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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살 딸, 세살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예루살렘의 수비
자, 이제 십자군 이야기 2권을 이야기해줄께.
1권에서는 1차 십자군에 대한 이야기였잖아.
제후들 중심으로 나선 십자군...
결국 에루살렘을 차지하고,
인근의 도시들도 차지해서
예루살렘 중심의 도시 연방국가 형태의 십자군국가를 세웠다는 이야기까지 했지..
그리고 이번 십자군 이야기 2권에서는
2차 십자군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단다.
예루살렘을 차지했으면 십자군의 목표를 달성한 것인데,
또 십자군을 나갈 필요가 있을까?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자, 이제 아빠와 같이 살펴보자꾸나.
....
1차 십자군의 주역들이 세월 속으로 사라지고나자,
병력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지휘관이 부족한 상황이 일어났어.
당시 예루살렘의 왕은 선왕인 보두앵의 사촌이었던 보두앵 2세였어.
그는 원래 예루살렘 인근의 에데사의 성주였는데,
보두앵이 죽고 나서 예루살렘의 왕이 된거잖아.
그리고 예루살렘 방어의 요지인 안티오키아는 보에몬드가 죽고 아들이 왕위에 올랐으나,
너무 어려서 섭정을 했는데,
섭정을 맡았던 사람이 이슬람 세력과 전투 중에 죽고 말았단다.
이렇게 지휘관 부족인 상황에서 믿을만한 구석은
템플 기사단과 성요한 기사단이라고도 부르는 병원 기사단이란다.
템플기사단은 프랑스 기사가 주축으로 된 종교 기사단으로
그들은 철저한 그리스도 정신으로 똘똘 뭉쳤고, 수도사와 같은 생활을 했으며,
이교도는 말살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
그들은 특수부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전투력도 좋았단다.
그리고 성요한 기사단은 예루살렘 의료단체를 기반을 두고 성장한 기사단으로
의료단체답게 이교도라도 사람은 함부러 죽이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이 두개의 기사단은 예루살렘을 지키면서도
둘 사이의 교류는 거의 없었다고 하는구나. 그렇다고 갈등 같은 것도 없었대.
그저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
보두앵 2세는 아들은 없고, 딸만 넷이 있었어.
그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딸들의 정략결혼을 이용했어.
딸들을 주변 십자군 도시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이었지.
첫째딸 멜리장드의 배우자는 아들이 없는 자신의 뒤를 잇게 하려는 생각이 있었어.
그래서 신중하게 선택하려고 했어.
그렇게 첫째딸의 신랑이 된 사람은 풀크 백작이란 사람이었어.
그리고 둘째 알리스는 안티오키아의 보에몬드 2세와 결혼을 하였고,
셋째 오디에르는 트리폴리의 레몽 2세와 결혼을 하였고,
막내 요베타는 수녀원장을 시켜서 종교계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지.
그런데, 자식 일이 마음대로 되는 것도 드물고,
사람의 운명 또한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어.
안티오키아 보에몬드 2세가 전투 중에 사망을 하게 되자,
보에몬드 2세의 아내이자 보두앵 2세의 둘째 딸 알리스가 겁을 먹고
이슬람에서 통치권을 넘기려다 아빠한테 들통이 나서 추방을 당하고 말았다다.
...
그리도 보두앵 2세는 왕위에 13년 동안 있으면서 십자군 국가의 방어에 있어 꽤 선방을 하였단다.
그가 병으로 죽고 나서,
그의 생각대로 첫째 사위 풀크가 예루살렘의 왕위에 올랐으나,
안타깝게도 오래 못가 그는 죽고 말았단다.
그래서 보두앵의 2세의 첫째딸이자 풀크의 아내인 멜리장드가 예루살렘 여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단다.
1. 2차 십자군의 결성
모술이라는 지역의 태수 장기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어.
그는 십자군에 빼앗긴 땅을 다시 차지하려고 했어.
그는 에데사를 침략하여 차지를 하고
다시는 그리스도가 차지못하도록 도시 전체를 페허를 만들어 버렸단다.
