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에서, 가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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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친구였던 외로움일지라도
어찌 그것이 외로움뿐이었으랴
그것이야말로 세상이었고
아직 가지 않은 길
그것이야말로
어느 누구도 모르는 세상이리라
바람이 분다
―― 고은, 『아직 가지 않은 길』에서
▶ 산행일시 : 2017년 9월 30일(토), 흐림, 안개, 안개비, 오후에 약간 걷힘
▶ 참석인원 : 15명(영희언니, 모닥불, 악수, 대간거사, 화은, 한계령, 산정무한, 인치성,
수담, 상고대, 두루, 구당, 해마, 승연, 메아리)
▶ 산행거리 : GPS 도상 12.8km
▶ 산행시간 : 11시간 54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0 : 3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2 : 36 - 인제군 상남면 미산리 한니동(寒泥洞) 근처, 차내 계속 취침
04 : 24 - 산행시작
05 : 12 - 암릉 암봉
05 : 53 - 암릉 암봉 통과
06 : 30 - △1,220.8m봉, 아침 요기
07 : 20 - ┣자 개인약수 갈림길
07 : 42 - 배달은산(배달은석, 1,415.0m)
08 : 50 - 배달은산 북동릉 1,110m 고지
09 : 30 - 왼쪽 사면 트래버스, 주계곡
10 : 41 - 깃대봉(△1,435.6m)
11 : 16 ~ 11 : 54 - 깃대봉 서릉 진입, 점심
12 : 16 - 1,196.5m봉
12 : 57 - 1,193.5m봉
13 : 53 - 1,165.3m봉
14 : 32 - △1,118.1m봉
15 : 08 - 980m봉, ┫자 왼쪽 지능선 내림
15 : 54 - 가산동(佳山洞) 산기슭 농원
16 : 18 - 가산동 아랫녘, 산행종료
17 : 00 ~ 19 : 00 - 홍천, 목욕, 저녁
20 : 14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산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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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방태산 깃대봉 정상에서, 앞줄 왼쪽부터 화은, 상고대, 수담, 승연, 뒷줄 왼쪽부터 인치성,
구당, 악수, 해마, 모닥불, 두루, 산정무한, 한계령, 대간거사, 메아리 대장(영희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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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방태산 깃대봉 남서릉의 수리봉 연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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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산구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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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은산(배달은석, 1,415.0m)
한밤중이라야 서울-양양고속도로 덕을 본다. 홍천휴게소에 들르고도 한니동 근처까지 2시
간이 조금 더 걸렸다. 그렇다고 산행 들머리인 산 밑에서 잠을 오래 자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다. 꿈자리가 사납다. 야장몽다(夜長夢多)라고 긴 꿈속에서 험한 산을 미리 헤매
곤 한다. 깨어나면 그 잔상이 남아 기운이 쏙 빠진다.
04시 기상. 차문 열고 나가 찬 공기를 한 움큼 들이마시자 정신이 번쩍 든다. 한니동(寒泥洞)
이 다 이유가 있다. 지난주 양자산은 비지땀 여름이었는데 오늘은 소슬한 가을이다. ┫자 삼
거리에서 오른쪽 생사면을 치고 오르려고 한다. 캄캄한 산기슭 덤불숲이 너무 깊어 누구라도
선뜻 뚫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메아리 대장님이 뛰어들고 나서야 그 뒤를 잇는다.
키 큰 덤불숲을 양팔 벌려 헤치다가 이내 힘이 부치고 아예 포복으로 기어오른다. 덤불숲 벗
어나니 가파른 잡목 숲이다. 헤드램프 닿는 데마다 길이다. 실은 그렇게 보인다. 무심코 헤드
램프를 따라 가다보면 능선 마루금을 벗어나기 일쑤다.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함부로 어지
럽게 걷지 말라)은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 내린 들판을 걸어 갈 때)에서만이 아니다.
암벽과 맞닥뜨린다. 메아리 대장님 선등으로 슬랩에 덤빈다. 바위 슬랩에 붙어있던 흙이 쓸
려나가고 미끄럽다. 아무래도 더 오르기 어렵다. 메아리 대장님은 슬랩 너머로 메아리조차
들리지 않게 사라졌다. 뒤돌아 내린다. 여기저기 쑤셔본다. 왼쪽 사면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캄캄하기 다행이다. 보이는 것이 없으므로 막 간다. 흙 절벽 오를 때는 오금이 저린다. 발자
국계단은 뭉개졌다. 붙들 잡목도 없다. 오지를 피켈 삼아 찍어 오른다.
어렵사리 능선에 오르고 식겁했다는 메아리 대장님과 만난다. 그새 반갑다. 휴식, 가쁜 숨 돌
린다. 암릉은 계속 이어진다. 우리 발걸음의 더듬거림도 다시 시작된다. 바로 눈앞의 암벽이
만만하게 보여 오르자 해도 그 너머가 혹시 오도 가도 못하는 블라인드 코너가 아닐까 겁이
더럭 난다. 그럴 뻔했다. 사면 길게 돌아 넘고 뒤돌아보니 날카로운 침봉이었다.
