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와 눈이 어떻게 오나요?”
펄펄 눈이 옵니다
바람 타고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 송이 하얀 솜을
자꾸 자꾸 뿌려줍니다
자꾸 자꾸 뿌려줍니다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하얀 가루 떡가루를
자꾸 자꾸 뿌려줍니다
자꾸 자꾸 뿌려줍니다
누구나 좋아하는 동요이다. 정말 하얀 눈을 보면 하얀 솜같고, 하얀 떡가루같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내려 주는 것처럼 신비롭다.
금방 녹아 없어질 것들이 다 육각형으로 그 아름다운 모양을 보면
정말 뭐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하다.
“비가 어떻게 오나요?”라고 물으면
교회다니는 사람들도 너무 쉽게 “하늘이 비를 내리는 거야.”라고 대답을 하곤 합니다.
아이들이 이제 자라 학교에 가면 비가 왜 오는 지를 선생님이 이렇게 가르쳐 주신다.
“물이 햇빛에 증발하여 수증기가 되고 그것이 구름으로 공중에 떠 있다가 찬 공기에 부딪혀서 다시 물방울이 되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비다”라고 설명하여주니 얼마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가. 아이라도 이런 설명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아주 타당하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어떤 아이들은 “이거, 속았잖아,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것이 아니고, 자연 현상이잖아. 엄마 아빠는 너무 순진하셔! 어떻게 비가 오는 원리도 모른담”
정말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누가 틀린 것인가?
어떻게 설명해야 영롱한 눈빛을 가진 우리 아이들에게 바른 지식과 지혜를 가르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가르침을 주어야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시험에 합격하기위에서 열심히 외우고 공부합니다. 배우는 내용은 “이것은 무엇이냐?”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한번도 “왜 이런 거지?” 생각해 보지는 않습니다.
그 원리와 신비를 깨달을 깨 누구나 창조의 신비로움에 경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기권의 원리도 한번 생각해 봅시다.
대기권의 높이는?
대기층의 온도의 변화는 어떻게 될까요?
높은 산으로 올라가면 온도가 올라갈까요? 내려갈까요?
태양과 더 가까워지는데, 올라가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 반대입니다. 높은 산으로 올라갈수록 온도가 내려갑니다.
대류권, 성층권, 중간권, 열권에서의 온도의 변화는?
| 구분 | 고도 범위 | 기온 변화 (높아질수록) | 주요 특징 |
| 대류권 | 지표 ~ 약 11km | 하강 (약 6.5°C/km) | 기상 현상, 대기 질량 80% 집중 |
| 성층권 | 약 11 ~ 50km | 상승 | 오존층 존재, 비행기 항로 |
| 중간권 | 약 50 ~ 80km | 하강 | 최저 기온(-90°C), 유성(별똥별) 관측 |
| 열권 | 약 80 ~ 1,000km | 상승 | 오로라, 인공위성 궤도, 전리층 |
대류권에서는 올라갈 수록 온도가 내려갑니다. 대류권은 영하 50~80도 까지 내려갑니다.
성층권에서는 올라갈 수록 온도가 올라갑니다.
중간층에서는 올라갈 수록 온도가 내려갑니다.
열권에서는 올라갈 수록 온도가 올라갑니다. 열권에서의 온도는 무려 500°C ~ 2,000°C 이상까지 올라갑니다.
너무 신기하지 않나요? 온도가 2천도씨나 되던 온도가 어떻게 변화하여 사람이 살기 좋은 따뜻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왜 층마다 신비하게 온도가 오르락 내르락 할까요?
만약 대류권의 온도가 산으로 올라갈수록 올라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대류권에 있는 수증기가 다 증발해버려, 온 생명체가 사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대류권은 올라갈수록 온도가 낮아져 응결되어 비와 눈이 되어 내리게 되니 이것이야 말로 창조주의 신통방통 꼬부랑통한 창조의 신비와 원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
신기하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인 대류권에서는 대류현상(무거운 공기와 가벼운 공기의 순환현상)과 구름과 관계되는 기상현상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만약에 우리가 살고 있는 대류권 공간에 무거운 공기와 가벼운 공기가 돌고 돌아가는 대류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분명히 호흡을 할 수가 없어서 죽게 됩니다.
