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水滸傳•제 206편
손기·섭신·비진·설찬은 교도청을 보호하여 오룡산 영채를 버리고 병력을 이끌고 소덕으로 달려갔다. 산기슭을 돌아 성에서 6~70리 정도 떨어진 곳에 다다랐을 때, 앞에서 북소리와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면서 동쪽 소로에서 한 떼의 병마가 나타났다. 앞장선 두 장수는 금쟁수 서녕과 급선봉 삭초였다.
양군이 미처 교전하기 전에, 소덕성을 지키고 있던 대미와 옹규가 성 밖의 싸움을 보고 병력 5천을 이끌고 남문을 열고 나와 접응하였다. 서녕과 삭초는 병력을 나누어 적을 막았다. 삭초는 병력 2천을 이끌고 북쪽의 적을 막았다. 대미가 앞장서서 삭초와 10여 합을 싸웠는데, 삭초의 도끼에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옹규가 급히 병력을 이끌고 성으로 들어가려 하자, 삭초가 추격하였다. 북군 백여 명을 죽이고 곧장 남문 아래에 당도했는데, 옹규는 이미 성으로 들어가 버렸다. 옹규는 급히 조교는 올리고 성문을 굳게 닫았다. 성 위에서 뇌목과 포석이 비처럼 쏟아지자, 삭초는 할 수 없이 병력을 돌렸다.
한편, 서녕은 병력 3천을 이끌고 북군의 퇴로를 막았다. 그때 북군은 비록 한번 패하기는 했지만, 아직 2만여 병력이 남아 있었다. 손기와 섭신은 서녕의 병마를 막고, 비진과 설찬은 싸울 마음이 없어 5천 병력을 이끌고 교도청을 보호하면서 서쪽으로 달아났다. 서녕은 손기와섭신을 맞이하여 힘껏 싸웠지만, 북군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그때 삭초와 송강이 남북 양쪽에서 당도하였다. 손기와 섭신은 삼면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섭신은 서녕의 쟁에 왼쪽 어깨를 찔려 말에서 떨어졌는데 말발굽에 짓밟혀 곤죽이 되고 말았다. 손기는 길을 뚫고 달아났는데, 장청이 추격해 가서 쟁으로 등을 찔러 말에서 떨어뜨렸다.
북군은 대패하여 3만 군마 가운데 태반이 죽음을 당했다. 시체가 들판을 뒤덮고 흐르는 피가 냇물을 이루었다. 북군이 내버린 징과 북, 깃발과 갑옷, 마필이 무수하였다. 살아남은 병마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송강·공손승·임충·장청·탕륭·이운·호삼랑·고대수와 서녕·삭초가 병력을 합치니, 모두 2만5천이었다. 교도청이 비진·설찬과 함께 5천 병마를 이끌고 서쪽으로 도망쳤다는 것을 듣고, 추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는 시간이 이미 늦은 오후가 되었고, 군사들도 하루 종일 싸우느라 피곤하고 배도 고팠다.
송선봉이 병력을 거두어 영채로 돌아가 쉬려고 하는데, 홀연 송선봉이 오랜 시간 싸우고 있다는 것을 듣고 군사 오용이 번서·단정규·위정국에게 병마 1만을 주어 횃불을 준비하여 접응하러 보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송선봉이 크게 기뻐하자, 공손승이 말했다.
“이제 새로운 군마가 생겼으니, 형님은 여러 두령들과 영채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십시오, 저는 번서·단정규·위정국 세 두령과 함께 병력을 이끌고 교도청을 추격하여 반드시 항복을 받아내겠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아우의 신통력 덕분에 큰 재액에서 벗어났네. 아우도 멀리서 와서 피곤할 테니 함께 영채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내일 다시 의논하세. 교도청이란 놈은 술법도 깨지고 계책도 궁해서 더 이상 염려할 것이 없네.”
공손승이 말했다.
“형님께서는 모르시는 게 있습니다. 저의 스승 나진인께서 항상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경원에 교열이란 자가 있는데, 도를 닦을 만한 바탕을 지니고 있다. 일찍이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내가 잠시 그를 거절하였다. 그로 인해 그는 마심(魔心)이 더욱 심해져, 악한 짓을 저지르고 살인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훗날 그의 마심이 점차 물러나고 인연이 있으면, 유덕한 사람을 만나 굴복하게 될 것이다. 아마 너를 만날 인연이 있을 것이니, 너는 그를 교화하도록 해라. 훗날 그가 깊이 깨닫게 되면 쓸 데가 있을 것이다.’
제가 위주에서 형님의 명을 받고 오는 길에 그 요인(妖人)의 내력을 물어 보았더니, 장청 장군이 말하기를 항장 경공이 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경공에게 물었더니, 교도청이 바로 경원의 교열이라고 했습니다.
