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회화(80) - 대우정의 명문 내용
대우정(大盂鼎)은 서주 초기의 청동기를 대표하는 것 중 하나로, 현재 알려져 있는 주대(周代)의 정(鼎) 가운데에 가장 큰 것인데, 대우정(大盂鼎)의 명문(銘文)에는 강왕(康王) 시대(B.C 1000년 경)로 추정된다.
대우정(大盂鼎)의 내벽에는 거침없는 필치로 쓴 19행, 모두 291자가 되는 긴 글이 새겨져 있으며, 강왕이 뛰어난 장군이었던 우(盂:사람 이름)에게 조상의 관직을 잇도록 명하고, 수레, 말, 옷가지 등과 함께 모두 1,700명이 넘는 백성을 준 기념으로 우(盂)가 이 정(鼎)을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이는 서주 전기의 정치 사회를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특히“丕顯文王受天佑大命(찬란한 문왕은 천명을 가지고 하늘의 도움을 얻으셨고)”과 “粵我其遹省先王受民受疆土。(나는 선덕을 따르고 선왕은 하늘의 백성과 강역을 받아들이셨다)”는 구절을 통해 주대 사람들은 상나라의 의식을 대부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그 중 '천명관'과 '덕치'는 노예제도가 존재했던 주대 상류계층들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대우정의 명문(銘文)은 실제로 임금이 신하에게 내린 책명(策命:관직이나 토지를 주는 사령)을 그대로 실어놓은 것이므로 역사학적인 면에서는 서주(西周) 초기의 역사를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이 명문이 지닌 자료적인 가치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한편으로는 중국사상사의 중요한 주제인 천명사상(天命思想)이 나타난 가장 오래된 것이어서 사상사 연구에서도 값진 것이다.
은(殷=상)에서는 모든 행위는 신탁(神託)을 얻어 행하였으며, 인간의 운명은 절대적인 신에 의해 지배되었으나, 주(周)는 인간이 실천하는 정치의 선악에 의해 천명이 좌우된다고 생각하여 은(殷)에 대한 탈권과 자기 통치를 이론화했다. 대우정 명문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주의 통치사상은 뒤에 공자(孔子)가 창시한 유학(儒學)의 중심사상이 되었고, 천명사상은 역대 정치사상의 흐름으로도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 중대한 이념이었는데, 이 대우정(大盂鼎)의 명문으로 그런 사고방식이 이미 주대(周代) 초기에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댓글 귀한 자료 잘 보았습니다.
종의 크기가 어느 정도이면 이렇게 많은 글씨가...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