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와 고토(五島) 성지 순례
◆순례 후기Ⅱ(제4편)
한국 여기회 회원들과 함께 나가사키를 순례하고 돌아왔다. 지금은 휴식하면서 ‘순례’라는 화두에 골몰하며 생각에 잠긴다.
두 이질적인 집단이 맞닿으면 갈등과 투쟁이 일어난다. 우리나라는 18세기에 가톨릭이 자생하고 외국 선교사에 의해 교세가 확산했지만, 일본은 16세기에 가톨릭이 들어왔다. 무엇이든 처음에는 기존의 문화와 상충하여 시련을 겪는다. 우리나라는 양반 계급과 유교의 제사 의식에 대한 충돌로 박해가 일어났다. 일본은 서양 문화의 확산과 더불어 기리스탄의 세력에 위험을 느껴 박해가 가중되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박해로 인한 순교자가 1597년에 일어났다. 박해 당사자는 교토에서 나가사키까지 1월 4일에 시작하여 800여km에 이르는 길을 한 달 동안 걸어서 갔다. 2월 5일 그들 26명을 처형한 장소가 26 성인 기념관이 세워진 곳이다. 순교자 중에는 외국인 신부와 수사, 십 대의 소년 부자까지 있었다.
오늘날 야고보 사도의 선교 길인 산티아고 가는 길 800km 순례길이 있다. 프랑스에서 시작하여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의 콤포스텔라 성당까지이다. 나도 60대 초반에 그 길을 순례하려고 했으나 병마가 찾아와 꿈을 접었지만, 병인박해 150주년인 2016년에 왜관 가실성당에서 한티 성지(45km)까지 도보 순례를 했다.
그 길은 박해를 피해 몰려든 신자들이 한티 산골에서 신앙촌을 형성하였다. 칠곡의 가실 성당까지 걸어 다니면서 주일을 지켰던 길이었다. 그 길을 밤새도록 걸으면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은 고통이 따름을 느꼈으며 좁은 길이라는 생각이었다. 누구나 넓은 길과 평탄한 길을 가기를 원하니 말이다.
나가사키는 가톨릭이 최초로 상륙하였고 원폭이 떨어져 수만 명의 목숨을 거두어 간 곳이며, 박해와 순교, 원폭의 피해자로 점철된 도시이다. 특히 고토(五島)는 우리나라의 제주도와 울릉도가 연상되는 아름다운 섬이다. 그곳은 상하 두 섬으로 성당이 50곳이라 하니 신앙촌이다. 박해와 순교로 수백 년 신앙을 지키면서 살아왔으며 그들 삶 자체가 신앙이었다.
그들 신앙은 무엇이길래 죽음으로 지켜왔을까? 그들이 믿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 영광이 하느님의 집이다. 마을이래야 열 가구, 많게는 수십 가구인데 신앙의 자유를 찾았을 때 우선하여 성당을 지었다. 그러하니 오늘에 이르러 그 후손들이 성인과 성직자, 수도자가 많이 배출되는 은총을 입은 것이리라.
일본 그들은 우리에게 큰 아픔과 고통을 준 적대국이었다. 이번 순례를 통해 일본은 미워했지만, 사람은 미워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들 신앙에서 배울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영광’이었다. 우리도 엄청난 박해와 순교자의 후손인데도 그들과 신앙의 다림줄은 달랐다. 그것은 삶의 첫 자리에 무엇을 놓는가에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