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플뢰르 1 - 르아브르를 구경하고는 택시로 옹플뢰르에 도착해 부두에 가다!
5월 26일 루앙역 앞 호텔에서 일어나 오전 6시 30분에 호텔을 나와서 루앙 리브드로테역
Rouen-Rive- Droite 에 가서는 07시에 출발하는 르아브르행 기차 를 탑니다.
기차는 서쪽으로 달려서 8시 04분에 르아브르 Le Havre 역에 도착해서는
에트르타 Etretat 로 가는 버스 시간이 남았기로 시내를 구경 합니다.
스트라스부르 대로를 걸어 법원과 시청 Hotel Ville 을 구경하고 파리거리를 걸어 르 볼킹
에서 상업 도크 를 보고 기차역 옆에 버스터미널 Gare Routiere Le Havre 로 돌아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에트르타 는 시간상 무리인지라 포기하고 옹플뢰르 로 가려니 08시 40분
버스는 이미 출발해 버렸고 다음 버스는 3시간 이나 남은 12시 42분이라 택시 를 탑니다.
노르망디의 보석 3개 도시를 프랑스 여배우에 비유하면 1) 에트르타 는 섹시함과 우아함
을 겸비한 완벽한 미의 프랑스 여배우 에바 그린 을 연상시키고 2) 옹플뢰르 는
아기 자기한 마을이 앙증맞으면서도 우아한 소피 마르소 에 비견되며 3) 도빌 은
카지노와 명품숍에 해변과 영화제로 세련된 멋을 풍기는 줄리엣 비노쉬 에 비유한다네요?
9시 35분에 출발한 택시는 르아브르 시내를 빠져나와 센강 에 이르러 높이 걸린
다리 를 지나 17분후인 9시 52분에 옹플뢰르 중심가 부두 에 도착하는데
미터기는 52유로 나왔는데 고속도로 통행료 를 더 받는건지 60유로를 요구합니다.
엄청난 택시비 에 놀란 마눌은 하루 한군데만 보자며 삐쳐서 토라져버리니 난감한데....
항구로 들어가는 강변에서 눈에 보이는건 부두에 가득 쌓아놓은 그물과 어구 입니다.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건 어부 인지 아님 장사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좌판 을 벌여놓았는데 거기 방금 잡아온 듯한 싱싱한 생선 이 보이는
지라 구경하다 보니 비로소 마눌의 기분이 좀 풀리는듯 해서 안심이 됩니다.
그러고는 다음 코스인 트루빌-도빌 로 가는 버스 시간표 를 확인해야 하는지라...
왼쪽에 부두를 끼고는 택시가 온 길을 되짚어 걸어나와서 시외버스 터미널
Gare Routiere Honfleur 을 찾는데 부두에 전시해 놓은 엄청 큰 닻 이 눈길을 끕니다?
배에서는 생명선과도 같은 닻 이라??? 그러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무적함대 이니
스페인의 펠리페 2세 는 1588년 5월 28일 메디나 시도니아 총사령관에게 선원 9천명
병사 2만여명에 죄수 노꾼 2천여명 으로 구성된 132척의 함대 를 발진시키라고 명합니다.
함대는 벨기에 에 도착해 파르마 장군 육군이 영국 해안에 상륙하도록 도우고 이때 2만명
병사도 상륙시켜 영국을 정복 하라고 명하는데 영국 해군에다가 67척의 네델란드 해군도
경계해야 하는데 네델란드 해안은 수심이 얕으니 함부로 상륙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입니다.
1588년 7월 19일 잉글랜드 순찰선이 무적 함대를 발견해 보고하니 플리머스에 대기
중이던 영국 함대 부사령관인 해적 두목 으로 악명을 떨쳤던 저
프랜시스 드레이크 는 부하 하워드 에게 여섯척의 함선을 이끌고 먼저 출진시킵니다.
급한대로 하워드에게 6척을 주어 먼저 출진시킨후 프랜시스 드레이크 는 다음날 30척의
군선으로 출진해 남하해서는 플리머스 남쪽에서 스페인 무적함대와 조우 하고는
사격했지만 원거리라 피격당하지는 않았으나 배 끼리 충돌 사고 로 다소 피해를 입습니다.
스페인함대는 파르마의 육군과 합류하기 위해 북상했으나 벨기에 해변은 모래언덕에 배가
걸리는 위험을 피해 7월 27일 남쪽인 플랑드르 해안의 칼레 항구 로 들어가는데...
무적 함대는 잉글랜드 함선들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밀집 진형으로 정박 하고 있었습니다.
잉글랜드가 불시에 8척의 화공선 을 내려보내자 당황한 스페인함대는 화공선을 피해 닻줄을
끊고 출항하니 다행히 피하는데는 성공하였지만 일부 선박은 서로 충돌하여 큰
피해를 입었으며 또 닻줄을 끊은지라...... 브리튼섬 해안에서 배를 정박 시킬수 없게 됩니다,
잉글랜드 함선들은 바다로 나온 스페인 무적함대가 재결집하기 전에 공격을 가하였으니
그레이 브라인 해전 에서 양함대는 근거리에서 포격전을 벌였고 전투를 벌인
잉글랜드 함대와 무적함대 양쪽에 사상자가 발생하는데 잉글랜드 함선들은 단
1척도 침몰하지 않은데 비하여 무적함대에서는 두척이 격침되고 세척이 나포 당합니다.
