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을 존중하라 이번에는 대상을 존중하라 하는 주제를 갖고 강론을 해볼까 합니다. https://youtu.be/I6Oa2hNcAW0
대상이란 무엇인가 상대방이나 주위 환경이나 무엇을 이렇게 관찰하거나 이럴 적에 다 대상이 되는 겁니다. 이런 대상을 존중하고 함으로 인해서 말하자면 자신도 무언가 존중받을 기회가 생기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반드시 내가 남에게 존중받고 대우받겠다고 대상을 존중하라 하는 것만 아닙니다. 그렇게 이해 득실에 의거해 가지고서 무언가 반대 급부를 바란다 하면 저쪽에서 그렇게 공감이나 호감 쪽으로 호응을 해주질 않는 수가 많아 내가 상대방을 말하자면 존중해주고 대우해줬는데 왜 나에게는 안 해주는가 이렇게 된다. 이런 말씀입니다. 이해에 의해서 저쪽에서 나를 존중하지 아니해 줄 수도 있고 또 더 격멸할 수도 있고 이런 것 아니에요. 그렇지만은 저쪽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든 주위 환경이 어떻게 나오든 그 대상을 존중함으로 인해서 나에게도 뭔가 내 자신에게도 스스로 뭔가 존중받는 그런 성향으로 흘러가는 그림을 그리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함으로 인해서 내가 존중받는다 대우받는다 반드시 그렇게 반대 급부적으로만 생각할 것은 아니다. 이런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대우한다는 것은 뭐야 또 존중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뭔가 말하자면 자신이 알 수 없는 거 이런 게 많잖아 누구든지 무슨 뭐 지식이나 뭐 재능이나 이런 것에 대하여 자기가 알 수 없는 것이라도 남이 무언가 알고 있다 하면은 그것을 이해는 못할 망정 그렇게 존중해줄 줄 아는 그런 자가 되어야 된다 이런 말씀입니다. 자기 모른다고 상대방이나 어떤 사람이 뭔가 역설을 해서 열변을 토한다 할 것 같으면 그 용어나 이런 것들이 하나도 모르는 거, 마치 달세계의 말처럼 들리고 황당무계하게 들리고 이렇게 된다. 이런 말씀이에요. 자신한테 ᆢ 그럼 다른 사람들은 또 이해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뭔가 그렇게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한다면 자세를 낮추는 것이 옳은 거지 존심만 강해가지고 자존심만 강해서 어깨에 힘을 주며 너한테 뭔가 나눔 받지 않아도 된다. 이런 식이 돼가지고 거드름을 피우는 자세 말하자면 저 사람이 황당 무계하고 월세계의 말처럼 하는 것이 모두 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린다 이런 말씀이여 자신한테는 그런 소리로 들린다 해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상대방을 면박을 주는 듯한 그런 말을 한다 할 것 같으면은 그거 누가 호감을 갖겠느냐 이런 말씀이에요. 내 모른다고 저쪽에서 말하는 거 뭔가 열변을 토하는 것을 다 그렇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생각을 한다면 어떻게 이 세상의 모든 상황이 제대로 굴러가겠어 자기가 아는 것은 바닷속에 좁쌀알 한알만도 못해 자기가 뭔가 알고 있는 것은 아주 조그마한 미진 세계만도 못하다 이런 말씀이여 거시적인 세계를 보고 논할 적에는 옛날에 여든 먹은 할아버지가 세상 살면서 많은 경험을 겪고 이렇게 식자가 많더라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세살 베기 손자한테도 알으켜 달라 하고 배운다 하였습니다. 이처럼 다 거의가 몰라 아는 사람이 아는 자가 별로 없어 만능 재주꾼이 없고 만물 박사가 없다. 이런 말씀이지 다 이 세계 인종 종족이 수많은데 당장 언어가 불통이야 무슨 나부텀도 어제 이 스마트폰을 뭔가 잘못 건드려서 보안 관계에 대하여 무언가 하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더니만 그것을 풀 줄 몰라 가지고 두 시간 세 시간씩이나 허비하게 된다. 이거 아 이거 이제 스마트폰이 고장이 나서 나는 이걸 쓸 수 없게 됐구나 다시 말하자면 서비스센터에 가서 돈 주고 고쳐야 될 것 같아 그렇다면 내가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까먹을 것이 아니라 우선 가까운 근처에 가게 스마트폰 대리점에 가서 상의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고서 급히 일어나 가지고 자전거를 타고 비 오는 중에 우비를 입고 가가지고 이걸 뭘 잘못 건드렸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좀 아르켜주세요. 알 면은 ㆍ.. 