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차다.
우수가 지나고 경칩이 모레이지만,
찬바람의 강렬한 저항에 봄도 주춤주춤 눈치만 보고 있다.
언제까지 참아내야 하는지 인내심을 시험하는
차가운 바람이 끔찍하게 싫다.
수은주를 영하로 끌어내리며 체감온도가
한겨울을 방불케 하던 찬바람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물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산행에 천만다행 수은주가 영상으로 올라갔다.
안도의 한숨을 깊숙이 내쉬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3월 첫째 주 일요일은 용봉산으로 산행이 있는 날이다.
마치 소풍 가는 아이처럼 밤잠을 설치고
새벽부터 점심 준비를 하여 배낭 깊숙이 넣고 현관문을 나섰다.
찬바람이 늦잠 자는 이른 아침. 초청하지도 않은 뿌연 안개가 자욱하다.
안갯속에 가려 아침 햇살은 간 곳이 없어도
그나마 살짝 포근해진 기온에 위로를 하며 용봉산행
버스가 있는 사당동으로 갔다.
용봉산행
처음 뵙는 산우님들이 대부분이지만
우리는 산행이라는 공동 목표가 있기에
낯 설지 않게 인사를 주고받으며 용봉산행 버스를 탔다.
여전히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나뭇가지에
수세미를 얹어 놓은 듯 까치집이 이따금씩 눈에
띠는 나무들이 차창문 너머로 가까이 다가왔다 멀어져 간다.
겨울 끝자락에 있는 차창문 너머 풍경은 내 마음처럼 스산하기만 하여
차라리 외면하고 싶었지만, 몰래 훔쳐보듯 차창문 너머 풍경을 놓칠 수는 없었다.
자욱한 안갯속에 빈 들녘과 농가가 다가온다.
"얼룩빼기 황소가 해 설핏 울음을 우는" 농가는
아닐지라도 그리움의 원천인 고향 마을 풍경에 가슴이 먼저 반긴다.
일찍이 "모든 길은 로마"로 라고 했던가 필요에 따라 우후죽순 조성된 차도 덕분에
두어 시간 만에 충청남도 홍성군 흥북면에 있는
용봉초등학교 앞에 용봉산행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아침 햇살이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을 따라 발걸음도 가볍게 용봉산 매표소로 들어갔다.
시멘트 임도에는 소나무들이 양쪽으로 서서
용봉산을 찾아온 우리들을 반겨주며 용봉산에는
우리나라 3대 미륵불상이 있다고 슬며시 귀띔해 준다.
임도 끝에는 화강암으로 빗은 높이가 8m 어깨너비가 4m나 되는 거대한 미륵불상이
"나를 믿으면 두려움이 없다"라고 왼팔을 올리고 손바닥을 펴서 넌지시 이야기했다고 한다.
869년 전 고려시대 중엽부터 지금까지 세월의 풍상에도 영원불멸의 선명한 자태로
용봉산을 지키며 중생의 영혼을 구제하는 미륵불상을 볼 수는 없었지만,
혹시나 기회가 되어 다시 용봉산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미륵불상을 알현하여
인간사 두려움 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들머리 용봉초등학교에서 600m 왔고, 정상이
600m 남었다는 친절한 나무 표시판을 만났다.
정상이 600m라니 산행을 하기도 전에
갑자기 정상에 올라온 느낌이 왜 들은 것일까?
드디어 크고 작은 소나무들이 우거진 소나무 숲 속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층층이 계단을 만들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미 정상이 600m라는 사전 지식은 제아무리 가파른 산길이라도
가볍게 올라갈 것 같았다.
크고 작은 돌들이 정성 들여 쌓아 올린 자그마한 성낭당을 만났다.
자그마한 돌 하나를 얼른 주우며 재빠르게 소원을 생각해 본다.
내 소원은 무엇일까?
갑자기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렇지만 소원은 분명히 있기에 정성을 다해 돌탑 위에 얹어 놓았다.
아무리 정상이 짧아도 산은 산이다.
제법 가파른 소나무 숲에서는 소나무조차
분재를 해 놓은 것처럼 자그마하고 비좁은 소나무 숲길을 올라갔다.
이제는 등허리로 땀이 흐른다.
바람이 분다. 찬바람이 스치고 지나가자
"아! 시원해" 나도 모르게 속삭였다.
겨우내 그토록 싫어하고 두려워했던 찬바람이
얼음이 가득한 탄산수 한 잔을 벌컥벌컥 마신
것처럼 땀으로 젖은 육체를 이토록 시원하게
해결해 주다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그래 나는 찬바람을 이긴 거야 아니 즐긴 거지.
