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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의 대본
대본 카테리노 토마소 마촐라
초연 1791년 9월 프라하 황실가극장
배경 A.D. 79년의 로마
<2017년 6월 글라인드본 축제 / 138분 / 한글자막>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 글라인드본 합창단 연주 / 로빈 티치아티 지휘 / 클라우스 구트 연출
티토 황제.......선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리차드 크로프트(테너)
세스토...........티토의 친구. 비텔리아를 사랑한다...........안나 스테파니(메조소프라노, 바지 역할)
비텔리아........선황제 비텔리우스의 딸.........................앨리스 구테(소프라노)
세르빌리아.....세스토의 여동생. 안니오를 사랑한다........조엘레 하비(소프라노)
안니오...........세스토의 친구. 세르빌리아를 사랑한다.....미켈레 로지에르(알토)
푸블리오........프레트리아의 근위대장..........................클라이브 배일리(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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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2017 글라인드본 페스티벌 - 모차르트 <티토 황제의 자비>
간결하고 경쾌히 몰아가는 음악과 연출의 놀라운 궁합
2017년 6월 실황으로, 1934년에 시작된 영국 글라인드본 페스티벌의 화제작 중 하나이다. 티토 황제는 자신을 죽이려고 한 세스토에게 배신감을 느끼지만 모든 것을 용서하고 관용을 베푼다. 실존한 티토 황제(39~81)의 배경을 현대적으로 각색된 무대에 가끔씩 드리워진 영상은 작품의 키워드인 '배신'과 그 긴장감을 유지하게 한다. 음악적 간결함이야말로 로빈 티치아티의 박력 넘치는 지휘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풍부한 음색, 극적인 생동감, 크로포트(티토)와 메조소프라노 스테파니(세스토)의 뛰어난 연기는 물론 원작의 '아름다운 간결함'도 잘 살린 무대이다. 보너스 필름(5분/자막 없음)과 해설지(영어)에는 구스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1934년에 시작한 영국 글라인드본 페스티벌의 국내 방송이 시작되면서 이 페스티벌은 우리에게 한발자국 가까이 다가왔다. 국내에 방송되는 4편 중 하나로 모차르트 <티토 황제의 자비> 2017년 6월 실황 영상물이다.
<티토 황제의 자비>는 모차르트(1756~1791)가 사망하던 해에 남긴 마지막 오페라이다. 티토 황제의 오랜 친구인 세스토는 그를 죽이려고 음모를 품는다. 하지만 티토는 세스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데 대해 갈등하고, 결국 자신이 서명한 사형선고장까지 찢어버린다. 황제는 친구이자 배반자인 그들로 인해 충격까지 받지만, 결국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관용을 베풀며 자비의 왕으로 등극한다는 내용이다.
연출가 클라우스 구스는 20여년 만에 글라인드본 페스티벌을 다시 찾았다. 그는 실존 인물 티토 황제(39~81)의 배경을 지우고 현대적으로 채색한다. 티토 역의 리차드 크로포트는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감미료처럼 인물 사이에 양념을 가미하며 드라마의 흐름을 맛깔나게 만든다. 세스토 역의 메조소프라노 안나 스테파니는 탁월한 연기력으로 남성 역할을 수행한다.
음악적 간결함이야말로 계몽시대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로빈 티치아티의 박력 넘치는 지휘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풍부한 음색, 극적인 생동감, 가수들의 뛰어난 연기로 인해 관객을 설레게 하면서도 원작의 '아름다운 간결함'도 놓치지 않는다.
구스의 연출은 화려한 보여주기보다는 티토와 세스토의 관계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서곡이 울려 퍼질 때, 무대에 드리워진 영상에는 어린 티토와 세스토가 호수가에서 같이 노는 영상을 보여준다. 작품에서 중요하게 기능하는 '친구의 배신'과 그 긴장감을 높인다.
보너스 필름(5분 분량/자막 없음)에는 연출가 구스를 비롯하여 크리스티안 슈미트(디자인) 등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해설지에는 구스의 인터뷰와 작품 해설(영어)이 담겨 있다.
