~!” 하고 도보 여행을 자주 다니다 보니 전국 각지에서 이런 현상을 쉽게 접할 수있어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텅빈 4차선 6번 국도 횡성 추동구간
4. 100키로 지점인 횡재를 향하여
지금이 낮 12시다 100키로 지점인 황고개에 이르기 까지는 4~5키로 남은 듯하다 조그마한 마을을 지나려는데 목이 말라 물도 마시고 또 간식도 구하려는데 가게가 통 눈에 띄지 않는다 다른 지방과는 달리 강원도를 도보여행 할 땐 시골 국도변에서 가게를 어렵게 만나는 것은 다반사 이지만 이렇게 까지 가게 구경하기 힘들 줄은 미쳐 몰랐다 몇개 마을을 지나쳐 닥박골이라는 마을에서 가게 위치를 물었더니 지나 온길로 돌아가 마을 안으로 들어 가야 한단다 뒤돌아 가기는 싫다 조금만 더 가면 또 가게가 나오겠지? 지금은 대낮이니까 어제 저녁 처럼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허기에 시달리지는 않겠지 하는 미련한 생각으로 길을 재촉한다
횡성회다지 소리비와 닥박골 입구
산 모퉁이를 돌았더니 길다랗게 비탈진 오르막 길이 500미터 쯤은 직선으로 보이더니만 곧 숲 속으로 사라져 버렸는데 아마 여기서 부터가 황고개로 오르는 길이 시작 되는 모양이다 황고개는 황재라고도 불리어 진단다 경사 길을 지나 모렝이를 돌고 가파른 언덕 길을 헉헉 거리면서 한참 올라 왔다 이리 돌고 저리 휘감아 오르는 비탈길을 계속 걸어 올라 가도 고갯마루는 보이지 않는데 초가을 뙤약 볕이 나를 못살게 더 괴롭히고 있다 땀이 삐질 삐질 나면서 목이 심하게 타들어 오고 있기는 하지만 주변에서 물 한방울 쉽게 얻을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다 아까 그 식당에서 물을 좀 얻어 마시고 올걸...! 체통 지킨다고 물한 모금 하자는 아쉬운 소리도 못하고 지나 버린 것이 이렇게 후회스러울 줄이야 자존심에 너무 얽매여 사는 못난 자신을 탓해 봐도 갈증이 해소될리는 없다 갈증을 참고 참으며 언덕길을 올라 가는데 언덕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황고개가 이렇게도 높은 고개인가 싶어 뒤를 돌아 보니 소나무 가지 사이 저 한참 아래에 벌판이 어름푸시 보인다 황고개가 높긴 높은 고개 임에 틀림없구나~! 저기 가파른 언덕 길에서 선형 개량 공사를 하고있는 포크레인이 보인다 염체 불구하고 그 기사에게 물좀 달랬더니 오늘 날씨가 더워 가지고 온 물을 다 마셔버렸다나! 그런데 여기서 200미터 쯤 더 올라가 왼쪽 오솔길로 빠져 나가면 깨끗한 개울 물을 만날 수 있다고 일러 주길래 달음 질 하듯 올라가 그 개울 물을 찾았다.. 오~~~~! 이젠 살 것 같군~!
