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를 접했을 때 이상하다고 알아지는 것은 어떤 논리에 휩싸이기에 앞서 법을 직접 읽어 바른 것에 대한 감, 중심이 잡혀있어야 가능하다. 그 중심과 감은 해설에서 얻기 어렵다. 왜냐하면 해설은 사람의 시각을 한번 걸친 것이라 편향된 것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미흡하다고 생각해도 직접 법을 읽고 알아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나서 해설을 접해야 취할지 말지에 대한 일말의 감이 생긴다. 그러니 부처님 법이든 무엇이든 법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사람의 말을 듣는 것에만 머물러 이리 저리 흔들릴 것이 아니라 법을 직접 읽고 사유하여 무엇이 바른가를 찾아야 한다.
당신은 어떤가. 주장된 어떤 논리를 따라 법을 공부하고 그 모양대로 법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봤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논리로 법을 공부하기 시작한다면 논리가 정해준 틀로만 법을 이해하게 된다. 부처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어렵더라도 경전을 읽고 사유해보길 권한다. 물론 이 말이 법을 설하는 법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나 역시 윤홍식씨의 강의를 보고 도움을 받고 내 수행의 유익함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스스로 읽고 가르침을 사유해 왔기에 그 유익함을 주는 강의를 들으면서 어떤 부분은 경전의 가르침에 비춰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수행이 깊어지면 이상하다는 생각을 넘어 왜 그것이 이상한지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게 된다. 이것도 끝은 아닐 것이다. (나로서는 아직 먼 이야기지만) 모든 주장에서 결국 바른 법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 이것이 참으로 아는 사람의 경지 아닐까 싶다.
이미 올린 글과 중복되는 부분있어 사실 이 글은 올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4원소님의 '생명카페가 약자'라는 글을 읽고 나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덕명이라는 분이 법화경 요점 특강(2)이라고 하여 육근청정 빈궁하천 사종사법 외도외서 말법시대에 대해 올린 글을 읽고 나서 생각이 변했다(이 글을 찾아 읽은 이유는 4원소님이 나에게 사종사법에 대해 말해달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순수한 의도가 아님을 알지만 말은 쉽게 던지면 안된다. 그 말로 인해 의도한 것과 다른 일들이 펼쳐지기도 한다. 오늘 덕명님의 주장을 읽고 이렇게 글을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사종사법으로 검색해보니 카페와 관련된 글만 올라왔고 그래서 그 중 그 강의를 열어보았다)
강의 내용을 읽으면서 법화경을 말하지만 많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원소님은 '이것만이'를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내가 안타깝다고 했는데 강의를 읽으니 자신이 거짓된 말을 하고 있음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 것같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아니라면 아직 덕명님 가르침의 요점을 잘 모르는 것이리라. 그 카페를 소개하면서 공왕불 기도를 권하는 이들이 언급하는 표현들을 요점 특강에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강의에서는 지금 절에 다니는 이들은 현생이 편해도 다음생은 빈궁하천(가난하고 천한 삶)의 삶을 타고 태어난다고 했는데 왜냐하면 다 지나간 시대의 수행이라 공덕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법화경 공왕불 기도 외에는 다 공덕이 없다고 거듭 거듭 주장하고 있었다.
나는 법화경을 믿는다. 그 법화경을 따르는 모든 이를 존중한다. 불성담긴 모든 이를 존중함이 마땅한데 법화경을 따르는 사람에 이르면 어떠하겠는가. 하지만 법을 말한다면 초보 불자의 시각에서도 법화경 구절을 그대로 들어 요점에서 하는 말들이 왜 이상한지를 하나 하나 이야기할 수 있다. 큰 흐름에서 법화경으로 수행하자는 것은 참 좋은 말이지만 그 주장을 하는 이면에 드리운 이해는 많이 왜곡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왜곡된 주장, 이해들이(그리 보인다) 사람들을 법화경의 가르침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또 법을 받아지녔으니 그 법이 누구든지 결국은 성불의 길로 인도하리라 생각한다. 각자가 자신의 최선으로 법을 대할 뿐이니 다른 이의 불심을 훼손하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법을 잘못 말하여 가는 길을 흐리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하지 않다는 것과 법을 대함에 있어서 확신을 갖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이해하는 바가 완전무결하지 않으므로 법을 대하든 사람들 대하든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들은 강의에서 느끼기에 법에 대한 해석을 이렇게 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오늘 하늘이 파랗네, 참 아름답다.'고 아버지가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아들이 말하길 '파란 하늘만 아름다운 것이고 다른 하늘은 다 의미없다고 아버지가 말했다'고 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지를 제대로 받들고 있는가.