===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정홍래 글>
티토 황제의 자비 K.621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791년 12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규모 있는 작품을 쓰고 있었다. 오페라 〈마술피리〉와 〈티토 황제의 자비〉, 그리고 〈레퀴엠〉을 쓰느라 여념이 없던 시기였다. 〈레퀴엠〉은 끝내 미완성인 채로 남겨졌지만, 〈티토 황제의 자비〉는 9월 6일 프라하 국립 극장에서 초연되었으며, 같은 달 30일, 빈 교외에서 〈마술피리〉가 초연되었다. 이 작품을 작곡하기 전, 모차르트는 〈마술피리〉의 상당부분을 이미 작곡해 놓은 상태였으며, 프라하에서 〈티토 황제의 자비〉를 초연한 후 빈에 부지런히 돌아온 모차르트는 〈마술피리〉의 초연을 준비했다.
레오폴트 2세의 대관식을 위한 작품
모차르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보헤미아의 왕이었던 레오폴트 2세를 위해 이 오페라를 작곡했다. 1791년 9월, 레오폴트 2세가 프라하에서 보헤미아의 왕위에 오른 대관식 축전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모차르트는 왕위에 오른 레오폴트 2세를 위해 로마 황제의 이야기를 오페라의 소재로 삼았다. 로마 황제 티토(티투스, 39~81년)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유대 전쟁 최고의 지휘자로, 아버지가 착공한 콜로세움을 완성시킨 황제로도 잘 알려져 있다. 티토 황제의 삶을 그린 메타스타시오의 대본은 이전에 많은 작곡가가 음악을 붙였는데, 모차르트는 메타스타시오의 대본에 음악을 붙이지 않고, 궁정 시인 카테리노 마졸라가 개작한 것을 오페라로 옮겼다.
주목 받지 못하는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티토 황제의 자비〉는 같은 달에 초연된 〈마술피리〉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는 작품이다. 초연 당시 레오폴트 2세의 황후 마리아 루이자가 ‘독일식의 난잡한 음악’이라는 평을 했다고 하는데,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치고는 그 명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티토의 친구, 세스토와 세스토의 친구, 안니오의 배역이 여성 성악가를 위해 작곡되었다.
줄거리
비텔리아는 아버지를 대신해 복수하려 한다. 티토가 아버지 비텔리우스를 폐위시키고 로마 황제에 올랐기 때문이다. 비텔리아는 자신을 사랑하는 세스토를 이용해 티토를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 그런데 세스토의 친구 안니오가 등장해 황후 자리가 비어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황후가 될 욕심에, 비텔리아는 황제 시해 계획을 잠시 미룬다.
한편 안니오는 세스토에게 그의 누이동생 세르빌리아와의 결혼을 황제에게 허락 받아달라고 부탁한다. 세스토가 이들의 결혼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 티토 황제는 세르빌리아를 황후로 삼겠다고 말한다. 안니오와 세르빌리아는 슬퍼하고, 계획이 무산된 비텔리아는 세스토에게 시해를 재촉한다. 그런데 그 때 총독 푸블리오와 안니오가 찾아와서, 비텔리아가 황후로 간택되었음을 알린다. 세르빌리아가 황제에게 자신은 안니오를 사랑한다고 고백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세스토는 황제를 찾아가고, 신전에서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세스토는 황제를 시해한 죗값을 치르기 위해 떠나려 한다. 그때 안니오가 찾아와 황제는 죽지 않았으니, 용서를 구하라고 말한다. 두려움에 떠는 비텔리아는 세스토와 도망가려 하지만, 로마 병사에게 잡히고 만다. 친구 세스토의 배신에 격노한 티토는 세스토의 진실한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조금 풀렸다. 하지만 세스토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사형을 선고받는 모습에 죄책감을 느낀 비텔리아는 결국 티토 황제에게 고백하고, 티토는 친구와 황후가 될 비텔리아의 배신에 다시 한 번 분노한다. 그럼에도 티토 황제는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는 자비를 베풀겠다고 말한다. 백성들은 황제에게 감사하는 노래를 부른다.
