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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쓰다가 말아서 다시 쓸려고 합니다 32세 풍월주까지 가기에는 너무 길기도 하고 아주 잘못된 나쁜 이들도 많고 화랑세기 필사본이 박창화씨의 창작 소설이다 여러 소설이 있다라고 하기에 발끈해서 투지를 보였다가 사그라 들더군요
내가 본 것만 쓰면 된다 누군가 다시 화랑세기를 보고 더 깊게 설명할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5세 풍월주 사다함까지 요약
화랑은 선도이다 아국(신라)에서 신궁을 받들고 하늘에 대제를 행한 것은 마치 연(연나라 춘추전국 연)의 동산, 노(춘추전국 노 공자의 나라)의 태산과 같다 .....
1세풍월주 위화랑
위화랑은 소지왕과 법흥왕과 지증왕의 와이프 연제태후와 관계가 있습니다
소지왕과는 누나인 벽화, 법흥태왕과는 오도 그리고 위화랑과 오도의 딸인 옥진과 관계가 있고 연제태후와는 뭔가 있는 듯 합니다(뻔하겠지만)
지증왕과 연제태후(왕은 태왕이 아닌데 왕비는 태후라서 있는 그대로)의 아들이 법흥왕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지증왕이 64세에 왕위에 올라 15년 통치했으니 64+15-1=78세 위화랑과 연제태후의 썸씽까지 본다면
연제태후가 지증왕의 첫째 부인은 아닌 듯 합니다
*2세 풍월주 미진부
미진부 이분은 미실과 미생의 아버지 입니다
그리고 원화제도에 물에 빠져 죽은 남모의 첫번째 남편이기도 합니다
남모가 죽고나서 와이프는 묘도인데요 옥진의 딸입니다
* 3세 풍월주 모랑
모랑은 두번째 원화인 물에 빠져 죽은 남모의 남동생이며 아버지는 법흥왕입니다
법흥왕은 아들이 있습니다 이분 말고 비대도 있고요
성골이 왕이된다는 개념으로 봐서는 모랑과 비대는 성골이 아니라 진골입니다
어머니는 백제 동성왕의 딸 보과 공주입니다
술을 매우 좋아했나 봅니다 555년 비사벌을 여행하다 객사합니다
* 4세 풍월주 이화랑
1세 풍월주 위화랑의 아들입니다 옥진과는 아버지(위화랑)는 같지만 어머니가 다른 듯합니다
진흥왕 엄마인 지소태후와의 관계도 있고 지소태후와 이사부의 딸인 숙명공주와는 부부입니다
와이프인 숙명공주는 엄마는 동일하고 아버지가 다른 진흥왕과 먼저 관계를 해서 숙태자를 생산하지만
숙태자는 아버지가 진흥왕이 아니라고 의심 받습니다 읽어보면 이화랑이 아버지인 것 같습니다
엄마(지소태후), 딸(숙명공주)과 관계를 해서 자식을 생산했는데요 엄마랑은 만호태후(진평왕 엄마,김유신 외할머니,선덕여왕,진덕여왕 친할머니)를 생산했습니다 딸과는 세속오계(사군이충:충성으로 임금을 섬긴다,임전무퇴:싸움에 물러서지 않는다...)로 유명한 원광법사입니다 죽을 때는 자살하는 듯합니다 숙명공주와 같이 다음 풍월주 사다함의 누이인 새달도 같이 죽습니다
* 5세 풍월주 사다함
사다함의 아버지는 구리지고 엄마는 금진입니다
금진은 관계과 복잡한데요 먼저 진흥왕의 아버지인 사부지갈문왕(입종)과의 관계에서 숙흘종, 금진이 3번째 원화가 될 수 있다고 꼬신 구리지와의 관계에서 토함,새달(이화랑과 숙명공주를 따라 자살길로 갔던 그분),사다함이 있구요 구리지가 어디 갔다가 미소년을 보고 저 아이 엄마도 이쁘겠지 해서 데리고 온 여자의 아들인 그 미소년 설성과의 관계에서 설원랑이 있고요 동륜태자가 태어났을때 젓먹이 유모로 궁에 들어가서(그때는 애를 낳으면 3개월동안 관계를 안했다고 합니다) 진흥왕과의 관계에서 난성공주가 있습니다
이해하기 힘든 그 그시대의 여성입니다 물론 지소태후도 이해 못하지만요