이런 이야기를 한도 끝도 없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습이 불자가 귀한 시간을 보낼 일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기쁘지 않다. 앞에서 말했듯 불자로서의 나의 수행을 흐리고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면서 부처님 가르침으로 밝아지려는 불자의 눈을 흐리는 그 말들에 대해서 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경전의 구절을 들어 끊임없이 말할 수 있다. 결국 평행선을 달리겠지만. 왜냐하면 이미 시각이 고정되어 하나의 견고한 상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보불자가 말하려니 참 기분이 미묘한데, 약은 다른 것이 없다. 당분간 경전을 그대로 읽어보라. 명호부르기를 하면서 꼭 경전을 그대로 읽어보라. 앞에 적었던 전도사가 말하길 시간이 지날수록 성경의 모든 말들이 그 틀로만 받아들여졌고 헤어나오기 어려웠다고 했다. 자신이 신학공부를 업으로 삼은 전도사였음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했다. 편향된 시각에 사로잡히는 것은 그 정도로 무서운 일이다.
불법을 말하면서 약하고 강한게 어디 있을까. 법의 본성이 평등하다. 자신들만이 법화경의 본질에 다가섰다고 주장하면서 이제와서 자신들이 약하다고 한다면 많이 이상한 일이 아닐까. 약하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이상하다. 불자가 법을 받아지닐때 세상이 아무리 부정해도 내 안에 보물있으니 당당하며 기쁘다. 바르게 법을 받아지니고 말하는 불자를 온 법계가 기뻐하고 귀히 여기니 좋지 않을리가 없지 않은가. 가장 고귀하고 온 법계가 따라 기뻐하는 그 법을 내가 받아지니는데 어떻게 우리는 약하다고 말하는가. 또 인욕의 미덕은 바른 것을 지니고 그것을 위해 참아내는 것에 있다. 먼저 바른 것을 말하고 있는지 살피는게 필요하다. 바르지 않은 부분을 들어 누군가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것을 무시당한다고 말하고 참아낸다고 말하면 스스로 위안이 되는가. 그렇게 해서 얻을 유익이 무엇인가.
글을 쓰고 읽어보니 길기도 하고 너만 옳다는 것이냐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싶어졌다. 그 물음에 답하자면 그렇지 않다. 스스로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면서 말로만 그러는 것은 아닌가 또 질문하고 싶어졌다. 글쎄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마음을 돌이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닿아있는 법에 대한 이해가 지금 이것이며 나에게는 실상이지만, 법의 본성에 온전히 닿기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과정에 있으니 고정되어 있지 않다. 안다고 할 바도 없는데 옳다고 할 바가 있겠는가. 안다고 옳다고 주장할 만큼 법은 가볍지도 얕지도 않아 헤아리기 어렵다. 다만 나의 최선인 이 사유와 글 적음이 무명에서 조금 더 멀고 지혜에 조금 더 가깝기만을 발원할 뿐이다. 길게 적은 나의 글은 정답이 아니다. 그저 경전을 직접 읽고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자 노력하는 초보불자의 생각이니 그런 수준에서 읽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귀한 시간 글을 열어줌에 감사하고 긴 글에 놀랐을텐데 읽어주니 감사하다. 초보라 핵심을 간결히 말할 능력이 없다.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 '이리 할 말이 많은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수행을 삼아야 하는가 싶기도 하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_()_
늘 부지런히 댓글을 다시네요. 댓글로 또한 수행을 삼으시는가 싶습니다.
부처님 법 안에서 살아가는 매 순간이 밝은 선업되어 무량복 지으시길 기원합니다. 아미타불 _()_
차분하고 솔직한 글 좋네요~~ 이 카페가 이래서 좋더라고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 저도 법화경을 보았지만 아직 이해 못하는 부분이 많지만 이런 편안한글에 좋네요~~ 열심히 보면 나중에야 구체적으로 알게 될 날이 올지 모르지만 일단은 이런 편안한 글이 지금은 그냥 마음이 좋습니다 ~~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덕담 감사합니다.