칡덩굴 잎으로 만든 물컵
100키로 지점인 황고개의 고갯마루에 오르니 오후 1시 30분이다 어제 오후 2시에 출발 했으니 100키로를 23시간 30분 만에 걸어 온 셈이다 무리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페이스를 조절해가면서 말이다 내가 출발 할때 화랑이 계속 전화를 걸어 "대장님 절대 초반 부터 무리 하지 마십시요" 하고 신신 당부를 해 왔기에 초반 걸음 속도에 더 신경을 곤두 세워 왔다 그는 서울서 출발하여 강릉으로 향하는 초반에 어마 어마한 뜀 박질 속도로 걸었다가 중간에 발병을 얻어 한발 자국도 전진하지 못하고 횡성에서 쉬고 있어면서 일러 주는 충고이기에 초반 걸음 속도를 조절하지 않을수 없다 물론 한강 울트라도보 때도 그랬지만... 어쨌거나 100키로 지점을 한강 울트라 도보 때와 거의 비슷한 시간 안에 통과 한 셈이다 그러나 그때의 몸 컨디션과 지금의 컨디션을 비교 한다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지난 5월 100키로 울트라 도보 때는 밝고 차량 통행이 없는 강변길을 여러명이 어울려서 즐기면서 걸었기에 100키로 지점을 여유스럽게 통과 했었는데, 지금은 차들이 통행하는 평지길 언덕길을 허기진 배를 움켜 쥐고 혼자 걸어서 그런지 많이도 지쳐있다
황재 정상
5. 화랑과의 합류와 나의 첫 경험
100키로를 통과하는 이 지점과 이 시점 부터 진짜 도전이 시작된다 내 생애 지금 까지 100키로 이상을 잠자지도 않고 계속 해서 걸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지금 100키로 지점인 황고개를 막 지나 새로운 작은 도전을 향해 걷고 있지 않은가~! 이 황고개를 지나 어디메 쯤 얼마를 더 걸어서 갈 수있을지는 몰라도 새로운 도보 기록이 세워 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다소 흥분 되어 온다 들뜬 마음에 잠시 쉬는 것도 잊고 정상을 지나쳐 내리막 길을 내려 오는데 안흥을 가르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안흥은 찐빵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강원도 사람이라면 안흥찐빵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물론 서울 사람들 에게도 많이 알려져서 그 유명 세는 대단 하단다 찐빵 생각을 하니 갑자기 허기가 되살아 난다
8키로 정도만 더 가면 둔내이고 또 그곳에 도착하면 배를 채울 수 있는 휴식처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과 화랑을 만날 수 있다는 반가움에 도취되니 무겁던 발걸음이 가벼워 진다 연락 두절 되었던 화랑에게서 오전 11시 쯤 전화가 왔었었는데 꿈속을 헤멘다고 전화를 못 받지 못했다나~! 그런데 그는 어제 도보를 중단했던 지점까지 버스를 타고 가 그 지점에서 다시 강릉을 향해 걷겠다기에 그러라고 해놓고 나는 지금 혼자 나대로 강릉을 향해 걷고 있는 것이다 또 여차 여차한 사유로 나는 6번국도를 따라 걷고있고 그는 지방도로를 따라 걷고있다 둔내 5키로 전방 국도와 지방도가 맞닿는 그곳에서 우리는 랑데부 하기로 되어 있다 황고개 길을 부지런히 내려 와 도로가 교차 하는 지점에서 그를 한참 동안 기다리면서 전화를 해 댄다 그러나 서로 전화질만 해댈 뿐 화랑이 나타 나질 않는다 그랑 나랑 모든게 엇갈려 버린 것이다 통화 내용도 엇갈렸고 길도 엇갈렸고 방향도 엇갈려 버렸다 서로 엇갈려 헤메기를 한참~! 둔내 3키로 전방에 도달 했을 때 맞은 편에서 화랑이 나를 찾아 걸어 오고있다 내가 생각 했던 것보다 그의 걸음 걸이가 가벼워 보인다 젊은 화랑이기에 하루를 쉬었는데도 발목병이 많이도 회복되었나보다 그를 만나는 순간 얼마나 반가웠든지 이젠 혼자가 아니다
화랑과의 첫 상면