좀 전에 그의 술법을 보셨지만, 저의 술법과 비슷합니다. 다만 저는 스승 나진인께 오뢰정법을 전수받았기 때문에, 그의 술법을 깨뜨릴 수 있었습니다. 이 성의 이름이 ‘소덕(昭德)’이니, 스승께서 말씀하신 ‘우덕마항(遇德魔降)’ 즉 ‘덕을 만나 마성이 항복한다,’는 법어와 합치됩니다.
지금 만약 그가 도망치도록 내버려두어 다시 마성에 빠져들게 된다면, 스승의 뜻에 어긋나게 됩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제가 즉시 병력을 이끌고 추격하여 반드시 항복을 받아내도록 하겠습니다.”
공손승이 이렇게 얘기하자, 송강도 이해하고 칭찬하여 마지않았다. 그리하여 송강은 두령들과 군마를 거느리고 영채로 돌아가고, 공손승은 번서·단정규·위정국과 함께 1만 군마를 이끌고 교도청을 추격해 갔다.
한편, 교도청은 비진·설찬과 함께 패잔병 5천을 이끌고 소덕성 서쪽으로 달아났다. 막 서문을 통해 성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북소리와 뿔피리소리가 일제히 울리면서 앞의 밀림 속에서 한 떼의 군마가 튀어나왔다. 앞장선 두 장수는 왜각호 왕영과 소울지 손신이었다. 두 사람이 5천 병력을 거느리고 진을 펼쳐 교도청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비진과 설찬이 사력을 다해 돌격하자, 손신과 왕영은 공손일청의 명에 따라 단지 그들이 성으로 들어가지만 못하게 하고 굳이 추격하지 않았다. 교도청 일행은 북쪽으로 달아났다. 성중에서는 교도청의 술법이 깨져 자기편이 대패한데다 송군의 세력이 큰 것을 알고, 성을 잃을까 두려워 성문을 굳게 닫은 채 감히 접응하러 나가지 못했다.
잠시 후, 손신과 왕영은 번서·단정규·위정국과 함께 병력을 이끌고 나는 듯이 추격해 오고 있는 공손승을 만났다. 공손승이 말했다.
“두 두령은 본채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게. 빈도가 저들을 추격하겠네.”
손신과 왕영은 본채로 돌아갔다. 이때는 이미 날이 저물 무렵이었다.
한편, 교도청은 비진·설찬과 함께 패잔병을 이끌고 마치 상갓집 개처럼, 그물에서 막 벗어난 물고기처럼 급히 북쪽을 향해 달아나고 있었다. 공손승은 번서·단정규·위정국과 함께 병력 1만을 거느리고 뒤를 따라 추격하였다. 공손승이 큰소리로 외쳤다.
“교도청은 빨리 말에서 내려 귀순하라! 헛된 집착을 버려라!”
교도청은 말 위에서 큰소리로 대답했다.
“사람은 각기 그 주인을 위하는 법이다. 너는 무슨 까닭으로 나를 이렇게 심하게 핍박하느냐?”
이때는 날이 이미 완전히 저물어, 송군은 횃불을 밝혔다. 횃불이 대낮처럼 사방을 밝히자, 교도청은 좌우를 둘러보았다. 비진과 설찬, 그리고 30여 기만 남아있을 뿐 나머지 인마는 이미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고 없었다. 교도청이 검을 뽑아 자결하려 하자, 비진이 황망히 칼을 빼앗으며 말했다.
“국사께서는 이러지 마십시오.”
비진은 앞에 있는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산에 숨을 곳이 있을 겁니다.”
교도청은 계책도 다하고 힘도 빠진 채, 두 장수와 함께 산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원래 소덕성 동북쪽에 백곡령이란 산이 있었는데, 아득한 옛날에 신농씨(神農氏)가 백 개의 골짜기 풀을 맛보았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산속에 신농씨의 사당이 있었다. 교도청은 비진·설찬과 함께 신농씨의 사당에 들어갔는데, 수하에는 15~6기만 남아 있었다.
공손승은 교도청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그들이 산속으로 들어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송군이 추격해 가서 비록 1만 명의 교도청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죽여 버렸을 것이다.
공손승은 병력을 네 갈래로 나누어 영채를 세우고 백곡령을 사면으로 포위하였다. 밤 10시경 홀연 동서 양쪽 길에서 불빛이 크게 일어났다. 손선봉이 영채로 돌아가, 임충과 장청으로 하여금 각각 병력 5천을 이끌고 가서 소식을 정탐하게 하였던 것이다. 공손승과 병력을 합치니, 모두 2만이 되었다. 각각 영채를 세우고 교도청을 더욱 단단히 포위하였다.
다음 날, 송강은 공손승 등이 교도청을 백곡령에서 포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오학구와 성을 공격할 일을 의논하였다. 대군에 명을 내려 영채를 뽑고 소덕성 아래로 진격하였다. 송강은 장병들을 나누어 소덕성을 물샐 틈 없이 포위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