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을 사랑하라 마 5; 43-48절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 의미을 왜곡 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말 가운데 6가지 실례을 들었다. 그리고 “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이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구약성경이 나오는 내용이 있는냐?
“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 없다. 그런데 그들은 이렇게 해석 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이웃은 “ 이스라엘을 의미 한다.
이결과 유대인들은 유대인만을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다른 모든사람[ 외국인] 원수처럼 여겼다.
그러기에 이방인은 원수요, 모두 미워 하는 것 이 의무요 권리라고 암시할 정도입니다.
그들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유대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가나안 사람들은 멸절시키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일부 였다.
왜? 그들의 악한 행위로 인해 하늘아래 말살 되어야 했던 것으로 봅니다.
그들은 아모리 족과 모압족과 미디안족에게 친절히 대하지 말라는 말을 듣었다.
그리고 시편69편23-25 저주의시에서
“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주의 분노를 그들의 위에 부으시며 주의 맹렬하신 노가 그들에게 미치게 하소서
그들의 거처가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의 장막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 구절을 이웃을 사랑하는 한편 원수을 미워해야 한다는 명령이라고 정당화 하고 백성들에게 가리쳤다.
그럼 이문제의 해법은 무엇일까 ?
이는 개인적인 명령이 아니라 항상 사법적[# 법을 적용하는 것] 인 것으로 간주 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시을쓸 때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교회에 관해 썼다.
시편 기자의 관심은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교회에 그의 열심을 표현 합니다.
주님은 원수을 사랑 하라고 하십니다.
왜? 원수을 사랑 하시는일이 하나님이 하시는일 이기 때문입니다.
45절 ]그래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하지만 동시에 모압족과 아모리족과 미디안 족과 같이 하나님의 일을 고의적으로 배척 했으며, 하나님은 영원한 재판장 으로써 그들에게 심판을 선언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이요, 사법적[# 법을 적용하는 것] 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생애, 이세상에 있는 동안 하나님은 그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자기를 미워하는 백성을 축복하시며 자기을 거역 하는자 에게 비를 주신다.
하지만 동시에 회개하지 아는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 합니다.
하지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것을 구별하지 않는다.
원수는 미워하고 그들을 거스리는 사람들을 미워한다. 이것을 정당화 하는 것입니다.
그럼 주님은 우리 개인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
44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것은 기독교인의 개인적인 태도을 말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그리고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왜? 48절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것이 무슨뜻 입니까?
이 세상의 사람들은 ...
상황에 따라 ...
우리의 생각에 따라 ...
우리의 상태에 따라 우리의 마음과 행동이 지배을 받는다.
그래서 악하다., 더럽다. 불의하다 평가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상황에 따라 ...
우리의 생각에 따라 ...
우리의 상태에 따라 지배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에 지배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무엇이 이렇게 만드는냐?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은 ?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철저히 비이기적인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잔인한 생각,,
우리의 생각에 따라 ...오만해집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 합니다.
우리의 상태에 따라 우리의 마음과 행동이 지배을 받는다.
그래서 악하다., 더럽다. 불의하다 평가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지배을 받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철저히 자신에 대하여 초연 했지기 원합니다.
이 악한 세상 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차원이 높은 새 사람, 새피조물, 새 창조물입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 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에게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을 볼 때 “ 무엇이 저 사람을 다르게 만들었는가?
그 사람은 :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날 나가 되었습니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나타 낼수 있는가.
“ 너를 저주 하는자 에게 축복하라”“
너를 미워 하는자 에게 선행을 베풀라“
그리고 너희에게 악행하고 핍박 하는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왜? 그들이 파멸로 가는길을 보면서,,, 너무 불쌍해서 그들의 위해 기도하고,
너무 늦기 전에 깨달아 회개하기 위해서, 기도 해야 합니다.
좋아 하는것과 사랑 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좋아 하는 것은 타고난 천성과 같지만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신약성서에 누가 나의 이웃인가?
선한 사마리아 사람비유 에서,,,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사람을 미워합니다.
유대인은 사마리아사람을 원수로 생각 합니다.
하지만 유대인이 여리고와 예루살렘 길사이 에서 도적과 강도들의 공격을 받아 곤경에 쳐할 때 유대인들은 그을 도와 주지 않았고 그를 도와 주지 않았다.
그런데 원수처럼 여기는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돌보아주고 모든 조치을 취했다.
주님은 누가 이웃과 원수을 사랑하느냐?
내 이웃은 .
도움을 필요로 한 사람,
죄나 다른 곤란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도와줌 사람이 이웃이요,
그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냐?
그것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을 보면?
잔인한 원수가 아닙니까?
그러나 주님은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가 하는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였나이다.
바울은 “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고 했습니다. 이 가르침은 우리을 위한 것 입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며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며 우리를 멸시하고 중상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원수는 이 위로을 기회로 삼아 이용 하지 마십시오.
이와 같이 “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