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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序成志(수서성지) 隨:따를 수, 序:순서 서, 成::이룰 성, 志:뜻 지. 어의: 순서를 따르면 뜻을 이룬다, 즉 어떤 일의 뜻을 이루고자 하면
그 일의 순서를 차근차근히 따라야 이루어 진다는 뜻. 문헌: 여담천리(餘談千里) 충청도 온양(溫陽)의 온천동(溫泉洞)에 가난한 데다 발까지 저는 노파가 삼대독자와 함께 살고 있었다.
노파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그 아들을 키우는 데 온 정성을 다 쏟았다. 어느덧 아들이 혼기를 맞아 매파를 놓아 사방팔방으로 혼처를 구하게 되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가문도, 살림도 형편없는 데다 시어머니 될 사람이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기에 누구도 딸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파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러한 사정을 측은히 생각한 중매쟁이는 좀 모자라는 처녀라도 그냥 며느리로 맞기로 다짐을 받고는
아랫마을 홀아비 집으로 발걸음을 놓았다. 그 집에는 코가 비뚤어진 장애인 딸이 있었는데 말만 꺼내면 성사가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홀아비는 단박에 거절했다. “그런 소리 두 번 다시 하지 마슈! 원 아무리 사윗감이 없기로서니 홀어미에다 절름발이 시어머니에게
딸자식을 보내겠소?” “영감님두, 그 노인은 그렇지만 아들이야 인물 좋고 부지런하고 어디 나무랄 데 없잖아요.” “아, 듣기 싫다는데두요.” 홀아비는 크게 역정을 냈다. “흥! 까마귀 똥도 약에 쓰려니까 칠산바다에 싼다더니 코찡찡이 홀아비 꼴에 꼴값하네.” 화가 난 중매쟁이는 한마디 쏘아 주고는 이번엔 황 영감 집으로 갔다. 그 집 딸은 팔을 제대로 못 쓰기 때문에 노파의 아들이 오히려 과분할 것 같아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은 황 영감도 대번에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 여보슈! 팔을 못쓰는 내 딸이 그 집으로 들어가면 그 집엔 그런 사람들만 모였다고 남들이
얼마나 놀리겠소?” “그렇게 따지다간 댁의 딸은 시집도 못 가고 환갑 맞겠소. 환갑!” 중매쟁이는 노파를 찾아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했다. 실망한 노파는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기로 작정하고 산사를 찾았다. “부처님, 하나뿐인 우리 아들 제발 짝을 좀 정해 주옵소서.” 그렇게 정성을 다해 불공을 드린 지 백 일째 되던 날, 깜빡 잠이든 노파의 꿈에 하얀 옷을 입은
보살이 나타났다. “쯧쯧! 정성(精誠)은 지극하나 순서가 틀렸으니 안타깝구나.” “무슨 말씀이신지 상세히 일러 주시옵소서!” “그대의 아들이 장가를 못 드는 까닭을 모르지는 않을 터인데?” “어미 된 제가 한쪽 발을 못 쓰는 탓이라고 생각하옵니다만…….” “하면 먼저 그대의 두 발을 온전히 쓰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오나 무슨 수로?”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니, 지극한 정성을 드리면 될 것이니라.” 말을 마친 보살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꿈을 깬 노파는 다시 불공을 시작했다. “나무아미타불! 제발 이 몸의 다리를 고쳐 주시옵소서.” 또다시 백 일째의 밤, 허공에서 우렁차고 경건한 소리가 들렸다. “내 그대의 정성을 가상히 여겨 소원을 들어주리라. 내일 마을 앞 들판에 다리를 절름거리는
학(鶴) 한 마리가 날아와 앉을 터인즉 그 자리를 잘 살펴보면 다리 고치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니라.” 이튿날, 노파가 꿈에 들은 대로 들판으로 나가니 과연 다리 하나가 불편한 학이 논 가운데에 있었다. 그런데 그 학은 앉은 자리 근처를 뱅글뱅글 돌면서 껑충썽충 뛰었다. 그렇게 하기를 사흘,
학은 언제 다리를 절름거렸냐는 듯 두 발로 뚜벅뚜벅 걷더니 힘껏 땅을 박차고 하늘로 치솟아 훨훨
날아가 버렸다. 노파는 하도 신기해서 급히 학이 뛰던 곳으로 달려가 보니 그곳에서는
뜨거운 물이 퐁퐁 솟아오르고 있었다. 노파는 얼른 아픈 다리를 그 물에 담갔다. 그러자 점차 몸이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노파는 신이 나서 열심히 발을 담갔다. 그렇게 이레가 지나자 신통하게도 절룩거리던
발이 씻은 듯이 완쾌됐다. 그 후 노파네 집은 부처님의 가피를 입은 집안이라 하여 혼인을 원하는 청혼이 빗발치듯 했고,
그 아들은 예쁘고 가문 좋은 색시를 맞아 잘 살았다. 그 소문이 널리 퍼지자 병을 고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온양온천(溫陽溫泉)이다. (임종대 편저 한국고사성어에서)
