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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倭)의 고향(故鄕), ‘西南亞細亞’ [제3편(4-5), 後漢書, 왜(倭) 篇]
2026년 01월 20일
○ 「왜(倭)=왜노(倭奴)」는, 「본시(本是) ‘동이(東夷)의 한 종류(種類)’였고, ‘구이(九夷)=구한(九韓)’의 한 종류(種類)였다」라는 것이고, 「조선왕조(朝鮮王朝)【옛 조선(朝鮮)의 여러 나라를 총칭(總稱)】의 ‘번국(藩國)=번방(藩邦)’으로 존재(存在)했었다」라는 것이 정설(定說)이요, 정론(定論)이다.
이러한 정설(定說)과 정론(定論)이 깨지게 된 것은, 19세기(世紀) 말(末)로부터 20세기(世紀) 초(初)의 ‘군국주의(軍國主義)와 제국주의(帝國主義)’를 향(向)한 야욕(野慾)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로써 ‘일본서기(日本書紀)’니, ‘정한론(征韓論)’이니 하는 말도 되지 않는 사설(私說)을 왜곡(歪曲)하고 조작(造作)하여 그것이 정사(正史)인 것처럼 유포(流布)하며,
동시(同時)에 본부(陸本) 요원(要員)들을 비밀(祕密)리에 오늘날의 중원대륙(中原大陸) 각지(各地)로 침투(浸透)시켜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을 왜곡(歪曲)하고, 조작(造作)하여 입맛에 맞도록 증거(證據)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 결과(結果)가 광개토왕비문(廣開土王碑文),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 등, 많은 금석문(金石文)이 일제(日帝) 치하(治下)에서 발견(發見)되고, 반도(半島) 땅에 있었던 많은 묘지(墓地) 들에는 “왕릉(王陵) 추정(推定)”이라는 딱지를 붙여 놓았다.
그러다 보니… …정사(正史)라고 자타(自他)가 공인(公認)하는 사서(史書)의 내용(內容)과는 전혀 다른 현장(現場)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예(例)”들 들어보면 :
㈠ 「옥저(沃沮) 땅」은, 방(方) ‘1 천리(千里)’로, 대략(大略) : “160,000㎢ : 남한(南韓)보다 큰 면적(面積)”을 말하는 것인데… …“강원도(江原道), 함경도(咸鏡道) 일부(一部)에 오늘날의 남한(南韓)보다도 더 큰 땅은 있을 수 없다”… … 곧 반도사학(半島史學)의 거짓말이다.
㈡ 「부여(夫餘) 땅」은, 방(方) ‘2 천리(千里)’로 대략(大略) : 「“640,000㎢로 한반도(韓半島) ‘3배(倍)’에 이르는 큰 강토를 가지고 있었다”」라는 것인데… …이는 오늘날의 ‘흑룡강성(黑龍江省)과 요녕성(遼寧省)’을 합(合)친 땅 크기인데… … 그렇다면 “이곳에 있었다는 많은 부족(部族), 종족(種族), 나라(國)들은 어디로 사라져줘야 하나?” 곧 당시(當時)에 오늘날의 동북삼성(東北三省) 땅에는 오직 “부여(夫餘)만이 존재(存在)했다”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곳 땅에는 많은 종류(種類)의 부족(部族), 종족(種族), 나라(國)들이 있었다”라고 정사(正史)는 말하고 있다.… … 곧 반도사학(半島史學)의 거짓말이다.
㈢ 「한국(韓國)【三韓(下三道) : 忠淸, 全羅, 慶尙 三道】의 땅」은, 방(方) ‘4 천리(千里)’라고 하였는데, 대략(大略) : “2,560,000㎢로 한반도(韓半島) 12배(倍)” 정도(程度)이다.
「반도(半島) 한강(漢江) 이남(以南)의 충청(忠淸), 전라(全羅), 경상도(慶尙道) 땅이 말 그대로 “2,560,000㎢” 정도(程度)가 된다면… … “가히 기뻐 날뛸 지경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좁은 ‘남한(南韓) 땅’에서, 반도(半島) 땅 12배(倍)나 되는 엄청난, 광활(廣闊)한 땅이 있다면 : 「남한(南韓)의 인구(人口)는, 5∼8억(億) 가량이 되어, 중국(中國)과 인도(印度) 다음의 인구대국(人口大國)이 되며, 이는 “경제대국(經濟大國)+국방력대국(國防力大國)”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21세기(世紀) 지금 뭐냐? … …곧 반도사학(半島史學)의 새빨간 거짓말이다.
➨ 사서(史書)에서 말하는 “고려(高麗) 남(南)쪽 5,000리(里)에 강주(康州)가 있는데, 인근(隣近)의 무주(武州)”라는 기록(記錄)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되는 것이고,
➨ “고려(高麗) 동(東)쪽 수천리(數千里)에서 맹화유(猛火油)가 산출(産出)된다”라는 말이 헛소리가 아닌 것이 되는 것이다.… …“반도(半島)의 12배(倍)의 땅”은, 「중국(中國) 곧 “황제(皇帝)의 직할통치구역(直轄統治區域)”이 되는 중원(中原) 핵심요충지(核心要衝地) 땅이 되는 것이다.」… …곧 반도(半島) 한국(韓國)【三韓: 下三道】이라는 말은, … …반도사학(半島史學)의 새빨간 거짓말이다.