그리고 그는 인근의 알레포 지역도 차지했어.
이렇듯 이슬람의 세력이 예루살렘으로 목쥐어 오듯 다가오자,
멜리장드는 로마 교황에게 십자군을 요청했단다.
..
당시 교황은 베르나르두스라는 엄격한 수도사에세 이 일을 위임했어.
베르나르두스는 프랑스왕 루이 7세를 찾았어.
루이 7세는 얼마전 그의 군사들이 그리스도 사람들을 불태워 죽인 이력이 있어서
속죄의 마음으로 십자군 원정에 오케이했단다.
프랑스왕 루이 7세의 부인, 즉 왕비는 엘레오노르란 사람인데,
그녀는 부잡집 딸에 여장부 스타일로 여자로 이루어진 군대를 이끌고
십자군 원정에 동참하겠다고 했어.
그리고 제후들도 뒤를 따랐단다.
에브나르두스는 독일 왕 콘라트 3세한테도 찾아갔어
십자군 원정을 간다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승인해주겠다고 해서
그도 십자권 원정에 참여하기로 했단다.
...
당시 비잔틴제국의 황제는 마누엘이었는데,
그는 십자군 원정을 위해 콘스탄티노플에 온 프랑스 왕과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
복종하라는 서명을 요청했다가 십자군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고 하더구나.
훗, 웃음이 나오더구나.
..
2. 2차 십자군의 철수
콘라트 3세는 소아시아 지역에 진입하자마자 적의 매복작전에 당해 크게 지고 말았단다.
루이 7세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십자군 원정을 적에게 누설했을 거라고 의심했어.
그렇듯 사이가 좋지 않았어.
그들은 다른 경로로 예루살렘에 도착을 했어.
당시 예루살렘의 왕은 말리장드의 아들 보두앵 3세가 왕이었어.
나이는 이제 열여덟살...
십자군이 도착을 한 것은 봄이었다고 하는구나. 전투하기에는 좋은 계절이지.
뭐, 봄은 모든 것을 하기 좋은 계절이겠지만 말이야.
그런데 루이 7세는 전투하기 좋은 봄 내내 순례를 하면서 보냈어.
그리고 무더운 여름이 되어서야 전쟁을 시작했단다.
요충지인 다마스쿠스를 공격하기로 했어.
다마스쿠스는 우누르란 사람이 태수로 있었는데,
그는 곧바로 알레포의 태수 누레딘에게 지원을 요청했단다.
아빠가 앞에서 이야기 하기를 알레포는 장기라는 사람이 차지했다고 했잖아.
그런데 장기는 죽었고, 뒤를 이어 그의 아들 누레딘이라는 사람이 태수로 있었어.
이 누레딘이라는 사람은 앞으로 자주 이야기되는 사람이란다.
....
십자군은 다마스쿠스 앞에 진지를 구축하고, 공격을 했어.
공격 시작 나흘 때, 누레딘이 지원을 온다는 소리를 듣고,
십자군은 바로 철수했어.
그런데도 적의 게릴라 작전으로 피해도 적지 않았단다.
콘라트 3세는 비잔틴에 들렀다가 비잔틴 황제를 만나 친분을 쌓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고,
루이 7세는 배타고 바로 이탈리아로 가서
시칠리아 영주와 비잔틴 황제의 험담을 나누다가 프랑스로 돌아갔단다.
..
1차 십자군에 비하면 너무 허망하구나.
알레딘이 온다는 소리만 듣고 바로 철수해서 내뺐으니 말이다.
프랑스 왕 루이 7세의 이 비겁한 행동은
왕비 엘레오노르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고 둘 사이는 안좋아졌대.
그리고 결혼 무효 승인을 받았대. 이혼을 했다고 보면 돼.
이젠 왕비였던 엘레오노르는 다음해 노르망디 공작 앙리와 결혼을 했는데,
이 사람은 바로 나중에 영국왕이 되는 헨리 2세였단다.
헨리 2세는 본인보다 사자심왕 리처드왕의 아버지로 더 유명하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엘레오노르가 프랑스왕과 헤어지고 영국의 왕과 결혼하면서,
문제가 생겼단다.