어디 봅시다 그래ᆢ 단 일분도 안 돼 떨꺽 해주는 거야 단 일분도 안 돼 뚝딱 해줘 버려 그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다 하고 난 다음에 그 키보드 다 누르라고 한 다음에 그 체크한 걸 그걸 못 눌러보는 거야 이 멍청이 같이 바보처럼 그걸 누르기만 하면 다 해결이 되는 건데 이렇게 시리 자기가 모르는 거는 세살 베기 말하자면 손자한테도 배워야 된다고 자기가 모르는게 많지 알고 있는 것은 얼마 안 된다 이런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자기가 모른다고 해서 남이 무언가 안다 하는 소리를 한다고 해서 그걸 다 전부 다 월세계의 말이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리거나 자기 이해 득실에 의해서 무언가 방해되는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세상에 뭔가 이렇게 발전적인 것을 펼쳐볼 수가 없잖아 이런 걸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 내가 우선 모르더라도 저 자세가 좋다는 것만은 아니야 어떻게 힘을 줄 때가 좋은 것도 있지 막 쓸데없이 기어오르고 그런 사람들도 많잖아 남을 야시보고 경멸하고 그럴 적에는 상대방한테 강하게 나대야지 그렇지만 뭔가 노하우 비전이나 얻고자 하겠다 하면 자기가 자신을 낮추는 것이 그래도 좀 낫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씀입니다. 예ㅡ 뭔가 배우려 하면은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된다 이런 말씀이에요. 그래야지 뭔가 하나라도 터득하는 데 덕이 되는 거지 자기 분야 아니고 저 모르는 것이라고 어 자기 공부에 방해 된다 이렇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이런 말씀이지 [그러고 세에 편승시켜선 동조자를 구성 하려 하는 것 커지면 집단으로 멩자에 나오는 맥계 담비떼가 시끄럽게 지져되는 것 같은 현상을 일으키게 되는 것 집단 이지매 감으로 몰게 되기도 한다] 세상에 모르는 게 사방천지여. 그래서 하늘에는 측량치 못할 풍우가 있고 사람 집 안에는 아침 저녁으로 말하잠 조석 지변이 생긴다는 거 아니여 화복이 생긴다고 그러니까 한 치 앞을 못 내다 보더라도 내가 뭔가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다 하면 그래도 누군가가 말하자면 가르쳐주는 그런 수도 있다. 이런 말씀이지 주위 환경이 가르쳐주든지 그렇게 누군가가 그렇게 아쉬워하면 가르쳐준다 그래서 내가 고맙습니다. 이거 서비스 받았으니 얼마나 드리면 됩니까 아니 무슨 서비스에 요 그냥 가세요. 이러잖아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그렇게 되면은 그러니까 뭔가 배우려 하면 자기를 낮춰야 된다 이것을 지금 여러분들에게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은 뭔가 바라고 반대 급부를 바라고 하면 안 된다 이런 뜻도 말하잠 들어있는데 물론 일 같은 거는 반대급부 말하자면 대가를 받아야지 하지만 일 외에 또 반대급부 없는 그런 상황도 많잖아 그래서 명심보감 같은데 성현들이 하시는 말씀이 얇게 베풀고 두텁게 바라는 자는 되갚아주지 않는다 하고 말하자면 개구리가 되어서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면 그 자리가 오래가지 못한다 아ㅡ 귀하여서 천할 적의 생각을 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말씀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초심 말하자면 처음에 자기가 일어서려 하는 모깃불 피워 산야를 태우려고 하면 모깃불 피우잖아 모깃불 피울 적에 그 자세를 잊으면 안 된다 이런 말씀입니다. 뭔가 하마 존심이 강하고 어깨에 힘이들어감 저절로 거드름을 피우게 되는데 그런 사람들은 뭔가 가진 게 많다는 것이지 실상은 배움 배우려 하는 자세가 아니다. 이거 무언가 남의 가진 것이나 노하우 비전 이런 걸 말하자면 저속하게 본다면 훔치려 드는 것 밖에 안 된다 이런 말씀이여 대가 없이 대가도 조금 지불하면서 크게 뭔가 얻어가려고 하는 거 나누어 가려 하는 거 덕을 보려 하는 거 이런 것밖에 안 된다 이거지 ,하마 뭔가 남을 야시보고 경멸하고 자기한테 방해가 된다. 시끄럽다. 이렇게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물론 방해도 될 수 있지 그렇지만 자기 자신이 가진 것이 많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서 그 환경 처한 데 따라서 이해득실이 달라져서 소음공해니 말하자면 세상에 무슨 뭐 공해가 얼마나 많아 탄소가 막 넘쳐나가지고 지금 지구환경 온실가스 뭐 이런 걸 가지고 많이들 논하잖아 그러니까 그 환경 따라서 이해득실 좋고 나쁨이 생기고 하는 거예요. 