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단상 102/메멘토 모리]『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오랜 대학친구가 고향집 리모델링 때부터(2019년) 지금껏 와보지 못해 안달이 났건만, 그해를 놓치자 코로나시국으로 방문여건이 얼어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 기회가 있었는데 어긋나 안타까웠는데, 최근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열림원 2021년 10월 1쇄, 2022년 3월 8쇄 발행, 321쪽, 16500원)이라는 양서와 함께 거래처인 독일회사에서 보내온 모자 두 개를 택배로 보내왔다. 모자도 외제이어서인지 제법 부티까지 났다. 최근 이어령 박사가 돌아가시자 가장 읽고 싶은 책이 이 책이었는데, 내가 아주 좋아할 것같아 사보낸다고 했다. 이런 것이 이심전심以心傳心인가? 정말로 고마운 일이다.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訪來만큼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어령 박사는 암과 ‘전투’를 벌이면서도 어느 인터뷰전문기자를 앞에 두고 모두 16번(주 1회, 매주 화요일)에 걸쳐 ‘마지막 수업’을 진행했다. 마지막 수업? 이름만큼이나 숙연한 느낌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무슨 강의를 한단 말인가? “역시” 크리에이터creater 이어령 박사다웠다. 이 강의록은 이 박사의 ‘사색과 성찰’ 총결산일 것이다. 다양한 주제에도 언제나 어디에서나 그랬듯이 조금도 막힘이 없이 풀어내는 그의 놀라운 현학衒學의 세계는 현란하기까지 했다. 좋았다. 60대를 넘어선 사람들은 누구라도 이 책을 한번은 제대로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런 석학과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감히 말하겠다.
그가 첫 번째 내세우는 말뜸(화두)는 ‘모멘토 모리MOMENTO MORI)’이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우리가 살면서 죽음을 왜 기억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는 이런 뜻의 라틴어를 알기도 전인 아주 어릴 적부터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신기한 일이다. 그는 말한다. 죽는다는 것은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그래서 우리말로 ‘돌아가셨다’고 한다고 말이다. 허허, 과연 그러한 것인가? 자기가 태어난 어머니의 자궁이 영어로 WOMB인데, 돌아가는 무덤은 TOMB이라며 ‘움’ ‘툼’의 발음조차 비슷하지 않느냐고 익살까지 부렸다. “역쉬” 이박사다웁다.
『모리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을 기억하시리라. 책의 실제 주인공 모리 슈워츠는 35년간 대학교수로 재직하다 94년 루게릭병에 걸려 다음해 숨을 거뒀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TV에 출연,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일깨워 큰 감동을 안겨 주었으며, 이박사처럼 한 제자를 대상으로 마지막 수업을 했다. 그것도 매주 화요일에. 북리뷰는 아니지만 이 책에 대해 쓴 졸문을 참조하면 좋겠다. http://yrock22.egloos.com/2678410 또한 ‘마지막 수업’은 프랑스작가 알퐁스 도데의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어쩐지 처연한 느낌을 주지만, 이어령 박사의 마지막 수업은 마지막이 아닌, 웬일인지 첫 번째 수업의 의미가 강하게 와닿는 게 다르다면 크게 다른 점이다. 인생의 끝이 아닌 인생의 시작?
아무튼 고난, 행복, 사랑, 용서, 꿈, 돈, 종교, 죽음, 과학, 영성靈性등의 주제를 타고 변화무쌍하게 펼쳐보이는 노스승의 열강熱講와 그에 감읍한 여제자(김지수)의 진지한 수강受講의 하모니로 이뤄낸 세상에 둘도 없는 강의록을 보자. 모든 주제에 하나같이 막힘없는 지혜의 어록語錄을 퍼붓고 있다. 그가 죽어가면서까지 얼마나 젊은이와 젊음을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인터뷰어가 젊은이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느냐고 묻자, 인터뷰이는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딱 한 가지, 덮어놓고 살지 마세요. 그리스인들은 진실眞實의 반대말은 허위虛僞가 아니라 망각忘却이라고 해요. 요즘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잊어서 그래요. 자기가 한 일을 망각의 포장으로 덮으니 어리석어요. 부디 덮어놓고 살지 마세요”(316쪽) 라고 말이다. 뒤늦게 깨달은 생의 진실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노스승의 즉석 답변을 보라. “알고 보니 모든 게 선물이었어요.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다는 말입니다.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들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선물이었어요. 우주에서 선물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모두 선물이더라니까요”(314-315쪽)
‘코로나의 역설’에 대한 석학의 ‘예언(?)’도 들어보자. “COVID의 D자가 disease잖나. 이미 병이 된 거야. 때 되면 앓는 인플루엔자처럼. 그냥 함께 살아가는 거라네. 백신도 인간이 개발한 화학치료제가 아니야. 인체에서 생긴 면역체를 가지고 만든 거지. 인류가 생겨난 이후 처음이니까 어지러운 것은 당연하지. 세계화가 세계화를 막아버렸잖아. 문 닫고 이동제한하고 마을과 마을을 봉쇄하고 글로벌과 로컬이 한데 뒤엉킨 게 코로나의 역설이라네. 결국 코로나 바이러스도 인구조절이라잖아. 고령화로 늘어난 노인인구 조절이라고. 그런게 거기서 또 놀라운 신비가 있어. 이런 재앙이 끝나면 인구가 확 올라간다는 거야. 생명의 욕구가 그만큼 힘이 센 거지. 전쟁, 역병 이후엔 생명이 꽃을 피워. 자연의 역사, 지구의 역사, 우주의 역사의 큰 드라마가 우연만은 아닌 것같아. 빅데이터를 보면 우연이라는 것은 없어”(114-117쪽)
저자인 인터뷰어 김지수씨는 AI(인공지능)이 판을 치는 시대에도 '스승'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니, 그럴수록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기 살아있는 우리의 스승이 있었다. 얼마 전 다시는 건너지 못한 강을 건너셨지만. 이어령 박사가 바로 그이다. 스승이야말로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생사生死를 공부하는 사람'이 아닌가? 스승은 은유가 가득한 이 유언이 당신이 죽은 후에 전달되길 바랐다지만, 저자는 '귀한 지혜'를 하루라도 빨리 전하고 싶어 자물쇠를 풀었다고 말했다. 하여 우리의 스승은 당신의 마지막 작품을 손에 쥐면서 희미하게 웃으셨을까?
디지로그시대라고 한다. 디지털문명과 아날로그문명이 범벅이 된 거대한 시대적 트렌드trend를 간파한 이 박사가 만든 특유의 조어造語가 ‘디지로그’이다. 디지로그시대의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도서목록 1순위에 이 책을 놓으면 어떨까? 좋은 책을 선물한 나석규 친구여, 고맙다. 비즈니스세계에 빠져 지금껏 정신없이 살아오고 있는 당신도 꼭 읽어보셔야 혀! 최소한 말이여, 우리가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살다 어떻게 그리고 왜 죽는지, 알고는 죽어야 하지 않을까?
첫댓글 메멘토모리 ^돌아간다를 항시기억^, 디지로그^ 디지탈 & 아날로그^
인생사 단순명료 건결하게 정리 해주시네.
이어령 교수님께서..
우천아 왜 세월이 빨리가는지?
금새 또 한달이 가는구료.
뭘 했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우천이 어케 보냈는지 알려주신 그 근황은 기억나는구료.
남은 생 화두를 던져주는 글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