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갈루아족이 기원전 5세기 경에 아일랜드로 건너와 토종 민족 게일족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다음 붉은 머리 켈트족이 건너왔다.
5세기에 성 패트릭이 아일랜드에 가톨릭교를 전파했다. 성 패트릭 축일은 아일랜드 최대의 축일이다.
그러나 8세기부터 11세기 초에 걸쳐 바이킹족이 침략했다.
오랜 기간 바이킹족의 공격에 시달린 후 그들의 세력이 약해질 무렵인 1172년 또다시
헨리 2세의 잉글랜드군이 침략해왔다.
수도인 더블린이 함락되면서 아일랜드는 잉글랜드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나 켈트족은 끈질기게 저항하여 잉글랜드세력을 서서히 몰아냈다.
1534년, 헨리 8세가 대대적인 아일랜드 침략을 감행했다.
이 침략으로 인해 아일랜드는 1937년 정식 독립될 때까지 약 400년을 잉글랜드의 식민지 통치를 받았다.
헨리 2세의 침략으로부터 보면 아일랜드는 약 800년간을 독립을 위해 싸운,
말 그대로 저항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북아일랜드의 역사는 종교갈등의 역사이기도 하다.
북아일랜드 종교갈등은 18세기 스코틀랜드 장로교인들이 17세기 올리버 크롬웰의 침공으로
영국의 식민지가 된 아일랜드에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현재 북아일랜드의 얼스터에 이주온 장로교인들은 가톨릭교도들을 밀어내고,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이들의 후손들은 지금도 정치,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기득권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아일랜드 사람들은 수백년이나 영국에서 온 개신교인들에게 차별과 억압을 받았고,
이들의 불만은 부활절 봉기(1916년), 아일랜드 공화국군 결성 등의 무장투쟁으로 폭발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가톨릭을 신봉함으로서 아일랜드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한 것도
영국 개신교인들의 아일랜드 사람 지배에 기인한다.
하지만 지주계급들은 가톨릭에서 장로교로 교파를 바꿈으로써 그들의 재산을 지키고자 하였다.
1800년대 중반에 대기근이 닥쳐 1100여만 명이었던 아일랜드의 인구는 절반으로 떨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포함한 해외로 이주했다.
아일랜드의 민요들이 슬픈 이유도 영국의 식민통치와 대기근이라는 비극적인 아일랜드 역사에
기인한 것이다.[3]
1916년 부활절 봉기와 영국-아일랜드 전쟁을 거쳐 1921년 영국-아일랜드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아일랜드의 32개주 중 남부 26개주가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독립했다.
1년 후 아일랜드 내전이 일어났다.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로의 귀속을 바라는 주민과 그에 반대해 영국의 일부로 잔류하기를 바라는
주민 사이에 대립이 계속 되어지는 내전..
ㅡ 여기까지는 참고자료를 인용했습니다..ㅡ
북아일랜드의 <멈추지 않은 아픔>을 노래한 것으로 처음에는 가사도 없이 음률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다가 훗날 아일랜드 내전이 극심했을때 저항하고자 군대에 나가는 아들에게
"오 너의 이름은 대니보이~~"로 시작하는 가사가 만들어진
북아일랜드의 슬픈역사가 담겨진 노래라고 합니다..
Danny boy 90913.mp3
첫댓글 아 이상합니다.
몇번 시도 했는데 음악이 한번은 들리는데 바로 죽어버리네요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와운님 허락이 되신다면 휴대폰으로 한번 들어보심이 어떨까 합니다.
휴대폰으로 사이방 카폐에 들어가시면 글도 볼 수 있고 음악도 들립니다.
섹소폰 악기는 테너로 연주된 것입니다.^^
라스포사님, I love you~, Ich liebe dich, 영감님이 보시드라도, 따님과 사위가 보드라도 상관없응꼐~~~
Sil Austen 이 밥굶을 일은 없겠지만... 테너섹소폰 이니 엘토섹소폰 이니 설명 않으셔도....
지금 몇번째 잘 듣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Headphone으로 듣고 있는데 Stereokanal 분리가
선명하고 음감이 정말 좋습니다 그리고 나에겐 아일랜드의 Ballina란 곳에 연어 낚시를
다녔는데 기맥히고 멋진 아련한 추억이 있어서... Mrs Dauherty에게 이 노래를 바칩니다
라스포사님 감사 합니다 Mrs. Dauherty 와 나는 Platonic love를 하는 연인사이 였다면
이해가 되는지요. 그녀의 작은 아들이 bonn에도 다녀가고....