熟栗自落(숙율자락) 熟:익을 숙, 栗:밤 율, 自:스스로 자. 落떨어질 락. 어의: 익은 밤은 저절로 떨어진다는 말로, 모든 일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자연의 순리 를 의미한다. 문헌: 조선명인전(朝鮮名人傳)
조선 가사문학(歌辭文學)의 대가이자 유명한 정치가이었던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은 전라도 창평(昌平)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대의 석학이었던 기대승(奇大升), 김인후(金麟厚) 등을 스승으로 하고 이이(李珥), 성혼(成渾) 등과도 교류하며 학문을 쌓았다. 문장은 물론, 서예에도 뛰어났던 정철은 소장(訴狀)을 시적으로 잘 썼다. 그러나 선조(宣祖) 때부터 동서(東西)의 극렬한 당쟁이 시작되었는데 이때 정철은 서인(西人)의 거장으로 뇌물사건에 연루되어 귀양살이까지 해야 했다. 그 후 1580년에는 강원도 관찰사로 등용되고, 이어서 전라도와 함경도 관찰사를 지냈다. 그가 지방관 관찰사로 있을 때 일어난 사건이다. 두 사람이 서로 말다툼을 하다가 갑자기 한 친구가 쓰러져 죽었다. 남은 사람은 당연히 의심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당황한 그 사람은 정철을 찾아가 상의하였다. 사연을 들은 정철은 다음과 같이 적어 주었다. ‘독한 술이 곁에 있으니 마시지 않으면 취하지 않고, 썩은 노끈이 손에 있어도 당기지 않으면 끊어지지 않는다.‘ 글을 받아 읽은 의뢰인이 깜짝 놀라 따지듯이 물었다. “대감, 어째서 저를 죽이고자 하십니까?” 그러자 정철은 빙그레 웃으면서 다시 글을 지어주었다. ‘기름 없는 등잔불은 바람이 없어도 절로 꺼지고, 동헌의 누런 밤은 서리가 안 내려도 가을이 되면 떨어진다.‘ 그 사람은 기뻐하며 그 소장을 사또에게 제출했다. 사또는 글을 보더니 바로 판결했다. “죽을 때가 되어서 죽었구먼. 그러므로 너는 무죄다.” 정철은 써준 글을 보고 따지듯이 달려드는 그 사람의 태도에서 죽음과는 상관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다시 글을 써준 것이다. 정철은 <송강집(松江集)>에서 독서할 때 세 가지 유의해야 할 사항을 지적했는데,
그 하나는 글의 뜻을 깊이 생각하여 궁리하지 않는 것이며, 그 둘은 탐욕이 많아서 빨리 읽고자 하는 것이요. 나머지 한 가지는 전심(專心)하지 못하고 쓸데없는 잡시에 끌려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
<성산별곡(星山別曲)> <훈민가(訓民歌)> 등이 있으며 가사문학(歌辭文學)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임종대 편저 한국고사성어에서)
僧之虛夸(승지허과) 僧:중 승, 之:어조사 지, 虛:빌 허, 夸:자랑할 과. 어의: 스님의 허풍이라는 말로, 옛날 해인사의 스님과 석왕사의 스님이 서로 자기 사찰의 솥과 뒷간의 크기를 부풀려 자랑한 고사에서 유래했다. 사실보다 크게 과장하는 경우를 이른다. 문헌: 한국설화집(韓國說話集) 합천 해인사(海印寺)의 가마솥은 크기로 유명하고, 함경남도 안변 석왕사(釋王寺)의 뒷간은 높기로 유명했다. 석왕사의 뒷간에 대해 소문을 들은 해인사의 한 스님이 과연 그러한지 확인을 하려고 바랑을 짊어지고 나섰다. 그런데 석왕사의 스님도 해인사의 가마솥을 구경하러 가다가 두 스님이 도중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석왕사의 스님이 해인사 스님에게 먼저 물었다. “도대체 해인사의 가마솥이 얼마나 크기에 소문이 그리 자자합니까?” “글쎄요. 어떻게 설명해야 그 크기를 짐작하실지……, 아무튼 지난해 동짓날 그 가마솥에 팥죽을 쓸 때 상좌가 팥죽을 짓기 위해서 배를 타고 떠났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답니다. “그래요? 과연 크긴 크군요. 혹시 동해보다 큰 건 아니겠지요?” “아무려면 동해보다야 크겠습니까, 그건 그렇고, 듣기로 석왕사의 뒷간이 높다고 하던데 대체 얼마나 높기에 그렇게 소문이 요란합니까?” “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높지요. 소승이 이번에 절을 떠나며 뒤를 보았는데, 그 덩어리가 아직도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내가 해인사에 도착할 즈음에나 떨어지려나…….” “허허! 그래요? 구만리 장천 같겠구려.” “아무려면 그만이야 하겠소만 아마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외다.” 질세라 허풍을 떨던 두 스님은 서로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말씀을 듣고 보니 피차 얼마나 크고, 얼마나 높은지 잘 알겠구려! 그렇다면 굳이 먼 길을 힘들여 찾아갈 필요가 뭐 있겠소.” 하고는 이내 헤어져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임종대 편저 한국 고사성어에서)