왜냐하면 대기권의 공기는 질소가 약 78%, 산소가 21%, 기타가 1%입니다. 그런데 대류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무거운 공기인 질소만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호흡을 할 수가 없으며, 우리가 먹고 살아가는 작물이 생육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호흡을 못 해서 다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우리가 사는 공간인 대류권 안에는 대류현상이 일어나서 무거운 공기 가벼운 공기가 순환을 합니다. 돌고 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호흡을 하면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이렇게 우리가 사는 공간인 대류권 안에서 이런 대류현상이 일어나서 우리가 호흡하고 살 수 있을까요? 우연일까요? 아닙니다. 우연히 될 수가 없죠?
https://youtu.be/hS2V_ZZWP9c?si=YB2yusShiSJZcGLX 지구 멸망을 대비해 만든 작은 지구의 최후 MBC 201206 방송
성경에서 그 답을 이렇게 주고 있습니다.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이사야 42:5)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호흡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공간에 대류현상이 있게 하셔서 호흡도 하고 작물도 생육할 수 있도록 하셔서 우리가 먹고 살아가게 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먹고 살아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살아 갈 수 있도록 호흡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오늘 하루 살아가세요!
둘째는 우주공간에 있는 지구의 운행입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우리 지구는 태양계에 포함되며, 태양계는 또 은하계에 포함되어 있죠.
알고 있었죠? 은하계에는 별이 몇 개인 줄 아세요. 약 일천억 개가 있습니다. 일천억 개가 몇 개인지 상상할 수 없죠? 하나, 둘, 셋, 이런 식으로 세어서 약 8,000년동안 세어야 할 숫자가 일 천억 개입니다. 그 은하계의 일천억 개 별 무리속에 하나의 지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놀랄만한 사실은 이런 은하계가 또 일천억 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주의 하나님은 정말 위대하신 분이시죠?
이 일천억 개의 별 사이를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구가 공전하면서 일천억 개의 별 사이를 다니는데 속도가 얼마인줄 아세요 여러분?
무려 지구의 공전속도는 시속 107,280Km입니다. 엄청난 속도입니다.
시속 300Km 속도로 가고 있는 자동차가 커브 길을 회전한다면 그 차는 분명히 전복될 것입니다.
https://youtu.be/ZlgGgH7Gdio?si=zSUnQdlbgLCEZRag&t=30
그런데 지구는 약 시속 100,000Km 속도로 일천억 개의 별 사이를 속력을 내서 달리고 있는데도 부딪치지 않고 지금도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연입니까? 확률입니까? 아니면 필연적으로 누가 지구를 운전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약 시속 100,000Km 속도로 일천억 개의 장애물을 지나쳐서 달려가면서도 부딪치지 않고 달려가는 것을 우연이라고 한다면 말이 안 되겠죠?
과학계가 비가 오는 현상을 알게 된 역사가 별로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이유가 규명된 것은 근세(近世) 곧 16,17세기경에야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페라울트(Pierre Perrault)와 마리오테 (Edme Mariotte)의 실험 결과 물이 순환한다는 증거가 최초로 확인되었다. 천문학자 할레이(Edmund Halley)는 물의 순환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시했는데, 강수(降水)와 증발(發)이 서로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렇게 근세에 와서야 비가 오는 현상을 증발 응결 강수의 이론으로 설명하였고,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와서 과학자들이 물의 이런 순환을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일반적으로 빗방울의 지름은 구름방울의 100배 이상, 1개의 빗방울은 10만 개의 구름방울로 이루어진다.
이처럼 많은 양의 구름방울이 수분에서 수십 분 이내에 어떻게 병합(合)되어 큰 빗방울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현재 빙정설(氷晶說)과 병합설의 두 가지 이론이 제기된다. 빙정우(氷晶雨)는 40℃ 정도까지 냉각된 구름 꼭대기 부근에 생긴 빙정이, 빙정과 물방울이 공존하고 있는 층을 떨어져 내려오게 되면 포화수증기압의 차이로 물방울은 증발하고 빙정은 승화(昇)에 의하여 자란다. 이 빙정은 떨어지면서 구름방울과 붙어서 눈 조각이 되는데, 더 아래층으로 떨어져 내려와서 O℃ 이상의 대기층에 들어오면 녹아서 큰 빗방울이 된다.