얼마나 근사한 경험이던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산행을 하려고 하면
설렘으로 가득한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정상을 코 앞에 두고 오손도손 모여 점심
식사를 하고 가볍게 정상길에 오른다.
바위들이 모여있는 산길에는 투석봉(358m)이란 비석도 있었다.
정상길에 만난 투석봉을 가볍게 지나치면서
깔딱 고개 수준은 아니지만 제법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
용봉산 정상(381m)에 도착했다.
산이 높지 않고 산행 길이가 짧다 하더라도
용봉산은 8개의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고,
기암괴석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신비로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어 충청남도의 금강산 한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름까지 龍鳳山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호화찬란 그 자체이다.
정상 건너편에는 최영장군 활터가 있어 우리는
지나칠 수가 없어 노적봉 가기 전에 들려보기로 했다.
가파른 바위들을 살살 달래며 사고는 산행 끝이라고 주의를 주며
조심조심 최영장군 활터가 있는 팔각정으로 갔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고려 말 공민왕의 무사였던 최영장군.
박종화 작가의 다정불심을 중학교 다닐 때 흥미진진하게 봐서 그런지 몰라도
노국공주의 죽음이 공민왕을 파국으로 이끌어 공민왕의 실정을
누구보다도 이해를 많이 하고픈 사람으로서
그나마 최영 장군이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였던지.
최영 장군 활터에서는 노적봉도 악귀봉도 기암괴석들이 하늘을 향해
굵은 창을 꽂아놓고 묘기대행진을 하는 것처럼 장엄하기까지 한
아름다움을 선보이고 있어 산우님들께서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쉴 사이 없이 터져 나왔다.
크고 작은 바위들의 묘기 대행진 노적봉(351m)으로 가니 산 아래 동네
내포 신도시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충청남도 도청 소재지, 충남 지방 경찰청, 교육청까지 있는
내포 신도시는 충청남도의 행정타운이라고 한다.
신도시라고 하여도 아파트 숲 주변에 있는 넓은 들녘이 왠지 이색적으로 보이긴 했다.
노적봉 건너편에 있는 악귀봉은 금강산 일만이천봉 미니어처를 보는 것처럼
용봉산 봉우리 중에 단연 일품인 것 같았다.
우리는 흔히 작은 고추가 맵다고 하고 알토란 이야기도 한다.
어쩌면 산세는 작지만 금강산 일만이천봉처럼
산속에 밖인 기암괴석들이 대자연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여과 없이 드려내고 있어
龍鳳山은 작은 고추요 알토란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2024.3.3
NaMu
첫댓글 용봉산, 이름은 들어본 산인데
가본 적은 없었네요.
나무님 덕분에 새로운 산 하나를
친근하게 느끼게 됩니다.
높지도 않은데 아기자기함이 빼어난
산으로 유명한가 봅니다.
기억 완료했습니다. ㅎ
감사합니다.
충남 홍성에 있는 산인데요.
龍鳳山 이름이 넘나 멋있어요.
옙^^ 나즈막하지만 기암괴석들의
묘기대행진이 장난이 아니였어요.
감사는 제가 해야 하는데요.
아직은 많이 서투른데 잘 봐 주셨잖아요.^^
용봉산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용봉산은 가을 이야기님 덕분에 많이
들어 본 산 이름 이네요.
용봉산 주위로 우국충정의 역사적인
인물이 많아 항상 좋은 향토임을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지금 예천으로 향해가는 여행중 입니다.
들판에는 봄이 오고 있네요.
나무랑님, 봄이 오는
산행기 힐링입니다.
이미 알고 계신 산였군요.
충청남도의 금강산이라고 한데요.
오늘 바람도 안불고 여행 가시기에
넘나 좋은 날이예요.
잘 다녀오세요.
옙^^ 저번 주 일요일날은 기온이
살짝 올라서요.
산행하기 좋았어요.
용봉산 예찬하시는
가을님에 이어
나무랑님의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20여년 산행을 하셨으면
완전 배테랑 산꾼이시네요.
그래서 건강미인이신 나무랑님
너무 부럽습니다.
요즘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불던지
바람에게 뺨맞기 싫어서
실내운동만 하고 있는데
앞산 데크길이라도 걸어보고 싶어지네요.
엊그제 집에서 나무랑님 생각을 했어요.ㅋ
치킨을 시켜서 둘이 먹고
남은걸 담날 먹으려고 냉장고에 넣었는데
먹기 싫어 못 먹고 버렸거든요.
왜 고기가 잘 안 먹힐까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고기 비린내가 싫다는걸 알게 되었네요.
그나마 소고기가 젤 낫구요.
나무랑님의 탄탄한 체력이
너무 보기 좋아요^^
콩꽂언니도 가을님 말씀하시던데요.