사다함은 16살에 도설지 대가야 반란 사건에 출정하게 되는데요 그때 대장은 이사부였습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참전을 못하게 했지만 사다함은 몰래가서 큰 공을 세웁니다 그때가 최전성기 였습니다 그렇지만 신라로 돌아와 보니 세종(지소태후와 이사부의 아들)에게 시집가서 지소태후와 사이가 않좋아서 돌아와 있던 첫사랑 미실은 다시 세종에게로 돌아 갔구요 부하이자 최측근인 무관랑은 사다함의 엄마인 금진과 관계과 발각이 됩니다 사다함은 알고 있었지만 낭도를이 알게 되어서 신라 월성을 도망치다가 해자인 구지에 빠져서 크게 다쳐 죽고 맙니다 사다함도 7일 후에 죽었다고 합니다
향가 한번 보시죠( 진짜니 아니니 말이 많더군요)
바람이 분다고 하되 임 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친다고 하되 임 앞에 치지 말고
빨리빨리 돌아오라 다시 만나 안고보고
아흐, 임이여 잡은 손을 차마 물리라뇨(풍랑가)
미실이 도설지 대가야 반란 사건에 가기 전에 사다함에서 쓴 향가로 보입니다
전쟁이 얼마나 길었는지는 모르지만 저런 글을 써 준 여자는 사다함을 떠나더군요
전쟁에 돌아와 세종에게 돌아간 미실에게 쓴 사다함의 글도 봐야죠
파랑새야 파랑새야 저 구름 위의 파랑새야
어찌하여 나의 콩밭에 머무는가(머물었던가)
파랑새야 파랑새야 나의 콩밭의 파랑새야
어찌하여 다시 날아들어 구름위로 가는가
이미 왔으면 가지 말지 또 갈 것을 어찌하여 왔는가
부질없이 눈물짓게 하며 마음 아프고 여위어 죽게 하는가
나는 죽어 무슨 귀신 될까. 나는 죽어 신병 되리
(전주)에게 날아들어 보호하여 호신(護神) 되어
매일 아침 매일 저녁 전군부처(세종전군,미실) 보호하여
만년 천년 오래 죽지 않게 하리(청조가)
사다함의 순애보입니다 남자로써 사다함이 왜 이리 불쌍해 보일까요
엄마인 금진(금진 첫째 아들 숙흘종을 보세요)에게도 친구인 무진랑에게도 돌아 온 미실에게도 도설지 대가야 반란 사건후 받은 땅과 노비들에게도 급이 낮은 문노에게도 미실의 양아치 동생 미생에게도 관용을 베푸는 16,17살 사다함인데 죽더군요 <1편 요약 끝> * 새로운 시작 6세 풍월주 세종 세종은 지소태후와 이사부의 아들입니다 진흥왕이 막내동생이라고 했다니까 어느 정도 진흥왕과는 나이 차이는 있을 거라 봅니다 아버지는 다릅니다(진흥왕-사부지갈문왕,세종-이사부 사부지갈문왕, 법흥왕,이사부는 할아버지가 같습니다 ) 세종전군은 나이를 유추해 볼 글이 화랑세기에 나오지 않습니다 대충 미실과 비슷하겠죠(미실 나이는 1편에서 보세요) 사다함의 향가에 나오는 구름위의 사람들 중 한명 입니다 미실과의 만남이 나옵니다 지소태후가 아들인 세종을 위해 궁중에서 귀족 미녀들을 불러들여 선택하게 했는데 미실에게 마음이 갔나 봅니다 좀 미지근한 은유적인 사람인가 봅니다 대 놓고 좋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알고 싶은 사람이 알게 만든다랄 까요 세종의 성격도 부모에게 친구에게 부인에게 국가에게 최선을 다하더군요 사다함과 비슷 하지만 강단이 부족하다고 할까요 빨리 안죽는 것 빼고는 사다함과 비슷하게 미실에게 버려지지요 * 세종 족보정리 법흥왕, 사부지갈문왕과 이사부는 사촌입니다 지소태후 남편들은 삼촌뻘입니다(아~ 이화랑은 젋은 남자애를 좋아했던 금진과 같이 보시면 이해됩니다) 1921년 금관총에서 많은 유물과 금관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금관총이라 했다는군요 그 중 칼이 있었는데 발견된지 90여년이 지난 작년 2013년에 칼집 금속부분에 글자가 발견됐는데 "이사지왕" 생각이 지나가더군요 "이사부의 칼의 칼집이구나" "지소태후와 이사부..." 