撕書習字(시서습자) 撕:쪼갤 시, 書:글 서, 習익힐 습, 字:글자 자. 어의: 책장을 찢어내어 글을 외운다는 말로, 공부에 전념했던 조선 세조, 성종시대의 학자 김수온의 행동에서
유래했다. 어떤 일을 위해 완벽하게 해내는 것을 가리킬 때 쓴다. 문헌: 대동기문(大東奇聞), 한국인물고(韓國人物考) 김수온(金守溫. 1409~1481)은 본관이 영동(永同)이고, 호는 괴애(乖崖), 시호는 문평(문평)이다. 조선 세조(世祖) 때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를 지내고, 서거정(徐居正), 강희맹(姜希孟) 등과 학문을 같이 했다. 그는 사서오경(四書五經)의 구결(口訣)을 정했으며 집현전에 있을 때는 <치평요람(治平要覽)>을 편찬했고, 교리로 있을 때는 <의방유취(醫方類聚)>를 편찬했다. 또 해학을 좋아하였다. 그가 일찍이 병조정랑으로 있을 때 수하의 좌랑(佐郞)에게 말했다. “내가 당신의 관상을 보니 수를 많이 할 것 같소.” 좌랑이 기뻐하며 자세히 보아 달라고 매달리자 수온이 말했다. “그걸 어디 함부로 말할 수 있소? 한턱을 내면 모를까…….” 좌랑은 관상을 보고 싶은 생각에 한턱을 걸게 차려 대접하며 다시 수온에게 청했다. “제 관상을 제대로 좀 보아 주시겠다 하셔서 이 자리를 마련했으니 한 말씀 해주십시오.” 그러자 수온이 시침을 떼며 말했다. “당신의 나이가 벌써 쉰을 넘었기에 내가 수 좀 많이 할 상이라고 말한 것일 뿐 얼마나 더 살지 그것은 알 수 없소이다.” 함께 있던 사람들이 모두 깔깔 웃어댔다. 김수온의 기행은 또 있었다. 그는 책을 빌려오면 어김없이 한 장씩 뜯어서 소매 속에 넣고 다니며 외우다가 확실하게 외우게 되면 아무 데나 버렸다. 그래서 책 한 권을 다 떼고 나면 그 책은 없어져 버렸다. 한번은 영상 신숙주가 애장하고 있는 진귀한 고서를 그가 빌려달라고 청했다. 신숙주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서 빌려주었더니 몇 달이 되어도 가져오질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수온의 집을 찾아가니 그 책을 모두 찢어 벽지로 발랐는데 이미 연기에 그을려 새까맣게 되어 있었다. 신숙주가 깜짝 놀라 물으니 수온은 책을 누워서 읽기 편하게 하느라고 그랬다고 했다. 신숙주는 차마 화도 못 내고 입맛만 다시며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일에 능동적이고 마음먹었다 하면 완벽을 고집하는 그의 괴벽을 영상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임종대 편저 한국 고사성어에서)
是誰折花(시수절화) 是:이 시, 誰:누구 수, 折:꺾을 절, 花:꽃 화. 어의: 누가 꽃을 꺾어다 주겠느냐는 말로, 신라의 수로부인이 절벽에 피어 있는 꽃이 갖고 싶어서 했던 말에서
유래했다. 간절한 소망을 표현할 때 쓴다. 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신라 제33대 성덕왕(聖德王) 때 순정공(純貞公)의 아내 수로부인(水路夫人)은 빼어난 미인이었다. 순정공이 강릉태수가 되어 가족이 모두 임지로 갈 때였다. 먼 길에 피로해진 일행이 절벽 아래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수로부인은 깎아지른 절벽의 벼랑에 진달래꽃 한 떨기가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아! 아름답구나! 꺾어다가 가까이 두고 보면 얼마나 좋을 까?” 그러나 워낙 깎아지른 낭떠러지에 있는 꽃이라 감히 누구도 꺾어올 생각을 못했다. 수로부인은 그 꽃이 못내 갖고 싶어 혼잣말을 했다. “누가 저 진달래꽃을 꺾어 올 수 없을까(是誰折花.시수절화)?” 그때 흰 수염의 한 노인이 암소를 몰고 그곳을 지나다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이 늙은이가 꺾어다 드리지요.” “위험할 텐데 할 수 있겠어요?” 수로부인이 걱정을 하자 노인은 대답 대신 빙긋 웃더니 성큼 절벽에 매달렸다. 그런데 절벽을 기어 올라가는 노인의 동작이 너무도 날렵했다. 노인은 그렇게 하여 수로부인의 소원을 풀어 주었다. 일행이 강릉을 향해 떠난 지 사흘째 되던 날, 바닷가에 있는 임해정(臨海亭)이라는 정자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때 수로부인의 미모에 반하여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동해의 용이 갑자기 솟구쳐 올라 수로부인을 낚아채어 바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남편 순정공은 아무런 대책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그 노인이 나타나 계교를 일러주었다. “이 일은 많은 사람이 필요하니 사람들을 더 불러 오시오.” “바다로 들어가야 합니까?” “물고기도 아닌데 어떻게 바다 속으로 들어간단 말입니까? 옛날에 여러 사람의 말은 무쇠도 녹인다고 했습니다. 바다의 용이라 할지라도 많은 사람의 입은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러니 모을 수 있는 데까지 많이 모이게 하시오.” 순정공이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으자 노인은 노래를 지어주며 큰소리로 부르게 했다. “거북아! 거북아! 너희나라 용이 잡아간 우리 수로부인을 데려 오너라, 남의 아내를 잡아갔으니 하늘이 용서치 않으리라. 만약 부인을 데려오지 않으면 그 대신 널 잡아 구워 먹겠다.” 여러 사람이 노래를 부르며 장대로 바닷물을 두드리자 용은 할 수없이 수로부인을 거북의 등에 태워 뭍으로 돌려보냈다. 노인은 여러 사람을 동원하여 용을 비난하는 여론을 조성함으로써 수로부인을 구해냈던 것이다. (임종대 편저 한국 고사성어에서)
