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단상 103/농약치기]‘잡초雜草’는 없는가?
어제는 오전 3시간, 오후 2시간 동안 600평 옥수수밭 고랑고랑마다 가득 자란 무성한 풀들을 ‘꼬실리는 작업’을 했다. 18리터짜리 충전분무기를 등에 메고 조심스레(옆의 옥수수잎에 닿으면 전멸이므로) 농약을 치는 작업은 힘들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진작에 싹수를 보일 때 했어야 했는데 게으른 농부가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이른바 풀들의 세상이 된 것이다. 지나다니는 농부들의 손가락질이 보이는 듯도 하고,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는 일이다. 농부의 일상은 한마디로 ‘풀과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풀을 매거나 죽이는 일은 끝도 갓도 없는 싸움이다. 아니, 사람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헛심만 팽기는 일이다. 뒤돌아서면 풀들이 나는 것같다. 참 망할 일이다. 뭣도 모르는 사람들은 한가하게 ‘그대로 놔두면 어떠냐?’고 하지만, 어림 반푼없는 야속한 말이다. 말이라고 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안된다.
‘본말전도本末顚倒’라는 말을 아시리라. 며칠만 방치해도 풀이 작물을 뒤덮어먹기가 다반사이다. 어느 것이 풀이고, 어느 것이 작물(고추, 옥수수 등)인지 뒤죽박죽 되어버리니, 무엇이 본本이고 무엇이 말末인가. 독한 제초제를 뿌려 초장에 잡거나 틈만 나면 호맹이(호미)로 풀을 죽어야 한다. 농촌말로는 풀에 농약하는 것을 ‘지진다’고 한다. 잔인한 말이다. 농약이 대체 얼마나 독하길레 그 독한 생명끈을 갖고 태어나는 풀들이 사나흘새 꼬실라 죽는 것일까? ‘근사미’ 이름부터가 나므 살벌하다. 뿌리까지 말려죽는다는 것 아닌가. 충전분무기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손으로 굴러가면서 뿌리는 일은 중노동이다. 풀들은 태평하게 있다가 졸지에 독한 농약세례를 받으니 한국전쟁 난리는 난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천지에 이렇게 '독한 물'도 있단 말인가.
자기들도 살자고 나온 생명인 것을
솔직히 내 생각은, 독한 농약은 안쳤으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 농부철학자(윤구병)는 수십년 전에 『잡초는 없다』는 책을 펴내며 유기농 무농약 농법을 내세웠지만, 어림짝도 없는 일이다. 풀들도 그들의 생존을 위하여 그만큼 더 독해지고, 종류도 다양해졌다고 한다. 토종풀이면 그나마 낫다하는데, 외래종 풀들까지 ‘수입’까지 되어 극성을 부리니 이 노릇을 어찌할까. 물고기나 황소개구리 등이 우리 하천을 망가뜨리고 있는 마당에, 이제는 잡초들까지 가세할 줄을야 누가 알았으리오.
그런데 나는 농약(제초제, 발아억제제)을 치면서도 내내 의심이 든다. 며칠 안에 이 풀들이 다 말라죽고, 싹을 트지 않을까? 그런데도 또 솟아나는 풀들은 불사조가 아니고 ‘불사초不死草’같다. 초보 농사꾼들은 풀 때문에 도저히 못해먹겠다고 지레 포기도 한다. 귀향한 한 친구가 시골에서 작은 밭뙈기를 지으며 사는 생활이 너무 좋다고 해 까닭을 묻자 “아침에 눈을 뜨면 할 일이 있어 좋다”고 한다. 그 ‘할 일’이 농약을 하지 않고도 풀을 뽑는 일이다. 무한궤도와 같이 끝도 갓도 없는 작업에 도가니(무릎)이 나가는 줄도 모르고 매달리는, 미련퉁이 농사꾼들의 삶이여! 가히 경탄할 일이다. 그 일이 싫어 틈만 나면 농약통을 메고 독한 농약으로 발본색원拔本塞源을 한다지만, 늘 도로徒勞이기 십상이다.
도로일망정 눈 뜨고 볼 수가 없기에 호미야말로 농촌의 필수품 영순위인 것을. 그게 숙명인 것을. 96세 우리 아버지가 그렇다. 주간보호센터에서 퇴근만 하면 “이놈의 풀, 이놈의 풀” 하며 뒤안 밭으로 향한다. “그냥 놔두셔잉”해도 막무가내, 방안에 있으면 ‘그놈의 풀’이 눈에 밟히나 보다. 참, 우리나라 정치도 문제이지만, 우리의 땅을 유익한 작물들 말고 무성한 채 무익한 풀들이 뒤덮고 있어 더 큰 문제다. 농약통을 열 번이나 메고 뿌려댔더니 어깨가 빠질 듯한다. 이것도 익숙하면 별 것 아니리라. 그것 한번 해보고 “엄살이 100단”이라고 깨복쟁이 내 친구가 불쑥 한마디 던진다. 그는 이제껏 고향을 지킨 터주대감으로 일이라면 뼈속까지 이골이 난 친구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아이고, 그 하많은 세월을 너는 어찌 살았느뇨?’ 고단한 봄날의 일기.
첫댓글 600평이나 되는 밭에 무려 5시간이나 행사를 치루다니.
녹초가 되어 아무생각도 없을터인데,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글을 쓰다니, 체력이 짱일세!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그 고생스러운 농부의 길로 그것도 인생2막에 되돌아와서, 이젠 농약도 척척뿌릴 수준이 된 것에 박수를 드리네.
우천! ^잡초^가사 흥얼흥얼대면서 바쁜 농촌삶 잘사시길 기도드리네.
조심해라 농약 중독되면 약도 없다
조심해라 농약 중독되면 약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