금관총은 지소태후의 무덤(이사부의 무덤이 아니라)이다라고 화랑세기를 보면서 여자들 중심으로 보는 관점이 1~32세 풍월주로 보는 관점보다 이해가 훨씬 쉽다고 생각되더군요 지소태후, 옥진, 사도태후, 미실, 만호태후, 선덕여왕, 문명태후... 이 구름 위의 여자분들이 화랑세기 풍월주들 이야기에 띄엄 띄엄 나오지만 이 여자들의 남성 편력과 치마 바람 이야기가 화랑세기 이야기일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좀 편협하기도 하고 어떻게보면 강하기도 하고 논리적이기도 하고 지금 기준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여자분들이 아주 많아요) 세종전군이 나왔으니 와이프인 미실을 볼까요 *미실 족보 정리 복호 옆에 보미라는 여자가 나오는데요 이 여자가 눌지왕때 고구려에 있는 복호를 데려오고 일본에 가서 미사흔을 신라로 보내고 잡혀 죽은 박제상의 와이프입니다 박제상은 삼국유사에는 김제상으로 나오구요 삼국사기에는 박제상,모말이라고 나오구요 일본서기에는 미질허지벌한(微叱許智伐旱=미사흔)을 빼내는데 성공한 후 잡혀서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하는 모마리질지(毛麻利叱智)로 나옵니다 보미는 삼국유사에는 남편이 그리워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가 왜국을 바라보고 통곡하다가 죽었다고 나오는데 화랑세기에는 살아 있더군요 화랑세기:제상공이 떠나려하자 장사에 드러누워 오랫동안 크게 울며 일어나지 않았다 눌지왕이 불러 궁중으로 들여 색도로서 위로하니 황아를 낳았다 삼국사기에는 418년 박제상이 복호를 먼저 고구려에서 데려오고 그해 가을 미사흔이 옵니다 (삼국유사는 425년 일본서기는 325년) 그리고 15년후 미사흔은 눌지왕17년(433)에 죽는데 미사흔은 아들 중 보신과 황아를 결혼시키려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데 그때도 보미는 살아 있습니다 보미가 눌지왕에게 보신,황아의 결혼을 허락 받습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세딸은 청아,삼아,황아라 추측됩니다 보미는 삼국유사 처럼 치술령에서 통곡하다 죽어도 거의 말년에 죽었나 봅니다 나이가 많이 들면서 박제상이 생각나 경주에서 가까운 치술령(맑은날 대마도가 보인다고 함. 잘못된 말 입니다. 박제상 일본으로 떠난 그 바다가 보인다가 맞는 거 같습니다 )에 올라 박제상을 그리워 했나봅니다 역사를 보는 관점 1. 옛 글에 나 온 그대로 본다(물론 잘 못 된 글을 보고 오해 할 수 있다) 2.내가 객관적으로 그 역사를 볼 수 있는지 본다(내가 보려고 한 것 만 볼 수 있다 내가 보려고 한 것에 내 상황을 끼워 맞춰 내가 이야기 했기에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고 그 역사가 내가 한 말과 맞아야 한다는 잘못을 행동을 할 수있다 ) 3.내가 옛 글을 있는 그대로 보고 내가 객관적으로 본 역사에 대해 공정했다면 또 다시 나와 같은 길을 걸을(걸었던, 걸어 갈거 같은) 후배에게는 그 길을 가게 해서는 안된다 <인류의 발전은 계속 된다 시간적으로 빠를 수도 있고 늦을 수 도 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야기 했다 도척은(노나라 큰 도적, 사람을 죽여 간을 꺼네 먹었다고함 ) 천수를 누렸고 백이,숙제는 주나라가 패권을 잡았을 때 은나라에 충성해서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 이 걸보고 사마천은 이야기 했다 하늘이 없다고(하늘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을 거러고) 사람 간 꺼네 먹은 놈은 잘 살고 충성을 다했던 백이,숙제는 고사리 캐묵다가 굶어 죽었다고 하늘은 없다고 했다. 