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7일 대림 제1주일
오늘은 대림 제1주일입니다. 전례력으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오늘, 교회는 마지막 때에 대하여 묵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세상이 끝나면 그것으로 우리 모두가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오시는 주님에게서 구원을 얻습니다. 대림 시기를 시작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늘 깨어 있도록 합시다.
<너희는 준비하고 깨어 있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4,37-4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7 “노아 때처럼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38 홍수 이전 시대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39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40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2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4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저희가 세상의 진실을 볼 수 있도록 은총으로 도우소서.
‘눈 뜬 봉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은 떴지만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눈을 떴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말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에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라는 속담을 말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눈을 뜨고 보아도 글자를 읽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어서 편지를 거꾸로 들고 읽으려는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눈치가 없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으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리고 30대에서는 ‘할일을 찾지도 못하고, 정신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알아들었고, 40대에 와서는 ‘대세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줄 알게 되었습니다. 또 50대가 되니까 ‘세상실정을 너무 모르는 사람’으로 그 말이 해석되었습니다. 그리고 60대가 되니까 ‘세상의 헛된 것을 보고 미혹해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나는 바로 눈뜬 봉사입니다. 눈에 깍지가 많이 끼입니다. 그래서 잘 볼 수 있는 것도 보지도 못합니다. 또 헛된 것을 보고도 진실인지 가식인지 알아내지를 못합니다.
요즘 ‘노노스족’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습니다. 이 말은 ‘노 로고, 노 브랜드’(No Logo, No Brand)’의 줄임말로, 겉으로 드러난 브랜드에 집착하기 보다는 내실을 중시하는 성향을 나타내는 집단을 나타냅니다. '노노스족'이란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곳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트렌드 정보기획사인 ‘넬리로디’(Nelly Rodi)라 합니다. 이 사람들은 브랜드를 보고 물건을 사지 않고 회사의 로고를 보고도 물건을 사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브랜드에 매달리지 않고 보다 실질적인 상품의 질을 가지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품의 질적 수준이나 평판을 보고 상품을 선호하는 집단으로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실속파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유명 로고, 유명 브랜드’는 별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유명 로고나 브랜드를 선호하는 명품족이 판을 치고 있어 가짜 명품이라도 유명 로고와 브랜드에 집착하는 우리나라의 소비자 의식을 바꿔줄 것입니다. 그래서 가짜가 판을 치는 사회를 올바른 문화와 가치기준에 따른 사회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나는 ‘노노스족’들은 앞으로 우리사회의 중요한 소비자로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마찬가지로 정치가를 뽑을 때 정치적인 술수에 의해서 국민의 대변자인 국회의원이나 지방의회 의원을 선출하지 않고, 국민을 위할 수 있는 진실한 정치가를 뽑아야 합니다. 대통령도 인기에 영합하거나 가짜뉴스에 속아서 대통령을 뽑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사람과 정책을 보고 대통령을 뽑아야 합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 책임이 있는 기업이 사회에 이익이 되는 길을 정도로 밟아야 하며, 노조나 조직이 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 깨어서 일해야 합니다. 가정도 또한 그렇습니다. 지금 가정의 아름다움이 대화와 사랑의 부재로 점점 어두워져가고 있고, 감정의 폭이 커지고 있고, 감정의 폭을 키우는 모든 요인들이 무섭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진실로 눈을 떠서 헛된 거품에 매달리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경제가 얼마나 거품에 시달리며 살고 있으며, 얼마나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삶에서 헤매고 있는지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할 노릇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학문도 그렇고, 학자들도 그렇습니다. 어떤 수준에서 진일보 하려는 의식이 없이 연구논문이라고 발표된 몇몇 연구를 갖고 표절하고, 베껴 쓰고, 재탕하고, 위장하는 일로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교회도 그 진실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단순한 이벤트 행사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아무도 그 속에 파묻힌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냉담한 신자들이 점점 늘어나도 속수무책으로 방관만하고, 청소년들이나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자꾸만 빈약해지고, 영적쇄신은 형식적이며 기복적인 기도나 행태는 점점 많아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에는 교회가 보이지 않고 성당만 보입니다. 큰 행사만 보입니다. 그리고 가장 작은 사람들의 작은 행동은 묻혀버리고 맙니다. 교회를 살아야 하는 이 시대에 공동체는 점차 빛을 잃어버리고, 교회의 대형화에 의해서 사람들은 서로 멀어지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개혁 없이 교회는 표류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구성원은 ‘누군가 이 일을 해 주겠지?’하고 막연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결국 아무도 손을 들어주지 않으면 이런 일은 점점 그 무게 중심을 잃어갈 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깨어있으라.’고 강조하십니다. 잠에서 깨어 있어야 하겠지요. 눈감고 있지 말고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귀를 열고 세상의 작은 소리도 크게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코를 벌름거리며 세상의 냄새도 잘 맡아서 신선한 향기를 찾아내고, 구린내를 구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신맛 단맛, 짠맛 쓴맛, 떫은맛을 구별하고, 매운 것을 잘 느끼라고 하십니다. 비록 지금은 쓴맛이더라도 몸에 좋은 맛을 찾아내어 먹고, 마시고, 그 맛을 세상에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갖 촉각과 영감을 다 발휘해서 작은 움직임도 포착하고 그 진실을 세상에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느 때 그분이 오실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가 ‘눈뜬 봉사’로 있으면 우리의 멸망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불을 보듯 확실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13,11-14ㄱ
형제 여러분, 11 여러분은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이미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12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13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14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축일11월 27일 성 프란치스코 안토니오 파사니 (Francis Anthony Fasani)
신분 : 신부
활동 지역 : 루체라(Lucera)
활동 연도 : 1681-1742년
같은 이름 : 방지거,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소니, 안토니우스,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프란체스꼬, 프란체스꾸스,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쿠스, 프란치스꼬, 프란치스꾸스, 프란치스쿠스, 프랜시스
성 프란치스코 안토니우스 파사니(Franciscus Antonius Fasani, 또는 프란체스코)는 1681년 8월 6일 이탈리아 남동부 풀리아(Puglia)의 루체라에서 태어나 도나투스 안토니우스 요한 니콜라우스 파사니(Donatus Antonius Joannes Nicholaus Fasani)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10세 되던 해에 부친을 잃고 새 아버지와 함께 살아야 했다. 그런데 그의 새 아버지는 좋은 사람으로 프란치스코를 루체라에 있는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 학교에 보내 교육을 받도록 했다.
그는 학업 중에 수도 성소를 깨닫고, 15세 때에 몬테 산 안젤로 고르가노(Monte San Angelo Gorgano)의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여 수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 1705년 9월 19일 모든 학업을 마치고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 무덤 앞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로마(Roma)에서 다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여 1707년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루체라의 수도원으로 돌아와 철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늘 겸손하게 생활하면서 가난한 사람, 병자 그리고 감옥에 갇힌 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또한 그의 학문적 소양이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알기 쉽게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쳤다. 그래서 그는 뛰어난 교수이자 설교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또한 그는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가 반포되기 전에 이미 이에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가졌고, 사람들이 즐겨 부를 수 있는 찬미가를 쓰기도 했다. 또한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를 위한 9일 기도를 작성했으며, 지금도 루체라에서 이런 관습이 전해지고 있다. 그는 1742년 11월 29일 루체라의 수도원에서 선종하였고, 1951년 4월 15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으며, 1986년 4월 13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오늘 축일을 맞은 프란치스코 안토니오 파사니 (Francis Anthony Fasani)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