화랑이랑 둘이 108키로 지점인 둔내에 걸어 도착하니 오후 4시가 넘었다 그런데 아침을 먹은둥 만둥 한뒤 여지껏 요기도 못해서인지 배가 무척 고프다 황고개 정상 부근에서 개울 물로 갈증을 면한 것이 아침 식사 후에 먹은 것 전부다 허기찬 배를 움켜지고 허겁지겁 해장국 한그릇을 해치우고 나니 몸이 나른해 온다 막걸리라도 한잔하고 싶은데 막걸리는 팔지 않는 단다 아니 술을 지금 마셔서는 안된다 최소한 120키로 까지는 자력으로 걸어야 된다고 스스로 다짐 하지 않았나~! 그렇게 다짐을 했을지라도 지금의 고통을 당장 술로 달래 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 점심을 먹어면서 응원도보 와 주겠다던 가가멜의 소식을 화랑에게 물었더니 동 서울 터미날 에서 버스를 타고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이미 출발 했단다 그는 여름에 서해안길 따라 주말 이어 걷기를 하다가 중단한 곳에서 다시 이어 걷기 하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이를 취소하고 우리를 응원하러 오는 것 이기에 더 고맙게 느껴진다
점심 먹은 그자리에 그냥 그대로 드러 눕고 싶은 감정을 억제하며 식당을 나와 이효석씨의 "메밀 꽃 필 무렵"의 고장인 평창군의 봉평으로 향한다 여기서 봉평 까지는 20여키로는 더 가야하고 또 오전에 지나온 황고개 보다도 더 높고 험준한 태기산을 캄캄한 밤에 넘어 가야 하기 때문에 이 마을에서 야간 도보 준비를 해야만 된다 그래서 근처 구멍가게에 들어가 막걸리 2병과 초코렛 1통, 그리고 생수와 건전지를 구입하여 가방에 넣으니 무겁기는 하나 부자가 된 기분이다 이쯤 준비 했어면 고개를 끄뜬히 넘을 수있겠지 하고 가게 문을 나서는데 저 멀리 태기산이 빤히 쳐다 보인다
6. 태기산 양두구미 재를 넘어면서
태기산은 북으로는 구목령과 남으로는 청태산 등선과 맞닿는 해발 1261메터의 고산으로서 횡성군과 평창군의 경계를 이루며 우뚝 솟아 있다 횡성에서 평창으로 가려면 태기산 정상 아래에 있는 1000고지 정도의 양두구미 재를 넘어야 하는데 초입의 오르막 길을 오르니 해가 서산을 넘어 간다 화랑이 잠시 멈칫하더니 가방 속에서 후랏쉬를 꺼집어 내고는 운동화 끈을 좀 더 동여 메는가 싶더니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야간 도보위해 짐을 정비하는 화랑
걸어면 걸을수록,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태기산 속 깊은 곳으로 우리는 빨려 들어 가고 있다 산 밑에서 정상을 쳐다 보았을 땐 별거 아닌것 같았 던 산이 왜 이렇게 높고 험한지? 아마도 고산 준령 이라는 단어는 여기 태기산을 두고 한 말인 듯하다 후라쉬로 길을 비추며 가다가도 어렴푸시라도 길을 인지하고 나면 밧데리 아낀다고 후라쉬 를 끄고 걷는데 하늘에는 무수한 별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떠 있다 어릴적 고향의 밤 하늘을 보는 듯한 느낌 같기도 하지만 현실은 태기산 산속을 걸어 가면서 밤 하늘의 별들을 헤아리고 있는 것이다 아니 고요히 밤하늘에 흐르는 별빛을 사냥하면서 우리는 걷고 있는 것이다 큰곰 자리와 작은곰 자리도 찾아보고, 카시오피아를 따라 가다가 은하수 사이의 견우와 직녀별 도 찾아본다 동녁 하늘에는 "산토"가 떠 있는 것이 확연히 보인다 산토는 북두 칠성 크기보다는 작지만 모양새는 북두 칠성과 거의 비슷한 별자리이다 이 별자리는 해가 질 무렵 동녁 하늘에 떠 올랐다가 한 밤중에는 하늘 한 복판으로 이동하고 또 동녁이 밝아 올 때 쯤 서쪽하늘에서 사라진다 고로 산토의 위치를 잘 관찰 하면 시계 없이도 밤 시각을 알 수있다 즉 산토가 하늘 한 복판에 있을 땐 밤 열두시(子時)이고 정 동쪽과 하늘 한복판 사이의45도 쯤 위치하면 저녁 9시가 되며 정 서쪽과 하늘 한복판 사이의 45도 쯤에 위치하면 새벽 세시를 알려 주는 것이다 이런 특성을 가진 산토의 별자리에 관해 어릴 때 어머니가 들려 주셨는데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하늘의 별자리를 찾아 헤아릴 땐 으레히 산토를 먼저 찾아 보고 또 그 별자리의 위치를 알아 시각을 추측 해 보면 거의 실제 시간과 비슷하게 맞아진다 지금은 산토가 중앙에서 동으로 40도 정도 기울기에 있어니 아직 밤 9시는 되지 않았나 보다~!
