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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겸 총리, 왕실 직속 경제위원장,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구단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혁 행보를 행하는 차기 왕위 계승권자이자 국제 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은 독재자1 2 3 4 5 로 왕자만 수백명이 있는 숨막히는 권력다툼으로 점철된 사우디 왕가에서 치밀한 모략과 음모로 경쟁자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1인자로 올라선 권모술수의 화신 같은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항상 그렇듯이,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암살이나 납치 같은 무리수도 서슴치 않고 있다. 약간 살집이 있는 이른바 후덕한 몸에 언론에 노출될 때마다 잇몸이 드러나도록 짓는 함박웃음 때문에 겉으로 보여지는 외모와 인상은 좋은 편인데 하는 짓은 매우 야심차고 비정하여 외견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한국 언론에서는 이 인물을 빈 살만 왕세자라고 지칭하는데, 빈 살만은 이름이 아니라 살만의 아들이라는 뜻이고, 이름은 무함마드이다. 사실 왕세자 즉위 이전 국방장관 시절에는 '무함마드'라고 제대로 표기한 기사가 검색되지만, 무함마드 빈 살만이 왕세자로 책봉된 이후로는 '빈 살만'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아마도 전임 왕세자 이름이 무함마드 빈 나예프였기 때문에, 둘을 구분하려고 이렇게 한 듯하다. 서구식 이름에서 앞부분이 이름(given name), 뒷부분이 성(family name)의 역할을 하고 그 중에서 뒷부분 이름이 공식 석상에서 더 격식 있게 쓰이는 것에 우리가 익숙해진 탓에 흔히 저지르곤 하는 실수인 듯도 하다. 예컨대 오사마 빈 라덴도 흔히 줄여 부를 땐 '빈 라덴'으로 불리곤 했던 것을 참고할 수 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무함마드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오죽하면 뭐든 할 수 있는 돈과 권력이 있다고 별명마저 Mr. Everything(미스터 에브리띵)이라고 불릴 정도.
국방장관에 이어 총리 겸 왕세자로 실질적으로 사우디를 통치하고 있다. 아버지가 여전히 국왕이긴 하지만 87세의 고령이기 때문.
1985년 8월 31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왕자와 그의 세 번째 아내 파다 빈트 팔라 알 히슬레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살만 왕자는 히슬라인 왕자비 사이에서 총 6명의 자식들을 두었는데 무함마드 빈 살만은 개중에서 장남이었다. 하지만 살만 왕자가 그전부터 왕비와 첩실들이 많았던 탓에 전체적으로 보면 8번째 자식이자 7번째로 태어난 아들이었다. 빈 살만의 어머니는 교육열이 매우 강했고, 아버지가 집에 있으면 반드시 겸상을 시켰다고 한다. 아버지는 정이 많은 성격이어서 기부를 자주 했는데 그게 걱정된 15세의 빈 살만은 장사를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고 16세 생일 이후로 가지고 있는 금과 패물 등을 팔아 투자를 했고 엄청난 개인 재산을 모았다.
