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다.
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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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전>이란 예수님이 제자들과 대화중에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말씀에 이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6-18)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이들을 <교회>라고 확증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도 개인이 교회요, 성도들이 모여 예배하는 <예배당을 교회>라 하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창조 하실 때 하나님의 설계에 의해 질서 대로 창조하셨습니다.(창2:1)
그럼에도 우리는 여러 가지 방탕과 불만으로 이 질서를 파괴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대속의 피를 흘리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 가운데 오셔서 내 생명을 사탄이 다시는 넘보지 못하도록 <통치>하기를 원하십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래서 히브리 원어는 생명을 복수로 사용합니다.
히브리어 하임(!yYIj; )은 생명의 복수 명사입니다.
<내 안에 주님이 거하시므로 생명은 복수>입니다.
따라서 내 <목숨의 본질은 내 것이 아니라 주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살은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살인죄입니다.
또한 <주님이 거하시기에 생명이란 영원성>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므로 무신론자들이 <‘죽으면 그 뿐’>이라는 것은 주님을 무시, 모독하는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악담입니다.
주님을 대적하는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서 성품이 좋고 나쁨, 머리가 좋고 나쁨, 잘생기고 못생김, 건강이 좋고 나쁨이 주님 안에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가령 돈 10,000원짜리가 새돈만 가치있고 구겨지고 흙이 묻었다고 만원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듯이 주님 앞에는 <누구든지> 사랑할만한 자녀들입니다.
다만 <주어진 분량에 만족하면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한 몸으로 정하신 부부는 물론, 누구든지 주님이 거하셔서 활동하신다면 그 사람은 생명이요, 그 생명은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서로사랑이 새 계명이요, 또한 원수라도 사랑 할 수 있는 능력이 주님과 함께하는 모든 성도의 생명>입니다.
또한 우리는 피조물인 내 안에 거하시는 주님은 창조주요 섭리자 이시니 내 생각보다 높으시며 내가 아는 그것보다 <제한이 없으신 주님임을 인정한다면 당연히 내 뜻이 아니라 주님 뜻>을 따르는 것이 정말로 합리적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보다 내 생각이 더 맞고 옳다>고 생각하여 주님을 섭섭하게 해 드립니다.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나 내 일체를 내 안에 거하시는 영원, 무제한의 주님께 맡겨드리는 믿음의 삶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교회 공동체와 세상을 통하여 실험, 훈련, 깨닫고 삶에 적용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안의 그리스도가 나타나시는 빛된 삶이요, 소금된 삶입니다.
*참고- 창2:1. 마20:28. 사40:11, 52:7. 롬3:23-24, 5:8. 신30:15. 요13:34. 사55:9. 고전6:19-20. 고후13:5. 롬11:36. 골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