㈣ 「수(隋) 때의 고구려(高駒驪) 영토(領土) 크기」는, 「동서(東西) ‘6 천리(千里)’나 된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대략(大略) : ‘5,760,000’㎢로 ‘중원대륙(中原大陸) 곧 중국(中國) 땅에서 “신강성(新疆省), 서장(西藏), 내몽고(內蒙古)”를 뺀 나머지 전부(全部)의 땅 크기로, “어마어마한 크기”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世紀) 역사해설(歷史解說)‘에서는 「“고구려(高駒驪) 강토(疆土)”는, 겨우 반도(半島) 임진강(臨津江) 이북(以北)으로부터 요녕성(遼寧省) 심양(瀋陽)까지」를 말하고 있어, “부여(夫餘)보다도 더 작은 땅을 가졌다”라고 말한다… …’예(例)‘ : 동서(東西) 6,000리(里)는 산동성(山東省)으로부터 감숙성(甘肅省)에 이르는 거리(距離)가 될 것이니… …반도사학(半島史學)의 새빨간 거짓말이다
㈤ 「동사(東史)에서 동국(東國)의 크기」를 말할 때 : 「‘1 만리(萬里)’」라고 하는데… …대략(大略) : ‘16,000,000’㎢로 ‘아세아(亞細亞)+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를 모두 포함(包含)한 광대(廣大)한 면적(面積)인데, ‘동사(東史)에서 동국(東國)의 크기’를 말할 때 자주 기록(記錄)되어 있다… …「동사(東史)가 전개(展開)된, 동국(東國)이 반도(半島) 땅」이라고 말하는 것은… …반도사학(半島史學)의 새빨간 거짓말이다
㈥ 「‘고려사(高麗史) 지리지(地理志) 서문(序文)’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서문(序文)’ 또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서 말하고 있는 : 고려(高麗)의 강역(疆域), 동국(東國)의 크기, 이성계(李成桂), 고황제(高皇帝)의 강토(疆土)」를 말할 때 : 「‘몇 만리(萬里) 또는 수만리(數萬里)’」라고 기록(記錄)하였는데… …,
이는, ‘아프리카(Africa) 중북부(中北部)+구라파(歐羅巴)+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아세아(亞細亞) 전부(全部)’를 일컫는 말이다.… …「고려(高麗)의 영토(領土)는 반도(半島) 땅이며, 동국(東國) 역시(亦是) 반도(半島) 땅」이라고 해설(解說)하는 것은… …반도사학(半島史學)의 새빨간 거짓말이다
➥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반도사학(半島史學)은, 하루라도 빨리 사라져야 한다”라고 늘 말하는 것이다. 「반도사학(半島史學)은 “이 나라”에 있어 “반국가세력(反國家勢力)”에 버금가는 무리」라고 한다면 과장(誇張)된 표현(表現)일까?
「후한서(後漢書) 왜(倭)」 편(篇)
(1) [後漢書 倭 本文] : 《倭在韓東南大海中,依山島為居,凡百餘國。: 왜(倭)는 한(韓)【한국(韓國)】의 동남(東南)쪽 큰 바다 가운데 있다. 섬(島)의 산(山)에 의지하여 거하니, 무릇 백여(百餘) 나라이다. 自武帝滅朝鮮,使驛通於漢者三十許國,國皆稱王,世世傳統。: 무제(武帝)가 조선(朝鮮)을 멸(滅)하고, 사역(使驛)을 통하여 한(漢)과 통한 것이 30여 개 나라[國]인데, 나라들이 모두 왕을 칭하고, 세세토록 이었다. 其大倭王居邪馬台國。樂浪郡徼,去其國萬二千里,去其西北界拘邪韓國七千餘里。: 그 대왜왕(大倭王)은 사마대국(邪馬臺國)에 있다. 낙랑군(樂浪郡)의 변경에서 그 나라는 12,000리(里) 떨어져 있고, 그 나라의 서북방(西北方)에 있는 구야한국(拘邪韓國)에서는 7천여 리 떨어져 있다. 其地大較在會稽東冶之東,與朱崖﹑儋耳相近,故其法俗多同。그 땅은 대략 회계(會稽) 동야(東冶)의 동쪽에 있는데, 주애(朱崖) 및 담이(儋耳)와 서로 가깝다. 따라서 그들의 법속(法俗)은 같은 것이 많다.》라고 하였다.
➊ 「倭在韓東南大海中,依山島為居 : 왜(倭)는 한(韓)【한국(韓國)】의 동남(東南)쪽 큰 바다 가운데 있다. 섬(島)의 산(山)에 의지(依支)하여 산다.」라고 했을 때 : “오늘날의 반도(半島)를 기준(基準)을 한다면” : 「전라도(全羅道)+경상도(慶尙道)+바다(海)+구주(九州)와 그 동(東)쪽의 본토(本土) 땅과 바다(海)가 모두 육지(陸地)로 연이어져(接) 있어야 : 한국(韓國) 땅 4,000리(里)를 겨우 수용(受容)할 수 있다.」
따라서 “倭在韓東南大海中,依山島為居”이라는 기록(記錄)은 「오늘날의 반도(半島)와 열도(列島)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 우리가 간과(看過)하고 있는 것은 「섬(島)의 산(山)에 의지하여 산다」라는 것인데, 산(山)에 의지(依支)해 산다는 것은, ‘그 땅의 기후(氣候)가 온난(溫暖)하다’라는 것을 말해준다.