그리고 국내대학인 킹 사우드 대학교에 수석입학하여 아버지의 총애를 얻었다. 대학교를 전체 4위로 졸업한 이후 사우디 정부를 돕는 민간 컨설턴트로 몇 년동안 일하면서 사회 경험을 쌓았다. 대학생 때부터 아버지 주변에서 보고 배운 것이 많아서였는지 2009년에 당시 리야드 주지사였던 아버지의 특별 고문역으로 직업정치에 입문했다. 리야드 경쟁력위원회 위원장, 킹 압둘아지즈 연구보존재단의 이사장 특별 고문 등 다양한 직위들을 꿰차면서 점차 권력을 쌓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때 아버지 살만 빈 압둘아지즈와 함께, 리야드주에 대부분 거주하는 수천명에 달하는 사우디 배다른 왕자들의 부패와 갑질같은 왕실의 품위를 해치는 행위를 단속하는 공식 윤리위원회를 만들어서 이들을 단속하는 역할에 앞장서서 사우디의 젊은이들에게 민심을 얻었다고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무함마드 빈 살만은 권력 좀 있는 왕자의 아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당시 왕세제였던 술탄 빈 압둘아지즈 왕자가 2011년 10월 건강 악화로 사망하고, 그 뒤를 이어 새로운 왕세제가 된 나예프 빈 압둘아지즈 왕자마저도 건강 악화로 연달아 사망하면서 아버지 살만 빈 압둘아지즈 왕자가 마침내 새 왕세제로 등극하면서 무함마드 빈 살만의 지위도 껑충 뛰어오를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은 2015년 1월 23일에 압둘라 국왕이 세상을 떠나자 살만 빈 압둘아지즈가 새로운 국왕이 되었고 무함마드 빈 살만은 실질적인 2인자 위치의 국방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살만 국왕은 즉위 직후 전 왕세제였던 나예프 빈 압둘아지즈 왕자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였던 무함마드 빈 나예프 왕자를 후계자로 임명했다. 물론 살만 국왕 역시 마음이야 제 아들을 왕세자로 임명하고 싶었지만 아직 왕위 계승 구도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왕조의 균열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무함마드 빈 나예프 왕자를 자리에 앉혔던 것. 대신 마음 속에 점찍어두고 있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를 권력의 핵심인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각종 권한들을 몰아줬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 남쪽 예멘에서는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2014년 말에 시아파인 후티가 예멘 북부를 장악하고 만수르 하디 대통령과 내각이 총사퇴를 당하자 바로 인접한 수니파 국가 사우디아라비아도 비상이 걸린 것.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가 국방장관에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내린 명령이 후티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과 해상 봉쇄였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후티를 몰아내고 만수르 하디 대통령을 다시 복권시키고 싶었지만, 후티의 반발이 지나치게 거셌을 뿐더러 결정적으로 시아파 국가 이란이 후티를 원조해주면서 기나긴 소모전으로 끌려들어가고야 말았다. 2015년에는 반테러 활동 및 대IS 군사 개입을 위해 서아시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 34개국이 참여하는 이슬람 대테러 군사동맹의 창설을 발표하였다. 사령부는 리야드이다.
사촌형을 몰아내고 왕세자가 되다
살만 국왕이 조카 무함마드 빈 나예프 왕자를 일단 왕세자로 지명하긴 했다지만, 형제간 암투가 횡행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친아들도 아닌 조카가 왕세자 자리에 앉아있는 게 국왕의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결국 2017년 6월 21일, 살만 국왕은 나예프 왕자를 폐하고 친아들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를 새 왕세자로 봉한다는 칙령을 내렸다. 사실 국왕의 친아들도 아니었던 나예프 왕자가 왕세자 자리에서 쫓겨날 거란 관측은 2015년부터 쭉 제기되어왔던 추측이었다. 어쨌든 이에 따라 왕위 계승에 있어서 세대교체는 물론이거니와 사우디아라비아 초대 계승 이후 두 번째로 부자(父子) 상속까지 확정지었다.
무함마드 빈 살만이 마침내 왕세자 자리에 올라가자 국제적으로도 그의 왕세자 즉위에 축하하는 말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까운 협력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으며, 무함마드 왕세자와 트럼프 대통령은 테러리즘에 대한 공동 대응, 카타르와의 외교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 등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도 함께 대응할 것을 천명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만한게 당시 무함마드 왕세자의 발언인데, 무함마드 왕세자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없었다면 우리는 북한 꼴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립서비스도 했다.
한편 기존 왕세자였던 나예프 왕자는 꼴이 꽤나 비참해졌다. 3월 6일 미영 언론이 나예프 왕자의 체포를 보도한 뒤 왕명에 따라 모든 직위에서 강제로 쫓겨났다. 뿐만 아니라 2020년 3월 이래로 아직까지도 왕궁 감옥에 삼촌이나 이복형제 등 인척들과 함께 사실상 감금되어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은행 계좌는 2017년 완전히 동결당했고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출국하는 게 금지당했을 정도니 정말 완벽하게 몰락했다고 보아도 좋을 수준이다. 뉴욕 타임스는 '나예프 왕자가 몇 시간 동안 제 의지에 반하여 왕좌를 포기하라는 압력을 받았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2017년 대숙청
내가 장담합니다. 그 누구도 부패 혐의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겁니다. 그가 누구든지, 심지어 왕자거나 장관일지라도 말입니다.