별빛이 무수히 흘러 내리는 산등성이 길을 돌아 양구두미재를 향해 걸어 올라가면서 화랑과 함께 먼 옛날의 동심의 세계로 되돌아 가고 있다 공동 묘지에 귀신 나온 다는 이야기라 든가, 오소리잡는 사냥꾼이 호랑이를 만나 아끼는 사냥개 세마리를 간신히 구출하여 뒷걸음질로 살아 왔다는 이야기며 옛날에는 호랑이와 표범이 많이 살아 사람을 해치기도 했다는 평범한 이야기 등등을 나누어 가며… 그는 또 혼자 북한산을 야간 산행 했었다는 무용담을 나에게 들려주고 나는 한라산 산간 도로를 따라 야간 도보 했을 때 후라쉬 앞에 파랗고 둥그런 불빛이 나타나는 것을 본 목격담을 들려 주면서 전등을 여기 저기 주변 숲속으로 비추면서 걷고 있다 이렇게 깊은 산중이라면 금방이라도 한라산에서 본 듯한 파란 불빛과 마주 칠 것 같은 느낌 이지만 그 같은 불빛의 흔적을 여기서는 찾아 볼수 없다
그런데 8부 능선 쯤 올라 왔을까 금방 지나온 소나무 숲 속에서 ㄲ우엑~! 하는 짐승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저 소리는 분명 표범 새끼의 울음 소리인데~! 며칠전 동물의 왕국 tv에서 아프리카 표범 새끼가 어미를 따라가며 울부짖느었든 그 울음 소리와 똑 같다 새끼 표범 주변에 큼직한 어미 표범이 있을거라는 직감이 드는 순간 갑자기 머리가 쭈삣하게 서면서 등골이 오싹해진다 아니래도 맹수의 공포증에 시달려 긴장을 늦추지 못한 채로 산길을 걷고 있는 이 와중인데...! 뒤로 돌아 후랏쉬를 울음소리 난 듯한 자리에 비춰본다 그러나 숲이 너무 짙어서 불빛이 표범새끼에게 닿지를 못한건지 아님 내가 뭘 잘못 알고 있는 것 인지는 모르지만 그울음 소리는 분명 표범 새끼의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먹이 감인 멧돼지와 노루들이 여기 저기에 많이도 늘려 있고 간혹 표범을 보았다는 목격자도 있는가 하면 여기 태기산은 높고 깊은 데다가 등산객 마져 거의 없어 인적이 드문 곳이기에 그 존재의 가능성은 충분하므로 조금 전의 울음소리는 분명 한국산 표범 새끼 것이 였다고 확신하면서 화랑에게 느낌을 이야기 했더니 의아해 할 뿐이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동안 비탈진 언덕길을 헉헉대면서 고개 정상까지 올라 왔다 고갯마루 정상에서 내려 갈 길을 찾아 보려는데 어둠이 깔려 사방을 분간 할수가 없다 한참을 둘러보며 더듬거리고 있는데 저~쪽 능선 위로 차가 지나가는 불빛이 보인다 그길을 따라 하산 하여야 되나 보다 그런데 너무 까마득 하다 까마득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응원와 준 가가멜이 저편 언덕 아래의 첫 마을에서 우리가 도착하기를 두시간 동안 눈빠지도록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도 한시간은 족히 더 기다리게 해야 할 것 같아 문제가 된다 그가 이쪽 방향으로 오는 차를 힛치하여 우리 일행과 합류하겠다는 것을 중간에서 길이 엇갈려 버리면 이 어둠 속에서 대책이 없을 듯하여 그쪽에서 참고 기다리게 했는데 태기산을 넘는 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릴 줄은 미처 예상을 하지 못했다 가가멜이 한시간을 더 기다려도 