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는 별볼일없는 절집?
“침통함을 금할 수 없다. 낙산사 복원에 30억원을 투입하고, 소실된 동종은 실측자료를 토대로 6개월 안에 복원하겠다.”(2005년 4월 6일 낙산사에서)
“6·25때 다시 홀랑 타버린 절이 낙산사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절은 20세기 후반기, 대수롭지 못한 안목으로 치장하고 복원해 놓은 별볼일없는 절집일 뿐이다.” (1993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p.202)
전혀 상반돼 보이는 이 두 발언은 같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앞의 말은 유홍준(兪弘濬) 문화재청장이 6일, 전날 화재로 불탄 낙산사에서 이 절 복원 계획을 밝힌 것이고, 뒤의 말은 지난 1993년 출간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썼던 내용입니다.(사진 아래 기사 계속)
당시 미술사학자 유홍준의 비판적 시각은 이번에 피해를 입은 문화재들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낙산사가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인 칠층석탑(보물 제499호), 동종(보물 제479호), 홍예문(지방문화재 제33호) 등은... 전문가들이야 뭐라고 의미부여 하겠지만, 예사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을 어떤 조형적 매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안내해설 책자들을 보면 호들갑스럽게 찬사를 남발하고 있지만, 나는 예사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런 찬사에 의문부호를 찍는다."
"낙산사 안내서에 이러쿵저러쿵 씌어 있는 해설들은 믿을 것도, 들어볼 만한 것도 없다."(이상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pp.210-211)
같은 책 낙산사 칠층석탑의 사진설명(p.209)에선 "비록 보물 제499호로 지정되어 있지만 나는 이것이 그만한 문화적 가치가 있는지 아직도 의심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 6일 산불로 소실된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를 찾은 조계종 총무원장(법장스님)과 유홍준 문화재청장(오른쪽)이 이번 화재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재건에 최선을 다하자며 손을 잡고 있다./연합 | 어떻게 저렇게 꼭 집어서 이야기했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위에 나온 문화재들은 이번 화마(火魔)로부터 모두 화를 당했습니다. 동종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녹아버렸고, 홍예문은 1963년에 복원한 누각이 모두 타 버렸습니다. 칠층석탑은 다행히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심하게 그을렸죠.
일단 표현의 격렬함을 논외로 하고 생각해 봅시다. 여기서 우리는 청장 취임 이전 ‘미술사학자’로서의 유 청장과 공인(公人)인 ‘문화재청장’으로서의 유 청장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학자(學者)와 관리(官吏)가 문화재를 위한 마음에서 표현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미술사학적 시각은 국가기관에서 우러난 권위가 개입돼 있지도 않고, 학계의 보편적인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20세기에 복원한 문화재라고 해서 반드시 ‘별볼일없다’고 폄하할 수도 없는 것이고, ‘조형적 매력이 없다’는 것도 주관적 평가의 범위를 넘어서지는 못하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문화재에 대한 평가가 그다지 신중하지 못했다는 지적만큼은 피할 수 없게 된 것 같습니다. 위의 글에서 유 청장은 스스로를 '전문가'라기보다는 '예사 사람'쪽에 포함시킨 듯한 뉘앙스가 들긴 합니다만, 그의 이 책이 200만부 넘게 팔린 국민적 베스트셀러가 돼 여러 사람들의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크게 높였을뿐더러, 여기에서 얻은 명성이 문화재청장이 되는 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유 청장은 6일 잿더미의 형해가 널려 있는 낙산사 현장에서 그가 책에서 유일하게 볼만한 유물이라고 썼던 원통보전 담장에 대해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12년 전에 냈던 자신의 책을 다시 읽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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