2017년 5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의 경고.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는 왕세자 자리에 오른 이후에도 숙청의 고삐를 놓을 생각이 없었다. 나예프 전 왕세자야 쫒겨났다지만 전대 국왕이던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의 파벌이 여전히 존속하고 있었기 때문. 새롭게 왕위에 즉위한 살만 국왕 역시 전대 압둘라 국왕의 파벌이 아니꼬왔던 건 마찬가지였던 터라 왕세자를 도와 압둘라 파벌을 쓸어버릴 작정에 나섰다. 그리고 이 압둘라 파벌과 무함마드 왕세자 사이의 갈등이 한번에 터져나온 대사건이 바로 2017년의 왕족 숙청이다.
2017년 11월 4일에 무함마드 왕세자는 500여 명에 달하는 정재계 고위 인사들을 체포해 리야드의 리츠-칼튼 호텔에 감금해버렸다. 사우디 은행은 2,000여 개가 넘어가는 은행 계좌를 동결했고 혹시나 개인용 제트기로 도망칠까봐 공군을 동원하기까지 했다. 왕자 11명이 한꺼번에 줄줄이 잡혀들어왔고 4명의 장관들이 체포당했다. 가장 대표적인 숙청 대상으로는 억만장자 사업가였던 알 왈리드 빈 탈랄, 압둘라 전 국왕의 아들인 무타이브 빈 압둘라 왕자, 투르키 빈 압둘라 왕자 등으로, 사우디에서도 한가닥한다는 인물들이 모두 구금당했다. 심지어 구금당한건지 죽은건지 확실하지 않은 인물도 있다. 전 파흐드 국왕의 아들 압둘아지즈 빈 파흐드 왕자가 군인들에게 저항하다가 살해당했다는 루머가 있었고, 만수르 빈 무크린 왕자도 개인 헬리콥터를 타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격추당해 사망했다는 말까지도 있다.
2017년 11월 6일 리츠칼튼 호텔에 감금된 사람들과 그들을 둘러싼 군인들. 당시 상황을 찍은 희귀한 사진들 중 하나다.
한국에도 자주 오던 세계적인 투자가인 왈리드 왕자도 14조 넘는 재산중에서 6조원이 넘는 재산을 벌금으로 내야 했다.
한편 리츠칼튼 호텔에 감금된 사람들도 상황은 좋지 못했다. 감금된 인사들은 구타의 밤이라는 무시무시한 명칭으로 불릴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는데, 거의 대부분은 구타와 폭행을 당한 걸로 추정되며 일부는 사우디 요원에게 고문당하느라 벽에 묶여있기도 했다고 한다. 구금자들은 자신이 갇힌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심문관 앞에서 강제 심문을 받았고, 일부는 제네바의 은행에서 돈을 인출해 가지고 오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당연히 잠을 재우지도 않았고 원하는 정보를 불 때까지 머리를 가리고 구타했다. 약 17명은 하도 맞아서 입원해야할 정도였다고. 며칠 후 나머지 수감자들은 알 하이르 감옥으로 이송되었고 일부는 풀려났지만 해외 출국이 금지된 채로 자택감금에 처해졌다. 이 과정에서 민간군사기업 내에서도 악명 높은 블랙워터를 고용해 강도 높은 심문과 고문을 행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어마어마한 대숙청으로 인해 결국 빈살만의 적대하는 파벌은 완전히 몰락했고 살만 현 국왕과 무함마드 왕세자의 파벌이 득세하는 데 성공한다. 이 대숙청의 최고 수혜자는 당연히 무함마드 왕세자였다. 웬만한 경쟁자들을 싸그리 날려버렸을 뿐만 아니라 보안군 3개 부문에 대한 통제권을 완벽히 장악하면서 초대 국왕 이븐 사우드 이래 사우디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한을 거머쥔 인물로 급부상하게 되었던 것. 이 대숙청은 2019년 1월 30일까지 쭉 계속되었고, 총 381명이 체포당했으며 그 결과 1,070억 달러가 국고로 회수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숙청의 공식 이유는 부정부패, 횡령, 공권력 남용 등 다양했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반대파에 대한 일괄 숙청이었다. 사우디는 22부족의 여성들을 맞이한 초대왕의 유언에 따라 형제상속을 근거로 하고 있었고 이는 22부족이 행정부의 각부서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중 하사 빈트 아메드 알 수다이리의 7명의 아들은 매우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었는데 22명이나 되는 아내가 40명이 넘는 아들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하나 단 한명이 7명의 아들을 낳았다는건 그만큼 왕에게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는게 되고,배후의 수다이리 부족 역시 매우 강력한 부족이라 2명의 왕과 2명의 왕세자를 배출할만큼 권력이 편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수다이리7이 합의해서 세운 빈 나예프를 빈 살만이 겁박해 왕세자 자리를 빼았으면서, 원래 35명의 아들에 해당하는 반대파 가문은 물론이고 수다이리 7중 6명마저 살만가계에 적대적으로 돌아서면서 살만 국왕과 빈살만 왕세자는 왕실내에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우디는 여전히 부족이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는 중동의 왕정이며 각 파벌마다 외교부,종교부,재정부 등등 행정부처들을 봉역처럼 가지고 있었다. 이들 파벌들이 적대적으로 돌아서면서 왕실내에 언제 사단이 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친위 쿠데타로 선수를 쳐서 왕실 파벌들을 일제히 제거해버린 것이다.