柴積修簷(시적수첨) 柴:장작 시, 積:쌓을 적, 修:고칠 수, 簷:처마 첨. 어의: 장작을 쌓아 부서진 처마를 수리한다는 말로, 어떤 물건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이다. 문헌: 한국역사대사전(韓國歷史大事典) 영은문(迎恩門)은 조선시대에 명나라의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서 세워진 문이었다. 지금의 서대문구 독립문(獨立門) 부근에 있었는데 1537년 중종 2년에 김안로(金安老)가 개축할 때 청와(靑瓦)로 덮고 영조문(迎詔門)이라는 현판을 달았던 것을 명종 때 명(明)나라의 설연총(薛延寵) 칙사가 영은문이라 바꾸어 걸게 했다. 어느 날, 영은문의 추녀 기와 한 장이 깨졌다. 그러자 문을 관리하던 관리원은 그 일을 호조판서에게 보고했다. “추녀의 기와가 빠져 나가면 나머지 기와들도 잇달아 주저앉을 것입니다.” “사다리를 댈 자리가 마땅치 않고, 비계를 설치하는 것도 적당하지 않습니다.” “그럼 내가 직접 가서 확인을 해야 되겠다.” 호조판서가 영은문으로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기와 한 장만 갈아 끼우면 되는 일이었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궁리 끝에 돈 2천 냥을 관리원에게 주며 말했다. “새벽에 장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서 있으면 고양이나 벽제에서 장작을 팔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돈으로 장작을 모두 사서 영은문의 기와가 깨진 처마 밑에 차곡차곡 쌓도록 하여라.” 관원들은 호조판서의 지시대로 장작을 사서 쌓았다. 장작의 높이가 영은문과 거의 비슷해지자 호조판서가 다시 말했다. “그 장작더미에 올라가서 깨진 기와를 바꿔 끼우도록 하여라.” 과연 지시대로 하니 일은 금방 끝났다. 관리원이 호조판서에게 물었다. “분부하신 대로 수리했습니다. 이제 저 장작은 어떻게 할까요?” “으음. 조금 있으면 장작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니 그때 모두 팔아넘기도록 하여라.” 한낮이 되자 과연 판서의 말대로 장작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영은문 앞으로 몰려왔다. 쌓여 있던 장작은 순식간에 다 팔려 나갔다. 호조판서가 말했다. “나라의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영은문을 수리하였다. 가난한 백성들에게서 나온 돈을 한 푼이라도 헛되이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너희는 항상 명심해야 될 것이다.” (임종대 편저 한국 고사성어에서)
施粥發福(시죽발복) 施:베풀 시, 粥:죽 죽, 發:나타날 발, 福:복 복. 어의; 죽을 베푸니 복이 되었다는 말로, 스님에게 약간의 죽을 나누어 주었더니 그것이 인연이 되어 복을 받게
된 이지광의 고사에서 유래했다. 좋은 일을 하면 복이 되어 돌아온다는 뜻으로 쓰인다. 문헌: 대동기문(大東奇聞) 조선 제21대 영조(英祖) 때 이지광(李趾光)은 양녕대군(讓寧大君)의 13세손이다. 양녕대군은 태종의 세자가 되었으나 왕위를 동생 충녕대군(忠寧大君. 세종.世宗)에게 물려주고 팔도를 유람하며 자유분방하게 살다 간 인물이다. 이지광은 남대문 밖에서 살았는데,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생활을 이어갈 수 없어서 막노동을 해야 할 딱한 지경에 있었다. 그러한 그에게 어느 날, 시주승이 찾아와 먹을 것을 구걸했다. 그는 자신도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면서도 먹고 있던 죽 절반을 나누어 주고, 찬 방에서 하룻밤을 같이 지냈다. 스님은 크게 고맙게 생각하고, 떠나면서 말했다. “형편을 살펴보니 선비님도 어렵게 사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집 뒤의 단정한 집은 무슨 집입니까?” “내개 13대 선조가 되시는 양녕대군의 사당입니다.” “그러시면 사당 앞의 나무를 베어내 사당이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이지광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스님의 말에 진실한 데가 있어 그의 말대로 사당 앞의 나무를 베어냈다. 그러자 가려졌던 사당 건물의 모습이 훤히 드러나 멀리에서도 잘 보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영조가 헌릉(獻陵. 