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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처럼 달콤하고 맛있는 밤을 왜 하필
머리를 쥐어박는 것에 갖다 붙였을까?
‘꿀밤’은 그 꿀밤이 아니다.
원래 ‘굴밤’에서 온 말이다.
‘굴밤’은 ‘졸참나무의 열매’를 가리킨다.
‘졸참나무의 열매’가 도토리의 일종인 ‘굴밤’이어서 ‘졸참나무’를 ‘굴밤나무’라고도 한다.
‘굴밤’은 일부 지역에서 어두음이
된소리로 바뀐 ‘꿀밤’으로 나타난다. 방언형인 ‘꿀밤’이 ‘굴밤’과 함께
1920년대 이후 신문 기사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 한때 중앙어에서 두 단어가 졸참나무의 열매 이름으로 함께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꿀밤’이 ‘먹이다, 주다’ 등과 어울려 나타나면서 의미 변화가 일어났다.
‘꿀밤을 먹이다’ ‘꿀밤을 주다’와 같은 표현 속의 ‘꿀밤’은 ‘졸참나무의 열매’가 아니라 ‘주먹 끝이나 살짝 더 튀어나오게 한 중지(中指)’를 뜻한다.
‘꿀밤’에 이런 의미가 생겨난 것은 머리를 쥐어박기 위해 취한 주먹이나 손가락의 모양새가 ‘졸참나무’의 열매인 ‘꿀밤’과 닮아서이다.
티비를 보면
꿀밤을 먹이고 싶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4.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팀이 단세포 생물인 아메바를 관찰해 보고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된다
수명이 고작 며칠 정도며 몇 분마다
한 번씩 방향을 바꾸는 게 이들의 삶
전부지만 이들은 결코 되는 대로 막, 그러니까 아무렇게나 사는게 아니었다.
방향에 이유가 있었던것이다.
어느 방향으로 가면 다음에는 다른 쪽을 향하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방향 전환을 할 확률이 두 배나 됐다.
이게 뭐 그렇게 중요한가 싶지만
사실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렇게 움직인다는 건 기억이 있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기 위해 이 기억을 활용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왜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으려 할까?
지나온 곳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살길은 새로운 곳에 있다는 걸
아는 것이다.
고작 몇 분 정도밖에 안 되는 기억이라고 쉽게 봐서는 안 된다. 우리로 치면 무려 20일이나 기억하는 셈이다.
거기다 덧붙여 어항 속에서 날마다 한가롭게 노니는 금붕어도 그냥 돌아다니지 않는다.
대형 수족관에 금붕어를 풀어 놓고 이동 경로를 관찰해 보니, 이들 역시 자신이
간 길을 다시 가지 않았다.
무려 50만 번 중 한 번 정도만
다시 그 길을 갔다.
단세포가 아는 걸 금붕어들 역시 알고 있었다.
아메바도 금붕어도 아는걸
우리만 모르고 있었다.
5.
지난 15, 16세기 유럽을 부흥시킨
대항해 시대를 연 스페인에는 당시의 귀족들 무덤이 꽤 남아 있다는데
묘하게도 차남들의 무덤을 보기 힘들다.
왜일까?
당시 스페인에서는 장남에게만 재산이 상속돼 차남 이하 귀족들은 결혼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가난했다.
그래서 차남들은 다들 새로운 세상인 신대륙으로 몰려갔던 것이다.
난 장남이다...
6.
성철 스님은 생전에 “책 읽지 말라”는
말을 남기셨다.
근데 역설적으로 『정법안장』을 읽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라는 말도 남겼다.
정법안장?
『정법안장』은
일본 불교의 정신적 지주였던
도겐(道元 1200∼1253) 선사의 일생에 걸친 수행과 사색을 집대성한 저서다. 송나라로 유학을 가서 보고 듣고 체험한 선(禪)의 요지를 기록한 선서(禪書)로 송나라에서 귀국한 도겐이 32세 때
1권을 쓰기 시작해 54세에 입적하기까지 총 95권을 남겼다.
불교뿐 아니라 일본 문화의 뼈대가 된 책으로 평가된다.
이번에 정법안장 전권이 완역돼 출판됐다.
그립다 성철스님
山山 水水
스님의 가르침이 참으로 깊다.
7.
[그림이 있는 오늘]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함메르쇠이
‘휴식’ 1905년경.
8.
[詩가 있는 오늘]
끝과 시작
성윤석
‘왜 끝이 없는가, 라고 물었을 땐
어디가 시작인가, 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어떻게 앉아 있었느냐, 에 따라
하루의 슬픔이 변했다
어떤 날은 꽃을 들고 있었다
어떤 날은 칼을 들고 있었다
어떤 날은 시간을 들고 있었다
9.
오늘의 날씨입니다
10.
재미로 보는 오늘의 운세입니다
"지난것들은 어차피 지나간것이다
살길은 새로운 곳에 있다"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있는
2022년 마지막 목요일 되십시오
오늘 신문은 여기까지 입니다
고맙습니다
2022년 신문은 여기까지 입니다
내일부터 짧은 연휴가 시작됩니다
새로운 2023년 1월2일 다시 뵙겠습니다
한 해 동안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