한편으로 당시 파탄 지경에 빠진 사우디의 재정상태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코로나 당시 유가가 사우디의 균형재정수지에 크게 미달하는 상황을 맞아 사우디의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치고 있었고 아람코 공개, 부가세 5% 도입, 부가세 15% 인상등 숨막힐정도로 가파르게 재정확보를 위한 노력이 있어왔으며 왕실의 후한 재정살포로 유지되고 있던 왕가의 지지도와 민심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교육 이런 상황에서 왕족들의 재산을 몰수 하지 않고서는 재정을 유지하는게 불가능했다. 이후 유가가 오르면서 사우디 재정은 다시 숨통이 트이고 아람코 공개는 취소되었으며 이 당시 재정압박에 시달린 빈살만은 네옴 시티같은 비석유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이 사건으로 사우디는 명실상부한 전제군주제 국가가 되었다. 이전에도 사우디는 제도상으로는 이미 전제군주제였지만 복잡한 왕실파벌과 종교계를 주도하는 와하브 가문 때문에 왕의 실권은 크게 제약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것은 동시에 사우디의 내적 안정성을 흔드는 행위이기에 향후 어덯게 될지는 지켜볼만한 문제다. 부족국가에서 한부족, 한가계가 폭주하여 권력을 집중시킬 경우 자칫 잘못하면 쿠데타나 내전이 발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멀리볼거 없이 사우드 왕조가문이 메카를 통치하던 하심가문을 쫒아낸 것도 하심가문이 칼리프를 선언하는 등 지나치게 강하고 넓은 영향력을 획득하려는 것에 대한 부족들의 반감을 이용한 것이다.
이웃 터키나 페르사이 문명권이 전제정을 만들었던 것과 다르게 부족정 전통이 강한 아랍에서는 카리스마 강한 인물이 몇십년,한세대를 억누르는데 성공한 적은 있었으나 끝내 파국이 발생했었다. 이제껏 단 한번도 예외없이 그래왔다. 그래서 아랍국들에서 전제독재정의 전통이 없는 것이다. 각 부족들과 종교계, 보수파들의 지지를 얻을 수가 없는 빈 살만이 정보부를 크게 확대하여 공포정치를 펼치는건 필연적인 일이다.
한편으로 그래서 여성과 젊은이를 지지자로 끌어들이는 형태의 여론형성을 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왕실 가계와 유력한 각 부족 가문의 지지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고, 종교계마저 억누르고 있으니 민심을 잃으면 정말 한순간에 끝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에 대해 보이는 비정한 면모를 보면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하면 이런 정치적 스탠스도 한순간에 돌변할 수 있다. 그야말로 사우디는 명실상부한 아랍의 부유한 북한이 되었다. 좋은 점이라면 귀족공국 특유의 비효율적인 재정운용과 사치 방탕한 문화,권력 사유화와 극심한 부패를 벗어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권력을 독점한 독재자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국가운영의 심각한 불안정성을 품게 된다. 정작 빈살만도 사치스러운 면모는 똑같이 가지고 있고 다소 충동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도 불안한 점인데 레바논 총리 사임압박 같은 외교적 폭거나,네옴시티 같은 건축학,도시공학적으로 말도 안되는 프로젝트가 단 하나의 반대도 없이 시행되는 것이 예시일 것인데, 이런 프로젝트가 모두가 예측하는 대로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도 빈 살만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다.