조산 태종의 능)에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에 이지광의 집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영조는 그곳에서 허물어져 가는 낡은 사당을 보고 신하들에게 물었다. “저것이 누구의 사당인가?” 옆에 서 있던 승지가 아뢰었다. “네! 양녕대군의 사당입니다.” “그래? 한데 많이 낡았구나. 제사를 지내 주는 종손은 있다더냐?” “네. 있긴 하온데 너무 가난하고 궁색하여 천한 막노동을 해야 할 형편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럼 대궐로 들어와서 나를 찾으라고 일러라.”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시주승의 예지 능력 때문이었다. 즉 사당 앞의 나무를 베지 아니했더라면 사당이 영조의 눈에 띄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 날, 이지광은 헤진 도포에 부서진 갓을 쓰고 영조 앞에 나아가 엎드렸다. 영조는 남루한 형색을 보고 측은해 하며 물었다. “그대는 양녕대군의 몇 세손인가?” “13세손입니다.” “만약 양녕대군께서 왕위를 세종대왕에게 사양하지 아니했다면 네가 이 자리의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영조는 그를 남부도사(南部都事)에 임명하고 승지를 보내 양녕대군의 사당을 새롭게 중수하게 하는 한편, 논과 곡식을 넉넉히 하사하여 제사를 모시게 했다. 이지광은 얼마 안 돼서 벼슬이 목사(牧使)에 이르고, 정사를 잘 펴서 세상에 이름을 남겼다. 또한 그의 증손 이승보(李承輔), 고손 이근수(李根秀)는 판서에 이르러 자손 대대로 부귀를 누렸으니, 시죽발복(施粥發福)이 이같이 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임종대 편저 한국 고사성어에서)
媳婦之德(식부지덕) 媳:며느리 식, 婦:지어미 부, 之어조사 지, 德:큰 덕. 어의: 며느리의 덕이라는 말로, 며느리가 불씨를 보존하기 위해 정성을 다했던 고사에서 유래했다. 집안의 아녀자
가 일을 잘할 때 칭찬하는 말로 쓰인다. 문헌: 한국인(韓國人)의 설화(說話) 우리나리의 대가집에서는 조상 대대로 불씨를 이어받는 전통이 있었다. 오늘날처럼 불을 얻는 일이 쉽지 않았던 때라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지키는 것이 아녀자의 의무이자 큰 덕목이었다. 한 사대부(士大夫) 양반 댁에서 새 며느리를 얻었다. 그녀는 비록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마음씨가 착하고 부지런한 데다 예의범절이 바른 규수였다. 며느리에게 살림을 넘겨주던 날, 시어머니는 특별히 일렀다. “새아가야, 너를 맞게 되어서 참으로 기쁘구나! 너도 아다시피 우리 집에는 선조(先祖)로부터 이어받은 불시가 있단다. 이제 이 불씨를 너에게 넘겨줄 테니, 너도 웃어른들을 본받아서 꺼뜨리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예. 어머니!” 며느리는 불씨를 돌보는 일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며칠 후, 새벽에 밥을 짓기 위해 부엌으로 나간 며느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불씨가 꺼져 있었던 것이다. 간밤에 불씨를 화로에 담아서 그토록 잘 다독여 놓았건만 어지 된 일인지 차가운 재만 남이 있었다. 며느리는 시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게 되어 노발대발하실 것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생각 끝에 그래도 자기의 처지를 이해해 줄 사람은 남편밖에 없다고 생각해 남편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남편도 처음에는 깜짝 놀랐으나 이내 걱정하는 아내를 위로하였다. “너무 걱정 마오. 내가 새 불씨를 만들어 줄 테니 다시는 꺼뜨리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남편은 부싯돌로 새로이 불씨를 만들어 주었다. 며느리는 무사히 위기를 넘겼으나 마음속으로는 죄송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이튿날 또 불씨가 꺼져 있었다. 며느리는 기가 막혔다. 한 번 꺼뜨린 것만으로도 어른들을 뵐 면목이 없는데, 연거푸 두 번씩이나 꺼뜨렸으니 자신이 생각해도 상서롭지 못한 일인 듯싶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야. 어젯밤 늦도록 불씨가 무탈했었는데 밤사이에 꺼지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야.” 며느리는 누군가가 일부러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남편도 화가 나서 도와주지 않는 바람에 그날 시어머니로부터 호된 꾸중을 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이었다. 