주요 음악
1막 세스토의 아리아, ‘나는 갑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여(Parto, ma tu ben mio)’
세르빌리아가 황후가 될 거라는 소식을 들은 비텔리아는 황후가 되려는 계획이 무산되었음을 깨닫고, 세스토에게 황제의 암살을 재촉한다. 그러자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친구를 배신해야 하는 세스토는 번민하며 이 노래를 부른다. “나는 갑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여. 부드러운 눈길로 나를 한 번 보아 주오. 나는 당신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소. 당신의 사랑스러운 눈빛 말고는 바라는 것이 없다오.” 이런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마지막 부분을 화려한 콜로라투라로 장식한다.
2막 세스토의 아리아 ‘잠시만 시간을 내주십시오(Deh, per questo istante solo)’
비텔리아가 황후로 책봉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지 못하고, 티토 황제를 시해하려 했던 세스토는 마지막으로 티토에게 호소한다. “제발 잠시 시간을 내주십시오. 옛 정을 생각해서라도. 저는 동정 받을 가치도 없고, 죽음을 선고 받았지만, 저를 두렵게 하는 것은 죽음이 아닙니다. 폐하를 배신했다는 생각만이 저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친구를 배신했던 세스토가 마지막으로 진심을 호소하며 노래하는 아리아이다. 이 오페라 작품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노래로 꼽힌다.
2막 비텔리아의 론도 ‘결혼의 신은 이제 더 이상 나를 위한 결혼의 화환을 만들지 않으리(Non più di fiori vaghe catene)’
오페라가 완성되기 전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아리아는 갈등하는 비텔리아의 마음이 담긴 노래이다. 자신을 위해 황제를 암살하려 했던 세스토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처벌을 받게 되었는데도 사실을 밝히지 못했던 비텔리아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모든 사실을 고백하기로 결심한다. “불운한 여인이여! 끔찍한 운명이여! 아, 사람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하지만 나의 고통을 안다면 누구나 동정심을 가지리.”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황제를 시해하려 했던 비텔리아의 내면이 담긴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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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해설 === <2013년 3월 13일자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모차르트, 티토 황제의 자비
레오폴트 2세의 대관식을 위해 만든 오페라 세리아 작품
1791년완성, 같은 해 9월 황실가극장에서 초연
모차르트 오페라 22편 중 마지막에서 두 번째 작품인 <티토 황제의 자비>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1791년 9월, 그러니까 그의 생애 마지막 해에 <마술피리>에 앞서 발표한 오페라입니다. 사실 <마술피리>와 <티토 황제의 자비>는 음악적으로 무척 다른 성격의 작품이었지만, '철인(哲人) 군주의 관용'이라는 주제 면의 공통점 때문에 자주 비교되는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대본가 다 폰테와 함께 음악면에서나 극 내용면에서나 철저히 혁신적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를 발표했던 모차르트는 이 <티토 황제의 자비>에 이르러 다시 전형적인 18세기 오페라 세리아 형식으로 회귀했습니다. 1781년 초연한 <이도메데오> 이후로 세리아를 작곡하지 않았던 모차르트로서는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다가 다시 퇴보한 셈인데요, 그럴 수 밖에 없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답니다.
1790년, 모차르트의 새 오페라 <코지 판 투테(여자는 다 그래)> 공연이 한창일 때 오스트리아의 계몽전제군주 요제프 2세가 세상을 떠납니다. 황제가 서거했는데 희극을 공연할 수 없어 <코지 판 투테>는 10회 만에 막을 내렸죠. 모차르트에게 더 큰 타격은 그 뒤에 찾아옵니다. 새로 황제가 된 레오폴트 2세는 모차르트를 후원했던 요제프 2세와는 달리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레오폴트 2세의 귀에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면이 있었던 모차르트 음악보다는 치마로사나 살리에리의 음악이 훨씬 익숙하고 펀안했습니다.