대미(對美) 의존도 축소
사우디 무함마드의 '미국 패싱' 급물살...'미국의 적' 이란·시리아 연달아 품었다
2020년대에 빈 살만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수십년 동안 고수해온 친미 외교 노선에서 벗어나 탈미국, 독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탈미국 = 반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비슷한 예시로는 튀르키예가 있다. 미국과 러시아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면서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2014년 국제 유가 폭락의 주범으로 지목받아 여타 산유국(주로 이웃나라들)로부터 욕이란 욕은 다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주도했던 오바마 행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라이벌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줄이는 식으로 사우디 측의 뒤통수를 쳤다. 2016년 1월 기사 참고로 아랍 왕정 국가들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그 이스라엘하고도 손을 잡는 마당인데,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 행보는 사우디 입장에서 배신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자말 카쇼기 암살 사건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이 그렇게 티격태격했던 것도 카쇼기라는 언론인이 그렇게 대단하고 중요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왜 해달라는 대로 해줬는데 보상이 없어?', '너희들은 이런이런 잘못이 있으니까 보상해주기 힘들어'라는 제스쳐를 표현한 차원에 가까웠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은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도 줄이고, 그 김에 걸프 아랍 왕정 국가들에게도 석유 증산을 요구하면,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서는 퇴짜를 놓는 것이 당연하다.
2022년 대러시아 경제제재 관련 미국-중동 관계 관련하여 또다른 중요한 변수가 있다. 걸프 아랍 왕정 국가에서 러시아 석유 산업에 투자한 돈이 적지 않은데, 이들 입장에서 서방이 러시아 경제를 망하게 만들면 아랍에미리트 등에서 러시아에 투자한 막대한 투자금 역시 증발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빈 살만이 미국을 견제하면 그동안 같은 아랍 국가들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오던 사우디아라비아 측의 위상도 올라간다. 즉, 빈 살만 정권에서 탈미국 외교로 돌아선 것은 빈 살만이 개인적으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미워해서이다 혹은 '자말 카쇼기 사건 폭로 관련해서 삐졌다' 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해석하기는 어렵다.
이것이 미국이 빈 살만을 대하면서 골머리를 앓는 이유인데 빈살만이 카다피등 전통적인 반미노선을 했다면 차라리 미국으로서도 상대하는 게 훨씬 편했을 것인데, 빈살만은 미국에게 이득을 줄 것은 확실하게 내주면서 사우디아라비아가 필요하다면 미국에 손해를 끼치더라도 확실하게 국익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사우디는 미국에게 사우디아라비아가 더 미국에게 밀착하는 것을 보고 싶다면 사우디아라비아에게 그만큼의 대가를 쥐어달라는 것이고 미국이 사우디에게 충분한 보상을 제공하지 않겠다면 사우디도 자국의 이익만을 적극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미국 기업을 위해 46조 원규모의 미국산 보잉 787 드림라이너 여객기를 주문한 것과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석유 감산으로 유가 하락을 막아 수익을 늘리고 네옴 시티 프로젝트의 안정적 진행을 위하여 이란과 시리아와의 관계 정상화를 추구한 것과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대가로 우라늄 농축 기술과 핵연료 기술 등 민간 핵시설 계획을 지원과 미국산 무기 구입 시 제한 완화를 포함하여 미국 측에 강한 국가 안전보장 조치를 요구한 것이다.
對 이란 정책
2016년 1월, 사우디 정부가 그동안 사우디 내 시아파 운동을 주도해왔고, 이란이 옹호해왔던 사우디의 시아파 성직자 님르바크르 알 님르 등 시아파 인사 47명을 반정부 테러리스트 혐의로 처형하였다. 이에 이란인들은 분노하여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지고 불태우기까지 하였다. 일이 커지자 무함마드 왕세자는 살만 국왕과 함께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이란과 단교를 선언하였고 이란 외교관을 단교선언 48시간 내로 추방하였다.