이 과정을 T. H. P. 베르예론이 발표하였기 때문에 빙정설에 의한 비를 베르예론형 비라고도 하며, 지역적으로는 고위도지방, 계절적으로는 겨울비에 이 형이 많다.
병합설(說)은 열대지방처럼 구름꼭대기의 온도가 OC 이하로 내려가지 않아도 구름 속에 보통 구름방울보다 큰
해수로부터의 염분(1~10um)을 핵으로 한 물방울이 존재하고 이 물방울이 작은 구름방울을 병합하여 빗방울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이 과정을 연구한 사람은 우드콕과 I.랭뮤어이며, 구름 꼭대기의 온도가 O℃ 이상이어도 비가 내릴 수 있기 때문에 따뜻한 비(warm rain)라고도 한다. 영국의 B. J. 메이슨이 이 과정을 요약하여 자연 비의 메커니즘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과학계가 그 현상을 연구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내어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전에 이미 성경에는 아주 구체적으로 그 현상을 기록해놓았다.
“그가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신 즉 그것이 안개 되어 비를 이루고 그것이 공중에서 내려 사람 위에 쏟아지느니라”(욥36:27,28).
이 말씀을 찬찬히 읽어보라. 현대 과학이 비가 오는 현상을 설명한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는가.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신다"는 말은 수증기 현상에 대한 당시의 표현일뿐이다. "그것이 안개를 이룬다”는 말은 증발된 수증기가 구름방울로 뭉친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 아닌가. 그 다음 표현들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명확하다. 비가 오는 현상을, 과학은 증발蒸發), 응결(凝結), 강수(降水)라는 간단한 말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욥기의 말씀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가.
뿐만 아니라 봄에 내리는 비와 여름에 내리는 비가 다름을 성경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봄비는 어떻게 내리나요?
연한 잎이 망가질세라 사람이 물조리로 물을 주는 것보다 더 가늘게 내립니다.
여름에 내리는 비는 어떠합니까?
이제 성장했으니 많이 먹고 커라고 죽죽~ 소낙비가 내려 옵니다.
“주께서 비를 내리시고 땅을 비옥하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강은 언제나 물이 넘칩니다. 이와 같이 주는 자기 백성을 위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풍성한 곡식을 주십니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충분히 대시고 그 이랑을 고르게 하시며 가끔 단비를 내려 땅을 부드럽고 촉촉하게 하셔서 싹이 자라게 하십니다. 주께서 한 해를 이렇게 축복하므로 가는 곳마다 모든 것이 풍성합니다.”(시 65:9-11, 현대인)
그래서 어느나라건 예외없이 비가 오지 않으면, 하늘에 기우재를 지냅니다.
대하사극 “용의 눈물”은 세종실록에 기록된 태종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조선에 비가 내려 가뭄이 들자 조선의 임금 태종이 눈물을 흘리며 하늘에 회개와 자비를 요청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죄는 이 종에게 물으시고, 이 백성을 위하여 단비를 내려주옵소서!
죄는 이 종에게 물으시고, 이 백성을 위하여 단비를 내려주옵소서!
하늘이 응답하여 단비를 내려주었다는 기록입니다.
이것뿐만 아니다. 강수이론은 비가 오는 원리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 크게 물의 순환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비는 주로 증발한 바닷물로 형성된다. 지구상의 물의 비율은 바닷물 97.4%, 육지의 물과, 빙하 2%, 지하수 0.5%, 호수와 강물이 0.02%, 대기 0.001%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바닷물이 증발되는 전체의 거의 전부인 셈이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과학적으로 알기 오래 전에 이미 성경은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니 그 이름은 여호와 시니라”(암9:6).
바닷물을 증발하게 하여 비가 되게 하시며 그것을 땅에 비로 쏟아지게 한다는 사실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전1:7).
