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아브르 1 - 루앙에서 기차로 르아브르로 가는중에 “투르 드 프랑스” 를 떠올리다!
어제 5월 25일에는 파리 생 라자르역에서 기차를 타고 베르농 지베르니 역에
내려 코끼리 열차를 타고 지베르니 Giverny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모네의 집 아뜰리에 와 정원에 수련이 핀 연못을 구경하고는 인상파 미술관을 보고 베르농
지베르니 마을까지 구경한후 기차로 루앙에 도착해 시내를 구경하고 하룻밤을 잤습니다.
5월 26일 새벽에 일어나 아침도 그른채 오전 6시 30분 호텔을 나와 루앙 리브드로테역
Rouen-Rive- Droite 에 가서는 대형 모니터를 보니 르아브르 Le Havre
로 가는 기차는 07시에 있기로 30분 여유가 있으니 역사에 걸림 그림들을 구경합니다.
기차표를 끊기 위해 유레일 패스와 함께 역 창구에 제시할 종이를 준비했는데..... 기차는
특급이 아닌 로컬 기차라 좌석표를 예약하지 않고 그냥 유레일패스 만으로 올라탑니다.
Rouen-Rive-Droite ⇒ Le Havre Mai, 26. 07:00 am 2 personnes , Class 2
루앙역 Rouen-Rive-Droite 을 07시에 출발한 로컬 차는 서쪽으로 달리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는 푸른 들판이니.... 1시간 후인 08시 07분에 르아브르 Le Havre 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르아브르 역에 도착하게 되면... 국철 버스 24번 페컹 Pecamp 행을
타고는 50분이 걸려서 에트르타 Etretat 에 갈 생각 입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기차 차량에 실린 자전거를 발견하고는 눈을 밖으로 돌리니 창
밖에는 일반 도로가 철길과 나란히 달리는데.... 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문득 동아일보 이헌재 기자가 D 일보 신문에 쓴 “‘투르 드 코리아’ 우승
기세로 ‘투르 드 프랑스’ 달려보자” 라는 기사가 생각이 납니다.
“한국 남자 사이클의 미래 민경호 (22· 서울시청)는 요즘‘옐로 저지’ (개인종합
1위가 입는 노란색 셔츠) 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이 귀신 같이 그를 알아보고 인사와 응원의
말을 건넨다. 국제 대회에 나가면 상대팀 선수들은 집중적으로 그를 견제한다.”
“이 모든 게 지난해 투르 드 코리아 2017에서 깜짝 우승하며 옐로 저지의 주인공이 된 뒤
일어난 일이다. 국제사이클연맹(UCI) 1등급 투어 사상 첫 한국 선수의 우승이었다.”
“옐로 저지의 영광은 30일 개막하는 국내 유일의 사이클 국제도로대회 ‘투르
드 코리아 2018’에서도 이어진다. 민경호는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전 세계 20개 팀 200명의 선수단 가운데 가장 앞선 등번호 1번을 받는다.”
“27일 소속팀 숙소가 있는 경기 의정부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민경호는
“많은 분이 부담되지 않느냐고 물어 보신다. 부담 보다는
영광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최대한 이 순간을 즐기려 한다” 고 말했다.“
“민경호 옆에는 한국 사이클의 전설 조호성 서울시청 감독이 있다. 아시아경기에서만
금메달 5개, 은메달 2개를 딴 조 감독은 2014년 은퇴후 지도자로 변신했다.
지난해 코치로 민경호의 종합 우승을 도왔다. 올해 감독이 된 조 감독은
“지난해 경호가 어린 나이에도 극한의 상황을 이겨내고 옐로 저지를 지켜냈다.”
“ 그 덕분에 지난 1년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성장했다. 전략을 잘 세워 2연패를
노려 보겠다”고 말했다. 민경호는 투르 드 코리아 2연패와 8월 자카르카-팔렘방
아시아경기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눈은 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다.
한국 선수 최초로 도로 사이클 세계 최고의 무대인 ‘투르 드 프랑스’ 진출을 꿈꾼다“
“조 감독은 1999년 프랑스로 건너가 1년반을 머물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대비한
훈련을 하기 위해서였다. 아쉽게 시드니 올림픽 포인트레이스에서 4위로 골인하며
메달은 따지 못했다. 그는“사이클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는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무척 심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실력과 의지만 있다면 도전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투르드 프랑스” 는 프랑스에서 매년 7월에 약 3주동안 열리는 그랜드 투어
중 하나이니 신문(L'Auto) 의 홍보 행사로 편집자 헨리 데스그란헤
Desgrange 가 처음으로 개최했는데 1903년부터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된 것은 제외하면 매년 열렸으니 그만큼 역사가 깊은 대회입니다.
“지금부터 1백년전 자전거로 프랑스를 일주한다는 것은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었다. 당시
도로가 형편없었으며 자전거는 무겁고 기어도 하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서 수천 킬로미터를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프랑스의 스포츠 신문 〈로토 벨로(L'Auto Velo)〉의 기자였던 조르주 르페브르
(Georges Lefevre) 는 1902년 11월 20일 파리의 한 식당에서
헨리 데스그란헤와 점심을 먹다가 프랑스 국토를 일주하는 자전거 대회를
생각해 냈다. 르페브르가 이런 구상을 한 것은 신문의 발행부수를 늘리기 위해서였다”
“당시 신생 신문이었던〈로토 벨로〉는 경쟁지〈르 벨로(Le Velo)〉보다 발행부수가
훨씬 적었다. 신문의 부수를 늘릴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르 벨로〉는
이미 파리-보르도 대회와 파리와 브레스트를 왕복하는 대회를 개최해
성공을 거뒀는데 자전거 대회는 신문 발행 부수를 늘릴수 있는 좋은 방법 이었다.”