@臥雲 金景郁 지금 내 침실의 침대 머리맡엔 Irish Cottage(아일랜드 오두막)이 놓여 있는데 밑바닥에
옛날 벽시계 테엽감아 주드시 테엽을 감게 되어있고 놓아두면 아일랜드 민요가 흘러나오는 것인데
그녀의 남편이고 가장인 Vincent Dauherty 가 선물로 골른 것인데 37년이란 세월이 흘렀어도 지금도
청초한 멜로디는 변함없이 애절하게 잘 들립니다 이 Vincent Dauherty 가 자기 부인 못지않게
나를 좋아 했답니다 그 우정의 기폭제가 된것이 내가 부른 O danny Boy 였었답니다
언젠가 내가 한번 그때의 추억담을 쓴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여러 버전의 오 데니보이가
올라 온적도 있었고... 또한 아련한 추억입니다
아~ 이제서야 무슨 말인지...ㅎㅎ 아까 내가 처음 들을때에는 음악이 무한반복이 되도록
설정이 되어 있었는데... 우리 사랑방에 운영자나 다음카페 관계자가 고칠수가 있겠지요
간단 합니다 백초방장님이나 원평재님께 문의해 보십시오 embed 이라는 곳에
음악을 무한대로 계속하는 명령어가 무엇인지... 아마 숫자로 표시가 될것입니다
-1 이라든가 0 이라든가 하도 오래된 옛날이라... 아녜스 언냐 에게 물어보면
가장 빠를 것인데 밉상을 보였으니 ㅎㅎㅎ
라스포사님, 이곳에 답글을 달려고 몇자 쓰고 있는데 서울애 사는 제
조카가 스카이프에서 대화신청을 하기에 두어시간 통화를 했었네요
세계를 주름잡고 다닌 사람인데... 87개국을 나돌아 다니면서 기계도
지금은 무한반복의 연주가 진행되고 있네요 확인 인즏도장 (쾅)
와운님,
Me,too.
플라토닉 사랑할 줄 아시는 분,쵝5입니다.(엄지,척!^^)
음악에 대해 격찬을 해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1800년대 중반의 대기근ㅡㅡ,감자에 병균 침입으로 전 국토의 감자농사가 완전히 폐농-----지금 미국에 있는 Irish들의 대부분은, 이때 이민 온 사람등의 후예
독립과정에서ㅡPIRA~IRA의 무장 저항-------여러번 영화로 태어났지요
탄아님,
위에 본문 글 기억하시지요?
언젠가 탄아님께서 대니보이 신청하셨을때
음악만 올리기 뭐해서 급하게 요약해 올려드려서 죄송합니다 했더니
탄아님께서 칭찬해주셨던...^^
라스포사님, 먼저 사과부터 드립니다 나 스스로가 드리는 사과입니다
끝말잇기 방에서 부탁드린 노래가 이쪽방에 오니깐 벌써 흘러나오고 있고
멋진 섹소폰 소리가 너무 매혹적 이었기에 좋아서 어쩔줄 몰라서 그런 무례한
글을 적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늙은이 노망을해서 망발을 한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눈을뜨고 타블렛으로 이곳에 연결을 해 보았는데 노래가 자동으로
시작이 안되고 내가 시작을 눌러야만 시작이 되고 또 한번 끝나면 정지상태가 되구요
그런데 지금 내 컴퓨터를 켜니까 자동시작도 되고 무한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방장님이나 언냐가 고쳐 놓았지 않나 싶군요 어쩜 스포사님이 직접?
와운님께서 라스포사 한테
무례한 글을 적어 사과할 만큼한 내용은 없는걸로 아는데요...?
어떤 글을 말씀 하신건지요?
궁금합니다. 진짜로!^^
한국을 떠나온지 근 50년이 되다보니... 지금 한국사람들이 무얼 어떻게 생각들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사실 사과할게 하나도 없다는 말씀이 맞습니다
I love you 라거나 Ich liebe dich 라는 말... 너무 무례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에...
그리고 참 Mrs. Dauherty는 나보다 서너살 연상의 여인이었고 약간
붉은 빛이도는 금발의 여인이었는데 새파란 눈빛이 너무 인상적 이었답니다
미국 영화배우 Maureen O"hara 라고 있었는데 그런 타잎이었답니다
머리끝 부터 발끝까지 신앙심이 지극한 카톨릭 신도였었고...남편과 아들만 둘
남편이 낚시점 경영, 그녀는 커피를 팔기도 하고... 내가 부른는 Danny boy를 듣고
눈물이 글썽...
