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울릉도/숲하루(김정화)
나루터에 출렁이는 바닷물이 맑다. 바위에 붙은 물미역도 맑게 출렁인다. 나루터에 감도는 바다냄새는 비릿하지 않다. 바닷물도 샘물도 맑고 부드럽다.
울릉섬은 온통 바위가 높고 뾰족하다. 어두운 곳에서 밝게 빛나는 바위가 얼룩덜룩 구멍이 난 작은 돌하고 뒤섞여 보인다. 멀리서 보면 흙처럼 보여 바위가 굴러 떨어질 듯하다. 가까이 다가가서 손으로 만져 보니 단단하다. 바람이 바위를 후벼도 튼튼히 버티어 왔구나 싶다. 그러나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 바닷가를 걷다가는 바다에 빠질는지 모른다.
드러난 흙이 드물다. 둘레로 너른바다에 솟은 섬이니 흙을 알뜰히 여길 만하겠다. 마을은 여러 집이 옹기종기 붙었다. 길가에는 나무가 적고 나무 밑둥을 덮음직한 흙도 보기가 쉽지 않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다. 상추를 키우는 큰 꽃그릇을 본다. 파릇파릇 돋아난 상추잎이 반갑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나물도 파릇파릇하다. 풀 한 포기가 바위에 붙어서 섬을 살리고, 바위는 다시 풀이 자라는 터전으로 서로 돕는 듯하다.
오르막 골골이 집이 있다. 판판한 땅을 보기는 쉽지 않다. 이 섬에 논은 어디 있을까. 마을에서 밭을 보기는 어렵고, 비탈진 자락과 밭둑을 가만히 돌아본다. 마을 할머니들은 어깨에 커다란 주머니를 차고서 높다란 밭둑에 배를 붙이듯 앉아서 부지깽이나물을 뜯는다. 할머니들이 밭에서 나물을 하다가 굴러갈 듯하다. 젊은 사람이라도 몸이 휘청하면 굴러떨어질 만큼 가파른 자리에 울릉섬 나물이 나온다. 참으로 알뜰한 나물이다.
바다에서 솟는 아침해를 보고 싶었다. 아주 크고 붉으려나 궁금했다. 그러나 오늘은 하늘이 잔뜩 찌푸린 탓이라 그런지 옅은 분홍빛으로 솟는다. 해가 뜨는 동쪽 섬에서만 보는 그림이겠지. 하늘하고 바다를 펼치고 바다에 동그랗게 뜨는 해가 아름답다. 이 아침해를 보려고 울릉섬에 왔다. 도동나루부터 섬을 한 바퀴 돌았다. 바다를 바라보며 바닷가 길을 걷는다. 풀꽃나무가 없는 바위뿐인 길은 남다르다. 이 거님길에 있는 바위는 물결을 닮아 세차게 몰려오다 멈춘듯한 모습 같다.
울릉섬에서 가장 먼저 피는 풀꽃은 잣나물(별꽃)일까. 봄까지꽃이 잔디 틈에 몇 피었다. 우리가 다닌 거님길에는 풀꽃이 자랄 자리가 없는 듯싶다. 차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도는 셈이다. 사람들이 이름을 붙인 바위를 구경한다. 봉래폭포로 가는 길, 내수전망대 가는 길, 관음도를 둘러보면서 울릉섬 흙빛을 본다.
바닥에 멍석을 깔고 나무계단으로 이은 거님길에는 마가목이 많다. 열매나 잎이 없어 나무가 쉽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줄기가 매끈한 나무가 거의 마가목이다. 호박조청처럼 조청으로 팔고 다리아픈데 약효가 있다. 나리분지 밭에는 마가목 가지에 돌을 매달았다.
바닷물결도 바닷바람도 고스란히 맞아들여야 하는 울릉섬은 골목도 작고 집도 작다. 제주섬도 오랜 바닷마을은 비슷하다. 바다를 품는 마을과 집은 아기자기하다. 흙을 일구어 씨앗을 뿌릴 땅이 적지만, 다들 옹기종기 모여서 함께 살아간다. 배가 끊기며 추운 겨울에는 울릉섬 사람들이 뭍으로 많이 나가서 지낸다고 한다. 겨울 한 철을 마치 겨울잠을 자듯 지내고서 새봄에 나들이 손님하고 나란히 마을로 돌아와서 돌보는 셈이지 싶다.
울릉섬 풀과 나물은 가시가 드물고 보들보들하지 싶다. 드센 물결과 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니 가시가 버틸 틈이 없지 싶다. 바다가 다독여 주고, 바람이 다스려 주는 셈이라고 하겠지. 나도 물결과 바람을 듬뿍 맞아들이면 가시도 모난 곳도 다독이거나 다스릴 수 있을까.
#작은삶 #숲하루 #김정화
첫댓글 물결도 바람도 맞아들이지 않아도 이미 동글동글 모난 곳이 어디도 없으십니다.
제주보다 울릉도를 더 사랑하는 일인이지만 나무도 풀도 아는 것이 없어서 ㅠㅠ
잣나물을 알고 갑니다.
별도 되고 꽃도 되는...꽃.
들뜨며 걷다가
낮은 바위에 머리를 박았어요.
1cm 찢어졌는데
그때도
별꽃을 보았어요. 밤하늘에 별,..ㅋ
울릉도는 눈속에서도 나물이 자라더군요.
참 신기했어요. 울릉도를 이렇게 감성적으로 그려주시다니 또한 놀랍습니다.
바람이 날카롭거나
바람이 펄펄 끓을 적에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풀꽃은 참으로 위대해요.
무엇을 속삭여 줄라고
애쓰는지....
고마워요. 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