이것은 할레이가 연구하여 제시한 강수(降水)와 증발發)이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옛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강물이 계속하여 바다로 흘러들어가지만, 바다가 차지 않는 것은 수증기로 증발하는 양이 또 그만큼 되기 때문이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강수와 증발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기이하고 신묘하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11:33).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기록이 놀랍지 아니한가! 성경은 벌써 기원전 16세기인 기원전 1,500년대에 이미 현대 과학이 설명하는 것 못지않게 비가 오는 현상을 설명하고 물의 순환을 말하지 않았는가.
자연계의 모든 현상을 그렇게 되도록 그 법칙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옛날에 선지자에게 그 현상을 그 시대의 말로 정확하게 기록하도록 계시와 영감으로 가르쳐 주신 것이다. 성경의 기록은 현대과학보다 엄청 앞서서 과학적 사실을 영감의 필치로 기록한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않을 수 있겠으며 경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것이다. 그것은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알며 경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세상에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시 144:15).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시 136:8).
재림성도들은 이러하신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을 올바르게 깨닫고 믿고 아이들에게 바르게 가르쳐서 늙어서도 그 길을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아이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는 것이다. 곧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사람을 복이 있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7. 해로(海路)의 발견
사람들이 살면서 걸어 다녀야 하기 때문에 길이 필요하게 되었다. 육지에서는 일부러 길을 닦지 않아도 여러 사람이 같은 장소로 계속 걸어 다니면 곧 길이 되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굳이 현대 같은 길을 닦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바퀴가 발명되고 탈 것들이 만들어지면서 길을 닦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그래서 육지에는 거
미줄 같이 길이 닦여졌으며, 기차가 발명되면서 철로가 놓였고, 배가 발명되면서 해로가 필요하게 되었으며, 비행기가 발명되면서 항로(航路)가 필요하게 되었다.
텅 빈 공중에도 길이 있다는 것은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역시 그 넓은 바다에 해로 (海路)가 있다는 것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사실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바다 물도 그 흐르는 길이 있고, 선박들이 항해할 때도 바닷길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배가 발명되었거나 바다에 다니는 일을 할 수 없었던 시대나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바다에 길을 열어놓으셨다. 그것은 해류가 흘러가는 길이다. 해류를 찾으면 배가 더 쉽게 다닐 수 있으며, 물고기들도 해류를 타면 빠르게 다니게 된다.
해류가 있다는 것과 해로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찾아낸 사람이 모-리(Matthew Fontaine Maury 1806-1873)였다.
피뢰침을 발명한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요 과학자인 프랭클린이 해류를 발견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가 체신장관으로 있을 때 대서양을 횡단하는 배들이 두 주일이나 늦게 도착한 사실에 착안을 하고 그것이 해류 때문에 항해 속도가 늦어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직접 배를 타고 대서양에 나아가서 해류를 연구하였고, 마침내 그것이 멕시코만류임을 밝혔다. 그러나 그는 그 해류가 무역풍(貿易風=중위도 고압대에서 열대 수렴대로 부는 바람. 이 바람은 북반구에서는 북동풍, 남반구에서는 남동풍이 되며, 일 년 내내 끊임없이 분다.) 때문이라고만 생각하였다. 만일 이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바닷물이 배의 속도를 늦추도록 강하고 빠르게 흐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 바다에는 해류가 강하고 빠르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은 바다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 해류에 대하여 알겠는가.
문명이 발달하면서 해류에 대하여 알게 되었으나 20세기 초까지는 바다 밑에는 해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우스트(G. Wust)가 1933, 1955, 1957년에 출간한 저서에서 남태평양 해저에는 아주 강한 해저 해류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증명한 것이 아니고, 과학적으로 추리하여 발표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해양 학자들은 그 주장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사진 기술이 발달하면서 해저 사진을 촬영한 결과 우스트의 주장이 사실임이 확인되었다.
헤젠과 홀리스터(B. Heezen & C. Hollister)는 1964년에 현대적인 사진 촬영 기술로 바다 깊은 곳에 잔물결과 씻긴 자국이 선명한 사진을 찍었다. 해류가 바다 밑 퇴적물위를 지나가면서 물결 모양의 무늬를 만든 것이다.