2018년 3월, 왕세자는 미국의 한 방송에 출연하여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다면 사우디도 핵개발을 할 것"이라는 엄포를 놓았다.
2023년에는 방침을 180도 바꾸어서 이란과 복교를 했다. 이는 매년 시아파 후티 반군과 대결하는 예멘 내전에 수십억불의 전비를 계속 내기는 부담되고, 이란 또한 경제난 때문에 마찬가지 입장이라 서로 이해가 맞아 떨어져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예멘 내전 적극적 개입 및 휴전
아랍에미리트와 다른 걸프 왕정 국가들, 이집트, 이스라엘과 함께 대 이란 포위망을 형성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을 막고자 예멘 내전에 개입하고, 이란과 무슬림 형제단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카타르와 단교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을 막기 위해 UAE, 바레인, 모로코와 정식으로 수교했는데 사우디가 배후에서 이를 지원했다.
하지만 2023년 들어 사우디도 계속 지원에 부담을 느끼고 휴전을 모색하고 있다.
종교 정책
근본 이슬람 종주국 사우디, 온건 이슬람국으로 달라질까
빈 살만의 새로운 사우디아라비아
살만 압둘아지즈 국왕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무함마드 왕세자가 사실상 실권 대부분을 쥔 상황에서, 사우디는 여성 운전을 허용하고 여성 참정권을 허용하는 등 개혁 행보를 이어갔다. 2018년 3월에는 미국 CBS의 인터뷰에 응하며 보수적인 무슬림 수니파 세력에 맞서 여성에 대한 대대적인 사회 변화를 약속하였다. 4월에는 직장에서 남녀가 함께 일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이렇게 와하비즘을 거부하는 행보는,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이슬람 근본주의 일변도로 향하던 중동 왕조 및 국가들의 좋게 말하면 '이슬람 선명성 경쟁', 나쁘게 말하면 '이슬람 극단주의화' 사회 문화에 지쳤고, 이렇게 수구적이고 강경파스러운 행보가 계속된다면 석유 이외에 아무런 산업도 없는 사우디의 현실에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으로 판단하고 있다. 사우디의 동생 국가라고 할 수 있던 아랍에미리트가 자이드 빈 술탄 알나얀의 주도로 이슬람 근본주의와 석유 경제에만 의지하지 않고 개혁과 변화를 통하여 지금의 두바이와 아부다비를 건설하면서 미래의 생존 모델을 보여주고, 젊은 카타르의 아미르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도 UAE에 이어서 과감하게 문호를 개방하고 두바이와 경쟁하는 생존 모델을 잘 운영하는 것에 대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같은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빈 살만은, "앞으로 이슬람 발흥 이전의 중동 역사도 중동 역사로 받아들이겠다" 라고 사회개혁을 주장하는 발언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급진적인 개혁으로 와하브파로 대표되는 이슬람 근본주의 성직자들과 보수파들의 매우 강한 반발과, 쿠데타 우려를 비롯해 극심한 반대를 받을 위험성이 상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4월 28일 이후 4주간 공식석상에 나오지 않았을 때 나온 쿠데타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2023년 현재 빈 살만이 절대권력을 유지하며 권력 장악이 확실한만큼 쿠데타가 벌어지더라도 미국의 지지하에 확고하게 제압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9월 중순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사우디 검찰이 사우디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가 있는 수니파(와하브파) 성직자 3명에 대해 사형(死刑)을 구형하고자 준비하는 중이다. 원래 와하비즘이 국교인 사우디는 와하브파 성직자에 대해서 사형집행까지는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지만, 이 관습을 깨버리고 이슬람 극보수파 율법학자들에게 피의 경고를 함과 동시에 와하브파에게 "사우디 왕가는 율법학자 니네들보다 더 우위에 있으니까 나한테 까불면 진짜로 죽는다." 라는 것을 드러내려고 한다는 분석이 있다.
대내적으로는 여성 노동력을 활용하여 경제를 부양시키고 영화관, 콘서트 등 오락거리를 마련하고 종교경찰의 횡포를 제한하여 국민들의 불만을 달래는 목적이 크다.