➋ 「樂浪郡徼,去其國萬二千里,去其西北界拘邪韓國七千餘里。: 낙랑군(樂浪郡)의 변경에서 그 나라는 12,000리(里) 떨어져 있고, 그 나라의 서북방(西北方)에 있는 구야한국(拘邪韓國)은 7,000여 리 떨어져 있다.」라고 하였는데… …,
어떤 명분(名分), 또는 이유(理由)를 들이대더라도 “반도(半島) 땅에서 구주(九州) 또는 근기(近畿) 땅은 12,000리(里) 떨어질 수 없다.” 또 “그 서북(西北)의 땅은 바다(海)에 한계(限界)하고 있어 7,000 여리(餘里)라는 자체(自體)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요, 황당무계(荒唐無稽)한 것이다” 이는 “반도(半島)와 열도(列島)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명명백백(明明白白)한 증거(證據)다.
➌ 「其地大較在會稽東冶之東,與朱崖﹑儋耳相近,故其法俗多同。: 그 땅은 대략 회계(會稽) 동야(東冶)의 동쪽에 있는데, 주애(朱崖) 및 담이(儋耳)와 서로 가깝다. 따라서 그들의 법속(法俗)은 같은 것이 많다.」라고 하였는데… …,
전회(前回)의 “왜국(倭國)” 편(篇)에서 설명(說明)했듯이… …“황당무계(荒唐無稽)”【‘허황(虛荒)되고 근거(根據)가 없다’라는 뜻으로, 말이나 행동(行動)이 터무니없고 근거(根據)가 없음】함 바로 그 자체(自體)이다.
또 말씀드린다면 : ➊「‘주애(朱崖), 담이(儋耳)’는, 오늘날의 ‘해남도(海南島) 지명(地名)’이다.」 ➋「‘회계(會稽), 동야(東冶)’는 ‘회계산(會稽山) 주변(周邊)’을 떠날 수 없는 지명(地名)이다.」라는 것은, ‘21세기(世紀) 역사해설(歷史解說)’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를 “아니다”라고 반기(反旗)를 들 수 있는 학자(學者)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說明)은 명백(明白)한 오류(誤謬)가 만들어진 것이다” 즉(卽) ➌ 「“왜(倭)”가 “담이(儋耳), 주애(朱崖)와 가까워 풍속(風俗)도 대략(大略) 같았다”라고 한다면 : 「회계(會稽)와 동야(東冶)」는, 「최소한(最小限) 교지(交阯)【오늘날의 베트남(Vietnam) 북부(北部)】또는 ‘베트남(Vietnam) 남(南)쪽의 지명(地名)’」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 그래야「회계(會稽), 동야(東冶)의 동(東)쪽 담이(儋耳), 주애(朱崖)와 가까워 풍속(風俗) 또한 대략(大略) 같았다」라는 말을 할 수 있다… …이런 결과(結果)로 보면 : 「“반도사학(半島史學)”의 조선사(朝鮮史) 해설(解說)은 새빨간 거짓말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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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後漢書 倭 本文] : 《建武中元二年,倭奴國奉貢朝賀,使人自稱大夫,倭國之極南界也。光武賜以印綬。安帝永初元年,倭國王帥升等獻生口百六十人,願請見。 : 건무(建武) 중원(中元) 2년(57)에 왜노국(倭奴國)【왜(倭)의 노국(奴國)이라며 오늘날의 구주(九州)라고 해설(解說)하는데, 왜노국(倭奴國)은 왜국의 별칭이다. 열도(列島)에 왜(倭)를 고정하는 역사왜곡(歷史歪曲)이다.】이 공물(貢物)을 바치고 조하(朝賀)하였는데, 사인(使人)은 대부(大夫)를 자칭하였다. 왜국(倭國)의 가장 남쪽 지경에 있다. 광무는 인수(印綬)를 하사하였다. 안제(安帝) 영초(永初) 원년(107)에 왜(倭)의 국왕(國王) 수승(帥升) 등이 생구(生口) 160인을 바치고 황제에게 알현하기를 원하였다.》라고 하였는데… …,
◈ 위 번역본(飜譯本)을 보면 : 《建武中元二年,倭奴國奉貢朝賀,使人自稱大夫,倭國之極南界也。 : 건무(建武) 중원(中元) 2년(AD 57)에 “왜(倭)의 노국(奴國)”이 공물(貢物)을 바치고 조하(朝賀)하였는데, 사인(使人)은 대부(大夫)를 자칭하였다. “왜국(倭國)의 가장 남쪽 지경(地境)에 있다”》라고 설명(說明)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
그러면서 “왜(倭)의 노국(奴國)은 구주(九州)”라고 주해(注解) 편(篇)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왜(倭)의 노국(奴國)”이 아니라 “왜노국(倭奴國)”」이라고 하였는데, ‘노국(奴國)’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예(例)”를 들면 :
㈠ 신당서(新唐書) : 「日本,古倭奴也。去京師萬四千里,直新羅東南,在海中,島而居,東西五月行,南北三月行。: “일본(日本)은 옛 왜노(倭奴)이다”. 경사(京師)에서 14,000리 떨어져 있다. 곧바로 신라(新羅) 동남(東南)이며, 바다 가운데에 섬에 산다. (그 땅은) 동서(東西)로 5월을 가야 하고, 남북(南北)은 3월을 가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왜(倭)의 노국(奴國)”이 아니라 “왜노국(倭奴國)”이다. “본래(本來)의 왜국(倭國)”을 말하는 것이다. 「왜노국(倭奴國)은, 왜국(倭國)이고 일본(日本)」인 것이다. 또 왜노국(倭奴國)은, 오늘날의 열도(列島) 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열도(列島) 땅”은, 동서(東西)는 아주 짧고, 남북(南北)은 아주 길기 때문이다.
