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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6 - 크라쿠프 중앙광장을 지나 프란체스카 성당에서 요한 바오르 교황을 보다!
5월 10일 폴란드 바르샤바 중앙역에서 9시 40분 기차를 타고 12시 20분에 크라쿠프
Krakow Glowny 역에 도착하는데, 이 도시는 1040년 부터 1596년 까지 폴란드
의 수도 였으며 2차대전에 파괴를 면한 덕분에 구 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입니다.
붉은색 돌로 쌓은 둥근 원형의 요새로 외성 바르비칸 krakow-barbican- 을 지나 크라쿠프성
의 북문인 플로리안 문 을 들어서서 계속 걸으니.... 유럽에서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는 크라쿠프 중앙시장 광장 Rynek Gfowny 입니다.
크라쿠프 여행의 시작과 중심 이라고 하는 중앙광장 에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는데..... 기념탑 앞에서 시위하는 성소수자들의 연설과
노래를 들으며 맥주를 한잔 하고는 다시 일어나 대로를 걸어서 바벨성을 찾아갑니다.
대로변에는 수학여행이나 또는 호텔 패키지 관광객과 개인 여행자들 이 현지 주민들 보다
훨씬 많아 보이는데, 어찌어찌 인파를 뚫고 계속 걸으니 야기엘론스키 대학 이 보입니다.
문득 문학평론가 왕은철 교수가 신문에 ‘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 라는 칼럼에 기고한 글 “폴란드의
한국 고아들” 이란 글이 떠오르는데.... 나는 우리나라가 6.25 이후 60년간 고아 수출 세계
1위 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가진줄만 알았더니 북한에서도 고아를 외국에 내 보냈나 본데,
그럼 폴란드 뿐만 아니라 이웃인 동독과 헝가리에 체코와 루마니아등에도 내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은 60년간 고아수출국 1위 타이틀을 유지하다가 10여년전 부터 정부가 발벗고 나서니 먼저 6개월간 국내
입양 을 시도해 보고 실패하면, 미국인 입양 희망자가 직접 한국에 와서 가정법원의 재판 을 거치게 하는
등 조건을 엄청 까다롭게 해서 1위는 벗었지만 아직도 상위 송출국인 이유는... 선천적으로 불구자이거나
중증 장애자 는 입양이 안돼 내보내는데, 일본은 송출 자체를 금지 하고 자국에서 모두 입양을 하고 있습니다?
“상처에 의한 상처의 치유. 폴란드 는 18세기에는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러시아에 의해 세조각
으로 나뉘기를 세번 이나 반복했고 제2차 세계대전 나치 침공으로 만신창이 가되었던
폴란드, 그 상처의 나라가 그들에 못지않은 상처의 나라인 한국의 아이들 을
보듬었다. 추상미 감독의 다큐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 은 그 기억을 향해서 달려간다.”
“1951년, 북한에 의해 폴란드로 보내진 1,500명의 전쟁고아들. 한반도가 전쟁 중이라
공산권 국가였던 폴란드에 잠시 위탁된 아이들이었다. 국가 대 국가의 차원에서
결정된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보살피며 키운 것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들
이었다. 그들은 8년이 지나 아이들과 헤어질 때 부모 처럼, 아니 부모로서 울었다.”
“영화는 그들의 사랑 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직접 가서 확인하고, 60여년이 흘러 노인이
된 폴란드인 ‘부모’ 들이 이제는 노인이 되었을 아이들을 그리워 하며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 묻는다. 피부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
아이들을 환대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영화가 내린 결론은 ‘생명에 대한 사랑’ 이다.”
“ ‘나와 다른 그 이질감 보다 더 강한’ 사랑 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
주체가 되는 사랑 이다. 타자의 철학자라 불리는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말을 빌려 말하면,
“국가의 눈에는 보이지않고 개인의 눈에만 보이는 타자의 눈물” 때문에 가능해지는 사랑과 환대.“
“가슴을 절절하게 만드는 폴란드인들의 사랑 이야기 는 탈북 소녀의 상처에 관한 이야기
가 겹쳐지면서 밀도와 깊이 까지 더해진다. 탈북 소녀 가 갖고 있는 상처의
일부만 살짝 보여주고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트라우마는 침묵과 부재 로 남겨두면서....
