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한 정거장 가는동안 읽을수 있는 짧은 소설을 스폰소설 이라고 한다는걸 또 한가지 배웠습니다 사람은 죽는날까지 배워도 못다 배운다는 옛말이 맞다는걸 실감합니다 와운의 군대이야기 중 한 토막 입니다
<물어 물어 내 님이 계신곳>을 찿아온 게 아니고 어차피 군복무를 할거라면 최전방에 가서 옳은 군대생활 한번 해 볼까 하는 젊은 혈기에 찿아간 대한민국 육군에서 한곳뿐인 민통선 안에 위치한 탱크중대엘 찿아 갔건만 세상 만천하 어떤 사람이 보아도 모두가 잘 못되었다는 것을 수긍할 일들이 백주 대낮에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 개뿔도 쥐뿔도 모르는 무식한 자식들이 다만 군대 입대가 빨랐다는 그 이유하나 만으로 하급자를 못살게 구는 현실을...
밤에 내무반 불침번을 서는 기갑학교 동기에게 부탁하여 한방중에 나를 꺠워달라고... 악질고참 한놈을 자는놈을 불러내어 탄약고 옆 화장실 뒤편 공터에서 이자식 너 나랑 한판붙자 하고 싸움을 걸었더니 자기가 잘못 했다고... 그러나 그냥 두면 내일 날이 밝으면 무슨 일을 당할지 뻔한 일이기에... 흠씬 두들겨 패주고 너 내일 만약 말썽을 일으킨다면 그땐 정말 죽을줄 알아라고 엄포를 놓고 막사로 돌아 왔었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급자를 폭행한 죄는 군대에서 영창가는게 뻔한데... 아침에 보급품 수령하러 대대본부로 들어가는 차편에 편승하여 대대본부로 갔었지요 한 마디로 말하면 상관에게 보고도 하지않았고 지시도 없이 제 멋대로 갔으니 탈영을 한것이나 마찬가지...
그때 우리 대대본부의 주보(PX) 담당병이 나와 기갑학교 동기이었고 대구가 고향이고 또 내가 기갑학교 학생장으로써 몇달전에 내 인솔하에 모두 같이 12 전차대대를 찿아 왔던 사이였으니... 그 친구를 찿아서 군의관이 어디서 자는지 언제 의무실에 나오는지... 자기도 군의관이 어디서 자는지 알지는 못하나 곧 출근할것이란 말을 했답니다
그때 12 전차대대 군의관은 연대출신 최모중위 였었는데(연대출신 군의관이면 세프란스 병원에서 근무한게 뻔하지요)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도음을 청했답니다 내 PX 담당 최 일병에게 부탁하여 대대 본부중대 사병계 손X대 병장에게 사실을 알려달라 부탁을 해 놓고 나는 운천 11MASH(이동외과병원)으로 후송을 가게 된것입니다
이때 간호장교 중위 이XX 중위를 알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간호사 생활을 했었다고 하더군요 그때 하루는 이 간호장교가 서울에 외출한다기에 사상계나 세대 잡지를 한권 사다달라고 부탁을 한적이 있었답니다 사상계는 없어서 세대를 사 왔다던 기억도...
그 당시 라노비아 와 나이도 어린데 라는 제목으로 이태리 칸소네가 한국에서 엄청 유행했던 시절이었답니다
나이도 어린데 라는 노래는 여러분도 아실테지만 그 당시 싼레모 가요제에서
1등을 해서 유명했던 노래 였답니다
이 간호장교 이 중위가 그 노래를 배우고 싶은데 가사를 모른다나...
그래서 내가 원어로 가사를 적어주었던 적이 있었지요
이태리어가 어렵지 않습니다 노래가사 하나 쯤이야
학교 다닐때 배워 보았지 않습니까? 오 나의 태양(Oh Sole mio) Sul mare lucica la stora gento pracida ronda.... 이런식으로 철자법이야 내가 알바 아니고...
이 이중위가 내가 양평(양수리)에 있는 육군58? 후송병원으로 후송될때 벌써 대위로 진급이 되었답니다 예쁘장한 간호장교 였는데 어떤 군의관 중위가 치근치근 따라 다닌걸 압니다 이중위가 나한테 얘기해 주어서 알았지요
이 후송병원에서 대구 제1 육군병원으로 후송을 가서 제대를 할까 아니면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병역의무를 마칠까 심적 고민을 하다가 원대복귀 하기로 마음을 먹고 원대복귀를 하게 됩니다
이 58 후송병원은 바로 강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나이롱환자들이 굉장히 많았다는걸 알았습니다 심지어 위생병들이 포경수술을 하지않나...