지금으로선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으로 내리막 길을 향하다가 화랑에게 산 아래 까지 힛치를 해보자고 제안해 본다 그는 난색을 표명 하면서 그냥 계속 걸어 내려 가자고 하는데 우리가 지금 무슨 큰일을 하고 있다고 먼길을 응원 와 준 은인에게 세시간씩이나 기다리게 하는 큰 벌을 주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또 5키로 정도의 거리를 힛치 했다 해도 가가멜을 만난 후 다른 방법으로 걸음을 보충하면 될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화랑에게 힛치 하자고 우겼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나의 의견에 따라 주기는 하지만 반칙을 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왼쪽부터 화랑, 가가멜, 그리고 용파리
7. 응원군을 자원한 가가멜이 도착하고
고개 마루에 주저 앉아 차를 기다려 보는데 차는 지나 가지 않고 팔 다리만 굳어 오고 있는 것 같다 팔 다리 만 굳어 오는게 아니라 온 몸이 굳어 오고 있다 또 다리통에서도 허벅지에서도 또 허리에서도 통증이 느껴진다 지금 주저 앉아 쉬고는 있지만 쉬는 것 자체가 오히려 고달프고 고통스럽다 이럴 땐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계속 걸어야 하는데... 하룻밤 꼬박 지새우며 걷고 걸었는데 또 다시 잠 못자며 걸어 가야 하는 이 가련한 신세~! 에이~! 여기서 쉬는 동안 등짐이나 좀 줄여 보자 자신의 체력과 의지로 120키로는 족히 걸었으니 술마실 자격이 있지 않은가 여기 태기산 고갯마루의 양구두미재 정상 까지는 122키로 지점이다~! 여태까지 막걸리를 짊어 지고만 왔지 마시지는 않은 터였다 막걸리를 서너 컵 들이 켰더니 금방 약효가 나타 난다 굳어 오던 몸이 조금은 풀어지는데 기둘려도 기둘려도 지나 가는 차가 없다 한참만에 두어 대가 휙 지나 가는데 세워 주지는 않는다 이 야밤중 인적 드문 태기산 고갯 마루에서 왠 미친 두놈이 바랑을 짊어지고 차를 태워 달라 하는 데 어느 기사가 차를 세워 주겠는가 하고 스스로 반문도 해본다
잠시 뒤 용감한 봉고 승합차 기사가 차를 세워 우리를 태워 준다 산아래 피닉스 파크 입구에 일행 한명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더니 이 지역 지리에 밝은 기사 분이 그곳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가가멜 앞에 차를 세워 준다 "허이~! 가가멜~!" "오~! 대장님~, 화랑~!" 이상한 일(?)을 위한 우리 세 사람의 만남이 봉평 땅에서 이루어 진 것이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만나니 정말 반갑기도 하다
근처 24시 코너 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 서로 여기 까지 온 이야기를 해가며 가게에서 구입한 컵라면과 가가멜이 준비해 온 과일로 저녁 식사를 대신하면서 막걸리로 넉넉하게 오랜만에 배를 채워본다 얼근히 취한 느낌 속에서 몸의 통증을 조금씩 잊어 가고 있다.