사마천은 지금으로부터 2100년전 사람이다. 도척은 사마천보다 4~500년전 노나라 사람이고 백이,숙제는 8~900년전 은,주교체기 사람 이다.> 미실의 족보를 올라갔다가 특이한 여성 보미도 보고 사라질지도 모르는 박제상도 보고 다시 미실로 옵니다 사람들의 개인적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모두가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스스로 맞다고 판단할거라 생각 합니다 미실은 자신을 어떻게 평가 했을까요 자신은 나쁜 사람이였다 자신은 좋은 사람이었다고 어느쪽 일까요 미실 남자관계를 한번 볼까요 미실이 낳은 자식들 입니다 남녀 관계에서는 보여지지 않는게 많아 이보다 2~3배 훨씬 더 복잡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사다함이 사랑했던 미실은 사다함을 사랑했을까요 세종전군,진흥왕이 사랑했던 미실은 그사람들을 사랑했을까요 조금 사랑했던 느낌은 있지만 미실은 더 위로 갈려는 성향이 많아 보이더군요 지금보다 나은 삶 그 정도 생각했으리는 없지만 본능적으로 쫓아가는 그런 느낌입니다 화랑세기 필사본이 박창화 선생이 쓴 허구라고 이야기하기에는 특이한 부분이 많죠 저도 박제상은 알고 있었는데 박제상이 죽은 후 전설의 고향 처럼 망부석이 되어야 하는데 살아서 눌지왕과의 자식이 있고(황아) 동생인 고구려에서 온 복호와의 아들(장이)도 있고 이름도 분명하게 보미라고 나옵니다 삼국사기에는 박제상,모말이라고 쓰여져 있고 삼국유사에는 김제상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화랑세기 필사본에는 헸갈리는 성씨를 빼고 제상공으로만 나옵니다 화랑세기 필사본이 거짓된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제가 본 책 중에서는 가장 현실에 가깝더군요 네이버에 화랑세기가 정말 잘 정리되어 있었는데 수고를 아끼고 빨리 검색도 할 수 있었는데 이젠 없네요 너무 아쉽네요 다음 사이트에서 네이버 이야기 하는게 잘 못인줄 알지만 이거는 아닌 것 같아요 참 이해하지 못 한게 있어요 한자를 사용한게 화랑세기에는 법흥왕(~540)때로 나옵니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적은 삼국사기에는 기원전 박혁거세(bc69~ad4)도 나오죠 글자도 없는데 삼국사기에 삼국유사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 이해가 몹씨 힘들더 군요 다른 분들이 써 주셨으면 합니다 책 읽으면 자신이 고무되고 그 고무된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게 즐겁습니다 화랑세기가 거짓이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좀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성경,사마천의 사기, 호머의 일리아드 오딧세이, 이 인류의 베스트셀러를 이런 책을 이해 할 수 있는 책입니다 또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창작 소설이라는 말이 나오면 다시 올게요
첫댓글 재미가 너무 없나봐요 조금만 자세히 보면 발견하지 못해 숨어 있던 이야기가 여럿 있습니다 역사에 관심이 너무 대륙쪽에 있으니 너무 작게 보이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