당시 보헤미아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대제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황제 레오폴트 2세는 보헤미아의 통치자이기도 해서, 신성로마제국 황제로서의 그의 대관식은 프라하에서 거행되었습니다. 빈보다 더 모차르트를 사랑하고 인정했던 프라하는 대관식 축전 오페라를 모차르트에게 의뢰했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이 <티토 황제의 자비>였죠. 형편이 어려웠던 모차르트는 작곡료로 제시된 200굴덴이라는 큰 액수를 무시할 수 없어 이 일을 맡았고, 대관식에 어울리는 일종의 '용비어천가'를 소재로 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레오폴트 2세에게서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겠지요. 그래서 고른 원작대본이 군주의 덕성과 관용을 칭송하는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의 '티토 황제의 자비'였고, 형식은 당연히 진지한 '세리아'가 되어야 했습니다. 메타스타시오의 이 원작을 토대로 수많은 오페라 대본이 쓰여졌고, 모차르트의 <티토 황제의 자비>는 카테리노 토마소 마촐라의 대본으로 작곡되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레오폴트 2세를 위한 '용비어천가'
티토(티투스)의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게 밀려난 비텔리우스 황제의 딸 비텔리아는 티토와 결혼해 다시 권력을 얻고 싶어합니다. 티토 황제는 원정 중에 알게 된 현명한 유대 공주 베레니체(베레니스)를 사랑하지만, 로마 여성과의 결혼을 원하는 로마 백성들의 뜻에 따라 베레니체와의 결혼을 포기하지요. 아들같은 친구인 젊은 귀족 세스토(섹스투스)의 위로를 받은 티토는 세스토의 여동생 세르빌리아를 아내로 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스토는 세르빌리아를 사랑하는 자신의 친구 안니오에게 이미 여동생과의 결혼을 허락한 상황이었습니다.
난감해 대답을 못하는 세스토 대신 안니오가 나서서 황제에게 세르빌리아의 덕성을 예찬하며 황제의 결정을 옹호합니다. 그런 다음, 세르빌리아에게 가서 황제의 뜻을 전하고 작별을 고하죠. 황후가 될 세르빌리아에게 "늘 하던 대로 '내 연인'이라 불러서 미안하다"며 눈물로 사과하는 안니오. 그런 안니오에게 세르빌리아는 "당신은 내 첫사랑이었고 내 마지막 사랑"이라고 대답합니다. 두 사람이 부르는 이 이중창은 이 오페라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사랑스러운 음악입니다. 이제 세르빌리아는 황제 앞에서 당당하게 안니오와의 사랑을 밝힙니다. 티토 황제는 세르빌리아의 태도에 감동 받아 안니오와의 결혼을 허락하지요. 황제는 "아, 내 옥좌를 둘러싼 모든 사람이 이 여인처럼 진실하고 신의를 지킨다면, 대제국을 다스리는 일도 고통이 아니라 행복이 될 텐데..."라고 노래합니다.
이제 베레니체뿐만 아니라 세르빌리아에게까지 밀렸다고 생각한 비텔리아는 티토 황제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자신을 열렬히 숭배하는 세스토를 이용해 티토를 암살하기로 작정합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 티토는 마침내 비텔리아와 결혼하기로 결정하죠.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된 비텔리아는 암살을 막으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세스토는 부하들을 시켜 로마에 불을 지르고 티토를 칼로 찌르지만, 실제로 칼에 찔린 사람은 티토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고 그 찔린 사람조차도 다행히 치명상을 입지 않아 살아납니다.
세스토는 죄책감에 빠져 자결하려 하지만 안니오는 티토 황제가 죽지 않았음을 알려줍니다. 경비대장 푸블리오는 황제 암살미수범으로 세스토를 체포에 감옥에 가두지요. 원로원은 세스토에게 사형을 선고하지만, 티토는 세스토의 배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스토를 직접 만나 심문한 티토는 '배후 없이 스스로 암살을 계획했다'는 세스토의 거짓 진술을 듣고 배신감에 휩싸여, 사형집행을 허락하는 서류에 서명합니다. 그러나 곧 자비심과 평정심을 잃었음을 후회하며 서류를 찢어버리지요. 자신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황제의 분노와 절망에 마음이 찢어지는 듯하지만 차마 비텔리아를 배신할 수 없는 세스토. 황제를 향한 그의 애절한 노래 '예전의 사랑을 기억해 주세요'는 이 오페라의 클라이맥스를 이룹니다.
