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다른 나]
'장애인 댄스 스포츠' 전문가 SK하이닉스
이경화
취재·정리=탁상훈 기자/조선일보 : 2012.09.12.
"사내 수업 위해 시작한 댄스 스포츠… 이젠 장애우와 함께" 신입사원 건강 교육 맡아 하다가 레크리에이션으로 접한 댄스…
남 위해 할 수 있는 일 찾던 중 '휠댄스'로 전환, 장애인과 춤을 장애인 전국체전서 금메달 따… 대등한 파트너 인정하는 게 중요
화려한 의상을 입고 둘씩 짝을 지어 드넓은 플로어를 누빕니다. 흐르는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기 시작하면 머릿속에 가득했던 잡념은 하얗게 사라지고 파트너와 나, 둘만 남습니다. 저보다 몸이 불편한 파트너도, 저도 혼연일체의 마음으로 멋진 춤동작을 선보입니다. 격정적인 몸놀림과 현란한 회전 동작에 관객들의 눈빛도 반짝입니다. 남들은 알기 어려운 장애인 댄스 스포츠의 매력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SK하이닉스 환경안전팀에서 '책임'이라는 직책으로 근무하는 이경화라고 합니다. 세계 유명 스마트폰업체와 컴퓨터회사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SK하이닉스에 1992년 입사, 현재까지 직원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학을 마치면서 전공에 따라 산업위생기사라는 자격증을 딴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관련 법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직장에서는 직원들의 건강관리 상태를 체크하는 직원을 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임직원들의 건강진단은 물론 금연·금주·운동 전파 등 건강관리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 사무실에서 근무 중인 이경화씨. /이경화씨 제공
댄스 스포츠와의 인연도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건강 교육을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평소에 건강과 운동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것이 저의 직업이긴 하지만, 늘 이론적인 지식만을 전달하다 보니 말하는 저도, 듣는 사원들도 모두 따분해하는 것 같아 좀 더 즐거운 수업을 만들어보고자 레크리에이션 자격증 취득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레크리에이션 자격증 취득을 위해서는 율동·음악·스피치 등 여러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저는 이 중에서도 특히 댄스에 흥미를 느꼈고, 1997년부터 아예 따로 댄스 스포츠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제가 처음에 한 것은 장애인과 함께하지 않는 일반 댄스 스포츠였습니다. 제가 시작했던 당시에는 이 분야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금과는 달리 사회적 인식도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4년쯤 지나서 장애인 댄스 스포츠로 방향을 바꾼 것은 제가 다니는 회사 상황이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2001년 무렵 저희 회사(옛 하이닉스반도체)는 글로벌 불황 여파로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회사뿐 아니라 저 또한 개인적으로도 힘든 시간이어서 운동을 잠시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희 회사 본사가 있는 경기도 이천시민이 회사를 돕겠다며 '하이닉스 지키기 운동'에 나섰습니다. 어려울 때 회사를 돕겠다는 지역 주민을 보며 저는 큰 자극을 받았습니다. 저도 처음으로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실천에 옮긴 것이 장애인과 함께하는 '휠댄스'로의 종목 전환이었습니다. 휠댄스는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짝을 이뤄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운동입니다. ▲ 이경화(왼쪽)씨가 휠댄스 파트너 오연석씨와 함께 장애인 댄스스포츠 대회에 참가해 휠댄스를 펼치고 있는 모습. /이경화씨 제공
처음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제가 휠댄스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일일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웠습니다. 일반 댄스 스포츠와 다르게 휠체어를 사용하다 보니 파트너의 휠체어가 제 발 위로 지나가면서 제 발톱이 빠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말이 그렇지 한 사람은 휠체어에서, 한 사람은 휠체어 주변에서 분주히 움직이며 하모니를 이룬다는 게 처음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연습 중 파트너와 호흡이 맞지 않아 서로 다투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회사 업무를 마치고 경기도 이천에서 연습실이 있던 서울 구로공단까지 두 시간 넘게 달려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제가 갖고 있던 기존의 편견을 버리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휠댄스를 생각할 때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돕는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제가 처음 휠댄스를 시작했을 때도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편견은 장애인 파트너들을 만나면서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휠댄스를 함께하는 상대방을 부족한 존재가 아니라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 팀이 의미 있는 결과를 내기 위해선 몸짓뿐 아니라 마음까지 맞춰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필요했습니다.
그 결과 5년간 파트너로서 한 팀을 이루었던 오연석씨와는 아마추어 휠댄스대회 1등을 차지했습니다. 댄스 스포츠가 처음으로 장애인 전국체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금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요즘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서울에 있는 연습실에서 휠댄스 시간을 갖습니다. 최근엔 주로 다른 휠댄스 팀들을 가르치는 데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