글을 적어 올린 기쁨이 있습니다.
해음님도 저도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부처님이 무엇을 말하는가 듣는 날 되었으면 합니다.
늘 밝고 편안한 날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미타불 _()_
@더블주 아~~~~ 감사합니다~~ 그 분이 그런 이유가 있고 저도 나름의 이유가 있고 ㅋㅋ 님도 나름의 이유도 있으니..저도 맹목성의 믿음이 있을텐데 ㅋㅋ 누가 누굴 뭐 할까요 ...저도 잘 몰라서 그냥 님의 글이 저의 취향성에 맞았으나......그 분도 역시나 반대의 입장의 그 분의 이유가 있을텐데 ...사견의 맹목적인 게 아닌 저는 객관적인 사실이 알고 싶어서 왔어요~~~ 서로간에 ..사견이 아닌 .....정말의 사실을 위해 ....알아보고는 싶네요~~ 왜냐면 저 또한 사견을 믿기에는 너무 주관적이라서 저도 모릅니다........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_
@해음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말씀하신 게 중요하겠지요.
각자 자신이 가진 최선으로 법을 이해하니 달리 말한다고 이상하지 않습니다.
해음님 말처럼 각자의 이유, 각자의 근기에 따라 이해되는 바가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그 각자의 이유로 펼치는 논리만이 전부라고 믿는 것보다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직접 읽어보는게 좋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표현이 잘되었는가 모르겠습니다. ^^
제 글도 너무 마음에 담지 말고 경전을 오래, 많이 읽어보시고 마음에 닿는 바를 가지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처님께 배우는 법이니 읽을 때에는 '부처님의 인도하심으로 말씀하시는 바를 바르게 알게 해달라'고 발원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_()_
@더블주 감사합니다~~ 법화경을 보는데 조금 어렵더라고요 ㅋㅋㅋㅋ 일단은 보기는 보겠지만 조금 어렵지만 ..열심히 보려고요 ~~ 감사합니다 좋은 댓글요 ㅋㅋㅋ 감사함은 쉽지만 이해는 어렵더라고요 ㅋㅋ 언제나 이해하려나...싶네요 ㅋㅋ 바르게 알길 바라는 마음이야 있네요...감사합니다 _()_
저는 한 20년을 절에 다녔는데. 경전 공부는 엄두도 못 냈습니다 .어려워서 그냥 금강경 읽기만 할뿐입니다.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데...어떤 스님은 이 경을 독송해야 부처님이 도와 주느니. 어떤 스님은 저 경을 독송해야 도와 주느니. 공부를 안하다보니 어디를 따라야할지 헷갈릴때가 참 많습니다 .능력만 된다면 부처님 법이니까 다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요즈음은 그래도 기본 천수경은 외워서 낮에 작업하며 속으로 암송 하곤 합니다.저녁엔 금강경 붓으로 한문 사경 하면서... 앞으로도 많은 공부
할수있게 유익한 글 많이 많이 부탁 합니다.감사 합니다
저도 잘 모르지만 부처님이 설하신 가르침은 결국 하나에서 나오고 하나로 향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엇이든 자신이 마주한 법에 지극한 마음 내면 서로 다르지 않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묵향님이 천수경을 외우며 그 말을 새겨 가르침대로 살아가고 금강경을 사경합니다.
저는 법화경 읽고 사유하고 아미타불을 부르고 불성의 자비, 지혜를 따라 살아가려 합니다.
모습은 다르지만 결국 길을 따르다 보면 동일한 곳에 있음을 알게 되겠지요.
부처님 설하신 모든 법이 중생교화를 위함이니 하나의 법에 들었다면 이미 부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인연따라 수행하고 그 수행을 말할 뿐이니 다 같다는 생각이 견고해지면 편안해집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가타부타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윤홍식씨의 사변 중에 진리를 대하는 자세는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가르침을 직접 마주해야한다, 남들이 정해준 논리로만 법을 바라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또 미혹이 되었다면 무조건 공감했을건데 불자로서 저의 입장은 윤홍식씨의 모든 의견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시각을 입혀 부처님 가르침과 어긋나게 말하는 것을 저는 바르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가타부타님, 걱정하는 부분은 이해되고 감사하나 조금은 성급한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글을 윤홍식씨를 지지하는 글로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들지만 이미 글안에 불자로서 다 공감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거든요.