한편 세스토가 끝까지 사실을 털어놓지 않고 사형을 당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비텔리아는 세스토를 희생시켜가며 황제와 결혼하려 했던 스스로에게 수치심을 느낍니다. 결국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한 비텔리아는 서글프고 비장한 아리아 '결혼의 꿈은 사라지고'를 부르죠. 그런 다음 콜로세움에 나아가 모든 것이 자신의 음모였다고 황제 앞에 자백합니다. 황제는 놀라지만 세스토와 비텔리아를 다 용서하고 그들을 맺어주지요. 로마 시민들이 모두 티토 황제의 자비를 찬미하는 가운데 막이 내립니다.
심리묘사에 중점을 둔 진보한 형식의 세리아
티투스 황제(A.D. 39 ~ 81)는 1세기 로마의 황제였던 실존인물입니다. 원정에서 만난 베레니체 공주를 로마로 데려와 결혼하려 했으나 로마시민들의 반대로 돌려보내고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살았던 것도 역사적 사실이죠.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죽은 뒤 79년에 황제가 되자마자 로마 대화재와 화산 폭발, 역병과 싸우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티투스는 학문적으로 탁월했을 뿐만 아니라 관용과 자비로 통치해 로마시민의 사랑을 받은 황제였습니다. 역병을 퇴치하려 애쓰다 41세로 생을 마감한 티투스 황제는 후세까지 크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지만 등장인물들의 애매하고 기묘한 상관관계와 심리묘사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이 오페라는 1800년 이전에는 <돈 조반니>, <마술피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기작이었으나, 19세기 후반부터는 오랜 세월 무대에서 잊혀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현지에서 촬영한 장 피에르 포넬의 영화판 연출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뒤 특히 21세기에 들어서 훌륭한 공연과 영상물이 쏟아져 나왔고, 지난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도 새롭게 공연되는 등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처럼, 혹은 연인처럼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티토와 세스토의 관계에서 로마시대 남성들에게는 일반적이었던 동성애적 성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도 역시 이 두 남자의 처절하고 불꽃 튀는 감옥의 대결 장면입니다. 세리아에서 흔히 카스트라토 주인공을 내세우는 전통에 따라 세스토가 남자 가수가 아닌 소프라노 또는 메조소프라노가 맡는다는 점도 각별하지요. 세스토는 <피가로의 결혼>에 등장하는 미소년 케루비노와 비교되기도 하는데요, 타이틀롤인 티토보다 더 비중이 큰 주인공인 세스토와 비텔리아는 모차르트 특유의 서정미와 유려함뿐만 아니라 감탄할만한 가창 기교를 담은 아리아들을 노래합니다. 안니오 역 역시 소프라노나 메조소프라노가 노래합니다.
원래 대본작가 메타스타시오와 작곡가 칼다라가 1734년, 황제 카를 6세의 명명축일 축전행사로 초연한 <티토 황제의 자비>에는 아리아가 25곡이나 들어있었습니다. 전형적인 후기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 세리아였죠. 그러나 모차르트는 이들 아리아를 일곱 곡으로 줄이고 새로운 아리아 네 곡을 첨가한 뒤, 이중창 세 곡, 3중창 세 곡, 5중창, 6중창, 합창 등을 작곡해 넣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연극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음악으로 등장인물의 심리묘사에 치중한 새로운 스타일의 세리아가 탄생한 것입니다.
모차르트는 이 작품을 프라하로 가는 마차 안에서 작곡하기 시작해 18일만에 마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모차르트의 속필을 과장한 소문이었고, 실제로는 4주에서 7주 정도가 걸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답니다. 순서대로 작곡하지 않고 안니오와 세르빌리아, 세스토와 안니오의 이중창들부터 시작했다고 하네요. 초연 날짜에 맞추기 위해 레치타티보 부분은 제자 쥐스마이어가 작곡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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