영화는 우리에게 재현의 윤리 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영화가 다다른 결론은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사랑은 진짜 있다’ 는 것이다. 영화는 그 사랑에 대한 눈부신 헌사 다.”
먼저 프란체스카 라고 하는 성당 이 보이기로 여행때 늘 하던 것 처럼 다리도 쉴겸 안으로 들어
가서 살펴보니.... 여느 성당과 비슷한데 우리 눈길을 끄는 것은 엄청 큰 파이프 오르간 입니다.
프란체스카 성당 안에 사진이 한 장 걸려 있으니.... 우리 눈에 익은게 그럼 폴란드 출신 교황인 요한 바오르
2세 인 모양인데, 그는 최초의 동구권, 즉 슬라브어권 출신 교황 이었기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교황이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출신이었기 때문인데, 예외적으로 84대 교황 세르지오 1세는 안티오키아 출신
의 시리아계 이민자였고, 87대 교황 시신니오와 90대 교황인 그레고리오 3세도 시리아 출신이었으며
초대 교황 베드로는 아랍인과 같은 셈계 유대인이었지만 그 외에는 교황 = 서구권 출신 이 당연하던 시절이라?
요한 바오로 2세 이전까지는 455년 간이나 이탈리아인들이 교황직을 독점 해 왔으니 非(비)
이탈리아인으로 400여년만에 선출되었을 때의 여파 또한 상당했으니,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 라는 낯선 이름을 듣고 불안해하는 이탈리아 군중 앞에서 폴란드인
새 교황이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첫 강복 을 하자.... 사람들은 그제야 안심하며 환호 했습니다.
국외 순방을 많이 다닌 교황이자 인기가 많았던 교황이었는데 수석으로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젊은시절 축구
선수 로도 활동했을 정도로 운동에는 만능이었고 “보석 가게” 라는 희곡 까지 썼으며 신학서적을 저술
했는데, 김수환 추기경에 따르면 추기경이었을 때 바티칸 회의에서 눈은 책에 가 있으면서 입으로는 회의
안건에 관한 해결 방책 을 쏟아내고 있었다고 하며 롤링 스톤즈와 밥 딜런의 공연 을 듣고 악수하기도 했습니다.
추기경 시절에는 공개적으로 공산주의와 폴란드 공산정권을 비판하지는 않았으니 교황으로
선출될 때에는 폴란드 신자들이 인질로 잡혀 교황이 휘둘리지나 않을까 하는 자본주의
진영의 우려 가 있었고, 특히 영국은 초등학교 반장선거 같다며 무례한 반응을
보였는데 시오노 나나미는 "가톨릭교회가 공산진영에 대해 카드를 잘못 뽑았다" 고 말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동유럽과 소련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에 결정적 공헌 을 한 인물로 평가되는
데..... 군사력 경쟁이나 경제 제재등 위협적인 방법을 통하지 않고, 신앙심에 바탕을
둔 용기와 연대 를 강조함으로써 평화적으로 공산주의 독재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공헌했습니다.
소련의 스탈린이 프랑스와의 국교 수립을 위해 협상하던중, 피에르 라발에게 "교황이 거느린 사단이 몇개나
되느냐?" 고 무시했던 적도 있기 때문에, 요한 바오로 2세의 역할은 더욱 큰 의미를 갖으니 스탈린 은
소련의 그리스도교 박해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공동대응을 주문하던 바티칸과 몹시 불편한 사이였습니다.
1978년 10월 폴란드인 교황이 들어서자 안드로포프 KGB 의장은 체제에 대한 위협을 직감 했으니 폴란드
에 있는 KGB 책임자에게 “어떻게 사회주의 국가의 주민이 교황으로 선출되도록 방임 했는가”
라고 물었다. 이어 소련 공산당 정치국 회의에서 “교황으로 인해 소련에 상당히 어려운 일이 닥칠
것” 이라고 경고한 뒤 KGB에 대해 "폴란드 출신 인물이 교황에 선출된 이유를 분석하라" 고 지시합니다.
KGB는 며칠뒤 "폴란드인이 교황으로 선출된 배후에는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인 폴란드 출신인
즈비그니에프 브레진스키 가 주도하고 미국과 서독이 합작한 음모 가 도사리고 있다" 고 설명했고 " 이
음모는 폴란드의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를 넘어 궁극적으로는 소련의 해체를 의도 하고 있다" 고 분석했습니다.