군내부 부조리와 비리... 어디 군내부 문제 뿐 이겠습니까...
또 한가지 이 곳에서 있는동안 어떤 자식하고 달밤에 결투를 한적이 있었답니다 키는 내보다 약간 크고 이 자식도 나이롱 환자였는데 어찌나 잘난 체를 하는지 눈 꼴이 사나워서 한 소리 했더니... 이놈이 태권도를 좀 했다나 어쨋다나...
여러 사람이 다 듣고 알아 버렸으니... 그날 저녁에 십여명이 넘는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달밤에(그날은 유난히도 달이 밝았던 기억이) 관중들이 둘러선 가운데에서 둘이서 맞짱을 떴답니다 이놈이 태권도를 좀 하기는 한 모양이던데 되돌려 발 차기를 시도 해보기도 하고 상단 중단 연속차기도 해보고... 내 자랑 같지만 단 한방도 맞지를 않았고 내 주먹이 그의 얼굴을 두어차례 쥐어박았던 적이... 아마 코피가 터졌던지 피가 나고 보던 관중들이 달려들어 말리고...
후송병원이니 팔다리가 부러져도 문제 될것이 없으니까 안심하고 ㅎㅎㅎ
다시 원대복귀를 했는데 본부중대 사병계를 보았던 손병장(강원도 삼척사람)의 도움으로 문헤리의 3 중대로 가게되었지요
또 대대본부에서 무슨 경축일이나 명절날이면 각 중대대항 노래자랑 같은게 있었는데 우리 3중대가 나가기만 하면 무조건 1등을 했었답니다
그 1등의 1등공신은 3중대 서무계를 보던 삼천포출신의 이정석병장이 기타를 잘 쳐서 한국가요는 물론 팜송반주도 일류급이고 또 그 당시 심사위원이 정보과장을 하던 모 중위님 이었는데 이 양반이 팝송이나 칸소네 또는 샹송에 일가견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냥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그 당시 불렀던 레퍼토리가 Toni Dalara의 La Novia와 Elvis Presley의 It's now or never 였었답니다 한번은 군단장님이 우리 대대를 방문했는데 군인들 복무실태를 시찰 하신다나... 우리 대대에서도 잘보여서 점수 딸려고 사병들의 여가선용이 어떻고 브리핑도 하고...우리 3중대 대표들이 본부중대에 가서 공연연습을 하는걸 보여 드리겠다고 본부중대 내무반에서 노래연습하는 장면을 군단장님께 보여드리겠다고 보여드린 기억도 있습니다
그날 군단장님이 우리가 연습하는 본부중대 내무반에 들어 섰을때 연습을 중단하고 차렸 군단장님께 경례 저희 3중대 연예팀은 여가선용의 일환으로 노래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됐어 됐어 그냥 계속해봐....
