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투쟁의 역사를 살펴보면 다른 국가들의 투쟁과는 다른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나 계급투쟁이 격렬해지다 보면 감정적인 대립으로 치닫는 사례들이 많이 있어왔죠.
하지만 이탈리아의 투쟁에서는 늘 감정적인 절제가 이루어졌습니다.
감정의 폭발로 인해 생겨나는 가혹한 행위나 박해 등이 상대적으로 훨씬 적었죠.
이탈리아의 이 자제된 투쟁의 근원은 여러 세기에 걸쳐 뿌리내린 민족적 자존감에 있습니다.
먹을 것과 태양, 물, 토지 등 생존하는 데 직접적으로 필요한 자원이 풍부했던 이탈리아인들은
다른 민족에 비해 민족적 자신감이 더욱 발전했고, 감정적으로 치닫는 처절한 투쟁이 적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생존의 필수 조건들이 충족할수록, 개인은 삶의 기쁨과 함께 보다 높은 단계의 독립심을 가질 수 있게 될 텐데요.
그래서인지 이탈리아인들의 민족적 자존감은 자립의식, 예속 상태를 벗어난 자유, 역사에 대한 깊은 회고, 축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유미주의를 갈망하는 모습 등으로 나타납니다.
이탈리아인들의 유미주의는 특히 음식 영역에서 빛을 발하는데요. 그들에게 음식은 신앙과도 같죠.
따라서 그들의 의식은 음식에 대한 신념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들이 말하는 신념이 담긴 요리는 결코 비싼 음식에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요리 전문가들은 사치를 멸시하고 검소한 식단에 아낌없는 찬사를 던지죠.
또한 칭송할 만한 음식이라면 함께 나누는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해마다 열리는 이탈리아의 다양한 축제들에서 연회 때는 언제나 가장 가난한 이들이 초대되는데요.
큰 광장에서는 누구에게나 무료로 음식을 나눠줍니다.
또한 아무리 고급 레스토랑 일지라도 가장 평범한 서민 음식을 맛볼 수 있죠. 물론 그 맛 역시 보장되어 있고 말입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훌륭한 레스토랑을 찾으려면 ‘트럭 운전사들이 찾는 곳’으로 가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값이 비싼 음식보다는 내실과 풍미를 추구하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진정한 요리가 무엇인지 아는 이들의 음식에 대한 신념을 잘 표현해주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로수길에는 이러한 이탈리아인들의 신념을 생각나게 하는 유러피안 레스토랑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다이닝텐트라는 곳입니다.
다이닝텐트라는 말은 산악용어인데요. 등반 중에 텐트를 쳐서 노곤함을 풀고 식사를 나누는 공간을 말하죠.
이곳 역시 그 다이닝텐트에서 의미를 따서 지친 몸과 마음에 따뜻한 식사와 와인으로 소중한 사람과 함께
활력을 나누는 공간이라는 모토를 내 세운 것 같더군요.
음식을 먹는 공간에 대한 의미도 이탈리아인들의 신념과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훌륭한 음식을 저렴하게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값비싼 음식을 고집하기 보다는 사치를 줄이고 검소하고 깔끔한 요리를 고수한다고 할 수 있죠.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오후, 저는 다이닝텐트를 찾았는데요.
비가 내려서 그런지 정말 등반 중에 하는 다이닝텐트가 생각나더군요.
가게이름의 진정한 의미도 느낄 겸, 비를 내리는 모습을 보며 노곤함을 풀기 위해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가게 내부 천장에는 흰 천을 늘어놓고 랜턴느낌의 조명을 두어 실제 다이닝텐트 안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주도록 해놓았더군요.
전체적인 인테리어도 화이트와 우드 컬러로 배치하여 자연미와 소박하고 정감 있는 다이닝의 느낌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날 메뉴는 썬 고르곤 졸라 파스타와 그리니치 시저 샐러드였습니다.
다이닝텐트에서는 식사를 주문하면 에피타이저로 루꼴라 피자가 나오는데요.
루꼴라는 향이 독특해서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입니다.
하지만 저는 루꼴라의 쌉싸름한 맛과 향을 즐기는 편이라 루꼴라 만으로 향을 낸 듯한 피자가 무척 맘에 들었습니다.
곁들어져 나온 샐러드 역시 새콤달콤한 유자 드레싱으로
식사 전 입맛을 돋우는 에피타이저로 딱인 것 같았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비해 에피타이저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것 같아 흡족하더군요.
썬 고르곤 졸라 파스타는 소스가 매트한 편이라 국물처럼 흐르는 소스 보다는 더 깊이 있고 묵직한 맛이 느껴지더군요.
별다른 재료 보다는 브로콜리와 닭고기를 넣어 매트한 소스 때문에 자칫 느끼해질 수 있는 맛을
산뜻하고 깔끔하게 잡아주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치즈 맛이 색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는데요.
고르곤 졸라 파스타 보다는 까르보나라와 가까웠죠.
하지만 단순히 크림 파스타로 생각했을 땐 훌륭한 편이었습니다.
그리치니 시저 샐러드는 닭고기가 베이컨과 함께 훈제로 구워져 나옵니다.
파마산 치즈가 얇게 슬라이스 되어서 토핑처럼 올라가 있었는데요.
얇게 슬라이스 되어서 얼마나 맛이 느껴질까 싶었지만 그것 만으로도 치즈의 상큼한 풍미가 느껴지더군요.
드레싱은 부드럽고 고소한 시저 드레싱과 함께 향과 맛이 깊은 발사믹 소스도 더해졌습니다.
시저 드레싱은 주로 샐러드에, 발사믹 소스는 주로 고기요리에 많이 쓰이는데요.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먹어보니, 무척 잘 어울리더군요.
고기의 무게감을 발사믹 소스가 더해주고, 샐러드의 상큼함을 시저 드레싱이 잘 살려주어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데코레이션처럼 함께 나온 삶은 달걀에는 독특하게 구운 토마토와 생선젓갈 같은 것이 올라와 있어 굉장히 색달랐는데요.
토마토는 따로 소스가 발라 구웠는지 구웠는데도 굉장히 새콤달콤했지만
생선은 맛이 좀 비린 편이라 해물을 좋아하지 않는 분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니 몸도 마음도, 노곤함이 내려앉는 것 같더군요.
비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비 냄새가 나곤 하죠.
이날의 식사에는 시원한 빗소리와 운치를 더해주는 비 냄새가 더해져 그야말로 분위기 있는 식사이지 않았나 싶은데요.
다비도프 한 대를 꺼내 물어, 비 냄새가 풍기는 식탁 위로 담배의 향까지 더해지니
완벽한 향, 완벽한 분위기, 완벽한 식사를 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요리를 먹는 기쁨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더군요.
비가 내리면 사람은 누구나 마음가짐이나 기분 상태에 변화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요즘처럼 비가 계속되는 날에는 값비싼 음식 보다는 소박하지만 노곤함을 달래줄 음식을 즐겨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우울하게 느껴지던 비가 운치 있는 인테리어처럼 느껴지실 테니까요.
거짓된 방송을 요리하다 '트루맛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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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