교황이 1979년 6월, 폭군 볼레스와프 2세의 학정을 꾸짖다가 순교한 성 스타니슬라오 순교 900주년 을
기념해 조국인 폴란드를 방문한 것을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의 서곡 으로 보는 사람도 많으니,
요한 바오로 2세는 조국 방문을 ‘순례’ 라고 표현하며 공산독재에 신음하는 동포에게 “당신들은
인간이다. 존엄성을 갖고 있다. 땅에 배를 깔고 기어다니지 말라.” 는 유명한 메시지를 낭독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폴란드를 방문한 9일간 바르샤바, 크라쿠프 등 대도시를 돌며 수백만명의 신자들이
운집한 미사 를 집전했으니 교황은 가는 곳마다 “신념을 잃지말라, 패배하지 말라, 용기를 잃지
말라” 는 메시지를 거듭 전달했으니 폴란드는 물론 소련 공산당 조차도 교황의 영향력에
기절초풍 했고 브레즈네프, 그로미코, 안드로포프등 주요 지도자들이 모두 극도의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이후 폴란드의 성직자 들은 노동자나 지식인의 공산정권에 대한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갔으니..... 결국
다음 해인 1980년 8월 폴란드는 동구권에서 최초의 독자적 노동조합인 ‘솔리다르노시치 (Solidarność)’
를 쟁취했고, 레흐 바웬사 가 이끄는 솔리다르노시치는 동구권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를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폴란드 가톨릭은 1956년 오하프 정권을 무너뜨리고 고무우카를 선출시킬 정도로 사회주의권 종교중 강력한
힘 을 가지고 있었고 1970년에도 고무우카 정권을 무너뜨려 기에레크 정권에 이르면 공산당이 가톨릭 눈치
를 살피는 정도였는데, 브레즈네프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입국을 금지하라 요구했지만 기에레크는 폴란드
인 교황의 입국을 거부했다간 정권이 감당할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소련 서기장의 요구를 거절 합니다.
이후 교황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 하는 것이 입증되었고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등 중부 유럽 사회주의
국가들까지 덩달아서 들썩이기 시작했으니,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서 그리스도인 신자 수가
격감해서 동독 의 경우에는 공산정권을 거치면서 그리스도교 신자의 수가 3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습니다.
반면에 폴란드에서 신자들이 오히려 더 증가 하여 1980년대 후반에는 미사의 정기적 참례율이 70% 를 찍고,
정권의 설문조사에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고 답변하는 사람이 5% 정도로 엄청난 교세를 자랑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폴란드는 공산주의 치하에서도 살아남은 것인데, 역사적으로는 카자크 및 그 후원자인 러시아
와 여러차례 전쟁을 하면서 러시아와는 원수지간 이 되었고 결국에는 나라가 러시아, 프로이센
(독일) 및 오스트리아 3국이 나누어 갈라먹으니 폴란드라는 나라는 없어지고 러시아 지배에 신음합니다.
러사아의 지배를 생각하다 보니 문득 동아일보 ‘횡설수설’ 란에 신광영 논설위원이 쓴
“입 안 데고 한국 컵라면 먹게 해달라“ 푸틴 정적의 청원 이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러시아에서 가장 악명 높은 감옥은 북극권 시베리아에 있는 제3교도소(IK-3) 다. 면회가 어려운 건 물론
편지도 주고받기 힘들 정도로 외진 곳이다. 영구 동토층에 있어 겨울이면 영하 20도 밑으로 내려간다.
‘북극의 늑대’ 라고 불리는 이 감옥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 (47)가 지난해 말 이감됐다. 푸틴이 올 3월 대선 을 앞두고
야권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나발니를 시베리아에 고립 시킨 것이란 시각이 많다.
혹독한 옥중 투쟁 중인 나발니는 최근 제3교도소의 반인권 실태를 법원에 고발 하며 한국의 컵라면
‘도시락’ 을 언급했다. “판사님도 아십니까. 교도소 매점의 최고 인기 품목은 단연 도시락 입니다.