또 「당(唐)의 경사(京師)로부터 14,000리 떨어져 있다」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열도(列島) 땅이 될 수 없다”라는 것이다.
㈡ 송사(宋史) : 「日本國, 日本國者,本倭奴國也。其地東西南北各數千里,西南至海,東北隅隔以大山,山外即毛人國。畜有水牛、驢、羊,多犀、象。: 일본국(日本國)은, 본시(本是) 왜노국(倭奴國)이다. 그 땅은 동서남북(東西南北) 각각(各各) 수천리(數千里)로, 서(西)쪽과 남(南)쪽은 바다이고, 동(東)쪽과 북(北)쪽 모퉁이는 큰 산(山)에 막히고, 산 밖으로는 곧 모인국(毛人國)이다. 짐승(畜)으로는 물소(水牛), 나귀(驢), 양(羊)과 많은 무소(犀), 코끼리(象)가 있다」라고 하였으니… …오늘날의 열도(列島) 땅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고, 또한 「일본국(日本國)은 본시 왜노국(倭奴國)이었다」라고 기록(記錄)하였다.
오늘날의 열도(列島) 땅이 아니었음을 너무도 명확(明確)하게 설명(說明)하고 있다. 우리가 당시(當時)의 ‘왜(倭) 곧 왜노국(倭奴國)’의 땅을 찾으려 한다면 : 「수우(水牛) 곧 물소와 코뿔소(犀)와 코끼리(象)」가 함께 사는 자연환경(自然環境) 지대(地帶)를 찾으면 되는 일이며, 이러한 곳은 “남아세아(南亞世亞) ‘열대(熱帶)+아열대(亞熱帶)’ 땅”을 찾으면 된다.
㈢ 원사(元史) : 「日本 : 日本國在東海之東, 古稱倭奴國 : 일본국(日本國)은, 동해(東海)의 동(東)쪽에 있는데, 옛날에 불렀던 왜노국(倭奴國)이다.」라고 하였다.
즉(卽), 「왜(倭)의 노국(奴國)이 아니라, 원래(原來) 왜노국(倭奴國)이었다」라는 것이다,
㈣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 : 「倭國自後漢通焉古倭奴國也在新羅東南大海中. : 왜국(倭國)은 후한(後漢) 때 통하였는데, 옛 왜노국(倭奴國)」이다. 신라(新羅) 동남(東南)쪽 큰 바다 가운데에 있다」라고 하였다.
즉(卽), “왜(倭)의 노국(奴國)이 아니라, 원래(原來) 왜노국(倭奴國)이었다”」라는 것이다.
㈤ 明史 : 「日本 : 日本, 古倭奴國. : 일본(日本) : 옛 왜노국(倭奴國)이다.」라고 하였으니, “왜(倭)의 노국(奴國)이 아니라, 원래(原來) 왜노국(倭奴國)이었다”」라는 것이다.
➥ 아마도 「倭 國 之 極 南 界 也。: 왜국(倭國)의 가장 남(南)쪽 지경(地境)이다」라는 구절(句節) 때문에 「‘왜노국(倭奴國)’을 ➠ ‘왜(倭)의 노국(奴國)’」이라고 분리(分離)시켜 놓은 것 같은데, 이는 ‘왜국(倭國)은 가장 남(南)쪽 지경(地境)에 있다’라고 해도 관계(關係)없는 구절(句節)이다. 왜냐하면 위의 글 ‘송사(宋史)’에서 극명(克明)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 여기서 “구주(九州)의 땅에서 발굴(發掘)되었다”라는 「광무제(光武帝)가 하사(下賜)했다」라는 금인(金印)에 「漢 委 奴 國 王」이라는 문구(文句)를 가지고 이곳에 “노국(奴國)”이 있었다는 또는 “왜국(倭國)”이 있었다는 근거(根據) 또는 증거(證據)라고 하면서 호들갑을 떨지만, 이는 사기극(詐欺劇)일 가능성이 농후(濃厚)한 것이다.
「漢 委 奴 國 王」이라는 문구(文句)가 어떻게 ‘왜국(倭國)과 노국(奴國)’을 말하는 건가? 이해(理解)할 수가 없다. 「왜(倭)면 왜(倭)지, 왜 위(委)인가?」아니면 한(漢)이 노국왕(奴國王)에게 통치를 맡겼다는 뜻인가? 그럼 왜(倭)는 어디에 있다는 건가?
「위(委)와 왜(倭)」가 함께 사용(使用)되었다는 것인가? 역사통설(歷史通說) 논자(論者)들은 말하기를 : 『‘한(漢)’은 한(漢)나라, ‘위(委)’는 ‘왜(倭)’ 또는 ‘노(奴)’의 변형, ‘국(國)’은 국가, ‘왕(王)’은 왕(王)을 의미(意味)한다』라고 말하면서 : 이것이 이곳에 “옛 왜(倭)”가 있었다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증거품(證據品)으로 삼고 있는데, 이건 모두 역사통설(歷史通說) 논자(論者)들의 “헛소리”일 뿐이다.
