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 해남에서 진도대교를 건너면 차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국토의 끝 진도에 다다른다. 충무공 이순신의 명량대첩, 고려 삼별초 저항의 현장인 진도엔 의외의 명소가 하나 있다. 조선 남종화의 마지막 대가 소치(小癡) 허련(許鍊: 1808~1893)이 말년에 머물렀던 화실 운림산방(雲林山房)이다.
양천허씨 허련, 임해군 처조카의 진도 후손
지난 8월 3일 오후 전남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첨철산의 기슭. 기자는 소치 허련이 머물렀던 운림산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산방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왜 이곳이 국가지정명승(제80호)이 되었는지 알고도 남았다. 겁~나게 멋져부러. 남도식으로 표현을 해야 제맛이 날 것 같았다.
산방과 그 앞에 펼쳐진 연못은 그 자체로 그림이었다. 연못은 연잎으로 뒤덮혀 아름다움을 더했다. 인공정원엔 두 그루의 배롱나무가 있다.
운림산방은 호남화단의 본산이자 성지 같은 곳이다. 1856년(철종 7년) 10월, 스승 추사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자 49세의 허련은 고향 진도로 귀향하여 운림산방을 열었다. 산방 안엔 소치 기념관이 있는데 소치 허련, 미산 허형(허련의 넷째 아들), 남농 허건(허형의 아들), 족속 의재 허백련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1835년 28세의 허련은 해남 연동의 녹우당(윤선도 고택)으로 가서 공재 윤두서의 후손인 윤종민에게 ‘공재화첩’(윤두서의 화첩)을 빌렸다. 이는 초의선사의 보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공재화첩을 본 허련은 “수일간 침식을 잊을 정도”라며 감탄했다. 대흥사로 공재화첩을 빌려온 허련은 몇 달에 걸쳐 모사했다고 한다. 그런 허련에게 초의는 그림 세계를 눈뜨게 해준 첫 스승이었다.
“초의는 허련의 최초의 스승이자 허련이 출세하는데 가장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준 은인이라고 할 수 있다. 허련의 묘는 진도의 동쪽 곧 대흥사가 멀리 바라보는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허련의 후손들은 이를 초의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으로 여기고 있다.”
첫댓글 여기 가봤어요
외진곳에 정원 깔끔하게 잘해났던데
문경서 오실다면 하루 잡아야
그옆에 진돗개쇼 공연도 하는데
덕분에 구경 잘했어요
설명도 좋았구요
오래만입니다
잘계셨나요
@산마(광주) 네 잘지내고 있어요
잘지내고 계시지요?
@콩알이(서울) 아버님께서. 좋아하신다는. 경종배추
심으셨낭ᆢ
@산마(광주) 네 심어서 나비가 나오고 있어요 ㅎ
덕분에 구경 잘 했어유
운림산방은 안와보셨나요
멋진곳 잘보았읍니다
배롱나무가 엄청크네요
올해는 거름 많이해서 땍 갈이 좋습니다
2년전 고산윤선도의 유적지를 가보고 싶어서 딸과함께 4박5일 남도 여행을 했습니다ㆍ
진도운림산방도 가보려고 합니다ㆍ미리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ㆍ뭐든 아는 만큼 보인다 잖아요ㆍ
시간되시면 토요일 오후2시경 공연하는
진도읍 향토국악 공연과 임회면 국립국악공연장도 있습니다
@산마(광주) 네에~~ 감사합니다ㆍ
@꼰지(포항ㆍ청주) 꼰지란 소싯절 별명일까요
@산마(광주) 네~~동생들이 지어준별명입니다ㆍ
작년 가을 완도 보길도 해남 1박하고왔는데 진도 계획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