養生喪死無憾양생상사무감
건강하게 살며 죽을 때 유감이 없다.
소동파의 시에
人生到處知何似 인생도처지하사
사람의 한평생을 무엇이라 견줄까
應似飛鴻踏雪泥 응사비홍답설니
눈밭에 기러기 앉았다 간 거라네
泥上偶然留指爪 니상우연유지조
어쩌다 눈 위에 발자국 남겠지만
鴻飛那復計東西 홍비나부계동서 ‘
어디로 날아갔나, 어찌 다시 알겠는가?
“吾生也有涯(오생야유애), 而知也无涯(이지야무애).
나의 생명은 끝이 있으나
알아야 할 것은 끝이 없는데,
以有涯隨无涯(이유애수무애),
끝이 있는 것으로써 끝이 없는 것을 뒤쫓아 따르니
殆已(태이);
위태하도다.
已而爲知者(이이위지자), 殆而已矣(태이이의).
이미 이러한데도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은 위험할 뿐이다.
『莊子』, 「養生主」장자 양생주
『嵇康集校注(혜강집교주)』 「答難養生論(답난양생론)」 에
“智用則收之以恬(지용즉수지이념),
지식이 작용하면 고요함으로써 거두어 들이고,
性動則紏之以和(성동즉두지이화),
본래 성질이 움직이면 조화로써 바로잡으니,
使智上於恬(사지상어념), 性足於和(성족어화).
지식은 고요함에 머무르게 하고
본래의 성질은 조화에 만족하게 한다.
然後神以黙醇(연후신이묵순),
그런 뒤에 정신은 고요함으로 순박해지고,
體以和成(체이화성),
몸은 조화로움으로 이루어지게 되어,
去累除害(거루제해), 與彼更生(여피경생).”.
얽매임을 없애고 해로움을 제거하여
저 도道와 더불어 더 새로이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또 『嵇康集校注(혜강집교주)』에
“夫口之於甘苦(부구지어감고), 身之於痛癢(신지어통양),
무릇 입에 달고 씀, 몸에 아픔과 가려움은
感物而動(감물이동), 應事而作(응사이작),
외부 사물과 접촉해 발생하고 일에 반응해 일어나는 것이지,
不須學而後能(불수학이후능), 不待借而後有(부대차이후유).
배운 뒤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빌린 뒤에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此必然之理(차필연지리), 吾所不易也(오소불역야).”
이것은 필연적 이치여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答難養生論」
“夫不慮而欲(부불려이욕), 性之動也(성지동야);
저 사려하지 않고 욕구하는 것은 본성의 움직임이나,
識而後感(식이후감), 智之用也(지지용야).
알고 난 뒤에 감응하는 것은 지식을 쓰는 것이다.
性動者(성동자), 遇物而當(우물이당),
본성이 움직인다는 것은 사물을 만나 알맞게 하고
足則無餘(족칙무여);
충족하면 필요 이상의 것을 두지 않는 것이나,
智用者(지용자), 從感而求(종감이구), 倦而不巳(권이불사).
지식을 쓴다는 것은 감응하는 대로 쫓아
피로해져도 그치지 않는 것이다.
故世之所患(고세지소환), 禍之所由(화지소유),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근심하는 것과 화가 말미암는 것은
常在於智用(상재어지용), 不在於性動(부재어성동).”
항상 지식을 쓰는 데 있지 본성의 움직임에 있지 않다.
“欲動則悔吝生(욕동즉회린생),
욕망이 움직이면 근심과 걱정이 생기고,
智行則前識立(지행즉전식립);
지식이 작용하면 근거 없는 주관적 추측[前識]이 세워진다.
前識立則心開而物遂(전식립즉심개이물수),
前識이 서게 되면 뜻이 흐트러져 사물을 쫓게 되고,
悔吝生則患積而身危(회린생즉환적이신위).”
근심과 걱정이 생기면 걱정거리가 쌓여 몸이 위태로워진다.
外物以累心不存(외물이루심불존),
외물이 마음을 얽어매어 자리하지 않으니
神氣以醇(泊)[白]獨著(신기이순박독저);
정신은 순수하고 맑음을 홀로 드러내고,
曠然無憂患(광연무우환),
넓게 트여 걱정이나 근심이 없고,
'寂然無思慮(적연무사려).