05시 53분. 아직 어둡다. 고도 930m의 암릉 암봉을 통과하는 데만 40분이 걸렸다. 능선에는
흐릿한 인적이 앞서간다. 잡목과 풀숲은 우거져 등로를 덮었다. 발로 길을 찾는다. 언더월드
인 줄로만 알게 하던 어둠이 어느덧 물러나고 뭇 산들이 기지개 펴고 일어난다. 내 눈이 암만
비벼도 침침한 건 안개 때문이다. 안개 속에 든다.
△1,220.8m봉. 준봉이다. 삼각점은 ‘현리 438’이다. 정상 너른 풀밭에서 아침요기 한다.
무릇 먹을 때와 시험 칠 때는 자리가 말해주는 법. 옆 자리의 상고대 님이 준비해온 특제 샌
드위치 하나가 배달은산까지 든든하다. 고도를 높일수록 안개가 점점 더 짙어진다. 날이 맑
은 그런 안개가 아니다. 3주 연속해서 안개 속을 헤맨다. 어쩌랴, 이것도 방태산의 한 얼굴인
것을.
오른쪽으로 개인약수를 오가는 ┣자 갈림길을 지나고 등로는 더욱 튼튼해진다. 5분쯤 완만
하게 올라 ┳자 방태산 주릉이다. 안개비가 내린다. 비바람이 분다. 비에 젖은 풀숲이 차디차
다. 사방 트인 바위지대에 올라도 만천만지한 안개라 사방 막막하다. 그저 머리 숙이고 내닫
는다. 배달은산. 배달은석이라고도 한다. 먼 옛날 홍수 때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배를 묶어
놓던 바위가 있다고 한다. ‘배달은산’이라는 아무런 표식이 없다. 숲속에 들어 휴식한다.
5. 방태산 배달은산 가는 길, 고도 1,000m 이상은 안개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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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배달은산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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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배달은산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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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배달은산 가는 길, 잡목 숲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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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배달은산 정상에서 휴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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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단풍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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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단풍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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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깃대봉(△1,435.6m)
우리는 깃대봉을 좀 더 아름답게 가고자 한다. 주릉 등로를 따라 가면 0.8km라 한달음이면
충분한 거리와 고도인데 배달은산 북동릉을 고도 350m 내리고 사면을 질러가서 깃대봉 북
동릉을 오르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깃대봉을 거리 2.4km, 고도 1,785.6m로 만들어 오르
려는 것이다. 배달은산 북동릉 초입은 넙데데하여 마루금을 잡기가 어렵다. 잡목 숲 이리저
리 누비며 내린다. 전인미답의 길이다.
쭉쭉 내린다. 밀림이다. 쓰러져 이끼 낀 고사목은 수수만년이나 됨직하다. 딴은 표고나 노루
궁뎅이 등의 버섯과 더덕에 욕심이 없지 않았다. 이 많은 참나무는 속절없이 쓰러졌다. 수피
를 훑고 지배(地背)를 철(徹)해도 빈 눈이다. 왼쪽 사면을 트래버스 한다. 바위 절벽 피하느
라 오르락내리락한다. 너덜에서 몇 번이나 미끄러지고 넘어진다. 그러면서도 다치지 않은 건
아내의 기도발 때문이리라.
지계곡 두 차례 건너고 밀림의 잡목 숲 뚫어 주계곡이다. 바람의 분투로 언뜻 방태산 자연휴
양림 뒤편 연릉 연봉이 신비스런 준봉처럼 보인다. 주계곡의 잴잴 흐르는 물 받아 식수 보충
한다. 가파른 너덜사면 기어오르고 사면 길게 돌아 깃대봉을 향한다. 산죽지대를 잠깐 지난
다. 이곳에는 만병초와 노거수인 주목이 흔하다. 속이 텅 비었어도 늠름한 주목 우러러 내 발
걸음에 힘을 받곤 한다.
잡목 숲 ‘안전거리유지’ 선창을 복창하며 오른다. 주릉 날씨는 더 궂다. 비바람이 차다. 깃대
봉 정상은 대단한 경점일 텐데 오늘은 안개에 지척도 가렸다. 삼각점은 방태산의 유수한 봉
우리를 다 뿌리치고 1등 삼각점이다. 현리 11, 1989 복구. 기념사진 얼른 찍고 정상을 물러
난다. 깃대봉 서릉을 잡아 내린다. 인적은 얼핏 보이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울창한 숲속은 으스름하다가도 단풍이 온몸으로 길 밝혀 환하다. 그냥 가기 아까워서 사진
찍는다. 그 환한 단풍나무 숲 아래에서 점심자리 편다. 오늘처럼 으스스하게 추운 날은 특히
라면이 맛 난다. 버너 3대를 가동하여 점심이 훈훈하다. 술도 몸을 덥게 하는 음식이다. 백주,
탁주, 마가목주 두루 들이킨다. 식후 무한마담이 세 번 끓인 아이리시 커피는 크림이 빠졌지
만 일품이다.