며느리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엌 한켠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불씨가 든 화로를 감시하고 있었다. 한밤중이 되었다. 며느리는 밤이 깊어지자 참을 수 없이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온종일 고달프게 일을 한데다가 불씨 때문에 마음을 졸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졸고 있던 며느리는 인기척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남색 저고리에 회색 바지를 깨끗하게 차려 입은 열두어 살 되어 보이는 소년 하나가 부엌문으로 들어서더니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여 불씨가 담긴 화로 앞으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며느리의 가슴은 놀라움으로 방망이질을 치듯 두근거렸다. 그런데 해괴하게도 그 소년은 화로에 오줌을 누는 것이었다. “이 녀석! 너, 누구냐?” 며느리는 그 소년의 옷자락을 움켜잡으려고 했다. 그러자 소년은 날렵하게 빠져 밖으로 도망쳤다. 며느리는 있는 힘을 다해 소년이 가는 대로 내를 건너고 언덕을 지나 가시덤불 속을 지나서 정신없이 쫓아갔다. 약을 올리듯 힐끗힐끗 뒤를 돌아보면서 달려가던 소년은 더 이상 도망갈 힘을 잃었는지 한 나무 밑에 멈춰 서는 것이었다. “꼼짝마라! 너는 이제 잡혔다.” 그런데 소년은 순식간에 땅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좋다. 네가 땅속으로 숨는다고 못 잡을 것 같으냐? 내 기어이 너를 잡고 말 테다.” 며느리는 분한 마음에 맨손으로 정신없이 땅을 팠다. 바로 그때 한 때의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산으로 올라왔다. 시댁 사람들이었다. “여보,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요?” 남편이 피투성이가 된 아내의 손을 감싸 잡았다. 며느리는 눈물을 흘리며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예사로운 일이 아니구나. 그곳을 더 파보는 것이 좋겠다.” 함께 따라 나온 시어머니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남편을 비롯한 장정들이 땅을 파고 들어가니 널따란 바위가 나왔다. 그래서 그 바위를 힘껏 젖혔다. “오 이럴 수가……!” 그곳에는 커다란 항아리가 하나 있고, 그 속에는 금은보석(金銀寶石)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불씨를 꺼뜨리지 않은 그 집안에 하늘이 복을 내려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임종대 편저 한국 고사성어에서)
識者殺丈(식자살장) 識:알 식, 者:놈 자, 殺:죽일 살, 丈:어른(장인) 장. 어의: 유식한 자가 장인을 죽이다. 유식한 채하며 거들먹거리다가 되려 큰일을 당하는 경우를 이른다. 식자우환과
비슷한 뜻으로 쓰인다. 문헌: 한국해학전집(韓國諧謔全集) 충북 제천(提川) 교동(校洞)마을에 김 참봉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매우 유식해서 한문에 관해서는 그를 당할 사람이 없었다. 그는 툭하면 이렇게 말했다. “쳇, 그까짓 언문 나부랭이를 글이라고 쓰나?” “흥, 암글 가지고 내 앞에서 행세하지 말게나! 나는 진서를 하는 선비일세.” 그는 자기가 남보다 한문(漢文)을 좀 많이 안다는 것을 코에 걸고 툭하면 한글은 여자나 배우는 암글이요, 언문이요, 상놈 글이고, 한문은 진서, 곧 참글이라고 하며 한글을 천시하였다. 그래서 그는 평소에 자기 생각을 한문으로 말하고, 한문으로 썼다. 즉 ‘아침밥을 먹었다’ 라는 말은 아식조반야(我食朝飯也)! 라고 하고, ‘빨리빨리’ 라는 말은 ‘속거속거(速去速去)’ 라는 식이었다. 어느 날, 난데없이 큰 호랑이가 산에서 내려와 김 참봉의 장인을 물고 달아나 버렸다. 방 안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김 참봉이 뛰어나와 소리쳤다. “아심경 아심경(我甚驚 我甚驚)이로다.” “내가 놀랄 일이다. 내가 놀랄 일이다.” 라는 말을 한문으로 하니 아무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하자 그는 빨리 사람들에게 알려서 장인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다시 소리를 쳤다. “원산지호(遠山之虎)가 자근래야(自近來也)하여 오지장인(吾之丈人)을 착거착거(捉去捉去)했도다!” 먼 산에서 호랑이가 내려와 나의 장인을 물어갔다. 그러니 빨리 나와서 얼른 도와달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여전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늘그막에 마느라가 아기를 낳았으니 축하해 달라는 것인지, 자기 집에 불이 났으니 꺼달라는 것인지……. 