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죽는다고? 죽는 신이 신인가? 얼마나 인간적인 생각의 발로입니까? 어느 철학자는 말했습니다. ‘신은 죽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신이라는 존재가 없기를 바랐던 것이지요. 사람들이 신에게 의존하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표현을 그렇게 했으리라 짐작합니다. 신이라는 존재 없이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신이 다른 이름의 신적인 존재를 만들어냈습니다. 사실 인간의 생명이나 삶을 신이 없이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생명체들과 인간은 분명 다릅니다. 다른 동물들도 생각을 하고 감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습니까?
자기가 믿는 신이 있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자 그 신을 부르며 살려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사랑하는 어린 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는 모르나 메마른 땅에서 굶주림과 기갈로 숨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아비는 처절하게 부르짖습니다. 살려주세요.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없습니다. 그리고 딸은 숨이 넘어갑니다. 그 처절함이 분노로 바뀝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신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신에게로 향합니다. 모든 신들을 죽여 버리겠답니다. 소위 신의 세계에 전쟁을 선포합니다. 그의 특이한 검으로 신들이 하나하나 쓰러집니다. 그 영향이 엉뚱한 데까지 미칩니다. 이제 어린 아이들까지 볼모로 잡혀갑니다.
부모들이 그리고 온 마을이 야단났습니다. 아이들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토르’와 ‘제인’ 그리고 몇 용사들이 모입니다. 우주의 신의 제국에 도전한 ‘고르’와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힘이 부칩니다. 그래서 신의 제국, 올림푸스에 가서 도움을 청하기로 합니다. 신들의 왕 ‘제우스’에게 부탁합니다. 그러나 거절당합니다. 가지고 있는 특별한 무기 ‘썬더’를 빌려달라고 합니다. 줄 리가 없지요. 결국 신들의 대회의장에서 왕인 제우스를 죽이고 썬더를 차지하여 나옵니다. 제우스도 죽는다고? 그게 썬더의 위력이기도 합니다. 기가 찰 일입니다. 그렇게 재무장하여 고르와 한판 승부를 겨루려고 찾아갑니다. 고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검 외에 최고의 능력을 부여받고자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고르가 최고의 능력을 갖추기 전에 그를 물리쳐야 합니다. 드디어 토르 팀도 고를 찾아가 맞서게 됩니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무기가 특이합니다. 어쩌면 무기의 대결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천둥의 신이라 칭하던 토르가 지니고 있던 망치 같은 ‘욜니르’는 이제 제인이 가지고 사용합니다. 그 덕에 ‘마이티 제인’이라는 별칭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토르는 마치 도끼창 같은 ‘스톰브레이커’를 휘두릅니다. 게다가 이제 제우스에게서 빼앗은 ‘썬더’도 가지고 있습니다. 고르는 신도 죽일 수 있는 신비한 검으로 대항합니다. 그것에 더해 최고의 초능력을 가지고자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 막바지 단계에서 토르와 제인에게 무너집니다.
문제는 제인에게 죽을병이 있다는 것입니다. 암 4기 판정을 받은 상태입니다. 그 몸으로 전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어쩌면 어차피 죽을 몸이다, 마지막 힘을 다해서 아이들을 구하고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옛 연인 토르를 만났습니다. 잃었던 아니 잊었던 사랑이 되살아나고 있는데 그만 몸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남아있는 힘은 사랑하는 사람에게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과 나라를 위해 바칩니다. ‘사랑은 아픈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은 사람의 가슴에 새겨지는 모양입니다. 얻는 사랑은 흘러갈 뿐이지만 잃는 사랑은 새겨집니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이야기 속에서도 더 애틋하게 기억되는 것 대부분이 비극적 결말입니다.
고르는 사랑하는 딸을 잃었습니다.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런데 그 사랑은 분노로 폭발합니다. 신에 대한 분노입니다. 자신을 돕지 않았다는 원망입니다. 신은 사람을 도와야 합니까? 그런데 제인이 죽는 것을 돕지는 않습니다. 토르도 도와달라고 조르지도 않습니다. 신도 죽을 운명에 대해서는 관여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신이 왜 인간을 도와야 합니까? 우리는 왜 신을 믿습니까? 도움을 받으려고요? 흔히 말하듯 복을 받으려고요? 신은 우리에게 꼭 복을 주어야만 합니까? 어쩌면 자기가 만들어놓은 신에 매여서 신앙하는 것은 아닌가요? 사람의 소원과 뜻대로 해주는 신이 신입니까? 인간의 노리개일 뿐 아닌가요?
아주 희한한 이야기입니다. 어차피 사람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입니다. 자기 좋을 대로 신도 만들어서 자기 임의대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신조차 죽일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해괴한 이야기입니까? 어느 쪽이 신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정도의 볼거리는 이제 식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영화의 지지충이 있으니 장사가 되고 만들기도 하겠지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관람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냥 시간 보내기는 괜찮다 싶기도 하지만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Thor: Love and Thunder)를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