하하하~와운님..^^
저는 오히려 사랑한다는 표현을 해주셔서
Danke Schson 이렇게 대답하면 와운님이
그 대답에 심심해 하실것 같아서 Me,too.
라고 응대해드렸는데요.^^
( 난,또 뭐라고...ㅋㅋㅋ☜혼잣말)
@라스포사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다행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한층 더 솟구칩니다
Danke Schoen 의 표기가 잘못 되었군요
(그럴줄 알았으면 사랑한단 말 몇 번쯤 더할걸...E- Ce 혼자서 궁시렁 궁시렁)
대니 보이가 즐거운 노래 중의 하나인걸로 여겼던 중고등학교 시절이 있었지요~~~.
북아일랜드에 런던데리가 있습니다. 여기는 런던 근교에서온 사람들이 모여살며
또하나의 런던을 꿈꾸던 동네이고 지명으로도 고착이 되고---
참으로 고향이니 지연이니 하는 건 무엇인지---.
미국에 가서 사는 우리 교민들의 마음도 잠시 살펴보게 되는군요~~~.
요즈음 교민 작가 표창을 많이합니다. 내가 미 동부 서부에서 익히 알던 노인들이 상타러 들어옵니다---.
과거의 이름은 데리였었고 영국식민지 이후
칙허장을 받으면서 데리가 런던데리로 바뀌였다고 한다지요.
대니보이는 가락뿐만 아니라 가사까지도 굉장히 애상적, 감상적이며
하강이미지가 많이 사용되고 있는 음악이지요
타국에서 교민들의 마음을 살펴주시는 원평제님의 배려심이 애국이라 감히 생각합니다.
제발 민족의식이 있고 옳고 바은 사람이 상을 받았으면....
나라 국위를 선양하기는 커녕 나라 망신만 시킨 자식들이 이놈의
자식을 그냥~ 내 집에 하 많은 세월을 들락거리고 했던 자식인데
본 대학교에서 공부한다고 얼씬거리던 자식이... 나라 망신을 시킨적이 있어서
내 집에 온 자식을 멱살을 잡아서 다시 내 집 앞에서 얼씬만 한다면 패 죽이겠다고...
작년인가 대한민국 건국 몇주년인가 KBS 특집방송에서 가애란인가 하는 여자
아나운서와 한 남자 아나운서가 진행한 프로그램에 나와서...
독일에서 조국발전을 위해서 노력했다나... 몇년 전부터 Moy 강의 연어알을
부화시켜 독일 라인강의 여러 지류에서 방류하기도 한답니다
내가 낚시질 하던 도시는 Ballina 인데 River Moy 강이 대서양으로 흘러드는곳인데
영국왕실에 이 Moy강의 연어를 갖다 먹는다고 하더이다 북 아릴랜드와도 가까운
도시이고 내가 다닐때는 한국여권을 가지고 있을때라 입국비자를 받았어야 했고 혹시
일본의 적군파(Rote Arme Fraktion RAF)가 아닌가 입국심사때 굉장히 까다로웠답니다
아일랜드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만약 종교가 없다면 전쟁이 훨씬 적지 않을까
셍긱헤 봅니다 특히 기독교...모슬렘도 알고보면 기독교에 연원을 두고 있지요
메시야가 누군지 성경의 해석 문제이지... 런던데리에 가보면 살벌 했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을 할수 있는곳이 있지요
인류 역사상 종교가 없을수 도 없는것이겠지만
그러나 와운님의 생각이 맞습니다
모든 전쟁은 종교전쟁이었으니말이죠..
그러나저러나 참 궁금합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연상의 여인과
아름답게 교재가 진행중이신지?
참 좋으시겠어요
부러워서요...^^
@라스포사 나는 한번 인연을 맺으면 배신을 한다던가 도저히 용서할수 없는 짓을 하지 않는한
우정이란 영원한 것입니다 내가 죽는날까지 그녀는 내 가슴속에 남아 있을것 입니다
아마 그녀도 나를 잊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요
사랑하고 사모한다는 것은 꼭 서신연락을 한다거나 전화로 안부를 묻고 하면
너무 세속적이고 플라토닉 러브로 승화할수가 없지 않을까요?
네가 어떻게 그 노래를 아느냐고 눈이 둥그래지고... 우리나라에서 중학교때
아일랜드 민요라고 배웠다고 설명을 하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설명도 하고...
사실 우리 낚시협회 회원 한명과 같이 낚시여행을 가서 알게 되었는데 짧게나마
다시 글을 한번 써야 할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