우리중대에 대구출신 곽창길 상병이 있었는데 목청좋고 노래를 잘 하는 청년 이었답니다 내가 생각해도 노래한가락은 정말 잘 했는데 그때 부른곡이 홍도야 울지마라 였답니다 이 곽창길 상병이 홍도야 울지마라를 부르고 군단장님이 노래를 약간 들으시더니 대대본부쪽 문으로 나가셨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래고 뭐고 당장 치우고 우리중대로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조금전에 군단장을 수행해서 내무반에 왔었던 우리대대 정보 과장이 돌아 오더니 왜 내가(김경욱일병) 노래를 하지않고 곽상병이 홍도야 울지마라를 불렀는지 곽상병에게 질책을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아니 우릴보고 누가 무슨노래를 부르라고 지시를 했다면 모를까, 자기 한사람의 취향에 맞도록? 또 군단장님은 홍도야 울지마라를 서양 팝송보다 더 좋아 했을지도 누가 안답니까 그리고 우리가 노래연습하는 목적은 군단장님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드리려는건 아니었지요 어쨋건 그런 일화도 있었지요 이 곽창길 상병은 집이 대구 비산동 이라고 했었는데 그때 철원골짜기에서의 그 인연외에는 다시한번 들은적도 본적도 없었답니다
내 기억에의하면 12전차대대는 육본직할부대 이지만 5군단 소속이라 5군단 마크를 왼쪽팔에 로마숫자의 5를 나타내는 V자를 달고 다녔고 그날 시찰오신 군단장님이 유병현 소장으로 기억을 하는데 훗날 내가 월남의 맹호사단에 파병이 되어 사단장 이취임식 현장에서 전임 사단장 채명신 장군과 신임 사단장 유병현 장군의 이취임식때 사단본부 연병장에서 장갑차중대의 기수로서 참가했던 적이 있었답니다 군단장을 하셨던분이 사단장으로 보직을 받았다면 강등한거나 다름이 없을텐데... 하는 생각이 있었답니다 월남이란 해외파병의 특수성 이라던가 그런걸 감안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유병현 장군은 그후 합참의장 주미대사 등등 승승장구 하신걸로... 채명신 장군님은 박대통령 장기집권에 반대했기 때문에 외교관 경력만 쌓았을뿐... 사병묘역에 묻혀 계시지만 저는 그분의 뜻을 잘 압니다 고도웅 중위가 채장군의 부관을 지냈다는 얘기를 풍문에 들었던 적이 있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누가 아신다면 이 글에 댓글이라도 달아서 나의 궁금증을 풀어 주셨으면...
그리고 또 한사람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군인 한사람이 있는데 내가 파월당시 기갑연대장을 하셨던 신현수 대령님...
멋진 군인이다고 강한 인상을 남겼던 분인데(사단장 이취임식 전날 예행연습을 맹호사단본부 연병장에서 했는데 그날 내가 당장 느낀 강한 인상) 훗날 김재규의 군사재판때 재판장 중장 신현수란 표말을 재판정에서 본것 같습니다
자꾸 쓰다보면 스폰수기가 아니라 단편소설이 될것같아
우선 여기서 끝을내겠습니다
첫댓글 와운께서 군대생활을 재미있게하셨네요
하이구 경재형, 재미있게 라니요 아무도 군대생활 또 해볼래 라면 하겠다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지 싶습니다 미군 장교들이 왜 당신 장교가 안 되었느냐고 물었던 사람도
몇명이나 되었지요 서초회 회원들께 새해인사 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경재형 댁에도 만복이 깃들기를 빌겠소이다
아이구, 스폰 수기가 또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겠어요.
정말 이런 스케치가 가독성을 높이겠네요. 특히 와운 같은 총기로 지나간 날을 사진 박듯하면
누가 시선을 꽂지 않으리오~~~.
나야 친구들과 술판 잡담이나 사랑방 한담정도로 밖에야~ 문제는 문학을 발전 시킬
목원형 같은 재주꾼이 자꾸 늙어가고 시간이 갈수록 글쓰는 감각도 무디어 지고...
세월 이기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얘기만 만들어 내는 창작이 아니라 형이 쓰는 글을 보면
박학다식 하다는걸 느낄수가 있지요 너무 늦기전에 부지런히 창작활동에 힘쓰시길...
Oscar Wilde의 The Picture of Dorian Gray 나 Norman Whitney의 The Stranger 같은걸
읽어봐도 그 정도라면 목원형은 한달에도 몇편을 쓰지 않을까 싶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와운께서 이곳사정을 꽤뚤어알고계시네요
서초회도 아시고,
경재형, 서초회원 절반이상은 알고 있지요 지금은 고인이 된 모양인데
오석배 원장(용인 정신병원?)은 학교에 다닐때 부터도 사람이 무던하고
그런 친구 였지요 이상국이는 내가 몰라보겠기에 저 장태완장군 닮은 사람이
누고? 하고 물었던 적도 있었고... 권기진이 한테는 인사도 전해주마 해 놓고선...
지금 갑자기 장태완 이란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아서 이삼십분 이상을 끙끙거렸네요
확실한 치매현상이 맞겠지요?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천하에 기억력에관한한 제1인자인와운선생께서도 세월만은.....
소인은 30년가까이 서초회의연락병으로 있답니다
경재형 무슨 과찬의 말씀을... 우리 벗들중엔 형을 비롯하여 내 로다 하는 벗들이
부지기수 아닙니까 평생을 함께 하지못한건 다 내가 부덕한 탓 이겠지요
부디 오래 오래 건승하시어 친구들 모임 끝까지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