나머지 함선들도 피해를 입은 상태에서 스페인 함대는 거친 북해로 물러나올 수 밖에
없었는데, 잉글랜드 함선들이 포탄을 맞고도 침몰하지 않은 이유는 에스파냐가
시간에 쫃겨 급하게 포탄을 만들면서 너무 급히 식힌지라.... 철포탄의 경도가
높아 발사할 때나 적함의 단단한 부분에 부딪히면서 오히려 부서졌던 때문이라고 합니다.
북해로 밀려난 무적함대 는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군선들을 뚫고 파르마의 육군과 랑데부
하는 것은 불가능 하였으니 브리튼 섬을 돌아 에스파냐로 돌아가는 것 뿐이었는데....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돌아 에스파냐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많은 피해를 입었으니
거친 바다에서 항해를 견디지 못하고 침수되거나 해안에서 암초에 부딪혀 침몰 합니다.
1588년 9월 11일에 무적함대가 코루나항에 도착하였을 때 무적함대는 65척으로 줄었으니
잉글랜드 상륙은 시도도 못해보고 67척이나 되는 배와 수병, 병사들이 사라진
것인데 하루에 무려 6만 듀카트의 돈 을 잡아먹고 사람들이“세상이 생겨난 후로
가장 컸던 함대” 라고 불린 무적함대의 잉글랜드 공격은 참담한 실패 로 끝났습니다.
드디어 버스 터미널 에 도착하니 문은 닫혔지만 밖에 붙어있는 종이에서 버스 출발시간이
1시 20분 인 것을 확인하는데 3시간 가량 남았으니 이 도시 옹플뢰르
Honfleur 를 둘러보면 적당한지라 천천히 도시를 구경하기로 하고 거리를 걷습니다.
거리에는 예쁜 집들이 늘어서고 카페와 레스토랑 도 보이는데 어느 레스토랑에서 내놓은
고기를 굽는 화덕 들이 너무나도 특이해서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구경
하고는 다시 걸으니 이번에는 빨래를 하는건지 뭔지 청동 조각상 이 눈길을 끕니다.
눈을 돌리니 오른쪽 저지대에 벼룩시장 이 보이는데 저건 조금후에 보기로 하고 도로를
건너 왼쪽 언덕으로 접어드니 자그만 공원 이 나오고 거기 여전사가 방패와 칼 을 들고
섰는데 다가가 읽어 보니 Souvenir Francais Aux 잔다르크는 아니고 프랑스인 기념비???
그 뒤로는 비스듬한 언덕에 예쁜 주택에다가 잘 가꾸어진 작은 공원이 보이기로 들어가서
나무와 꽃 들을 구경하는데 그 뒤쪽에 고풍스러운 성당 이 보이니 문득 동아일보
장재웅 기자가 쓴 “억만장자 30%가 유대인... 성공 부르는 9가지 생각법” 이 떠오릅니다.
"빌 게이츠, 존 록펠러, 스티븐 스필버그, 마크 저커버그,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 정도로 유명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전부 유대인 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유대인이 세계 인구
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0.2%. 하지만 이 유대인들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의 42%, 세계 억만장자의 30% 에 달하며 미국 상·하원의 주요 지위 를 차지하고 있다."
"소수민족에 불과한 유대인이 세계경제와 정치 를 주름잡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들을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유대인 생각공부’의
저자인 쑤린 하버드대 교수는 유대인들만의 독특한 생각법 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유대인들은 디테일하게 집요하고, 남과 같은 길을 걷지 않으며, 함께 부를 얻고
나누는 방법을 모색 하고, 더불어 경쟁하기를 좋아하는
유대인식 비즈니스 생각법이 유대인을‘부와 지혜의 대명사’로 만들었다는 것."
"책은 유대인식 생각법을 끊임없는 생각, 인맥 형성, 혁신적 사고, 협상법,
마케팅, 부의 관리, 팀워크 등 총 9가지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부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 하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이란 사물이나 상황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 를 말한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활용해 “당신이 누구든, 나이가
몇살이든, 지금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든, 학력이 높든 낮든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오직 한 가지, 적극적으로 생각하기만 하면 당신도 돈을
벌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라고 주장 한다."
"저자는 또 타인을 활용하는 것 역시 유대인식 생각법의 핵심 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적 호텔 체인‘힐턴’의 창업자 콘래드 힐턴 이
처음에 호텔 건립을 추진할 때에는 수중에는 10만 달러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토지 소유주였던 로드믹과의 거래 를 통해 1925년 힐턴 호텔을
완공했고 이를 기점으로 오늘날 전 세계에 호텔 체인을 가진 거부로
성장했다. 책은 이밖에도 남과 다른 생각으로 큰돈을 번 많은
유대인 사업가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나의홈: cafe.daum.net/baikall
첫댓글 이제 '대한민국'은
•일본을 넘어서
•독일을 이기고
•영국을 이기고
•미국을 이겨야 된다.
이것이 우리의 도전의 대상인 것이다.
•은밀하고 •치밀한 전략과 전술로
각고의 인내와 과감한 실행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이루어 낼 수 있는
도전이고 성취인 것이다.
부자되시기바랍니다.😁😁
마지막에 부자 되라는
말씀에 눈이 번쩍 뜨입니다.
옹플레르 노르망디
몽상미셀 갈때 들렸던 해안 도시
같은데 제기억이 틀릴수도
반가워서 적어봅니다
감사합니다 ~^^
아? 예..... 맞습니다.
저희는 며칠 후에 르망디며
몽셀미셀에 브르타뉴까지 내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