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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자들의 과거개혁론과 부자유친
글쓴이 함영대 / 등록일 2024-04-15
성호 이익을 대종으로 사승관계로 이어진 성호학파는 조선후기 사회 개혁을 주창한 대표적인 실학파 학자그룹이다. 그런데 무너져가는 조선 사회를 개혁한다는 그들의 거대한 경세적 포부는 당대를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가정,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어떻게 구현되었을까? 경세가로서의 구상과 가장으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성호학파 학자들은 어떻게 균형을 유지했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은 한 개인이 가지는 경세적 문제의식의 진정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들의 이상은 진정 현실에 착근한 것인가?
성호학파, 과거제의 폐단과 개혁을 말했지만
성호 이익과 순암 안정복, 다산 정약용은 자녀들의 관직 진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과거를 쉽게 여겼을 리가 없지만, 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적폐가 노출된 과거제도의 개혁을 주장했다.
성호의 경세서, 『곽우록』에서 성호가 주장한 과폐(科弊)를 줄이는 방법은 지나치게 많은 응시 인원을 줄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문사로서만 보지 말고 필법을 겸하여 시험을 본다든가 시부의 운각을 통해 글제를 상세하게 제시하여 소양이 부족한 이들을 물리친다거나 또는 과장에 들어온 자는 시험을 칠 소양이 있는지 살펴 불순한 자는 모두 군정에 충원시킨다는 것이다.
성호의 이러한 과거제 폐단에 대한 논의는 성호만의 독특한 생각이라기보다는 당대 지식인들이 두루 공유했던 일반적인 생각일 가능성이 높다. 영조의 요청에 의해 차자를 올린 남태제(南泰齊)의 논의 역시 큰 범위에서 성호의 논의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호가 시도한 것은 과거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아니라 과거 시행의 절차와 방법에 대한 개선책이었다.
한편, 순암이 지적하는 과거의 폐단은 문장의 조작이다. 사서의(四書疑)에 응시한 과거 응시생이 선유의 성씨가 떠오르지 않자 돌담에 똬리를 튼 뱀을 보고 ‘석간 사씨(石間 蛇氏)’ 운운했다는 것이나 대구를 맞추기 위해 거짓 고사로 댓구를 만드는 일 등이다. 순암의 지적은 절차와 방법상의 지적은 아니고 다만 그 내용상의 진실성을 문제삼은 것이다. 과거제에 대한 비판적 거리와 비평적 입장에서 순암은 가장 온순한 입장인 셈이다.
다산은 과거를 “실용성 없는 말들을 남발하여 허황되기 짝이 없는 글을 지어 스스로 자신의 풍부한 식견을 자랑하도록 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문장을 통해 실력을 겨루는 행위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산은 과거의 폐단이 글쓰는 이들의 개성과 상관없이 ‘과문(科文)’이라는 일정한 격식에 집어넣는 것을 비판했다. 또 과거지학에 빠지면 지방관이 되어도 사무를 모르고, 내직의 옥송(獄訟)이나 외직의 군대를 맡아도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도 비판했다. 다산은 당대 시행되고 있는 문장 위주의 과거는 분명 문제이지만 인재를 등용하는 방법으로서의 과거 자체의 필요성은 부정하지 않았다.
자식의 앞날을 걱정한 부모, 자식에게 과거공부를
오늘까지 전해지는 순암의 친필로 전해지는 다양한 초서롱 저작 가운데 상당수는 과거 준비를 위해 초록이다. 성호 역시 “선비에게는 과거가 이해에 크게 관계된다”고 판단했다. 그의 과거 개혁론은 좀 더 효과적이고 공정한 룰을 정하는 방향으로 진행된 것으로 과거 자체의 폐지를 말하지는 않았다.
조선의 생원 진사시 229회에서 47,748명을 뽑았는데 문과에는 7,438명만 급제했다. 나머지 40,310인의 진사는 무직의 사류(士類)로 남아 있었다. 생원 진사 중 약 6.4%만이 문과에 합격하고, 93.6%는 생원 진사시의 자격증만 가진 채 늙어간 셈이다. 그런데도 왜 그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응시했을까? 조선 후기의 생원 진사는 문과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증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방사회를 지배할 수 있는 확실한 양반의 자격증이었다. 문과와 생원 진사 몇 장을 냈느냐에 따라 가문의 성쇠가 좌우되었기 때문이다.
성호학파의 학자들에게,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는 것이 역시 가문을 부지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그들은 학자적 양심으로 문제를 진단하고 그 제도의 개선책을 제시했지만, 아직 당시대의 제도가 운용 중인 때에는 그 자신도 자신의 자제들도 모두 그 공부를 하지 말라고 할 수 없었다. 현실은 그토록 간단하지 않으며 부모는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 글쓴이 : 함영대 (경상국립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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