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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년 전 이때 즈음 느림보를 따라 덕유산 주봉인 향적봉을 올랐던 그 날의 기억이 여태도 생생하다.
발이 빠른 분들은 오늘의 남덕유 하산 집결지인 황점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덕유산 긴 능선을 종주하여 향적봉을 오르고 나머지
분들은 스키장 곤도라를 사용하여 비교적 손 쉽게 산행을 시작케 되었는데 막상 곤도라에서 하차를 하고 보니 정상 목전인
그 곳은 강풍을 동반한 날씨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눈발을 뚫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키장에서 운영하는 내부가 엄청 넓어 보이는 식당안으로 황급히 뛰어 드니 화려한 복장을
한 스키어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띈다.
유럽 알프스 어느 곳에 온 듯한 착각이 잠시 든다.
자본주의의 꽃이라고도 할 수가 있는 겨울 축제 스키장에 잠시 기생을 하여 그 너그러운 향연을 약간 빌려 보는 어색함을
애써 감추노라니 학창시절 보았던 크린트 이스트웃드와 리챠드 버튼이 열연했던 독수리 요새란 영화가 생각난다.
피죽과 보리개떡 그리고 고추장떡으로 연명을 했었던 내 조국 대한민국의 놀라운 발전상에 잠시 놀라워 하며 대충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푸는데 어데선가 문찌방에 좆 찡기는 듯한 소리가 냅다 들린다.
셋을 셀 동안 언능 보따리를 꾸려선 자리에서 일어 서란다. 물론 유치원 애들을 다루는 듯한 반발투다.
고개를 돌려 보니 아마도 무주리조트 식당에 고용된 어떤 젊은놈인데 우리처럼 멋 모르고 들어 와서 식당에서 제공하는
유료 음식물엔 일체 손을 대지 않고 뻰또만을 까 먹는 우리같은 기생충들을 박멸하는 게 이놈의 주 임무 같아 보인다.
이 새끼는 겨울 한철이면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해 왔었던지 큰소리도 내질 않는다.
안 일어 선다 이거지 하면서 사람을 어루고 엿을 멕이기 시작하는데 도무지 밥을 먹을 분위기가 아니다. 한 사람 두 사람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
밥 쳐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는데 하면서 나 역시 덩달아 짐을 꾸리노라니 내 꼬락서니가 여간 청승 맞지가 않다.
그날 따라 우리 느림보의 산벗 에쉴리 여사님이 몹시도 그립고 보고 싶어 졌었던건 또 무신 사유인지 모르겠다.
이미 아장 아장 걸음을 걷기 시작할 무렵 부터 끼와 재능을 간파한 여사님 부모님께선 일찌거니 태권도 도장엘 입문 시켰고
여고 시절엔 이미 여깡(여자 깡패) 써클의 맹주로서 아현동 고가다리 일대를 주름 잡았던 에쉴리 여사님은 무릎을 치켜 올려서
남자들 낭심을 까버리는 일명 니킥이란 기술엔 거의 달인 수준이다.
붕알 함 맞아 본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최하 일주일은 거동을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참고로 저의 경우엔
분당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아흐레 만에 깨어 났습니더. 그날 이후로
전 에쉴리 여사님만 나타 나면 우선 대가리(?)를 수채구멍에 쳐 박을 궁리만 한답니다.
원더 우먼처럼 혜성같이 나타 나신 에쉴리님이 야! 양아치 이 뜹때끼 하면서 일차로 낭심을 걷어 차곤, 붕알을 움켜 쥐고 고개를
푸욱 숙이며 나 뒹구는 양아치의 목덜미에 팔꿈치로 내려 치는 일명 엘보 드롭을 다시 한번 더 가격한다.
입에 개거품을 물면서 마치 오뉴월 논빠닥에 깨구리 뻗듯이 쭈욱 나부라져서 바둥 바둥 거리는 양아치를 보면서 우리 모두는
일제히 기립 박수를 쳐 댄다. 우 우 우
잠시 꿈을 깨곤 바람이 쌩쌩 부는 바깥에 나가서 비 오는 날 초상집 개처럼 부들 부들 떨면서 밥을 먹을 생각을 하노라니
억장이 무너질 듯 한데 느닷없이 구세주의 목소리가 현실로 들린다.
바로 내 앞에 앉았던 큰 체격의 우보님 이셨는데 체구에 어울리는 우악스런 갱상도 사투리가 온 식당을 들었다 놨다 한다.
얌마! 이렇게 추운 날씨에 사람이 어떻게 밖에 나가서 밥을 먹을 수가 있냐고 하시면서 네 놈은 에미 애비도 없냐고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시면서 너네 사장놈 잠깐 오라고 하신다.
