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거 직후 벌어진 마산시위를 놓고 여야와 경찰이 격돌했다. 여당의 비호를 받은 경찰은 마산시위가 민주당원들의 사전 모의와 선동으로 발생했으며 총 사망자는 4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마산사건의 원인은 선거 관리의 부정에 있으며, 선거권을 박탈당한 시민의 궐기는 당연하며 사망자는 최소한 16명이라고 주장했다.
이대통령은 선거 이후에도 마산 사건으로 인해 심상치 않자 선거는 약간의 불상사가 있었으나 비교적 규율 있게 진행되었다고 말하고, 마산 폭동사건 등으로 범법한 자들은 법에 의해 엄중처단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서로 자성자계하며 뭉치자고 호소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마산 사건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 검찰은 발포가 합법적이었는가 여부와 함께 시위의 배후가 있는지 여부를 가린다고 밝혀 짐짓 양비론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자유당은 마산시위에 대해 민주당이 배후에서 사주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심지어 무학산에서 봉화를 올려 민중봉기를 유도하고 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른 사람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치안국장은 마산소요사건이 공산당 수법과 유사하다고 말해 용공쪽으로 몰아갈 심사를 보여주고 있다. 맥주병에 휘발류를 넣고 광목심지에 불을 붙인 것을 비롯해 여러 가지로 과거 대구폭동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마산에서는 투표일 대규모 소요사건이 발생하여 완전 진압되었으나 5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시신이 중성동 차외과병원에 안치되어 있고, 23명이 흉부와 복부에 관통상 등을 입어 중태이고 5-6명은 위독하다. 사망자 수는 5명이나 더 늘어날 듯하다.
이 사건은 민주당이 선거무효를 선언한 후 약 30명 가량의 당원들이 데모를 시작했는데 군중들이 호응하면서 규모가 삽시간에 불어나 수천 명 내지 1만 명 규모로 늘어났다.
2.
이기붕 국회의장은 18일 기자회견에서 3인조 투표는 합법이라고 말한바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문제가 되자 다시 측근을 통해 기자들의 질문을 잘못알아 듣고 답변한 것이며 3인조 투표는 불법이라고 정정했다.
3.
이승만 대통령은 18일, 한국통일을 위해 불원간 북진할 계획이며 만일 미국이 이러한 군사행동에 가담할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저 뒤에 머물러서 우리가 행동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보도되었다. 이에 아이젠하워는 미국의 평화주의자들의 강력한 반대를 받게 될 것이라는 요지의 회신을 했다고 한다.
4.
현재 한일간의 바다는 이승만대통령이 독선적으로 설정한 경계선인 평화선과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일본에 의해 외교적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양유찬 주미대사는 일본이 1) 2차대전 전과 대전 당시 일본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한국인에 대한 보상, 2)귀국 한국인의 일본내 재산 반출, 3) 일본 잔류를 희망하는 한국인의 신분보장 등 3 조건을 수락하면 평화선을 철폐할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5.
야당은 계획한 대로 본회의 벽두에 발언권을 얻어 선거 무효를 선언했다. 민주당 곽상훈 의원은 발언권을 얻어 등단하여 선거의 불법과 무효를 선언한 후 그의 선창으로 “315부정선거는 무효다. 이승만정부 물러가라. 선거 다시하라”는 구호를 제창한 후 모두 퇴장했고, 이후 자유당 의원들만 남은 가운데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선거결과를 보고 받고 공포했다.
6.
최인규내무장관이 선거 기간 전후에 발생한 마산사건, 여수 광산 살인 사건 등에 책임을 지고 이승만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7.
선거 후에도 학생데모는 계속되고 있다. 17일, 오전 진해고등학교생 300명이 학교 정문에서부터 1km 가량 행진을 벌이다가 경찰과 헌병에 의해 해산되었다. 동래고등학교에서는 1, 2학년 8백 명이 동맹휴학에 돌입하려다가 사전 발각되어 좌절되었다.
서울에서 17일에 또 데모가 일어났다. 영등포에서 성남고등학교 학생들이 경찰의 자숙과 정의를 위해 싸우는 학생을 구타하지 말고 체포한 학생들 석방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이다.
16일을 기해 갑자기 마산시내 중고등학교의 등교 중지 명령이 발표되었다. 등교중지 기간은 17일부터 22일까지이다. 학생들의 집단행동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선거가 끝난 16일에도 서울에서 데모가 일어났다. 규모는 약 3-400 명 가량이며, 경찰에 의해 진압되었다.
8.
어찌되었건 선거는 끝났고 예정에 따라 국회는 개회되었고, 개회식을 위해 여야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자리에 모였으니 서로 인사는 해야 한다. 민주당의 양일동 의원은 여당 의석을 돌아다니며 “공 많이 세우느라고 얼마나 애를 썼소?”라고 빈정거렸고, 윤택중 의원도 “도둑질하느라고 임들었지?”라고 말하며 여당 의원의 손을 잡았다. 또 문교부 차관에게는 반갑게 인사하며 “사회과목에 3인조도 넣지 그래?”라고 농을 걸었다.
9.
서울에서 무더기 표투입이 폭로되었다. 자유당이 동원한 사람들에게 미리 자유당 후보에게 기표된 투표용지 20매씩 할당하여 1인 1표씩 투표하는 척 하면서 20표를 투표함에 집어 넣는 방법이다. 이는 자책감을 느낀 30대 자유당 운동원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20매의 무더기표를 민주당으로 가지고와 폭로한 것이다.
전국, 특히 경남북에서 투표 중 사고가 무더기로 발생하고 있다. 공개투표를 강요하는 괴한들에게 대항하거나 투표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표를 거부 당하고 항의하다가 괴한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칼로 찔리는 등의 사고이다.
이러한 불상사 속에서 기자들을 만난 최인규 내무 장관은 피스풀한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며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야당의 아성인 대구에서도 대담한 공개투표와 무더기표, 대리투표가 자행되었다. 민주당 참관인들은 강력하게 항의하다가 자유당측 괴청년들에 의해 폭행당하고 퇴장당하거나 참관을 포기하고 있다. 사복경찰관들은 투표소 100미터 내에 민주당 선거운동원들이 들어오면 무조건 연행되었다.
대구에서는 30% 가량의 유권자들이 번호표를 받지 못하고 기권을 강요 당했다. 런던타임스의 하그로비 기자는 “처음보는 신기한 선거광경”이라고 평했다.
상무대 내의 육군화학학교 정형수 상병은 문서반 완장을 찬 채로 영외로 이탈하여 민주당 광주사무소에 도착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영내의 집단대리투표 상황을 폭로하겠다.”며 자필 진술서를 작성했다. 이 진술서에 따르면 모든 장병은 기표한 후 기표 내영을 현장의 화학학교 교장과, 부교장, 행정과장 등 임석 장교에게 보인 후 투표함에 집어 넣었다는 것이다.
첫댓글 요즘 야인시대 재방송하는데 그시대배경이랑 비슷하네용 !
야인시대 후반부가 이 즈음의 이야기이지요...저도 재미 있게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