➥ 누구 맘대로 : 「“위(委)”가 “왜(倭)”나 “노(奴)”자(字)의 변형(變形)이 될 수 있나?」 그렇게 “변형(變形)이다”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지? 어불성설(語不成說)의 논리(論理)요, 황당무계(荒唐無稽)한 논리(論理)일 뿐이다.
➥ 많은 고전(古典) 사서(史書)에서 말하고 있는 『“왜(倭) 또는 일본(日本)의 땅”은, “동남아세아(東南亞細亞) 또는 남아세아(南亞世亞)”의 열대(熱帶) 또는 아열대(亞熱帶) 기후대(氣候帶)에 있는 자연환경(自然環境)을 말해 주고 있다.』이건 뭔가?
➥ ‘19세기(世紀) 이전(以前)’의 ‘사서(史書)에 기록(記錄)’된 내용(內容)이 “헛소리”라는 건가? 그럼 ‘18세기(世紀)에 발견(發見)되었다’라는 ‘금인(金印)’ 또한 헛소리에 불과(不過)할 뿐이다. 「맞는 말인가? 틀린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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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後漢書 倭 本文] : 《自女王國東度海千餘里至拘奴國,雖皆倭種,而不屬女王。: 여왕국(女王國)에서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천여 리를 나아가면 구노국(拘奴國)에 이르는데, (이 나라의 사람들은) 비록 모두 왜종(倭種)이지만, 여왕에게 신속(臣屬)되지 않았다. 自女王國南四千餘里至朱儒國,人長三四尺。: 여왕국에서 남쪽으로 4천여 리를 가면 주유국(朱儒國)에 이르는데, 사람들의 키는 3~4척(尺)이다. 自朱儒東南行船一年,至裸國﹑黑齒國,使驛所傳,極於此矣。: 주유[국]에서 동남쪽으로 배를 타고 1년을 가면 나국(裸國)과 흑치국(黑齒國)에 이르는데, 사역(使驛)이 전하는 곳은 여기에서 끝이 난다.》
➊ 「自女王國東度海千餘里至拘奴國,雖皆倭種,而不屬女王。: 여왕국(女王國)에서 동(東)쪽으로 바다를 건너 1,000여 리를 나아가면 구노국(拘奴國)에 이르는데, 비록 모두 왜종(倭種)이지만, 여왕(女王)에게 신속(臣屬)되지 않았다.」라고 하였는데… …,
➨여왕(女王) 비미호(卑彌呼)는 어디에 있었을까? 「AI 브리핑」을 검색(檢索)해보면 : 《야마타이국(야마토) 왕국 : 중국 사서와 일본서기 등에서 비미호가 다스린 곳은 ‘야마타이국’ 또는 ‘왜(倭)’로 불리며, 이는 일본 혼슈 남부 또는 시코쿠 일대로 추정됩니다』라는 대답을 볼 수 있다. 【[檢索 出處] Naver : 여왕(女王) 비미호(卑彌呼)는 어디에 있었나?】》하였으니,
당시(當時) 「여왕(女王) 비미호(卑彌呼)」는 : 「혼슈 남부 또는 시코쿠 등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推定)한다.」라는 것이다. 이것으로 위의 ‘구절(句節)’을 해설(解說)하겠다.
➥ 여왕국(女王國)은, 열도(列島) 본토(本土) 남부(南部) 또는 시코쿠(四國) 땅이다. 그러나 이곳의 「동(東)쪽으로 바다를 건너 1,000여 리(里)를 가면 구노국(拘奴國)에 닿는다」라고 하였는데, 「“본토(本土) 남부(南部) 또는 시코쿠(四國) 땅”에서 동(東)쪽 1,000여 리(里)는 망망대해(茫茫大海) 태평양(太平洋) 바다이다. 어디에 구노국(拘奴國)이 있을 수 있나?」
➤ 위의 ‘지도(地圖)’에서 ‘열도(列島) 본토남부(本土南部) 또는 사국(四國)’ 땅에서 ‘동(東)쪽’으로 가면 : 망망대해(茫茫大海) 태평양(太平洋)에 닿는다.
➋ 「自女王國南四千餘里至朱儒國,人長三四尺。: 여왕국(女王國)에서 남(南)쪽으로 4,000여 리(里)를 가면 주유국(朱儒國)에 이르는데, 사람들의 키는 3~4척(尺)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게 참 웃기는 이야기다. 「구주(九州)의 북(北), 본토남부(本土南部) 또는 사국(四國 : 시코쿠)에서 남(南)쪽으로 4,000여 리(里)를 가면 주유국(侏儒國)에 이른다」라고 하였는데, 「이 땅에서 4,000 여리(餘里)를 가면」 : 「유구(琉球)를 지나 대만(臺灣) 또는 여송(呂宋 : 필리핀) 등지(等地)에 다다른 것인데」… …“왜(倭)”와 뭔 상관(相關)이 있다는 건가?
이건 ‘코미디극’이다.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이야기를 “왜국(倭國)” 편(篇)에 기록(記錄)해 놓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곧 “오늘날의 열도(列島) 땅이 아니었다”라는 뜻이다. 아래의 것 또한 마찬가지다.
➌ 「自朱儒東南行船一年,至裸國﹑黑齒國,使驛所傳,極於此矣。: 주유국(侏儒國)에서 동남(東南)쪽으로 배를 타고 1년을 가면 나국(裸國)과 흑치국(黑齒國)에 이르는데, 사역(使驛)이 전하는 곳은, 여기서 끝이 난다.」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땅은 “왜(倭)”와는 전혀 관계(官契)없는 땅이다.