엘레오노르가 아키텐 지방의 엄청난 면적의 땅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땅이 프랑스의 땅에서 영국의 땅이 되어 버린거야..
참 우습지 않니?
그래서 나중에 이 땅에 대한 분쟁으로 프랑스와 영국이 백년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대.
3. 누레딘, 술탄이 되다.
한편 2차 십자군이 떠난 소아시아 지역의 정세를 살펴보자꾸나.
이슬람 세력은 누레딘의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었어.
그는 엄청난 면적을 소유한 태수가 되었어.
...
예루살렘의 왕 보두앵 3세가 죽고 동생 아모리가 왕위에 오르고,
아모리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의 조카딸과 결혼을 하였는데,
그러면서 안티오키아를 비잔틴제국에 넘겨주었어.
이로써, 십자군 국가는 이슬람 세력에게 빼앗기고, 비잔틴에게 넘겨주어
이제 예루살렘과 트리폴리만 남게 되었단다.
비잔텐 제국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이슬람교도와도 동맹을 맺었어.
이 때문에 서유럽의 가톨릭교회로부터 미움을 받기도 했단다.
...
이슬람 세력에서는 누레딘이 세력을 확장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시리아 지역에 큰 지진이 일어나서 한동안은 재건사업에 힘써야만 했단다.
그리고 그는 이슬람교도로써의 행보도 보여서,
이슬람의 교황이라고 부르는 칼리프로부터 술탄이라는 지위를 승인받았단다.
이제 누레딘은 술탄이 된거야.. 즉 황제가 된거야.
예루살렘 왕 보두앵 3세가 죽었을 때, 누레딘의 측근들은 예루살렘을 쳐들어갈 절호의 기회라고 이야기했어.
하지만, 그는 예의가 아니라면서 거절을 했대.
4. 살라딘, 술탄이 되다
아빠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에 관한 용어들을 사용하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용어들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을 감안하길 바란다.
아빠가 뭐 그쪽 종교에 관해 아는 바도 별로 없기 때문이야.
이슬람은 오늘날도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어져 있어.
그런데, 당시에도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어져 있었어.
이라크 중심의 수니와, 이집트 줌심의 시아파..
그들은 칼리프도 따로 있었고, 갈등도 심했대.
누레딘은 수니파였는데, 그는 장군 시르쿠를 시켜서 이집트 파티마 왕조를 공격하도록 했어.
당시 파티마 왕조는 내분으로 정신없었거든.
장군 시르쿠는 공격을 할 때 조카 살라딘을 데리고 갔느넫,
이 살라딘이라는 인물도 앞으로 자주 출현하게 되니 잘 새겨보거라.
시르쿠 장군은 이집트에 무혈 입성을 했어. 그래서 그는 재상 자리에 올랐는데,
그만 사고로 얼마 못가 죽고 말았어.
그리고 그 뒤를 서른한살 살라딘이 재상 자리에 올랐어.
누군가 세력이 커지면 기존 세력은 경계를 하는 법.
누레딘은 갑자기 세력이 커진 살라딘을 경계했단다.
그 즈음 이집트의 칼리프가 죽고 말았어.
그러면서 이집트도 수니파가 지배하게 되었어.
시간이 갈수록 누레딘과 살라딘의 갈등은 심해졌어.
그런데 어느날 누레딘이 갑자기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 뒤를 이은 이가 열한살의 아들이었어.
이렇게 되니 이제 살라딘에 대항할 세력이 없었어.
이슬람 진영은 처음으로 한 사람에 의해 통일이 되었어.
그리고 살라딘에게 술탄의 지위가 승인되었단다.
5. 예루살렘, 다시 이슬람의 손으로....
다시 예루살렘의 사정을 살펴보자꾸나.
예루살렘의 왕 아모리는 죽고,
13살의 보두앵 4세가 왕웨 올랐어.
그는 비록 어리지만 무척 현명해서 나라를 잘 이끌어 자격이 있었대.
그런데, 그는 나병 환자였고, 자신도 알고 있었대.