호시 우보 혹은 우보 천리란 말 처럼 번뜩이는 호랑이 눈으로 천리를 걷는다는 우보님의 맹렬한 반격에 잠시 기세가 꺽인,
문제가 커져 점차 시끄러워 지면 장사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사세를 판단한 이 양아치 같은 젊은놈이 꽁지를 슬쩍 내리며
자리를 피해 주는 틈을 타서 우리 느림보 벗님들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후딱 도시락을 비운다.
만만치 않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를 곤경에서 구해 주신 우보님의 용기에 대해선 지금 꺼증도 감사한 마음 뿐이다.
갯펄에 사는 게들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 눈이 길다란 막대 끝에 달려 있어 필요시에는 안테나처럼 막대눈을 하늘로 향해서
펼쳐 올렸다간 굴로 도망을 칠 때에는 눈 깜짝할 순간에 이 막대눈을 접어 버린다.
남쪽에서 살랑 살랑 불어 오는 미풍인 마파람에도 겁을 집어 묵고 양아치놈에게 댓꺼리 한마디도 못했던 그날의 내 꼬락서니는
갯펄의 게 보다 나을 것이 조금도 없었던 하루 였었다.
물론 겨울 한철 장사를 하기 위해서 엄청남 시설비를 들인 회사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이곳은 여러 사람들이 공유하는
국립공원 이며 곤도라를 비롯한 모든 시설물은 무주리조트의 독점사업이기 때문에 다른 시설물은 이용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그리고
식당을 운영하다 보면 우리 같은 등산객들은 도시락을 준비해서 오긴 하지만 식후에 음료나 다른 보충 음식물을 시켜 먹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꼴 백번을 양보하여
자기네 식당 손님 받기가 싫다고 나가라고 하면 사실 할 말은 없는데 그 방법이 문제다. 젊잖은 말로
나가라고 하면 될 일을 이 개뼊따구 같은 시키는 초장 부터 파장 꺼증 지 애비 애미 같은 사람들을 상대로 반말이다.
올 해 부터는 여태 까지 써 오던 주소를 도로명 주소라고 하여 서구의 선진 기법을 사용한 새 주소로 바꾸었는데 찬반 양론이
있지만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새로운 주소를 사용케 되면 길 찾기가 여간 수월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허지만 정이 들었던, 나름대로 깊은 의미를 지녔던 예전의 그 지명에 대한 향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덕유산의 향적봉만 해도 그렇다.
향내가 켜켜이 쌓이는 봉오리란 뜻이다. 어떤 사유로 이 놓은 산봉오리를 향적봉이라고...
절집에 가 보면 공양칸(식당)의 현판을 향적당이라 하는 곳이 왕왕 있다.
장을 끓이고 밥을 뜸 들이는 그 구수한 냄새가 쌓이고 또 쌓인다는 것인데 우리 선조들이 어느 먼 훗날에 향적봉 아래에
스키어들을 위한 식당이 들어 서서 햄버거와 오뎅국물 끓이는 냄새가 켜켜이 쌓일 것을 예견 하셨던가?
참으로 묘한 노릇이다. 그리고 옛 지명은 의미도 있고 듣기에도 여간 정겨운 것이 아니다.
내 고향땅 안동 처럼 편안할 안짜가 들어 간 곳은 대부분 천재지변 같은 거의 없다고 한다.
평택과 인접한 안성만 해도 그렇다. 평택이 물난리가 나서 침수되어도 안성은 끄떡 없다는 것이다.
내 조상들이 사셨던 곳은 안동에서 약간 외곽지인데 그 조그만 골짜구니에도 지명마다 알고 보면 참으로 재미난 지명이 많다.
솔빰(송야, 松夜)을 지나면 합전교란 다리가 나온다. 후삼국 시절 견훤과 왕건의 군대가 이곳에서 대치를 하면서 일전을 벌렸던
다리여서 합전교라 지었고 합전교 인근 부락이 막곡리이다.
견훤과 왕건의 군대가 주둔하면서 장막을 쳤었기 때문에 막곡리라 지었으며 마지막으로 내 조상들이 살았던 골짜구니는
흰구름 떠 도는 골짜구니라 하여 구름장골(운곡, 雲谷)이라 불리운다. 참으로 멋스런 지명이 아니던가? 그리고
남덕유산이 있는 이곳 거창군이라고 하면 으으음 사실 저 자신도 다리에 터래기 나고 단 한번도 가 본 적이 없기는 하지만
언뜻 생각 나는 것이 거창 양민학살 사건이다. 느림보 벗님들이
대충은 아시는 역사적인 사건이라 간단하게 그 개요를 기술하면 6.25 전쟁 중 지리산과 덕유산 일대에서 준동하던 빨치산에게
시달림을 받던 국군 11사단의 일부 병력이 빨치산과 내통한다는 꼬투리를 잡아 거창군 신원면 주민들을 학교 건물로 일차 집결을
시켜선 군경이나 공무원 가족들은 열외를 시키곤 500여명 중 반수 이상이 젖먹이에서 16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이였었고 그
나머지도 부녀자를 비롯한 노약자들이 였었던 주민들을 뒷동네 박산골로 몰아 넣곤 학살을 감행한 사건이다.