탈석유 신성장 정책
석유 판 돈으로 '탈석유' 꿈꾼다…사우디, 1,300조 국제공항도 건설
'석유 없는 시대에도 부국', 사우디 빈 살만의 꿈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를 기존의 석유의존적 경제에서 탈피해 첨단기술과 민간 투자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하는 국가 개발 프로젝트 비전 2030를 추진 중이다.
최첨단 도시 네옴 시티(Neom City) 건설을 계획했다고 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5,000억 달러, 한화 약 679조 6,400억원에 달한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이 도시 계획의 핵심이 될 마천루인 더 라인만 해도 공사 비용이 1조 달러, 한화 약 1,358조 3,500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예산은 그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네옴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 계획 자체는 현실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2018년 8월 말에는 개혁의 최선봉 과제였던 아람코의 기업공개를 아버지인 살만 국왕이 불허하였다. 실권 대부분을 쥐었다고 평가받는 시점에서 나온 이야기라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진 국왕의 절대적 권위에는 이기지 못하니 무함마드의 개혁은 당분간 멈출 것 같다.
2021년에 비영리 도시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e스포츠를 통하여 사우디의 이미지 개선을 시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ESL을 사우디 국영기업이 10억 달러에 인수 한 다음 게이머즈 8이라는 총상금 4,500만 달러의 엄청난 규모의 게임 대회를 개최 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락세였던 스타크래프트 2도 50만 달러라는 큰 상금이 걸린 대회가 열리는데다가 도타 2의 경우는 1500만 달러라는 TI급의 상금이 걸려 오일머니가 얼마나 무서운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레바논 총리 납치 및 사임 협박
2017년 사우디를 방문한 레바논 현 총리를 납치후 사임을 협박하는 대형사고를 쳤다.
당시 사우디에서는 레바논 총리의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한편, 총리의 수행원과도 단절시킨 후 총리에게 사우디 측에서 준비한 사임 발표문을 줘서 읽도록 강요하고 이를 언론 보도하였다. 또 구금 과정에서 사우디 측 요원들이 총리를 떠미는 등 모욕적 대우를 했다고 한다.
결국 강제 사임 발표를 하며 하리리 총리는 암살 위협이 있었다며 이란과 헤즈볼라를 비난했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의해 강제로 사임을 발표했던 레바논 총리는 귀국 후 사임 발표를 공식 철회했다.
4.2.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암살 사건
2018년 10월 2일에 발생한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의 배후로 강력히 의심받았다. 이는 타국 주재 대사관에서 자국민을 상대로 국가가 저지른 잔인한 살해사건으로 부각되었고, 당초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사태를 불러 일으켜 사우디와 무함마드 왕세자에 대한 전 세계의 분노를 초래했다. 사우디의 정치적 우방인 미국조차도 크게 분노하고 우려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이 위기를 수습하지 못하면 국제사회의 압박과 비난 속에 빈 살만의 개혁은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12월 27일에 왕세자는 개각을 단행, 외무장관을 실권이 없는 한직인 무임소장관으로 전출시키고, 4년 만에 국가안보 보좌관을 부활시킴으로 자신의 실권을 더 강화했다. 개각 이후 내각의 힘은 줄이는 동시에 자신의 실권은 늘리고, 외교 경력이 전무한 이브라힘 알 사이프가 외무장관에 임명됨으로 대내외적으로 왕세자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여전할 것이다.
집권 전부터 인권 문제를 외치면서 사우디를 국제적 왕따로 만들겠다던 조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석유값 폭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하자 바로 사우디로 날아가 증산을 해달라며 애걸복걸 한데다가 바이든 면전에서 빈 살만은 사우디가 아직도 왕따인가? 라면서 바이든을 조롱하는 지경에 이르었다.
이후 이란과의 복교, 중국과의 협력 강화로 탈미국 정책 기조를 이어나가자 결국 미국마저도 현실에 타협하고 인권 따위보다는 동맹국이 더 중요하다며 언론인 암살을 명령한 빈살만의 면책 특권을 인정하면서 문제가 될 여지는 소멸했다.
예멘 내전에서의 전쟁범죄
국방부 장관 명목으로 예멘 내전에 개입을 선포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사우디군의 전쟁범죄가 굉장히 심각하다는 UN의 보고서가 있다. 그리고 이 전쟁범죄의 책임자는 대시아파 강경정책의 선봉이자 국방부 장관인 빈 살만이 책임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