“ 르페브르가 상사 앙리 데그랑주(Henry Desgrange) 에게 구상에 대해 말하자 데그랑주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데그랑주는 "뉴스를 만들어내고 상상력을 사로잡을수 있는
경기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
“신문의 편집자였던 앙리 데그랑주는 한시간 기록을 보유한 유명한 전직 자전거 선수였다.
그는 르페브르의 구상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당시에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것
처럼 보였던 이 계획이 세계 최고의 자전거 대회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 〈로토 벨로〉는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를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처음에는 선수들이 이 무시무시한 경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결국 〈로토 벨로〉가 참가비를 낮추고 상금은 올리자 60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1903년 7월 1일 새벽 3시, 선수들이 파리 교외를 출발했다. 코스는 19일 동안 여섯개
구간에 걸쳐 2428km를 달려 파리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선수들은 대회 중 같은
자전거를 이용하고 고장나면 자전거를 직접 고쳐야만 했다. 한 구간이 400km 가량
됐기 때문에 선수들은 한밤중에도 달려야만 했고 한 구간 경기를 마친 뒤 며칠씩 쉬었다.”
“르페브르는 기차와 자전거를 타고 선수들을 따라다니며 경기 결과를 기록하고 선수들을
감시했다. 또 신문에 기사를 쓰는 일도 했다. 프랑스의 모리스 가랭(Maurice Garin)
이 여섯 개 구간 중에서 네개를 우승했고 2위는 루시앵 포티에 (Lucien Pottier) 였다. ”
“이포리트 아꾸투리에 (Hippolyte Aucouturier) 는 두 개 구간을 우승했는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사실 때문에 실격됐다. 이에 불만을 품은
아꾸투리에의 팬들은 마지막 구간에 숨어 있다가 가랭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는데 그가 옷을 바꿔 입고 가는 바람에 알아보지 못한 에피소드도 있다.”
“대회 기간 동안 선수들이 지나는 도시마다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대회를 구경했다.
마침내 7월 19일 서른두 살의 모리스 가랭을 선두로 스물한명의 선수들이 파리에
도착했다. 파리 시민들이 한꺼번에 구경하러 나왔고 투르는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다. ”
가랭이 그의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도 대규모 행렬이 그를 환영했다는 데....
대회 개최 전인 1903년 신문의 발행 부수는 25,000부 였지만
대회 개최 후에는 6만 5천부로 늘었으며 1908년 판매 부수는
250,000부로 늘고 1923년 경기 중에는 하루에 500,000부를 판매하기도 했답니다.
경쟁지였던 〈르 벨로〉 는 문을 닫고 말았다. 우승자인 모리스 가랭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에 데그랑주에게 준 글에 썼다. "당신은 사이클 경기에서 혁명을 이룩했습니다.
그리고 투르 드 프랑스가 열린 날은 도로 경기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 될 것입니다."
프랑스를 일주하는 자전거 대회 '투르 드 프랑스 (Tour de France)' 는 해를 거듭하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치열한 경주가 펼쳐지니 8~ 9명으로 구성된 20여개
팀이 참가해 21일간 하루 평균 150~ 250km, 총 3500여 km의 일반도로
구간을 일주하는데 종합적으로 가장 짧은 시간에 완주한 선수가 승리하는 방식입니다.
21개로 구성된 각 구간은 크게 평지와 산악 두 가지로..... 알프스나 피레네 산맥
등을 통과한후 파리 상젤리제 거리에서 경주가 마무리 되는데
각 구간마다 프랑스의 아름다운 자연과 건축물들이 눈길을 끈다고 합니다.
관중들은 뜨거운 7월의 태양 아래서 선수들을 기다렸다가 지나갈 때 환호를 지르며
응원한다는데 11구간을 지나는 선수들의 모습을 로이터 통신이 담았으니.....
“투르 드 프랑스는 1903년을 시작으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올해로 105회차를 맞은 투르 드 프랑스는 지난 7일 시작돼 오는 29일까지 개최된다.”
“프랑스 브루그 생모리스 레아크에서 알프듀 에즈 까지 175.5km 에 이르는 투르
드 프랑스 12구간에서 영국의 팀 스카이 라이더 제레인트 토머스가
총 선두 선수의 노란 선수복을 입고 시상대에 올라가 우승을 축하하고 있다.”
루앙 Rouen-Rive-Droite 에서 서쪽으로 르아브르로 가는 기차를 타고 차창 밖을 구경하다가
사이클링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투르 드 코리아와 투르 드 프랑스를 회상하는 사이
루앙을 출발한지 한시간만인 아침 8시경에 르아브르 Le Havre 역에 도착하기로 내립니다.
첫댓글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믿고 사랑하는 것이고
나에게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가치있는 인생을 살면서
사랑을 하는것이 최고의 행복 입니다.
오늘도 최고의 삶과 행복을 누리는 멋진 하루길 되세요.🌸🌸
자기 사랑 자애.......
그게 만사의 기본인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