지금은 겉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서서히 증상은 나타날 것이고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었던거야.
그래서 그는 후계자를 빨리 선정하려고 했어.
누이 시빌라의 남편을 후계자로 삼으려고 해고, 누이의 남편을 신중히 골랐어.
그런데, 결혼하고 1년만에 시빌라의 남편은 죽고 말았어.
그때 시빌라는 임신한 상태였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들을 낳았어.
그가 바로 보두앵 5세란다.
그런데, 누이가 얼굴만 잘생긴 뤼지낭이라는 사람과 재혼을 했어.
보두앵 4세는 무능하고 얼굴만 잘생긴 뤼지낭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어.
그래서 그는 보두앵 5세가 6살이 되었을 때 공동 통치자 선언을 했고,
자신이 죽고 나면 트리폴리의 레몽 3세 백작과 보두앵 4세의 측근 이벨린이 섭정하도록 했어.
그리고 자신의 예스승 티루스의 기욤을 로마로 보냈어.
십자군을 요청을 했어.
그런데, 그는 로마에서 프랑스로 이동중에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는구나.
물론 지금까지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대.
그 시절에는 예사로운 일도 아니었대.
뭐, 프랑스에 가서 십자군을 요청해도 당시 프랑스 사정은 십자군을 보낼 여건도 되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
1185년 24살의 보두앵 4세는 나병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어.
8살의 보두앵 5세가 왕위에 오르고 섭정이 시작되었는데,
보두앵 5세가 다음해인 아홉살레 갑자기 죽고 말았어.
결국 보두앵 4세가 바라지 않던 일이 일어났어.
시발라와 무능하고 얼굴만 잘생긴 뤼지낭이 왕위에 오른거야.
...
1187년 어느덧 마흔아홉살이 된 살라딘은
성전(지하드)를 선언했어.
목적은 예루살렘의 탈환이었어.
그리고 첫번째 전투 하틴 전투....
뤼지낭 왕이 나섰지만, 계속 이야기했듯이 그는 얼굴만 잘생긴 왕이었잖아.
어이없게도 물부족으로 사기가 떨어지고, 그의 전략없는 전투로
살라딘에게 대패했다고 하는구나.
본인은 포로로 잡혔대.
그는 곧바로 예루살렘을 공격했는데,
이때 보두앵 4세가 섭정을 시켰을 정도로 믿음직한 이벨린이 방어를 하고 있었어.
2차례 전투를 하고 난 뒤 그는 회담을 하기로 했어.
더이상 막아낼 여력이 없어서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를 생명이라고 살릴려는 회담이었어.
이슬람에서는 거금의 돈을 요구했어.
이벨린은 자신의 전재산을 비롯하여 내놓을 수 있는 돈은 모두 내놓았어.
이런 모습에 살라딘과 협상에 나섰던 그의 동생 알 라딘은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유럽인들을 보내주었대.
그리고 다시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손에 넘어갔어.
하지만, 살라딘은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오는 그리스도교의 안전을 보장해 주었어.
그리고 그들을 위한 성묘교회를 그대로 유지해 주기도 했어.
그들에게 있어 그리스도의 순례는 일종의 관광산업이니까 말이야.
....
그리고 살라딘은 예루살렘의 탈환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였기 때문에
1188년 , 1년만에 성전(지하드)를 위해 결정했던 이슬란 군대를 해산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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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이 다시 이슬람의 손에 넘어갔다는 소식은 유럽에도 전해졌고,
3차 십자군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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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십자군 이야기 2권의 이야기란다.
...
음, 십자군.... 몇몇 지휘관에 의한 원정길인데,
의지와 달리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가 유명을 달리한
수많은 이름없는 군사들을 생각하니, 삶이 한번이 아닌 여러번 다시 태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
책제목 : 십자군 이야기 2
지은이 : 시오노 나나미
옮긴이 : 송태욱
펴낸곳 : 문학동네
페이지 : 341 page
펴낸날 : 2011년 11월 03일
책정가 : 13,800원
읽은날 : 2014.10.30~2014.11.04
글쓴날 : 2014.1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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