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혜선
가을을 닮은 현 (絃), 첼로
가을이다. 끓어 넘치는 밥솥처럼 감상이 조금은 넘쳐도 용서가 되는 계절. 내 안에서 생각이 깊어지고 음악이 새삼스럽게 귓가에 여운을 남기는 계절. 바이올린의 선율이 마음을 아리게 파고드는가 하면, 묵직한 저음의 첼로 선율이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계절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슬픈 결말이 더욱 오래 마음에 남듯이 가을엔 조금은 슬프고 감상적인 선율이 우리의 귀를 잡아 둔다. 가을은 첼로와 더불어 온다. 인간의 음역에 가장 가까운 소리, 연인을 포옹하듯 악기를 껴안아야 연주할 수 있다고 해서 첼로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악기로 여겨진다. 온몸으로 첼로를 껴안고 연주하는 첼리스트를 보면 ‘연주한다’는 단어보다 ‘사랑한다’는 표현이 먼저 떠오른다. 첼로의 선율은 비통할 때가 있다. 그렇게 다가오는 곡 중에 ‘쟈클린의 눈물 Les Larmes du Jacqueline’이라는 곡이 있다. 이 곡은 방송을 통해서 유명해진 전형적인 케이스다. 방송에 한번 내보내면 곡과 음반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는 곡이며, 가을이면 나 역시 가장 먼저 빼어드는 음반이다.
쟈클린은 누구일까? 왜 눈물을 흘릴까? 무슨 사연이 있으리라 짐작되는 첼로의 선율을 따라 7분쯤 가다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몽환적인 상태에 이르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답고 슬픈 선율을 작곡한 사람이 신나는 캉캉을 작곡했던 ‘오펜바흐(1818~1880)’였다니, 처음에는 좀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이 곡을 연주한 독일의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Werner Thomas)는 ‘쟈클린의 눈물’에 관한 한 에베레스트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의 연주는 감성적이기로 첫손 꼽히는 미샤 마이스키(Mischa Maisky)의 연주보다 훨씬 좋다. 첼로의 활이 가슴을 긋는 듯하다.
베르너 토마스의 연주 중에 가을에 듣기 좋은 곡이 또 하나 있다. 놀라지 마시라. 그는 우리나라 가수 패티 김이 부른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을 애절한 첼로곡으로 연주했다. 수많은 외국 연주자들이 우리 가요나 가곡을 연주했지만, 우리의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연주해서 겉도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베르너 토마스는 필경 패티 김의 노래를 직접 듣고 깊이 이해했으리라 확신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 가요의 느낌을 그렇게 가슴 절절히 표현할 수는 없으리라.
자신의 철학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악기이며 저음의 따뜻한 속삭임이 가능한 악기, 유진 프리즌(Eugene Friesen)의 Remembering you라는 곡을 들으면 더욱 실감이 날 것이다. 너그러운 그의 모습만큼이나 풍부한 첼로의 선율, 뒷부분에 깔리는 허밍은 제목과 어쩌면 그렇게 잘 맞아 떨어지는지….
조금 더 깊은 가을이 되면 들어야 할 첼로 연주곡으로는 데이빗 달링(David Darling)의 Minor blue라는 곡이 있다. 데이빗 달링에 대해서는 박남준 시인이 시를 썼을 정도로 울림이 깊은 연주자다. 가슴에서 산사태가 일어나는 것처럼 서서히 파고들어 기어이는 마음의 저 밑바닥을 흔들어 버리는 연주 속에서 어느 새 내 안으로 깊이 들어온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마이클 호페(Michael Hoppe)의 곡. 이를 누구보다도 훌륭히 소화해내는 첼리스트가 있다. 바로 마틴 틸만(Martin Tillman)이다. 그가 연주하는 Thoughts Of You라는 곡을 듣고 있노라면, 헤어진 옛 연인이 있는 사람들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그리움 때문에….
최영미 시인의 ‘가을에는’ 이라는 시처럼 누군가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어느덧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요즘. 첼로 선율의 나지막한 속삭임에 마음을 내려놓고, 나도 그리고 당신도 좀 쉬었으면 싶다.
유진 프리즌의 앨범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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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좋으네..고맙다 인성아...윗글 보면 들어야 할 음악 몇곡 더 있는거 같다..시도..참 좋은 아침이다..땡큐
나도 너희들 때문에 고마워~~이것저것 퍼다날라야기에.....맘도 동작도 빨라졌단다.....나도 땡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