모-리는 성경을 읽다가 해로가 있다는 말씀을 발견하고 '성경에 그렇게 말했다면 틀림없이 해류와 해로가 있을 것이다'라고 믿고 해로에 대한 연구를 하여 그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모-리가 읽은 성경말씀은 다음 말씀들이다.
"선척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영업하는 자는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하신
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저희가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시 107:23-30).
이 말씀 중에 “여호와께서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25절)는 말씀을 읽고 바다가 순환계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라는 말씀 안에 하나님이 선척들을 인도하는 해로가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또한,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전1:7).
이 말씀에도 바다와 물이 순환한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였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해로(海路)라는 말을 직접 쓴 말씀도 발견하였다.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海路)에 다니는 것이니이다"(시8:8).
모-리가 성경말씀으로 깨달은 것이 과학적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배를 더 빨리 가게 하는 특정한 바람과 해류가 있어서 해로를 만든다고 확신하고 연구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바람과 바닷물의 상호작용으로 바다가 순환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세상에 발표한 것이다. 성경의 기록이 현대과학으로 증명된 순간이었다.
그는 항해일지를 관찰하여 바람과 해류에 관하여 자세히 연구하고 대양을 가로지르는 항로를 그렸는데, 이 항로는 선박들을 바다에 띄우는 나라들의 국제 협정의 기초가 되었으며, 그의 업적으로 해운회사들은 수만 달러의 비용을 줄이게 되었고, 해양 사고의 가능성도 줄이게 된 것이다.
모-리의 물리해양학에 관한 저서는 바람과 해류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데 아직까지도 기본 교재로 사용되고 있으며, 1923년에 그의 고향인 미국 버지니아주 고센시에 그의 동상을 세우고 비문을 새겼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로 발견자인 그는 대양과 바다로부터 처음으로 그 법칙을 찾아낸 천재였다. 1806년 1월 14일 출생하여 1873년 2월 1일 버지니아주 렉싱톤에서 별세하다. 고센 고개(Goshen Pass)를 지나 그의 마지막 안식처인 버지니아주 리치몬드로 가다. 오고가는 세대의 모든 항해자들이 행해하면서 해도를 볼 때 당신을 생각하리라. 특히 시편 8편과 107편 8,23,24절 전도서 1장 8절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음을 밝힌다. 1923년 그의 고향 버지니아주에서 감사의 글을 드린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아니신가! 그가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의 운행법칙을 제정하셨기 때문에 그 법칙을 따라 만물이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 법칙을 발견했든지 못 했든지 창조주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그 법칙은 있었고,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그 법칙을 따라 운행하도록 항상 섭리하시는 것이다. 현대과학이 그렇게 늦게 발견한 그 사실을 기원전 1000년경에 이미 성경은 기록하였고, 사람들은 그것을 기원후 1800년대 후반에 와서야
발견한 것이다.
사람들의 지각이 더 발달하고 문화와 문명이 발달하면서 자연현상에 대하여 왜 그렇게 될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연구하여 비로소 사람들은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자연법칙을 발견한다. 사람이 그런 법칙을 발견했기 때문에 자연이 그렇게 운행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런 법칙을 제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아무리 오랜 옛날이라도 그의 선지자들에게 그런 법칙에 대한 원리를 기록하도록 지혜와 감동을 주실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그것이 자연계의 법칙을 밝히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도 자연계에 대한 표현들은, 오늘날 과학이 자연법칙을 발견하고 보니 정확하였다는 것을 밝히 드러내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분이 창조하셨고, 지금도 섭리하시며 돌보신다는 것을 과학이 확인해주고 있는 것이다.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시119:91).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우리의 학생들에게 이 사실을 마땅히 행할 길임을 가르쳐야 한다. 논리적으로, 지식적으로, 명확하게, 의심 없이 가르쳐야 한다. 부모와 교사가 확신을 가지고 가르쳐야 한다. 그러면 늙어서도 그 길을 떠나지 않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https://youtu.be/OJWnTq3UOmk?list=PLWP5B6z6O6reZybfp0d_b4D1j2j0TOlDB
https://youtu.be/HivJq_p9e2g?list=PLIiS6SHbut0posdIt033Zb4GhAOAK6aZ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