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 년인가 2000 년인가 늦여름날 후배 네 명과 함께 설악산행에 나섰다.
한계령 휴게소 뒤에서 시작해 서북능선을 타고 대청봉을 찍은 후 소청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공룡능선을 타는 나름 멋지고 꽉 찬 계획이었다.
지루한 서북능선을 타고 대청봉이 가까울 때 초보로 따라온 후배 둘이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다섯 중 셋이 서울 근교산행만 다닌 초보였으니 애초 무리한 계획이었기에 하산하기로 했다.
걸음은 늦어져서 저녁때야 대청봉에 도착했으니 야간이라 대청봉에서 오색약수터까지 짧고
가파른 코스를 하산길로 정했다.
이상하게도 야간 하산길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기분이었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을 즈음 갑자기 그 밤중 캄캄한 산길에서 사람이 나타났다. 키가 자그마한
노인이었는데 불쑥 나타나 자기는 아무 준비도 없이 설악에 왔다가 해가 져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했다. 노인의 지혜와 인내심에 놀랐다.
맨 앞에 섰던 내가 휘청거리는 듯하는 그 분께 내 손전등을 쥐어드리고 하산을 하는데 그 분이
또 비틀거려서 스틱까지 양보했다. 나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스틱과 손전등도 없이 겨우 뒤를
따랐는데, 땀이 비오듯 하고 녹초가 될 즈음 오색약수터로 하산이 끝났다.
문제는 하산 후였다.
오색약수터 근방 화장실과 평상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 노인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라 차도 다니지 않는데 구석구석 아무리 찾아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내 손전등과 스틱만 평상 한 켠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고 그 분은 정말 흔적도 없었다.
인적 없는 밤이라 여자 화장실까지 다 뒤졌는데도 없었다. 인사 한 마디 없이, 다섯 명 중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고 그가 사라진 것이었다.
그때 무릎이 아파 절뚝이며 겨우 뒤에서 따라온 산행 초보 후배가 말했다.
- “선배님, 그런데요. 그 영감님 걸을 때 보니 상체만 있고 하체는 없던데요”
그 말에 모두 실색했다. 특히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아 후배에게 소리쳤다.
- “얌마! 그럼 진작에 말을 했어야지 ! 귀신은 아랫도리가 없다는데”
그러자 초보 후배가 말을 받았다.
- “뒤에서 오는 내내 너무 무서워서 말도 못했어요.
아랫도리가 바지만 펄럭거리고 그 아래는 아무것도 없더라니까요”
- 헉~~~ @.@
엄연한 실화이다. 지금도 그 일당이 모이면 그때 이야기가 중요한 술안주다.
그 뒤로 수차례 설악산 중청이나 소청대피소 혹은 희운각 대피소에서 자면서 별을 보러 가거나
화장실에 갈 때 그 분이 나타나지 않을까 했는데 다시 보진 못했다. 그는 누구였을까. 실화이다.
2024.03.03
앵커리지
첫댓글
아이고머니~^^
산에서 귀신이랴뇨 !
첫머리의 글에서,
전쟁에서 전우들끼리 정을 주고
마음주고 하는 전우애 처럼,
산우애가 참 돈독한 것이라고...
인간이란 어려운 여건에서
힘을 합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힘이고 아름다움입니다.
야간 산행 이야기,
귀신이야기 땜에 깜짝 놀랐지요.^^
글을 줄이느라 상세히 쓰지 않았는데,
그분께 제가 손전등을 드릴 때, 스틱을
쥐어드릴 때 손이 아주 차가웠어요^^;;;
그린데 전혀 무섭지 않더라구요.
어쨌든 맨 앞에서 길잡이를 해서 무사히
하산했으니 그는 산신령일 거라 생각해요.
그 노인은 귀신 임에 틀림 없는거 같습니다
귀신은 믿는 사람에게는 보이고 안 믿는 사람에게는 안 보인다고 합니다
나는 무신론자 라서 그런지
젊었을때에는 그 흔해 빠진 처녀 귀신 요새는 할머니 귀신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당
그래서 아쉽습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저는 무종교인데 무신론자는 아닙니다^^
세상 살다보면 이해할 수없는 일들이 생기고
그게 기분 좋은 일일 수도 있으니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지요.