학살의 주역이었던 연대장과 대대장 등등은 사형이란 중형을 받았지만 어떤 사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곧 이어 특사로 풀려 나고
일부는 군대로 원대 복귀를 한다. 거창군민들 입장에선 기가 막히는 노릇이다. 후일
4.19 혁명이 일어 나고 세상이 바뀐 뒤에는 참으로 가슴 아푼 사건이 벌어 진다. 주민 70 여명이 몰려 가서
양민학살 사건 당시 신원면 면장을 했었던 어떤 사람을 포박하여 쌩불에 끄슬려 죽여 버린다.
남덕유산의 빼어 난 설경을 감상하기에 앞서 잠시 남녘 거창군 쪽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그 분들의 시린 한을 더듬어 본다.
백설기 아니 봄날 왕사꾸라가 만개한 듯한 남덕유산은 마치 하얀 참깨를 뿌려 놓은 듯 하다.
턱 허니 숨이 막힐 듯한 장중한 설경은 말로 형용키는 불가능하다.
잠시 자신의 품안으로 끌여 들여 감추어 두었던 비경의 속내를 슬쩍 흘려 주신 남덕유의 신령님께 감사를 드릴 따름이다. 그리고
참으로 묘하게도 정상석이 놓여 있는 남덕유산 summit 에는 바람 한점 없이 따뜻하다. 정상부에 약간이 공간이 있어
점심상 자리를 잡는데에... 흐미나
철암님과 참소리님께서 냉장 용기에 소중히 싸서 오신, 금방이라도 살아서 하늘로 승천할 듯한 연어,우럭 그리고 광어회를 그것도
세 사라 (쟁반) 씩이나 상에 올리신다.
자비, 보시와 함께 적선이라는 말이 있다. 남을 도와 준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선근 공덕을 켜켜이 쌓는다는 의미가 적선이라면
향적봉의 막내 동생 격인 이곳 남덕유봉에선 철암님과 참소리님께선 또 다른 향내를 켜켜이 쌓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른 이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높디 높은 산봉오리 꺼증 퍼득이는 생선회를 지고 매고 올라 오는 일은 범인들은 감히 상상키
어려운 일이다.
지상 최강의 설경 남덕유봉에서 천년 감로이슬주를 용의 간을 회로 쳐서 마시는 일은 직접 가서 보고 실제로 먹어 본 놈이
아니면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황점 마을에서 뼈다귀 해장국으로 뒷풀이를 끝내곤 곤한 몸을 느림보 리무진에 올려 태우곤 바람을 가르고 질풍 노도처럼
달릴 빙상 여제 이 상화 선수의 선전을 기원하며 눈을 붙인다.
뱃때지와 엉덩이짝에 살이 올라 어기적 어기적 거리는 이 못난 인간을 잘 케어해 주신 강 대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글을 접습니다. 에쉴리 여사님, 빙상 여제 이 상화선수 그리고 강 대장님 흐미 이 모두가 여성분이시넹
이젠 군중내(궤궤한 냄새) 가 슬슬 나기 시작하는 나 같은 남정네는 오 오 쿼바디스.
분당 탄천변에서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북미산 라쿤(너구리) 돌삐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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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랜만에 산행은 참! 날씨도 쾌청하고
복! 받은 날이었읍니다..
멋진 느림보님들의 건강한 모습들 보니 참! 즐겁고..좀 부족한 음식이지만..그래두 한 입, 두입, 나눠 먹는 모습~~특히 선배님의 파김치! 넘넘 환상적이었어요..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오랫만에 남덕유산에 행차하신 돌삐님의 맛깔난 산행기를 보면서
3년전 겨울 덕유산 향적봉 산행을 떠 올립니다.
그때에도 겨울 산행이라 눈도 많고 바람도 거칠어 추위에 꽁꽁 얼었었지요.
그래도 설경만은 끝내주게 아름다웠습니다.
어제 남덕유산은 같은 능선의 남쪽 끄트머리에 있어 남덕유산이라 부릅니다.
바람도 자고 날씨도 쾌청~~
하얗게 핀 상고대를 보는 순간 가슴속 세상살이 찌꺼기들이 싹 없어지고
순도 높은 행복감으로 충만되었습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이런 감격적인 아름다움을 모르고 산다면 얼마나 억울할까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최고의 아름다움..
그러나 찾아가지않고는 볼 수 가 없는 풍경이지요.
어제 본 감동적인 아름다움에 울님들 감성지수 100% 충전입니다.
돌삐님..체중 많이 나간다 실망 마시고 탄천 열심히 걸으셔요.ㅎ
참소리님..한 점 회맛!
일품이었습니다.ㅎ
근데 돌삐님 낭심한번 까이면 원래 기능이 돌아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