자그마한 일에도 다 그렇다 이런 말씀이야 사소한 일에도 대인관계 개인적인 일에서도 다 그렇다 이런 말씀이지. 남이 싫어하는 걸 억지로 권할 필요는 없는 거예요. 또 그렇고 자기한테 싫든좋든 남이 싫은 것을 베풀려 들지 말라 이런 말도 있잖아, 예 - 남이 하기 싫어하는 거 남이 싫어하는데 뭐하러 여러 말을 해 그것이 뭐 설교하고 무슨 이해에 의거해서 따라줬으면 좋겠는데 자기 가르침을 말하자면 저 종교 개념 같은 사상 이념 이런 거 사람이 다 마음이 틀리지 않아 그리고 사상 이념 체계가 틀리고 생각하는 면이 다른데 어떻게 자기 주장만을 쫓아올 때 바라느냐 이거야 그 사람도 그 사람 말하자면 생각과 주장이 따로 있는데 무언가 이익이 있다면 쫓아오겠지 그렇지만 아무 아무런 이득이 없고 도리혀 자기한테 방해가 된다. 하면 누가 쫓아와 참말로 비위를 거슬리는 것이 되는 거지 비위를 거스르게 되면 아무리 좋은 말을 설파하더래도 궤변이나 황당 무게한 것처럼 들리고 또 횡설수설하는 것처럼 자기 눈에나 귀에는 들린다 이런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어떻게 갖는다 저 사람이 말하는데 난 비위 거슬린다 하면 그 자리를 뜨면 되고 그 자리를 뜨지 못할 형편이 되면 귀를 막던가 그래서 상대방하고 언쟁이 생기든가 이러는 거 아니여 말다툼이 생기는 거 그러니까 그렇지 않고 그런 걸 당하지 않으려면 될 수 있으면 어떻게든지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다. 이런 말씀이지 굳이 그 자리에 있어서 그 사람이 귀따갑게 말하는 걸 내가 억지로 들어줄 필요는 없다. 이런 말씀이에요. 저 사람이 아무리 언변을 말이야 달변으로 토한다 하더라도 말하자면 대중에게 연설하듯 선거 연설을 하고 유세를 펼치듯 하더라도 내가 싫다면 그 자리를 뜨면 그만인 거고 뜰 수 없는 형편이면 귀를 막고 있다든가 말하자면 어떻게 거기서 빠져나올 돌파구를 찾아야 된다 이런 말씀입니다. 그 사람은 대중들을 전부 다 자기 말 들어주는 말하자면 청중이나 막말로 고깃감 고기 사냥감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거야, 이해에 의해서 이해득실에 의해서 지금 연설로 낚시질을 낚시를 하고 있는 판인데 낚시나 덫을 펼치는 판인데 그래 거기 고기가 걸려들어야 될 거 아니에요. 투망에 그런데 거기에 투망에서 빠져나오려고 또 발버둥 치는 고기들도 있을 거 아니냐 이런 말씀이야 잡히지 않으려 하고 잡히지 않으려고 그래서 투망을 펼칠 적에 어마이 뜨거워라 하고서 얼루 도망치라고 역에서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발을 교착시키고 그물코 투망이 전부 다 x 자 이렇게 코가 이렇게 열십자식으로 가위표 식으로 전부 이렇게 짜여져 있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그물이 펼쳐질 적에는 고기로 잡히면 내가 죽을 판이니까 어마이 뜨거워라 불이라 하는 게 뜨겁잖아 얼른 도망을 가거라 이렇게도 말을 한다 이게 아 성현들께서 그런 책으로 만들어 가지고서 그러니까 듣기 싫다 하면 또 거기가 내가 말하자면 있을 자리가 아니고 말하자면 좋지 않을 자리다 나에게 피해를 줄 자이다. 이러면 얼른 탈출할 그런 것을 생각을 해야 된다 이것을 또 이렇게 말해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말로서 얼마나 낚시질을 심하게 해 언변을 토하고 달변가가 돼가지고 한참만 들으면 거기 빠져들게 돼 있잖아 그런데 벗어나야 된다 이런 말씀이여 그러니까 이런 거 저런 거 이렇게 이제 여러 말로 길게 횡설수설하고 궤변처럼 들렸겠지만은 세상을 우선 존중해 봐야 된다 상대방을 존중해 봐야 된다 상대방만 아니라 주위 환경 모두를 존중해서 그 위상을 존중해서 해코지 하지 말아야 된다 말하자면 자연 환경을 보호해야 된다 동물들을 보호해야 된다 동물 애호가들 이런 사람들 다 그렇게 말들 하잖아 그런 주장들을 다 존중해 주는 것이 또한 나쁘지 않다. 이런 말씀이지 또 발전도 해야 되고 또 역동적으로 세상은 돌아가야 되기 때문에 발전해야 되기 때문에 그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역시 존중해 주어야 된다 아무리 모순적이고 상반된 면이 있더라도 아 이런 것을 우리는 좀 생각해봐야 된다 이런 말씀입니다. 이번에는 그 말이 좀 강론이 길어진 것 같은데 뼈대도 없고 알 속도 없고 그저 굴러가는 말처럼 이렇게 한 거지 겉에서 빙빙 도는 것 같아 뭔가 강론을 하려면 많은 생각을 해 놓고서 강론을 시작하는데 강론을 하다 보면 다 그만 잊어먹고 까먹고 정신이 할 망해서 그렇게 된다. 이런 말씀이 입니다. 이번엔 여기까지 강론하고 마칠까 합니다. 대상을 존중하는 속에 나에게도 그러한 존중받을 기회가 생기지 않겠는가 예 이런 말씀입니다. 여기까지 강론하고 마칠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