세상에나~
그런 일도 있군요.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네요.
앵커리지 님은 복받을 일을 하셨네요.
앞으로 산행을 하실 때도 다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ㅎ
정말 겪은 일입니다.
더 무서운(?) 일을 비오는 북한산 새벽산행에서
겪었는데, 그 얘기를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할까
두려워서 나중에 글감 떨어지면 쓸 겁니다 ^^
설악에서 겪은 일은 불가사의 하면서도 전혀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하산 하실 때였다면
후배들이 말이 맞을 거에요
그 노인의 머리만 보였고
다리가 안보였다는 거
내리막 길에선 앞 사람의 머리만
보이고
오르막 길에선 앞 사람의 엉딩만
보이거든요 ㅎㅎ
아그 무셔라
참,푸르른 날이었네요
푸핫~~ 이렇게 명쾌한 답이 있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 밤에
설악산 중턱에서 노인이 나타났다는 것이
상식적으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니까요.
그런데 그 후로도 그 일을 생각하면 전혀
무섭지 않았어요. 설악대피소에서 잘 때
혼자 화장실 가면서 그냥반이 또 나타날까
했다니까요.
작은 체구에 몇십 킬로씩 지고 험한 산길을
뛰어다니던 푸르른 날이었네요. 그리워요 ^^
글 읽는 내내 오싹 소름끼쳐
좌우를 둘러보는 중에
하여님 댓글에
ㅎㅎㅎㅎㅎㅎ
@향적
ㅎㅎㅎ실로 오랜만합니다ㆍ
그분은 길안내해주신 산신령이신가 봅니다
아니면 옛날에 하산하다 길을 잃고 산속에서
돌아가신 분의 혼백일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 있겠네요.
암튼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삽니다 ^^
실제 경험하신 일이라니
오싹해 집니다
그래도 그 분이 정말 귀신이였다 해도
나쁜 귀신은
아니였나 봐요
혹 길을 인도해 주시러 나타나신 산신령님?
~ㅎ
특이한 경험을 하셨네요
떠올리면 오히려 기분 괜찮은 경험이었어요.
살면서 잘 한 것도 없지만, 남에게 모질게
대한 적도 없으니 흉한 일은 없을 테니까요^^
앞으로는 야간산행일도 없겠지만 좀 소름끼치는 에피소드입니다. 날씨좋아지면 우리수필방도 아차산 등산한번합시다.
좋습니다.
아차산도 좋고 관악산 정도도 좋겠어요
서북능선 !
아슴아슴 떠 오릅니다
사십대 초 그 푸르던 날에
셋이서 새벽 3시에 한계령 시작
서북능선 너덜지대 건너가는데
맞은 편에서 불쑥
묘령의 여성 키 만한 배낭에 홀로.
어슴프레 새벽 동 트기 직전.
건장한 셋 다 깜짝 !!
한계령에서 보통 새벽에 출발해서 서북능선을
향해 산행하지요.
저도 헉헉대며 지리산 종주하는데 조그맣고
예쁘장한 50쯤 되는 여성이 혼자 새벽길을
내달리듯 걷더라구요. 하루에 종주 끝낸다구요.
다 기죽었지요 ^^
실화라 하시는데 영 믿기지 않는 건 제게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엔 가끔씩 그런 일을 실제로 겪었다 하는 분들이 많으셨던 것 같기도 합니다. ^^~
믿어도 되고 믿지 않아도 됩니다 ^^
여럿이 함께 겪은 일인데, 그닥 무섭지도 않고
뭔가 든든한(?) 추억이랍니다.
저는 귀신을 믿는 쪽이라... ㅎㅎ
저는 주로 예지몽을 꾸곤 했는데
앵커리지님은 실제 그런 경험을 하셨군요.
읽을 땐 섬뜩했는데, 산꾼 귀신이었으면
밤길 안내 같은 일 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역시 마음님은 저와 주파수(?) 가 크게 다르지
않군요 ^^ 귀신' 이라기 보다는 어느 영적인
존재라고 생각해요. 저는 살면서 예감이 적중하는
경우도 많았구요.
