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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백제 토론방 10. 478년 왜왕 무의 국서
과거와 미래 추천 0 조회 39 25.07.21 19:56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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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5.07.21 21:20

    첫댓글 무의 부친 제와 흥이 고구려와 관련없다고 하는건 송서의 국서 내용의 앞뒤 맥락을 정면으로 무시한데서 나온 주장일수밖에 없지요 왜왕 무의 국서에 부친 왜왕 제가 자국을 침략한 고구려를 지칭하는 원수들이 중국과 교역할 길이 막으니까 분노해서 군대를 일으키려고 하다가 갑자기 장남 흥과 동시에 사망했다고 나와 있는 것을 보면 고구려의 공격으로 왜왕 제와 흥이 사망한 것으로 유력하게 보여질수밖에 없습니다 왜왕 무의 국서에 자국 왜를 침략한 원수 대상을 고구려 이외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웅략은 일본서기에 456년에 즉위했다고 나와 있어서 462년은 웅략의 즉위 6년이 되는 해라 즉위 직후가 되는 해가 아니지요 일본서기의 웅략의 즉위 연도기록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주장인것 같습니다

  • 25.07.21 21:05

    오류가 있는데 왜왕 무가 사신을 보낸건 승명2년(478년)이었다고 나타나 있지 462년에 무가 사신을 보내었다고 나타나 있지 않지요 462년의 기록은 왜왕 제의 세자 흥을 왜왕으로 책봉한 조서를 선포한 내용이었지 왜왕 무가 사신을 보내었다고 나타난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 25.07.21 21:18

    濟死, 世子興遣使貢獻. 世祖 大明六年, 詔曰:「倭王世子興, 奕世載忠, 作藩外海, 稟化寧境, 恭修貢職. 新嗣邊業, 宜授爵號, 可安東將軍·倭國王.」

    제(濟)가 죽자, 세자인 흥(興)이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세조(世祖) 대명(大明) 6년(462)에 조를 내려 말하기를, "왜(倭)의 왕세자 흥(興)은 여러 대에 걸쳐 충성을 바쳐왔고, 바다 바깥에서 번국이 되어 교화를 받고 그 변경을 편안케 하였으며, 공손히 조공해왔다. 새로 변방의 업(業)을 이었으니, 마땅히 작호(爵號)를 내려 안동장군·왜국왕으로 한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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