봉평에서의 저녁 식사
8. 메밀꽃 필무렵의 동래 봉평 앞을 지나는데
배를 채웠어니 또 길을 떠나야 한다 가가멜의 배낭 속에 아직도 간식거리가 잔뜩들어 있다고 해서 막걸리만 넉넉하니 챙겼다 또 가멜은 우리가 진행하는 반대 방향인 장평에서 왔기에 먼저 길을 숙지 하고있는 그에게 길잡이가 되라 하고 나는 그를 따라 걷고만 있다 봉평에서 장평까진 10여키로 남짓하다 이제는 이길을 둘이 아닌 셋이서 걷고있다 가가멜이 같이 걸어주니 천군 만마를 얻은 듯 하다 오던 잠도 달아나고 온 몸을 짓누르고 있던 통증도 사라졌다 농담과 작난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도 중간 중간 사진을 찍어보는 여유를 부려 본다 몸 속 어디엔가 모르게 숨어 있었던 힘이 절로 솟구쳐 올라 평소와 같은 걸음걸이인 듯하다 내가 한반도 첫 도보 종주 때 우리 카페 특별회원인 산바람이 마지막 2일 동안 응원 도보 해 주어 신나게 걸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엔 가가멜이 응원 도보 해주어 같이 걷고 있는데 날아 갈 것 같은 기분이다 그의 응원 도보에 힘입어 화랑과 함께 신나게 걸었더니 어느새 장평 읍내에 접어 들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장평은 행정 용어로 읍이 아니라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장평리라는 부락이다 그런데도 읍내 시가지 같은 느낌을 풍기면서 12시가 넘었는데도 문을 닫지 않은 상점들이 여기 저기에 늘려 있다 이곳을 지나 치다가 불켜진 마트 앞 길거리에 놓여진 의자에 앉아 이곳의 명물 막걸리인 메밀 꽃 술을 마시며 지친 몸을 녹이고 있다 그런데 나만 지쳐 있다고 생각 했는데 나보다 하루를 더 걸은 화랑도 꾀 지쳐있는가 보다 그가 술을 마시다 말고 건물 앞에 폴삭 주저 앉더니 계단 위로 길게 다리를 뻐치면서 허리를 고른다 그 때 내가 그에게 카메라를 들여 대었더니 빵긋 웃어며 손가락으로 V자를 펼쳐 보이는 여유가 있는 걸 보니 아직은 걸을 수 있는 힘이 더 남았나 보다
봉평의 특산 메밀 꽃 술
여기서 막걸리 세병을 게눈 감추듯히 해치우고는 161키로 지점인 진부를 향해 출발한다 여기서 말하는 진부라는 지명은 설악산 진부령 고개가 있는 그 진부가 아니고 평창군 진부면 면 소재지이다 그런데 진부를 향해 걷는 이 국도엔 밤중을 지난 시간이라 그런지 차량 통행이 거의 없다 도로 중앙의 노란 차선을 따라 한참을 걸어도 차가 지나 가지 않는다 얼마를 더 걸었을까? 약(?) 기운이 슬슬 떨어져 갈 무렵 길섶에서 딴 푸성귀를 안주 삼아 약을 보충 하려고 적당한 장소를 찾고있는데 마땅한 곳이 없다 갑자기 도로 중앙선 위에 퍼질러 앉아 술을 마신 다면 멋진 추억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기에 길위에 그냥 술판을 벌리자고 했더니 동갑내기 가가멜과 화랑이 손발을 척척 맞추어 순식 간에 노오란 중앙차선 위에 술상(?)을 차린다 이들은 길을 걸어면서 이야기 할때도, 나를 골려 줄 때도, 그리고 음식을 먹을 때도 자기들 끼리 손발이 척척 맞는 친구 들이다 차례진 술 자리에서 술잔을 채우려는데 난데 없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다가 온다 얼른 술상을 치워 차량을 통과 시키고는 다시 중앙선 위에 펼치는데 이번에는 저편에서 두대가 한꺼번에 달려온다 제기럴~!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 설 우리가 아니다 시작했으니 도로 중앙선 위에 앉아 한순 배의 잔이라도 돌려야지~!