가을님께서 용봉산 이야기를 자주 하셨나봐요.(저는 왜 기억을 못한데요ㅠㅠ)
20년 산행을 했어도 빡센산행을 별로하지
않아서 지금도 산행을 할 수있음에 감사해요.
그러게요 바람이 뼈속까지 시리게해요.
데크길 강추예요.
아 치킨 넘나 좋아하는데요.
저는 앉은 자리에서 한 마리 정도는
가볍게 먹어요.
제 생각 해 주셔서 넘넘 감사드려요.
저도 돼지고기는 냄새가 심하게 나서요.
삽겹살 로스 구이만 먹는데요.
잘 먹을때는 한 근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먹어요.
제라 님 이렇게 정성들인 댓글 감사드려요.^^
누구나 할 수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왜 제라 님인지 알겠어요.
(마음 씀씀이가 제일 인걸요)
글 정말로 고맙습니다.
덕분에 2001년 11월에 용봉산에 올라왔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엄지 척! 합니다.
감사는 제가 해야하는데요.모
아...용봉산 가신지가 20년도 넘으셨네요.
아직은 서투른데 잘 봐주셔서 넘넘 감사드려요.
높이는 내세울 게 없지만 암봉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용봉산이지요,
몇 년 전에 저도 친구들과 용봉산을 오른 후
그 아래 휴양림에 묵으면서 좋은 시간을
보낸 기억이 납니다.
그러게요 높지는 않지만 유난히 암봉들이 멋진 산였어요.
저는 예전에 용봉산 처음 갔을때 눈이 삽시간에 무릎까지 쌓였어요.
소리도 없이 무작정 내리던 함박눈이 두렵기까지 했던 기억은 용봉산하면 떠 오르곤해요.
나무랑님 포즈가 아주 멋져요~
저도
용봉산은 첨 들어요
용의 형상을 한 봉황이라니
그 모습이 궁금해 지네요
아직도
못가본 곳이 많으니 언제 다 가볼련지..
항상 건강하시길 빕니다~~^^
충남 홍성에 있는 산인데요.
높지 않아서요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갈 수있어요.
저번 날에 루루 님께서 가셨던 발왕산보다
훨씬 낮거든요.
높지는 않지만 산에 있는 바위들이 멋있어서 초보 산우님들에게는 강추예요.
옙^^ 감사드려요
루루 님도 지금처럼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나무랑님..
용봉산을 방문하셨군요...
저는 웬 여신이 포즈를 취했나 했는데..ㅎ
이제는 하산했습니다만
한때는 제가 용봉산 산신령을 자처하며 까불었던 적 있지요.
하산을 좀 더 미루었더라면 나무랑 여신을 만날수 있었을텐데..아쉽습니다..ㅋ
그렇습니다...
용봉산은 충남의 금강산이라기보다
나무랑님 표현처럼 금강산 미니어쳐라는 생각들을
대부분 사람들이 하는 것 같습니다
주등산로는 세개인데..
산 좋아하는 분들은 나무랑님처럼 주로 용봉초에서 오르는 걸 봤고
엄홍길 대장도 그곳으로 오르는 걸 두어번 본 바 있습니다.
아이고~
뉘시당가요?
용봉산 산신령님 나타나셨네요.ㅋㅋ
겁나
반갑습니다.^^
애~궁 저는 여신이 아니예요ㅋㅋ
왜냐면요 자그마하거든요.
가을님 동네 산 이야기를 해서 얼마나
반가우셨어요.
그러게요 하산을 좀더 늦게 하셨으면
가을 산신령님을 만날 수 있었을텐데요.
넘 아쉬워요ㅠㅠ
용봉산을 네 번정도 간 것같은데요.
갈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볼 수가 있어
넘 신기해요.
그나저나 넘 반가워요 가을님.
수필방에도 자주 오셔서 잼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으세요.
@제라 역쉬 제라 님은 맘 씀씀이가 넘 멋있어요.👍
아직도 산행을 즐기는 나무님은 건강하시고 멋져 보입니다.
이번에 하이난에 갔더니 그곳에 봉황이 서로 여의주를 입으로 물어 옮기는 모습이 조형물로 되어 있더군요.
우~와 하이난 여행 갔다오셨나봐요.
남미 여행기 끝나면 하이난 여행기도
기대만땅이예요 푸른비 님^^
해발 381m에
기암괴석, 충남의 금강산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미니어처, 호화찬란...
나무랑님의 유려한 용봉산 산행기에
등산과 담쌓은 저도
마음이 혹해지네요.
옙^^ 산행거리도 짧아서요.
초보 산행하시는 님들도
힘들지 않게 할 수있어요.
시간 나실때 큰맘 먹고
함 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