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7∼10분을 기다려야 아주 맛있게 익는데 식사 시간이 제한돼 뜨거운 채로 빨리
먹느라 혀를 데었습니다. 행복해야 할 시간이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교도소 측이 수감자가 따뜻한
음식을 먹을수 있는 시간을 아침 10분, 저녁에 15분 으로 제한하고 있어 이를 없애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시베리아 감옥에 갇힌 야권 지도자가 ‘도시락 먹을 자유’ 를 호소할 정도로 러시아에서 도시락의 인기는
대단하다. 컵라면의 현지 발음은 ‘다쉬락’ 이다. 우리나라에서 미원이 조미료의 대명사였듯, 러시아
에선 도시락이 곧 컵라면 이다. 컵라면 시장에서 도시락의 점유율은 62% 에 달해 10년간 1위를 지키고 있다.
몇년 전 초코파이가 러시아의 ‘국민 간식’ 으로 주목받은 데 이어 도시락이 ‘국민 라면’ 으로
자리 잡았다. 러시아는 해외 브랜드 중 샤넬, 아디다스, 펩시 등 유명 기업 220여 곳만
저명 상표로 등록해 줄 정도로 까다로운데 도시락은 그 틈을 비집고 저명 상표 로도 인정받았다.
국토가 광활해 기차가 주요 교통수단인 러시아에선 휴대용 사각용기에 수프를 담아 기차에 오르는 사람이 많다.
1994년 도시락이 러시아에 수출 됐을 때 현지인들은 수프통과 비슷하게 생긴 직사각형 용기 에 열광했다.
둥근 사발 모양 용기에 비해 가방에 넣기 편리하고 먹을 때 흔들림도 덜했다. 현지인 입맛에
맞게 국내에 없는 8가지 다양한 맛 으로 출시한 전략도 주효했다. 2년 전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후로 전시 비축용으로 도시락을 사재기 하는 러시아인도 많아졌다.
러시아 대법원 은 식사 시간 제한을 폐지해 달라는 나발니의 청구를 결국 기각 했다.
나발니가 러시아인들에게 친근한 ‘도시락’ 을 언급한 것을 두고 감옥
에서도 국민들과 함께 호흡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사법부로선 푸틴의 눈엣가시인 나발니 의 손을 들어주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가 입 델 걱정 없이 도시락
을 즐기기 어렵게 돼 유감이지만 북극 교도소마저 녹이는 K푸드의 위력 이 확인된 건 반가운 일이다.
잠시 의자에 앉아서 발을 쉰 다음에 다시 일어나 한바퀴 돌면서 성당을 구경하고 박으로 나오니 오래된 건물
의 담에 입상들이 쭉 늘어섰는데 폴란드어를 모르니.... 성인들인지 아니면 학자들 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보름간 블라디보스톡으로 들어가 시베리아 횡단열차 를 타고 이르쿠츠크의 바이칼 호수를
거쳐 모스크바로 들어가 주변의 옛 도시들까지 보고 다시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가서 푸쉬킨시
까지 보름간 러시아를 배낭여행할 때는 러시아어를 익혀서 간단한 회화 를 하면서 다녔는데
이제는 게을러져서 아예 폴란드어를 익힐 생각 조차 하지 않고 영어 로만 여행하기 때문 입니다?
문득 동아일보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에 나오는 김재혁님의 시 “번역의 유토피아” 가 떠오릅니다.
이곳엔 사랑이 넘실대지요.
고통도 바지를 걷고 함께 개울을 건넙니다.
수초들은 뒤엉켜 있고,
가끔 미끄러운 돌이 딛는 발을 밀쳐 내는군요.
모두 사연을 갖고 사는 세상입니다.
사연들은 글자로 서서 머릿속을 헤맵니다.
글자들에게 사연을 물으면
모두 담배나 피워 물 뿐,
수초 속에 숨은 그리움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건넌다는 것은
늘 실패한 첫사랑입니다.
그래서 아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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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신(自身)의 마음 그릇이 제대로 놓여 있는지
‘확인(確認)’해 볼 일입니다.
사람이 쓰는 말 중에서 ‘감사(感謝)’라는 말처럼
아름답고 귀한 말은 없습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는 늘 ‘인정(認定)’이 있고,
늘 ‘웃음’이 있고, 늘 ‘기쁨’이 있고,
늘 ‘넉넉함’이 있습니다.
감사(感謝) 합니다.💗💗
그런데..... 그럼 마음가짐을 갖고
세상을 산다는게 쉽지가 않는지라....
우린 바벨성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중앙 광장~
중앙역 아웃렛갔다 오느라 엄청 걸었던 기억이~^^
저희는 원래 도보 여행자라.....
저 정도 거리는 늘 걷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