제글은 공감하지 않는 부분을 밝히는 글이 아니라 법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공감하는 부분을 밝히는 글입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윤홍씨와 전도사의 이야기를 들어 풀어가고 있는 글입니다.
다시 말해 윤홍식씨의 의견이나 전도사의 의견을 주장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제가 생각하는 바를 적기 위해 그 두분의 상황을 활용하여 적은 글입니다.
또 윤홍식씨의 사변임을 알아 지적해야 한다면 먼저 저의 의견을 돌이켜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떤 방식으로 법을 배우든 법을 직접 마주하는 노력이 병행, 가급적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편안하고 밝은날 되시기 바랍니다.
@가타부타 님의 기분은 알 것 같은데 저는 해설에만 의존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법을 배우는 이가 가져야 하는 자세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견과는 다른 태도를 말하는 것뿐입니다.
참 말하기 어렵네요, 제가 들은 윤홍식씨 강의가 불교강의 위주지만 선택적으로 들은 것이라서요.
님이 말하는 적취설, 전변설이 무엇인가 찾아서 잠시 읽어보았는데 제가 들은 강의로는 딱히 적취설이나 전변설을 말하는 것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경전처럼 여러차례 읽고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서 말하기가 어렵네요..
또 불법이 연기를 말하지만 연기가 전부는 아니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윤홍식씨가 잘못 아는 것이라면 더 바르게 알 날 있겠지요. ^^
@가타부타 일단 저는 그리 깊이 폭넓게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바르다고 하는 모든 것을 부인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윤홍식씨가 어떤지 잘 모르겠고 제 의견입니다.
논서에 진실이 있다면, 그리고 불자인 자가 진실에 조금이라도 닿아있다면 굳이 논서를 끌어다 놓지 않아도 이미 둘은 어떤 부분에서는 하나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불교의 교리가 곧 논서인지는 솔직히 잘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표현대로라면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생각할 것 같습니다.
논서, 선지식들의 주석을 부정하는 것이 경전을 부정한다고 말하면 글쎄요.
선지식의 주석이 경전의 뜻, 다시 말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완벽하게 꿰뚫었는지 누가 알까요?
@가타부타 무언가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바른 말을 하시네요. 부처님 경전도 방편입니다. 단지 진리에 이르기 위해 길이며, 최대한 언어를 통해 표현한 것일 뿐이겠지요. 언어에 드는 순간 어찌보면 본질을 훼손한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말하고 싶은것인가 싶습니다.
논서를 통하지 않으면 부처님 경전에 다가갈 수 없나요? 이상한 논리네요.
예를 들어 논서를 통하지 않는 제가 어떤 이가 말하는 논서의 어떤 내용을 들으면 경을 읽고 사유하여 내가 닿아있는 이것과 비슷하다 생각들 때도 있고 이해될 때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경전을 읽고 사유하는 것이 선지식이 이해했던 지점에 나를 데려다 놓기도 합니다.
@가타부타 경전이 무엇인지 근처도 못간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처음에는 윤홍식씨가 불교를 모르니 지적해야 한다 하고
선지식의 논서(깨달은 이의 풀이)를 부정하면 경전을 부정하는 것이라 하고(제가 부정했나요?)
이제 경전이 무엇인지 근처도 못가본 이가 경전을 이야기하면 곤란하다 하니 저도 곤란해지네요.
경전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통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럼 경전을 읽고 사유하는 것으로 우리도 깨달음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을 통해 상황을 통해 글을 통해 말을 통해서, 결국은 사량분별을 넘어서는 그 본질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만 길인듯 말하면 글쎄요.
더블주님의 의견에 초보 불자로서 마음에 크게 와 닿습니다.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부탁 드립니다.
저 역시 초보불자이니 아마도 초보불자에게 통하는 부분이 있나 보네요. ^^
묵향님의 수행이 부처님 법을 직접 마주하여 견고해지시기 기원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