위의 글 “➋”에서 설명(說明)한 바에 따르면 : “대만(臺灣)이나 여송(呂宋 : 필리핀) 등지(等地)에 닿는다”라고 하였는데, 이곳으로부터 다시 4,000 여리(餘里) 동남(東南)쪽이라면 : 남아세아(南亞世亞)의 뉴기니(New Guinea), 슬라웨시(Celebes), 호주(濠洲 : 오스트레일리아) 또는 그 북방(北方)의 도서(島嶼)에 닿을 것이다. 얼마나 웃기는 이야긴가?
남아세아(南亞世亞) 땅에는, 「‘왜(倭) 땅에서 산출(産出)된다’라는 “악어(鰐魚), 코끼리(象), 물소(水牛), 코뿔소(무소: 犀)”등의 짐승(畜)들이 자라고 있는 자연환경(自然環境)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무조건(無條件) “열도에 왜(倭)가 있었다”라고 막무가내(莫無可奈)로 주장(主張)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열도(列島)의 왜(倭)」와는 전혀 관계(關係)없는 기록(記錄)이다. 이를 어쩔 건가? 그러나 「당시(當時)의 왜(倭)가 동남아(東南亞) 또는 남아세아(南亞世亞)에 있었다」라고 한다면 : 역사서(歷史書)의 기록(記錄)과 자연환경(自然環境) 요소(要素)와 함께 어우러져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될 수 있음이다.
• 아세아(亞細亞) 지도(地圖) : 「왜(倭)는 본래(本來) ‘왜노(倭奴)’였다. 뒤에 ‘왜(倭)’라고 불렸고, 또 뒤에 ‘일본(日本)’이라고 불리게 된 것인데, 본시(本是) “왜노(倭奴)”는 서남아세아(西南亞世亞)에 있었다.」라고 하였으며, 「점차(漸次) 도서지방(島嶼地方)을 통해 북상(北上)하여, 여송(呂宋 : 필리핀)을 거치고, 다시 대만(臺灣 : 琉球)을 거쳐 오늘날의 열도(列島) 땅에 정착(定着)하게 되는 것이다.」
「반도사학(半島史學)은 정신(精神)을 좀 차려야 한다. 언제까지 꼭두각시(傀儡)처럼 조종(操縱)당하며, 비웃음당하며 살아갈 건가?」 아래의 괄지지(括地志) “도이(島夷)”에 대한 주해(注解)를 보면서 사고(思考)를 좀 해보자.
➥➥➥《괄지지(括地志)》에서 이르기를 : 「倭國西南大海中,島居凡百餘小國,在京南萬三千五百里。: 왜국(倭國)은, “서남(西南) 큰 바다(大海)” 가운데 있는데, 백여(百餘) 소국(小國)이 섬(島)에서 산다. “서울(京)에서 남(南)쪽으로 13,500리(里)”에 있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史記, 五帝本紀, 島夷’ 편(篇)의 《正義》引。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기(史記) 정의(正義)는 ‘당(唐) 장수절(張守節)’이 30권(卷)으로 저술(著述)한 것이다. : 唐朝 張守節的 作品,共三十卷.】
【《史 記, 五 帝 本 紀 : 原 文》 : 「正 義 注「鳥」或 作「島」。 括 地 志 云 : 「百 濟 國 西 南 海 中 有 大 島 十 五 所, 皆 置 邑, 有 人 居, 屬 百 濟。 ➨ 又 倭 國 西 南 大 海 中 島 居 凡 百 餘 小 國, 在 京 南 萬 三 千 五 百 里 」 案 : 武 后 改 倭 國 為 日 本 國。」】
「괄지지(括地志)」는 : 「당태종(唐太宗)의 넷째아들이었던 “위왕(魏王) 이태(李泰)”가 주관(主管)이 되어 다수(多數) 학자(學者)들이 참여(參與)했다」라고 전해지는데, 다수(多數)의 사서(史書)들이 ‘괄지지(括地志)’를 인용(引用)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維基百科,自由的百科全書 :《括地志》,又名《魏王泰坤元錄》、《貞觀地記》、《貞觀地誌》、《魏王地記》、《括地象》,唐朝地理著作,由唐初魏王李泰主編。全書正文550卷、序略5卷。李泰是唐太宗第四子。貞觀十年(636年),徙封魏王,遙領相州都督。當時太子李承乾有足疾,李泰謀求奪嫡,拉攏親信,結為朋黨。貞觀十二年(638年),司馬蘇勖勸李泰奏請撰修《括地志》,李泰遂引著作郎蕭德言、秘書郎顧胤、記室參軍蔣亞卿、功曹參軍謝偃等就府修撰。唐初曾組織人力在全國進行人口普查,編制了《貞觀十三年大簿》。李泰的團隊遍查內府圖經典籍,並派遣使者分道諸州,查閱地方圖經志書,費時五年時間撰成《括地志》550卷、序略5卷。貞觀十六年正月,書成表上。[1]《括地志》以《貞觀十三年大簿》為藍本,沿用《漢書·地理志》之例,按當時區劃三百五十八州、一千五百五十一縣,依十道排比,[2]敘述各州、縣的建置沿革、山川形勝、風俗物產等。唐代張守節作《史記正義》,主要依靠本書解釋古代地名。《通典》、《初學記》、《太平御覽》、《太平寰宇記》、《長安志》、《一切經音義》等,對《括地志》亦多所引用。[3]】