김 참봉은 사람들의 반응이 없자 안타까운 나머지 다시 소리를 질렀다. “지봉자(持棒者)는 지봉이래(持棒而來)하고, 지창자(持槍者)는 지창이래(持槍而來)하여 속거속거(速去速去), 오지장인(吾之丈人) 희구출(希救出) 바라노라.” 이 말 또한 알아들을 사람이 없었다. 맨 끝에 구출하라는 말은 겨우 알겠는데 어디서 누구를 구출하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장인은 호랑이에게 물려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김 참봉은 혼자 분노했다. “이런 무정하고 괘씸한 사람들 같으니……. 원님에게 일러 혼내 주리라.” 원님이 그의 말만 듣고 그럴 수가 있느냐며 화가 나서 사람들에게 물었다. “왜, 저 사람의 장인이 죽게 되었는데도 도와주지 않고 가만히들 있었느냐? 한 동네에 사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지 않느냐?” 그러자 동네 사람은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랬다고 했다. 원님은 김 참봉에게 무엇이라고 소리쳤는지 그대로 복창을 해보라고 했다. 김 참봉이 그대로 되풀이 했다. “원산지호(遠山之虎) 먼산의 호랑이가 자근래야(自近來也)라 스스로 가까이 와서 오지장인(吾之丈人) 우리 장인을 착거(捉去) 잡아갔다. 지봉자(持棒者) 몽둥이를 가진 자는 지봉이래(持棒而來) 몽둥이를 가지고 오고, 지창자(持槍者) 창을 가지고 있는 자는 지창이래(持槍而來) 창을 가지고 와서 속거속거(速去速去) 빨리빨리, 희구출(希救出) 구출해 주기를 바라노라.” 그러자 원님이 격노하여 호통을 쳤다. “이놈, 김 참봉! 그냥 ‘호랑이가 우리 장인 물어갔소. 어서 와서 구해주시오.’ 그러면 될 것인데, 그리 어렵게 말했단 말이냐?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아, 원님께서도 그리 무식합니까?” “이놈! 문자를 쓸 때가 따로 있지, 그 경황에 무슨 문자야? 저 멍청한 줄은 모르고 남까지 바보 만들어? 여봐라! 저 우매한 김 참봉을 형틀에 메고 볼기를 쳐서 다시는 그 따위 문자를 쓰지 못하게 하라!” 김 참봉은 곤장을 맞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야둔야.我也臀也(아. 내궁둥이야) 통야.痛也(아파라!) 차후불용문자호.此後不用文字乎(이후로는 문자를 안 쓰겠노라!)” (임종대 편저 한국 고사성어에서)
媳之禮敎(식지예교) 媳:며느리 식, 之:어조사 지, 禮:예도 예, 敎:가르칠 교. 어의: 며느리의 예절교육이라는 말로, 손아래 사람이 어른의 부족한 점을 깨우쳐 주는 것을 이른다. 문헌: 한국해학전집(韓國諧謔全集) 조선 숙종(肅宗) 때 직장(直長) 황손승(黃孫承. 1632~1707)은 예의(禮儀)를 빼고 나면 남는 것이 없을 만큼 엄격하고 모범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은 걸음걸이와 앉음새, 음식예절, 말투까지 천박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또 부모에게 효성(孝誠)이 지극하여 나라에서 종7품(從七品) 벼슬까지 하사받았다. 그런 그이기에 해가 떠도 예의, 달이 져도 예의, 그저 예의로 일관하다 보니 제일 딱한 사람은 그 집 아들이었다. 혼기가 닥쳐왔는데도 예의만 찾는 양반집에 딸을 주겠다는 혼처(婚處)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웃 마을에 심 학자(沈學子)라고 하는 사람에게 과년(瓜年)한 딸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워낙 가정 형편이 어려워 누가 중매를 서려 하지 않았다. 심 학자가 탄식을 하니 부인이 말했다. “저 황 직장(直長) 댁에 딸을 시집보내면 우리도 살림이 펴질 텐데…….” 옆에서 듣고 있던 딸도 그 말에 동의하고 나섰다. “그래요. 그 집에 저를 시집보내 주십시오. 시집가면 최선을 다하여 그 집안의 예의를 따르겠습니다.” 심 학자는 펄쩍 뛰며 말했다. “얘야. 네가 며칠 굶더니 무슨 헛소리냐? 배운 게 없는 네가 그 집에 시집가면 봉제사(奉祭祀), 접빈(接賓), 음식 장만, 그리고 많은 예의범절(禮儀凡節)을 어찌 감당하려고?” “아버지 이 세상에 완전한 예의는 없습니다. 평소 성실하고 근면하게 살아온 제가 왜 예절이 없다고 하십니까?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저 피나무로 만든 도마 하나와 식칼 하나, 베보자기 하나만 준비해 주십시오.” “아니, 그것은 어디에 쓰려고?” “예. 필요한 데가 있을 것 같아 그러하오니 준비가 되거든 그 집에 청혼을 해주세요.” 그리하여 예의만 찾는 양반집에 가난한 선비네 딸이 시집을 가게 되었다. 혼례가 치러지고 그 이튿날, 드디어 문제가 생겼다. 새 며느리가 시부모님께 아침 사관(仕官:윗사람께 드리는 문안인사)을 오지 않는 것이었다. ‘에햄, 새 며느리가 오면 이런저런 예절교육(禮節敎育)을 시켜야지.’ 하고 잔뜩 벼르고 있던 시아버지가 참다 못해서 소리를 질렀다. “거, 며늘아이 수모(手母: 수발하는 여자) 있느냐? 아직도 새 아이가 사관을 오지 않는 연고가 무엇인고?” 급하게 새 며느리에게 다녀온 수모가 말했다. “예. 