어느 여름 새벽에 북한산 의상능선에 올랐는데
비가 왔어요. 혼자 빗속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남루한 차림의 남자들 넷이 나타나 하산하는
길을 묻더라구요. 넷 다 복장은 엉망이고 배낭도
없이 말이에요.
제가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어요(정확한 기억임)
"여기서 내려가는 길은 이쪽 하나밖에 없잖아요.
이리 가세요" 그랬는데, 거짓말처럼 그들 넷 모두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그땐 좀 이상했지요.
그런데 나중에 듣고 보니 얼마전 그 자리에서
낙뢰사고가 났었고 네 명의 남자가 번개에 변을
당했더라구요.
나중에 알고 얼마나 혼비백산했었는지...
거짓이라 할까봐 말 못하는 실화입니다.
@앵커리지 영적 감응이 뛰어난 분들이 있는데
앵커리지님이 그러신 것 같습니다.
@앵커리지 우째 이런일이 여럿이 같이 산행하다보면 때론 혼자 떨어져 따라 갈때도 있는데요.
이젠 절대로 혼자 떨어져 따라가는 산행은
못 할것 같아요. 넘넘 무서워요ㅠㅠ
올 해도 설악산 지리산 홀로 무박산행을 꿈꾸는데
이 글 생각나면 엄청 무서울 것 같아서 걱정됩니다. ㅜㅜ
또 설악에 가시는군요.
저는 또 지리산에 갈 겁니다 ^^
무서울 거 없어요.
둥실님 정도면 해코지 당할 일은 하지 않으셨을
테니까요.
무섭지만 신기합니다요
그 노인 수호신인가 봅니다
다음에 겪으셨다는 이야기 기대합니다
무서운 분위기는 전혀 없는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30대와 40대 사내들 다섯인데 뭐가 두려웠겠어요.
그런데 정말로 겪은 일이랍니다.
다음에 겪은 이야기는 조금 무서운데, 위의 마음님
댓글에 언급했습니다. 그것도 실화입니다.^^
참 신기한 체험이었군요.
동료도 함께 보았다니~
5명이 함께 맞닥뜨렸고,
5명이 보지 못 하는 사이 사라졌습니다 ^^;;;
그들 모두 현재 항공사에 재직 중이라 증언(?) 가능합니다 ㅋ
아깝다.
묘령의 여인이었으면 좋았을걸.
긴 머리 풀어 헤치고 소복 입고
으악~ㅋㅋㅋ
진짜 누구였을까요.
그래도 동료들과 함께 동행해서
참 다행었네요.
아이고 무서워~~
그러게나 말입니다 ㅋㅋ
대개 그런 분위기에선 묘령의 여인이 으스스
나타나는 게 관례(?)인데 조그만 노인양반이
나타났다니까요 ^^;;;
정말로 하산하고 그 분을 찾지 못했고 어디로
가는 것도 보지 못했어요. 5명이서 말예요.
스틱과 손전등만 가지런히 놓고 인사 한 마디
없이 사라졌으니 저도 누군지 궁금해요.
그 영감님은 배낭도 물병도 없었거든요.
우~와 서북능선타고 1박 후 공룡능선이라니요.
넘나 빡센 일정였어요ㅠㅠ
대청에서 오색약수로 내려오는 야간산행도
정말 대단한데요.
넘 피곤해서 허깨비와 같이 산행을 하신것
같아요.농담이구요.
앵커리지 님과 같이 야간산행을 한 영감님이 산신령일까요? 도깨비 일까요?
왠지 무쟈게 무서웠을 것같아요.
나무랑님, 요즘은 사람들이 점점 강해져서
한계령 - 서북능선 - 대청 - 공룡을 무박으로
타더라구요. 요즘 흔한 산행이랍니다.
중청이나 소청, 희운각에서 하루 자면서 별도
보고 공룡을 타는 건 호사에 가깝다네요.^^
무박으로 공룡타는 사람들 보면 다리가 풀려
기력이 없긴 했어요 ㅋ
그리고 그 노인은 산신령 비슷한 분일 거라고
생각해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부산에서 무박 공룡이라면 펄펄 날던 시절을
말하시는 거네요^^
저는 기이한 경험을 했는데, 모두 남자들만
나오더라구요 ㅋㅋㅋ 군대서나 직장에서나
여자라곤 없는 팔자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