(4) 資治通鑑, 隋紀 5, 「수양제(隋煬帝) 대업(大業) 4년(年)》 조(條)를 보면 : 본문(本文) 주해(注解)에서 이르기를 : 《㈠ 隋 書: 倭 國 在 百 濟、新 羅 東 南, 水 陸 三 千 里, 於 大 海 之 中, 依 山 島 而 居; 都 於 邪 靡 堆, 則 魏 志 所 謂 邪 馬 臺 者 也. 在 會 稽 之 東, 與 儋 耳 相 近。: 수서 (隋 書) : 왜국(倭國)은 백제(百濟), 신라(新羅) 동남(東南)쪽 수륙(水陸) 삼천리(三千里) 큰 바다 가운데 있다. 산괴 섬에 의지하여 산다. 왕성(王城)이 있는 곳은 “사미퇴(邪靡堆)”이다. 위지(魏志)의 소위 말하는 사마대(邪馬臺)이다. 이들은 회계(會稽)의 동(東)쪽이며, 담이(儋耳)와 서로 가깝다. ㈡ 杜 佑 曰:倭 在 帶 方 東 南 大 海 中, 去 遼 東 萬 二 千 里, 大 較 在 閩 川, 會 稽 之 東, 亦 與 朱 崖、儋 耳 相 近, 自 謂 太 伯 之 後。: 두우(杜佑)가 말하기를 : 왜(倭)는 대방(帶方) 동남(東南)쪽 큰 바다 가운데 있는데, 요동(遼東)에서 12,000 떨어져 있다. 대략(大略) 민천(閩川), 회계(會稽)의 동(東)쪽에 있다. 또한 주애(朱崖), 담이(儋耳)와 서로 가깝다》라고 하였는데… …,
괄지지(括地志)와 수서(隋書) 및 주해(注解), 두우(杜佑) 통전(通典) 등에서는 : 오늘날의 극동(極東) 땅이 아닌, “남아세아(南亞世亞), 동남아(東南亞)” 땅을 말하고 있다. 즉(卽),
➊ 괄지지(括地志) : 〈“경(京)”은 서울을 뜻하는 말이자, 왕성(王城)을 말하는 것이니, 「이곳 ‘경(京)’【장안(長安)】으로부터 남(南)쪽으로 13,500리(里) 떨어져 있는데, “서남(西南) 대해(大海)” 가운데 있다.〉
➋ 수서(隋書) : 〈백제(百濟), 신라(新羅) 동남(東南)쪽 수륙(水陸) 삼천리(三千里) 큰 바다 가운데 있는데, 회계(會稽)의 동(東)쪽이며, 담이(儋耳)와 서로 가깝다.〉
➌ 두우(杜佑) : 〈대방(帶方) 동남(東南)쪽 큰 바다 가운데 있는데, 요동(遼東)에서 12,000 떨어져 있다. 민천(閩川), 회계(會稽)의 동(東)쪽에 있으며, 또한 주애(朱崖), 담이(儋耳)와 서로 가깝다〉라고 하였으니,
➍ 「담이(儋耳)•주애(朱崖)와 상근(相近)한다」라는 뜻은 「서로 가깝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問題)는 : ㈠ 「민월(閩越)•회계(會稽)•동야(東冶)」는 오늘날의 강서성(江西省) 남부(南部)의 회계산(會稽山) 인근을 떠날 수 없으며, 민월(閩越)은, 절강성(浙江省)•복건성(福建省)으로 ‘월(越)과 칠민(七閩)’의 땅이라고도 하는 곳인데,
㈡ 그런데 「담이(儋耳)•주애(朱崖)」는, ➨➨➨ 이와는 반대(反對)로 「서(西)쪽 4∼5 천리(千里) 떨어져 있는 해남도(海南島)에 있는 옛 군(郡)의 이름」이다.
얼마나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이야긴가! 솔직(率直)하게 말해 : 속(俗)된 말로, 동(東)•서(西)도 구분(區分)하지 못하는, “똥오줌도 제대로 가리지 못한다”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역사서(歷史書)의 진수(眞髓)를 모르는 일반인(一般人)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즉(卽), 「이는 AD 1,900년(年) 초(初), 대대적(大大的)인 편수작업(編修作業)을 하면서 첨삭과정(添削過程)을 거쳤다는 증거(證據)다.」
이를 본래(本來)의 지명(地名)으로 되돌려 놓으면 : 「민월(閩越)•회계(會稽)•동야(東冶)」는 「본시(本是), 「메콩강(Mekong, River) 동안(東岸) “라오스(Laos)•베트남(Vietnam)”땅에 있었다.」라고 해야 한다.
「루앙프라방 및 하내(河內)【홍하(紅河) 중하류(中下流)에 있다.】 또는 동경(東京)으로 알려진 “하노이” 땅」을 말하는 것인데… …이곳에 「민월(閩越)•회계(會稽)•동야(東冶)」가 있었다면 : 그 동(東)쪽의 북부만(北部灣)이 있고, 그 바다를 건너면 “해남도(海南島)에 담이(儋耳)•주애(朱崖)”가 있다. 이렇게 배치하면 방위(方位)와 지리적(地理的) 구도(構圖)를 정립(定立)할 수 있게 된다.
