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따라 늙어버린 그녀와 나
가슴 뭉클한 이야기 -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
읽는 동안 혼자 코 끝 찡하게 만들며
우리를 태초의 순수로 되돌리게 하는 감동의 드라마가 때론 우리에게 상쾌함을 선사 합니다.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1> 그녀와의 첫 만남
그날, 지하철 안에서 잠이 들어 30분이나 늦어버린 소개팅 시간 때문에, 그 높은 이대 역 계단을 헉헉
거리며 뛰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땀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으로 소개팅 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웃으며 저에게 하얀 손수건을
건네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녀와 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2> 만남 100일 째
그 뒤 우리는 자주 만났습니다. 그러다가 100 일이 되었고, 전 그녀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어
난생 처음으로 스테이크 요리 집에 갔습니다.
가기 전 날, 요리 매너 책을 보면서 스테이크를 주문할 때는
" well done-잘 익힌 것, medium-중간으로 익힌 것, rare-덜 익은 것" 이라고 외웠습니다.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요리 집에 가서 웨이트레스가 " 어떻게 해 드릴까요?"하고 물어보니 무척 떨렸습니다.
그러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어제 책에서 본 영어로 해 보고 싶었고, 중간으로 익힌 것이 좋을 듯 해서
그렇게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가까스로 말을 한다는 게 " middle로 주세요..."
" 예? medium 말씀하시는 거에요?"
순간, 난 말을 잘못했음을 알았지만 그녀 앞에서 망신 당할 수는 없어서
" 그럼 well done으로 해 주세요."
" medium well-done 말씀하시는 거에요?"
결국 전," 그냥.... 바싹 익혀주세요.... ㅜ.ㅜ"
그날 너무 바싹 익혀서 딱딱해져 버린 고기를 씹으면서도 그녀는 저를 향해 웃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전 그런 그녀가 좋았습니다.
<3> 그녀를 데리고 T.G.I 프라이 데이를 갔습니다.
전날의 실수를 만회하려고 전 다시 그녀를 데리고 T.G.I 프라이 데이를 갔습니다.
무지 비싼 걸 알았지만 그녀를 위해서라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요번에 음식을 시킬 때는 저번처럼 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메뉴에 나온 이름도 처음 보는 수많은 음식들 대신에 제일 친숙한" 햄버거" 를 두 개 시켰습니다.
이번엔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나온 햄버거는 제가 매일 보아 왔던 햄버거와는 다른 모양이었습니다.
빵 따로, 고기 따로, 야채 따로, 그리고 포크와 나이프가 접시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전 고민했습니다. 과연 따로 먹는 걸까, 아니면 합쳐서 먹는 걸까...
결국 다른 사람들 먹는 걸 지켜보려고 그녀와 음식을 앞에 놔두고 그냥 실없는 얘기를 하며 다른 테이블을
보았지만 20분 동안 아무도 햄버거를 먹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한 사람이라도 덜 망신스러우려고 전 다 합쳐서 한 입에 먹고 그녀는 따로 나누어 먹기로 했습니다.
햄버거는 정말 맹숭 맹숭하게 맛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햄버거를 먹을 때 뿌리는 케찹과 겨자는 테이블에 따로 놓여 있다는 걸....
그리고 나중에 알았습니다. 내가 부끄러워 할까 봐 그녀는 알면서도 그냥 먹었다는 걸...
<4> 이번에는 맥주 집에 갔습니다.
그녀와 이제 많이 친해졌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같이 술을 마신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생일 날, 그녀와 처음으로 맥주 집에 갔습니다. 함께 처음 먹는 맥주라서 비싼 걸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없는 돈을 털어 밀러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밀러가 나오자 병 마개에 물에 젖은 냅킨이 올려져 있는
걸 보았습니다.
전 병을 깨끗이 닦아 먹으라는 건 줄 알고 그녀 것까지 열심히 닦았습니다.
그리고 병따개를 찾아보았지만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병따개를 달라고 하자 주인 아저씨는 그냥 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 테이블 어딘가 에 병따개가 달려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테이블이 고정 되어 있는 철판 모서리에
병 마개를 대고 뚜껑을 따려 했습니다.
그러나 뚜껑은 열리지 않았고, 이를 보다 못한 아저씨가 와서 뚜껑을 돌려서 열어주셨습니다.
그날 전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셨고, 그녀는 그런 저와 같이 술을 마시고는 제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습니다.
전...그녀의 머리에서 풍기는 여릿한 샴푸 냄새에 취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5>크리스마스 이브에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녀와 제가 만난 지도 1000 일이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린 이 날을 기념하려고 1000 일 째 되는 날 밤 기차를 타고 동해로 갔습니다.
겨울 바다는 하얀 눈과 함께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전 갑자기 영화 "러브스토리" 에 나오는 장면 중에서 주인공들이 서로 눈을 던지며 달려가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눈을 한 움큼 뭉쳐 그녀의 옷에 집어 던지고 웃으며 막 도망쳤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눈 밑에 가려 안보이던 빙판에 미끄러져 넘어졌고, 뒤따라 오던 그녀도 저에게 걸려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희는 처음으로 키스를 했습니다.