국도의 황색 중앙선을 활보 하며
9. 중도 실패한 도전
국도의 노오란 중앙선 위에 퍼질러 앉아 술잔을 기우려 보는 경험을 하고는 다시 길을 가는데 진부가 멀기만 하다 여기는 진부 전방 5~6키로 쯤 떨어진 속사라는 곳이다 가가멜을 만난 130 키로 지점부터 156키로 지점 쯤되는 여기 속사까지 25~26키로 거리를 막걸리 힘과 또 가가멜의 응원에 힘입어 가까스로 걸었었는데 이젠 내 체력이 한계점에 도달 했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가 정확히 어딘지 분간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술에 취해 서인지 아니면 지쳐서 몸과 마음이 완전히 굳어 가고 있어 그런지 판단력이 흐려져 가고 있다
무엇을 찾겠다고 이 길을 떠났을까 지금 새벽 4시가 지났는데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이틀 동안이나 잠자지 않고 걷고 있을까? 내 인생의 어떤 좌표를 찾겠다고 사리 판단을 못할 지경까지 이른 몸 상태로 길을 걸어며 헤메고 있을까? 무딘 머리를 휘저어 보며 "왜?"라는 단어를 연속으로 뇌까려 본다 뇌까려 볼수록, 생각 할수록 머리가 복잡 해 지면서 이자리에 그냥 주저 앉고 싶다
에이~! 여기서 주저 앉다니 안될 일이다 다리가 이지러 지고 몸이 더 굳어져도 쓰러질 때까지 걸어 보자 속사 전방 2키로 지점에서 속사 읍내의 불빛이 보일락 말락 할때 가가멜이 나의 지친 몸 상황을 눈치채고 오늘은 일단 속사에서 자고 내일 다시 강릉을 향해 걷자고 제안 했을 때 그렇게 하자고 동의 한 것이 후회 스럽다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아니 쓰러질 때까지 걸어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데 중도에 포기 하다니?
그러나 그러나 지금은 ~! 지금은 몸 따로 마음 따로다 현재의 몸 컨디션으로 서는 두 발짝을 더 옮길 수없을 것만 같고 오로지 잠자리에 들고 싶은 심정 뿐이다 하남을 출발하여 양평을 지나고 50키로 지점인 용머리 휴게소에서 잠시 쉴 때 까지만 해도 200키로는 쉽게 걸을 수 있겠다고 자신감에 차 있었는데...! 또 그 땐 희망 찬 발걸음을 옮기면서 과거와 현실을 넘나들고 또 회상에 젖어 수없이 스쳐간 인연들을 머리에 떠 올리 곤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기도 했는데 이젠 아니다 체력의 한계점에 도달 한 나 자신은 지금 평사의 속사 땅에서 나 자신 스스로 에게 무릎을 꿇고 있다 그래서 화랑과 가가멜이 나를 인도 하고 있는 모텔을 향해 걷고 있는 것이다
잠자지 않고 200키로를 걸어 보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중도 포기를 해야만 하는 내 자신을 돌이 켜 본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중도 포기 해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 깝다 그런데 내 뜻을 포기 하기전 우선 먼저 상처 받은 내 자존심 부터 치유하지 않으면 머리가 터져 쓰러져 버릴 것만 같다 우선 내 자신 부터 먼저 추스려 보자 쉰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직 정신력으로 서울서 여기 강원도 평창군의 속사 까지 잠 한숨도 자지 않은채 156키로를 38시간 만에 걸어온 용파리 너 정말 대단 하구나 하고 칭찬을 해 본다 또한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을 지라도 200키로를 걷겠다고 도전을 시도한 그 자체 만해도 장한 일이라고 위안을 해본다 용파리의 인생길 위에 작지만 산뜻한 족적을 남겼다고 자부 하면서 말이다
이젠 200키로를 계속 걷는다는 목표는 물건너 갔지만 서울서 강릉까지 3일 이내에 걸어 가겠다고 세운 목표는 아직 남아 있다 남은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도 굳을 대로 굳어 버린 몸과 마음을 풀어 보자 몽롱해져 오는 머리를 눞혀 보자 내일을 위해서.....!
숙소에 들어와 씻지도 않은 채 펼쳐 진 이불 위로 꼬꾸라 진다 나를 보살피며 도와 주고 있는 화랑과 가가멜에게 잘 자라는 인사도 없이......
첫댓글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