이때 해남도(海南島)에서 남해(南海)를 거슬러 올라가면 : 유구(流求)가 나오는데 바로 대만도(台灣島: 臺灣 : Taiwan)이다.
➥ 「왜(倭)」는 : 「오늘날의 ‘열도(列島)’ 땅과는 전혀 관계(關係)없는 ‘서남아세아(西南亞世亞), 남아세아(南亞世亞), 동남아(東南亞)’ 지방(地方)에 있었다」라는 것을 확실(確實)하게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반도사학(半島史學)”은 ‘죽어도 살아도 열도(列島) 일본(日本)’을 외치고 있는 것을 보면 : 측은지심(惻隱之心)【가엾고 불쌍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왜(倭)는 본시(本是) 왜노(倭奴)였고, 이들은 해상부족(海上部族)으로 서남아세아(西南亞世亞)로부터 점진적(漸進的) 동북(東北)으로, 다시 북상(北上)하여, 마지막 대만(臺灣 : 台灣=流求)으로부터 ‘18∼19세기(世紀)’에 오늘날의 열도(列島)에 정착(定着), 토착세력(土着勢力)과의 싸움에서 승리(勝利)하여 오늘날의 일본(日本)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전개과정(展開過程)을 모르고, 또는 무시(無視)한 채 “왜사(倭史)=일본사(日本史)”를 공부(工夫), 연구(硏究)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어리석음일 뿐이다.
그래서 ‘19∼20세기(世紀)의 일제(日帝)의 사학자(史學者)’들은, ‘물귀신’과도 같이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반도(半島)에 있었다”라는 “반도조선사(半島朝鮮史)”를 만들어 물귀신처럼 죽자 살자 놓지 못하고 헤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사서(史書)에서 기록(記錄)한 대로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동국(東國)의 강토(疆土)는 최소한(最小限) 10,000 여리(餘里) 전성(全盛) 때에는 수만리(數萬里), 몇 만리(萬里)를 통치(統治)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이건 사견(私見)이 아니다.
『동사(東史)에서, 동국사(東國史)에서, 지리지(地理志)에서, 왕조실록(王朝實錄)에서 말하고 있다.』 이러한 것을 누가 막고 있나?
『바로, 이 땅의 20∼21세기(世紀) 사학자(史學者)들이 바로 그 범인(犯人)이다』 이를 어찌하겠는가? 민족(民族)의 이름으로, 반드시 그 책임(責任)을 물어야 한다.
2,026年 01月 20日 [글쓴이 : 문무(文武)]

첫댓글 * 역시 우리들의 선조들은 대단했었다는 것을 오늘 느낍니다.
이 추위가 바로 "대한" 추위입니다.
앞으로 일주일 정도는 추위가 맹위를 덜칠 것 같습니다.
* 당초의 계획대로 라면 : 다음 게재내용은 "남제서 고구려와 백제"편입니다만 : 강단사학의 헛소리인 "네이버 AI"에서 말하는 "조선의 북변에 사막지대가 있었다"라는 답변에서 말하기를 : "고고학적인 근거와 역사적 근거"를 필요로 한다는 것에 '반론'을 펴고자 합니다.
*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지방에는 '사막지대'가 없으니 고고학적인 근거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근거인 서지학적 근거는 바로 기록물이며, 현존하는 왕조실록, 동사, 동국사, 지리지, 사대부들의 문집, 연행록등 그 근거는 널려 있다고 보아야 하는데... ...강단사학은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이... ...'근거를 내놔라' 하는 식입니다.
* 강단사학은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합니다.
한쪽에서는 유일무이한 기록물이라면서 유네스코에 등재해 놓고, 한 쪽에서는 왕조실록에 기록된 내용을 부정합니다.
* 도대체 대한민국의 사학계는 누굴 위해서 존재하고 있는 걸까요?
'반국가세력'은 머리에 뿔이 달린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 "국가의 이익에, 구성원들의 이익에 반(反)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반국가세력"입니다.
현존하는 왕조실록에서의 기록과
규원사화, 동사, 동국사, 지리지, 문집등에서 말하는 조선의 북변, 서북변의 사막지대와 접했다 등의 서지학적인 근거를 찾아 하나하나 해설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오늘날의 열도에 "왜노(倭奴)=왜(倭)=일본(日本)"이 없었다면 : 바로 "반도(半島) 땅에 조선(朝鮮)은 없었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그래서 '일본 사학계와 반도식민사학계'가 : 끝까지 미친 척하는 이유죠.
* 반도식민사학계는 이제 정신을 좀 차려야 합니다.
언제까지 강시처럼 조종당하는 신세로 묘지(墓地)까지 갈 겁니까?
사람이 죽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너나 나나' 죽는 것 똑같고, 죽으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왕후장상이 따로 없습니다.
곧 어떤 인간이든, 반도식민사학자들이든 간에 예외는 없습니다.
도대체 반도식민사학계의 목적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
* 다른 나라에서는 : 없는 것도 만들어, 자기 나라, 국민들에게 유리하도록, 이익이 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팩트입니다.
주는 것도 못먹는 어리석은 반도사학계!
"옛 조선왕조'의 서북변과 북변의 사막지대와 관계되는 많은 서지학작 근거들을 하나하나 찾아 해설하려 합니다"
"반도의 식민사학자들이 믿거나 말거나, 할 일은 해야 하고, 아무리 뒤를 쳐도 할 일은 늦출 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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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추위에 건강에 이상없도록 신경을 좀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애 ' 담이의 위치가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네요.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