<6>우리가 만난 지 5년, 우리는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만난지 5년, 그리고 이제 우리는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턱시도를 차려 입고 결혼식 장에 서니 무척이나 떨렸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그녀의 모습에서 전 행복에 겨워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주례 선생님의 말도 저 멀리서 누군 가가 그냥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래서..주례 선생님은 오래도록 영원히 함께 사랑하며 살겠냐는 질문을 세 번이나 해야 했고,
저는 엉겁결에 " 예, 선생님~!" 하고 소리쳐 버렸습니다.그리고 식장은 웃음 바다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비디오 찍은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웃은 이유에는 제 바지 자크가 열려있던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걸...
<7> 이제 저희도 다 늙어버렸습니다.
이제 저희도 다 늙어버렸습니다.
어느덧 아이들은 전부 자신들의 삶을 찾아 떠났고, 영원히 검을 것 같던 머리도 눈처럼 곱게 희나리
져 갔습니다.
그녀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되어버렸습니다.
가끔 자다가 이불에 오줌도 싸고, 길도 잃어버리기도 하고, 저를 알아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 기쁩니다.
그동안, 그 긴 세월 동안 제 수많은 실수들을 미소로 받아주었던 그녀를 이젠 제가 돌볼 수 있으니까요.
전 그녀를 영원히 사랑합니다.
<나의 이야기>
위 글을 읽으며 가슴이 떨려옴을 느낍니다.
어쩌면 제가 겪은 이야기와 닮았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래서 가슴 울리는 고마운 글에 누가 될 지 모르지만 제 이야기를 보태 봅니다.
(1) 커피도 먹을 줄 몰랐다.
1959년 5월 대학을 포기하게 한 가난의 그림자로 인해 생을 마감할 뻔한 아픔을 이기고
무작정 상경이 가져다 준 '운명을 바꾼 외출'로 서울에서 가정교사를 시작했습니다.
흑석동에서 가정교사를 시작한 얼마 후 가르치는 아이 집에서 저녁 초대를 했습니다.
중앙대학교 교수 님의 자제였습니다.
저녁을 먹고 담소를 나누는 중에 커피가 나왔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저였지만 커피는 6.25전쟁 후 미군이 전 가정에 보내주신 C레이션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들어 있는 이것 저것 중에 커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인가도 모른 채 맛을 보려 먹었지만 먹을 줄을
몰라 봉지에 들어 있던 커피를 빨아 먹다가 처음 맛보는 쓴 맛에 얼굴을 찌뿌리고 뱉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나온 쟁반 위 커피 잔에는 커피가 담겨 있었고 옆에는 주전자와 함께 티 스푼, 설탕을 담은 그릇이 있었습니다.
커피 잔에 뜨거운 물을 부었고 설탕 몇 숟갈을 넣어 저었습니다. 그런데 이 커피를 어떻게 먹어야 하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하는 수 없이 티 스푼으로 몇 번 떠 먹었습니다.
그 때 창호지 문에 구멍이 뚫리더니 가르치는 아이 언니들의 눈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가슴 뛰는 소리가 그 언니들 귀에 들리는 듯 싶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먹어야지 하고 마셨습니다.
결국 커피는 그렇게 먹는 것이었지만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촌놈 상경기 인가 싶어 웃음이 나옵니다.
(2) 동네 어른에게 서울 구경 해드린 이야기
서울 흑석동에서 가정교사를 하고 있을 때 상도동에는 고향에서 올라오신 분이 살고 있었고,
그 분의 아버님이 상경하셨습니다.
흑석동과 상도동은 바로 이웃이었기에 고향을 떠나 온 저로서는 상도동에 사시는 분이 마치 누나처럼 믿고
다니던 때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고향에서 오신 어른을 모시고 서울 구경을 해드리려고 모시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온 지 얼마 안되는 제가 서울에 대해 아는 곳이 있었겠습니까?
할 수 없이 겨우 찾은 곳이 서울에서 제일 번화한 명동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무엇을 구경 시켜 드려
야 하나 하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여기 저기 몇 군데 거닐다가 국립 극장이 보였고 그곳으로 들어가 쇼를 구
경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이런 부끄러운 모심(대접)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동네 어르신은 갓 까지 쓰고 오셨고 딸마저 같이 왔었는데 쇼는 노래와 웃음거리를 할 때까지는 괜찮았지요.
그런데 드디어 캉캉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무희들이 다리를 올리기 시작하는데 갓 쓴 어른이 보기에는 차마
아니다 싶어 제 가슴은 부끄러움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일이었습니다.
갓 쓴 노인이 딸과 함께는 정말 볼 쇼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제 얼굴이 홍당무가 됩니다. ㅎㅎ
그 소년이 이제 8 순도 지나 졸수(卒壽)가 옆구리에 와 있습니다.
살아 온 날보다 남은 날이 얼마 없음을 느끼는 나이가 되었네요.
살아 온 삶 그렇게 이렇게 엮어 가는 중에 여기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그 쇠뭉치란 소년이 얼굴을 붉히며 엷은 미소를 삼켜 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