고요하여 사려하는 것이 없으며,
又守之以一(우수지이일),
또한 一(道)로써 그것을 지키고
養之以和(양지이화),
조화(德)로써 그것을 기르면,
和理日濟(화리일제),
조화로운 이치가 나날이 성취하게 되어
同乎大順(동호대순).
천리와 같아지게 된다.
然後蒸以靈芝(연후증이령지),
그런 뒤에 영지로 몸을 보양하고,
潤以醴泉(윤이례천),
단 샘물로 윤택하게 하며,
晞以朝陽(희이조양),
아침 햇빛으로 말리고,
綏以五絃(수이오현),
오현의 음악으로 편안히 하며,
無爲自得(무위자득),
무위하여 스스로 만족하면
體妙心玄(체묘심현),
몸은 오묘해지고 마음은 그윽해지니,
忘歡而後樂足(망환이후악족),
즐거워하는 것을 잊은 뒤라야 즐거움에 만족하게 되고,
遺生而後身存(유생이후신존).
생명을 잊은 뒤라야 몸이 보존된다.
“君子識智以無恒傷生(군자식지이무항상생),
欲以逐物害性(욕이축물해성).”
군자는 지식 추구가 일정하지 않아서 생명을 해치고
욕망이 사물을 쫓아서 본성을 해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道教學者葛洪把形神統一的關係講得更為透徹
(도교학자갈홍파형신통일적관계강득경위투철)
갈홍의 글에:
「夫有因無而生焉(부유인무이생언),
形須神而立焉(형수신이립언)。
有는 無에 의해 생겨나고,
형체는 정신에 따라 성립된다.
有者無之宮也(유자무지궁야);
有는 無의 집이고,
形者神之宅也(형자신지댁야)。
육체는 정신의 집이다.
故譬之於堤(고비지어제),堤壞則水不留矣(제괴즉수불류의)。
方之於獨(방지어독),
그러므로 제방에 비유한다면
제방이 무너지면 물은 고여 머물 수 없고,
燭糜則火不居矣(촉미즉화불거의)。
촛불에 비유한다면 초가 다 타면 불도 꺼지는 것과 같다.
身勞則神散(신로즉신산),氣竭則命終(기갈즉명종)。
육체가 지치면 정신이 산만해지고, 기가 고갈되면 목숨도 끝난다.
根竭枝繁(근갈지번), 則靑靑去木矣(즉청청거목의);
뿌리가 고갈되고 가지만 무성하면
이미 푸르고 푸른 생기는 나무로부터 없어지고,
氣疲欲勝(기피욕승), 則精靈離身矣(즉정령리신의).」
기가 피로한데 욕구만 기승하면 생명은 몸을 떠난다.
《抱朴子•至理》
“仙法欲靜寂無爲(선법욕정적무위), 忘其形骸(망기형해).”
"신선이 되는 방법은 고요하고 무위하여 자신의 몸을 잊어야 한다. "
葛洪, 『抱朴子內篇』, 「論仙」
“若守一之道(약수일지도), 則一切除棄此輩(즉일절제기차배).
"만약 하나를 지키게 되면
이러한 모든 방법은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故曰(고왈): 能知一(능지일), 則萬事畢者也(즉만사필자야).”
‘하나를 알면 만 가지 일은 모두 이루어질 수 있다’
葛洪, 『抱朴子內篇』, 「地眞」
夜深人靜,獨坐觀心,
야심인정,독좌관심,
밤이 깊어 인적 고요한 때에
홀로 제 마음을 살피노라면
始覺妄窮而眞獨露,每於此中,得大機趣.
시각망궁이진독로,매어차중,득대기취.
거짓은 사라지고 진실만이 나타남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속에서
자유자재한 마음의 움직임을 체득할 것이다.
旣覺眞現而妄難逃,又於此中,得大慚忸.
기각진현이망난도,우어차중,득대참뉴.
진실이 나타났음에도
거짓이 사라지지 않음을 깨닫게 되면
이 가운데서 크나큰 부끄러움을 체득하게 될 것이다.
채근담(菜根譚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