새아씨가 자기 집 예문(禮文: 예의 법도)은 윗사람이 사관을 받으려면 먼저 사당에 가서 조상님께 예를 올리고 나서 받는 법이어서 시아버지께서 사당에 다녀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음, 옳은 말이다. 대단한 예의가문이로구나. 그럼 내 얼른 사당에 참배를 하고 오마.” 그런데 대가 섣달 설한풍이 몰아치는 때여서 노인이 뒷산 중턱에 있는 사당에 다녀오려면 대단한 고행이었다. 더구나 언덕길에는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칠십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절을 받기 위해서는 빙탄 비탈길을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눈길에 자빠지고, 넘어지고, 미끄러져서 온몸 어디 한 군데 온전한 데가 없었다. 아이구 소리가 절로 나오고, 감기까지 걸려 기침도 도져왔다. 간신히 다녀와서 막 따뜻한 아랫목에 누우려고 하는 순간 새 며느리가 어느새 들어와서 아뢰었다. “아버님, 사당에 다녀오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사관 받으시옵소서.” 은쟁반에 옥구슬 굴리는 목소리로 문안을 드리니, ‘아. 과연 선녀 같고 예의바른 우리 며느리로구나! 라고 생각은 들었지만 온 삭신이 아픈 것은 어절 수 없었다. 그는 어기적거리며 간신히 일어나 사관을 받았다. ‘오늘은 억지로 사관을 받았지만 내일 아침은 어쩌지? 저 눈길에 그 높은 사당을 또 다녀와야 된단 말인가?’ 시아버지는 걱정이 앞섰다. 하여튼 그렇게 겨우겨우 사흘 동안 사관을 받고 난 황 직장은 ‘아이구 사관 받다가 내 명대로 못 살겠구나.’ 하고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래서 마누라를 시켜서 당장 사관을 그만두라고 하니까 며느리가 펄쩍 뛰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관은 석 달 동안 쉬지 않고 드리는 거라고 배웠습니다.” “응? 석 달? 아가, 내가 제발 빈다. 이제 그만 끝내자꾸나.” “아니옵니다. 명망 높은 집에서 사관을 사흘밖에 안 하다니요. 자손들에게 부그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아이구, 이러다가 내가 지레 죽겠구나.” “아버님. 예의는 지켜야 하겠지만 죽은 조상보다 살아계신 부모님이 더 소중하니까 그럼 아버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몇 달 후, 황 직장의 아버지 제삿날이 돌아왔다. “아가, 오늘 저녁에 너희 시할아버지 기고(忌故. 제사)가 있으니 제수를 장만하도록 해라.” “예. 그럼 어머님! 평소에 쓰시던 도마하고 칼을 주십시오.” “아니. 무엇에 쓰려고 그러느냐?” “저는 제사용 도마와 칼은 평소와 달리 따로 사용하라고 배웠습니다. 평소 쓴 것, 짠 것, 비린 것, 산에 들에 강에 바다에서 난 온갖 것을 썰고, 저미던 잡스런 도마에 어찌 신성한 제사 음식을 썰겠습니까?” “그도 그렇겠구나. 그런데 아가, 내가 미처 그런 도마와 칼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어지하면 좋겠느냐?” “이리 될 줄 알고 제가 피나무도마와 칼을 가지고 왔습니다.” “너희집은 과연 예의가 대단하구나.” “뭘요. 저희 아버지는 이런 것은 상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그런 집안에서 며느리를 데려오다니 가문의 영광이로다.” 그날 밤, 제사 상을 차리는데 진설법(陳設法)이 영 달랐다. 며느리는 조율이시(棗栗梨柹), 홍동백서(紅東白西)가 아니라 빨간 음식은 빨간 것끼리 모아 놓고, 흰 것은 흰 것대로 모아 놓는 것이었다. “얘. 아가! 이것은 누구의 진설법이냐? 희한하기도 하다.” “아이구. 아버님 이것도 모르십니까? 주자(朱子) 선생의 진설법 아닙니까?” “아. 우리는 공자님 진설법으로 해왔는데…….” “주자님이 공자님의 법도를 고쳐 놓지 않았습니까?” “음, 그럼 이제부터는 우리 가문도 주자법을 따라야 하겠구나!” 황 직장은 며느리가 가르쳐 주는 대로 따르는 신세가 되었다. 가을이 되었다. 첫 벼를 베려니까 며느리가 말했다. “아버님. 제미(祭米. 제삿쌀)를 먼저 장만하셔야지요.” “그냥 한꺼번에 추수해서 나누어 쓰면 되지 않느냐?” “아닙니다. 아버님. 저희 집 예문(禮文)에는 꼭 첫 곡식을 따로 추수해서 제미로 씁니다. 사대봉사(四代奉祀)이니, 여덟 번 차려야 되니까 여덟 봉지를 베 보자기에 따로 싸서 보관해야 합니다.” “과연 예의바른 집이로구나.” 그런데 제미(祭米)를 여덟 번이나 따로따로 말리고 담으려니까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며늘아가, 가가례(家家禮)란다. 집집마다 예절이 다른 법이니 지금부터는 너희 집 예문을 들먹이지 말고 우리 집 예절에 따라 사는 것 또한 예의일 것이니라. 그러니 너무 예절을 따지지 말고 편리하게 살자꾸나.” 그 뒤부터 며느리는 예절 때문에 시달리지 않았다. (임종대 편저 한국 고사성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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