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기 불황으로 전국 주요 지역의 집값 하락현상이 계속되면서 참여정부 당시 집값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내놓은 각종 부동산 정책들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공공택지지구의 85㎡ 초과 중대형 분양주택에 대한 채권입찰제와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제도, 주택거래신고제 등이 대표적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들 규제 중에는 중복 규제가 많아 주택시장 침체를 더욱 가중시킬 수 있는 만큼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채권입찰제 '유명무실'
25일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예정된 공공택지지구 분양 물량 가운데 채권입찰제가 적용되는 곳이 거의 없는것으로 나타났다. 채권입찰제는 공공택지지구의 중대형 아파트 분양가가 시세보다 낮을 경우 주변 기존 아파트 시세의 80%까지 채권 매입액을 써내도록 해 많이 써낸 순으로 당첨자를 정하는 제도다. 당연히 시세와 분양가 격차가 최소 20% 이상 벌어져야 기능을 한다. 하지만 최근 집값 하락세가 계속되는 반면 건설원가를 기초로 책정되는 분양가는 높아지고 있어 이 제도가 기능을 할 만한 곳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로 오는 7월 분양 예정인 서울 은평뉴타운과 경기 김포한강신도시 중대형 분양 물량에는 채권입찰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더불어 하반기 최대 블루칩 분양단지인 경기 성남 판교신도시와 수원 광교신도시 등의 분양에도 주변 시세 대비 분양가격 차이가 크지 않아 채권입찰제 적용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도 기능 잃어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도 무의미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투기기역은 지식경제부가 집값 상승률이 물가상승률보다 30%이상 높은 지역에 대해 세제상 불이익을 주기 위해 지정하는 것이다. 투기과열지구 역시 집값 상승률과 청약경쟁률이 높은 지역을 대상으로 청약자격 등을 규제하기 위해 국토해양부가 지정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집값이 하락하는 시기에 이 조건에 맞는 곳은 거의 사라진 상태다.
실제로 정부는 투기과열지구를 지방은 모두 해제했고 수도권만 남겼다. 하지만 수도권에서도 담보대출 규제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기능을 하진 않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해 9월 도입된 분양가 상한제로 인해 오히려 강화된 전매규제와 재당첨 금지 규제가 실시되고 있어서다.
세제상의 불이익을 주는 투기지구 규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실거래가 신고제를 전국에 걸쳐 실시해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양도소득세 등 부담을 주는 규제가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민은행 원종훈 세무사는 "전국이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과세하고 있고 과표적용률도 100%까지 높아질 계획이어서 세무적으로 특정 부동산이 투기지역에 포함되느냐의 여부는 이제 거의 의미를 상실했다"고 말했다.
주택거래신고제도 마찬가지다. 투기지역 중 집값 상승률이 유달리 높은 지역을 대상으로 지정해(전월 집값 상승률이 1.5% 이상 등의 기준), 60㎡ 초과 아파트를 거래할 경우 15일 이내 거래계약일과 거래가액 등을 신고해야 하는데 이 역시 실거래가 신고제도가 정착되면서 효력이 거의 사라졌다는 평가다.
■중복규제 등 효용성 떨어지는 규제 폐지해야
청약가점제도 효용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방은 거의 대부분이 미분양이 발생하고 수도권에서도 미분양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청약자들이 많을 때 효과를 발휘하는 청약가점제가 역할을 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반기부터 본격 공급될 신혼부부용 주택은 청약가점제와 충돌하는 것도 제도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는 평가다.
부동산114 김규정 팀장은 "최근 경기 용인 등 유망 지역에서도 중대형은 대거 미분양이 발생하는 등 전국적으로 미분양이 당분간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라면서 "일부 인기 단지를 제외하고 청약가점제는 거의 본래 기능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써브 함영진 실장은 "참여정부 시절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여러 규제 중에는 중복 규제도 많고 집값이 하락할 경우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도 꽤 많다"면서 "중복규제나 제 기능을 못하는 규제는 합리적으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