12. 배달은산 북동롱 내리다가 단풍 환한 데가 나오자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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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배달은산 북동롱을 고도 350m 쯤 내리다가 왼쪽 사면을 돌아 주계곡에 다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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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흐릿한 능선은 방태산 자연휴양림 동쪽의 연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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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방태산 깃대봉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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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때때로 울창한 숲속은 안개로 어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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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방태산 깃대봉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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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깃대봉 서릉의 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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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깃대봉 서릉의 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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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깃대봉 서릉의 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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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대봉 서릉도 방태산 주릉 못지않게 장쾌하다. 1,000m가 넘는 고봉을 여러 좌 넘는다.
1,196.3m봉 넘고 부드러운 능선길이다. 풀숲 소로는 단풍이 밝혀 환한다. 가을을 간다. 걷고
있어도 걷고 싶은 길이다. 이따금 등로 벗어난 전망 좋은 바위에 올라가 수리봉 연릉을 감상
한다. 길 벗어나면 일행들의 연호로 길 찾는다. 거기에는 더덕이 없더라고 핑계한다.
멀리서는 아득한 준봉으로 보이던 1,193.5m봉, 1,165.3m봉, △1,118.1m봉을 줄달음하여
넘는다. △1,118.1m봉 삼각점은 ‘현리 440, 2005 재설’이다. 고도 1,000m를 벗어나자 안개
가 걷힌다. 조금은 억울하기까지 하여 뒤돌아보면 여전히 안개 속이라 마음이 놓인다. 980m
봉. 가산동 마을을 겨냥하고 ┫자 왼쪽 지능선을 내린다.
급전직하. 가파른 내리막이다. 이곳으로 오르지 안 했기 참 잘했다며 내린다. 적송 숲을 지난
다. 겉으로 보기보다는 내리기 여간 사나운 등로가 아니다. 간벌한 잡목이 여기저기 널려 있
다. 흐릿하게 앞서가던 인적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생잡목 숲을 뚫기도 버거운 판에 간벌한
잡목까지 일일이 추려서 넘어야 하니 팔과 발이 사뭇 바쁘다.
가산동 마을이 가까워서는 농원 지키는 개 두 마리가 우리의 기척을 알아채고 하도 악착같이
짖어대는 통에 정신이 없어 발걸음이 흐트러질 지경이다. 꿈땜한다. 오늘 진땀이 나는 건 여
기에서다. 이튿날 등짝이며 팔뚝이며 가슴께이며 툭툭 불거지는 두드러기가 생긴 건 아마 여
기 잡목 숲을 뚫으면서 독나방 등에 쏘여서다. 사과밭 농원에 내려서고 가산동 마을길이다.
대로인 마을길을 내린다. 꽃길이다. 코스모스, 구절초, 쑥부쟁이가 줄줄이 고개 쑥 빼고 우리
를 맞이한다. 그런 마을길 양쪽에는 양풍의 별장들이 곱게 단장하여 그림이다. 남진의 ‘님과
함께’를 보는 것 같다. 한편 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허구한 날 이 산속에서 살 수는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비워 두면 집이 거미줄 치고 쉬이 상한다. 없는 자의 자기위안이다.
마을 어귀까지 두메 님이 차를 몰고 왔다. 양양고속도로 인제IC가 근처이고 홍천이 가깝다.
오늘은 추워서 떨었으니 온탕에 오래 담가야겠다.
21. 표고버섯, 날로 먹어도 고소하니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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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방태산 깃대봉 남서릉의 수리봉 연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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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가산동 마을이 가까워서는 적송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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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산구절초는 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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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쑥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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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멀리 가운데는 가마봉, 오른쪽 시설물이 보이는 산은 대바위산(후방 대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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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가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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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가산동 농장의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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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오갈피나무(오가피나무) 열매, 잎이 5개로 손가락모양으로 갈라져서 오갈피나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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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가산동 마을 내리면서 바라본 가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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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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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홍천 가는 양양고속도로에서 바라본 공작산
첫댓글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긴 방태산. 아직 조금은 더운 속세에서 미리 맛본 고급정서였네요.
안개 낀 가을의 방태산 !!
그냥 좋습니다~~~
날 좋은 방태산은 더욱 신나리라 봅니다.
오지 아니면 어디 가서
이런 방태산의 진면모를 접할까 싶습니다.
오지 ! 화이팅 !!
대골 상류에서 놀다온게 좀 아쉽지만 가을의 정취를 듬뿍 안고 온 산행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