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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용의 출현
1592년 4월, 조선은 임진왜란 발발 후 단 15일 만에 왜군에 한양을 빼앗기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다.
조선을 단숨에 점령한 왜군은 명나라로 향하는 야망을 꿈꾸며 대규모 병역을 부산포로 집결시킨다.
한편, 이순신 장군은 연이은 전쟁의 패배와 선조마저 의주로 파천하며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도 조선을 구하기 위해 전술을 고민하며 출전을 준비한다. 하지만 앞선 전투에서 손상을 입은 거북선의 출정이 어려워지고,거북선의 도면마저 왜군의 첩보에 의해 도난당하게 되는데…
왜군은 연승에 힘입어 그 우세로 한산도 앞바다로 향하고,
이순신 장군은 조선의 운명을 가를 전투를 위해 필사의 전략을 준비한다.
1592년 여름, 음력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한 조선의 운명을 건 지상 최고의 해전이 펼쳐진다.
1592년 4월 13일 부산포가 기습적으로 뚫리면서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외부의 침략에 대해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조선은 단 15일 만에 왜에 한양을 내준다. 도성을 잃은 선조는 평양으로 떠나고 왜군 주력군들은 조선 정복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 계속해 북진한다. 하지만 육로를 통해 보급물자를 받아야만 했던 왜군들의 전략은 해상에서 번번이 막혀버린다. 그들의 북진을 막은 주인공은 바로 이순신이다. 왜군, 입장에선 보급물자를 위해 반드시 해상 운송로가 열려야 했지만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버티고 있어 속수무책이었다. 마침내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은 6월, 경상도 고성, 땅 당항포에서 왜선 20척을 수장시킨다. 하지만 이순신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어쩔 수 없는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은 당항포 해전 이후 약 한 달간, 한산 해전이 일어난 후일까지를 그린다. 임진왜란 7년 전쟁의 수많은 전투 중 최초로 압도적 승리를 거둔 ‘한산 해전’은 그야말로 조선의 운명을 바꿔놨다. 한산 해전은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백성들의 열망에 불을 지폈고 전국 곳곳에 의병들이 봉기하며 방어에 나섰다. 조선이 굉장한 수세에 처해있던 상황에서 전라좌수사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전체적인 전황을 반전시키는 전투가 바로 한산 해전이다”라며 한산 해전이 그 어떤 전투보다 벅찬 승리의 전투임을 전했다.
특히 지난 3년간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지나오며 패배감과 우울감에 인이 박힌 국민들은 난세를 헤쳐나갈 영웅의 출현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속 자신보다 백성과 동료, 부하를 더 소중히 여기는 이순신의 모습에서 모두가 기다리던 영웅 그 자체를 확인할 수 있다. 은 어떤 느낌일지 많이 고민했다
이순신 장군을 그린 영화 3부작 중 1부작 명량해전을 관람한 후 2탄 한산 용의 출현을 관람 감동적이였다. 3탄은 노량 죽음의 바다를 제작중 이란다. 기대가 된다
조선 최고의지혜로운 장수 이순신(박해일)
왜군장군 와키자키(변요한)
원균(손주현)
어영담역(안성기)
가토역(김성균)
왜군의정보를 전달하는첩자(정보름)
조선진영
왜군진영
거북선내부
학익진도
작전회의
이순신장군 학익진도 계획
한산대첩
한산대첩
작전회의
1592년7월전쟁발발
어영담 전투장면
왜군 배
용의출현
이순신장군 와키자키을 향하여 활을당기는 모습
필사즉생 필생즉사
죽고자하면 살고 살고자하면죽는다
이순신장군
한산대첩
왜군 침몰 장면
조선군사
조선군사
첫댓글 성웅 이순신장군에 대한 영화는 수없이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옛날 성웅 이순신, 명랑해전, 노량대첩등등 한산 용의출현까지 장군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들은 모두가 대작이지만 명랑해전외에는 흥행하지 못 했습니다.
장군께서 작금의 이 나라 정치판을 바라보면, 쓴 웃음이 나오실 겁니다.
7월 27일 개봉하여 33일 만에 700만명 돌파라는
대 흥행을 하고 있답니다.
손주가 할아버지와 함께 가고 싶다고 해서 일요일 갔다 왔는데 정말 흥행 대작 답게
흥미진진하게 관람했어요
명량 해전은 5년 전에 관람에 이어 한산 용의 출현을 관람했고 노량 죽음의 바다 3탄이 나온다고 합니다.
사운드운악 의상 특히 바다에 가지 않고 바다와 풍랑을 연출 했다는데 놀랄 따름입니다.
한번 관람을 권하고 싶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