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정치를 하고 싶다
-국회 등원 100일의 소회
지난 8월 9일, 아침 일찍 모 일간지 기자의 전화를 받았다. “국회 등원 100일을 맞는 감회와 정치적 포부를 밝혀 달라”는 요지였다. 등원 100일까지 챙겨 취재를 할 정도로 꼼꼼한 ‘감시의 눈길’들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한편으로는 ‘벌써 백일이 지났나’ 싶었다.
선거일이 임시국회 회기 중이었기에 당선 다음날부터 바로 국회에 출석해야 했다. 문화관광위에 배정받았다가 지난 7월 21일 행정자치위원회로 옮기기 바쁘게, 8월 16일부터 열리는 2004 회계연도 세입세출 결산심사 준비에 땀을 흘렸다. 정신없이 지나간 백일이었다.
욕만 먹고, 때로는 손가락질 받는 정치판에 뛰어든 배경은 나의 칼럼집 <희망을 노래한다>에서 이미 밝혔지만, 지난 95년 처음 도의원에 당선되면서 나는 우리 집의 가훈을 새로 정했다. 거창한 업적을 남기겠다는 약속도 더욱 큰 인물로 발돋움하겠다는 포부도 아닌, ‘처음처럼’이라는 글귀였다. 그 이후 이 네 글자는 집과 사무실, 개인활동과 의정활동의 변함없는 중심화두가 되었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되 처음 가졌던 마음은 변치 말자고 다짐했던 것이다.
그 때로부터 꼭 10년이 흐른 지금, 기자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그 때 다짐했던 ‘처음처럼’을 얼마나 잘 지켜왔는지 스스로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달라진 부분도 있을 것이다. 우선 아들딸이 자라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고 있고, 온갖 풍상을 겪으며 나를 키워주신, 몽매에도 잊을 수 없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나의 가슴에 묻혔다.
나의 ‘위치’도 변했다. 집안도 학벌도 재력도, 남들보다 돋보이는 부분이라고는 없지만 뜨거운 가슴으로 김해를 위해 뛰었고, 시민들은 나의 진정성을 알아주었다. 들판의 잡초처럼 비바람을 견디며 도의원 3선 을 기록했다. 최연소 교육사회위원장을 거쳐 최연소 부의장도 역임했다. 마침내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동안 경쟁자들로부터 수많은 비방과 권모술수를 겪었다. 문제의 본질에는 눈을 감은 채 말단지엽을 물고 늘어지는 정쟁에 휘말려 곤혹스런 입장에 처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럴수록 달라져서는 안된다고 자신을 더욱 추스렸다. 도의원 시절, 가끔 ‘돈이 되는 사업’이니 힘을 보태 달라며 이런저런 계획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돈에는 관심 없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i다 보면 돈도 명예도 잃고 정치생명만 단축됩니다”라고 냉정히 돌려보냈다. 정치를 시작하며 다짐했던 대로,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철저히 지켰다. 사람에게 어찌 돈 욕심이 없으랴. 하지만 나를 믿어준 유권자들을 속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선거를 하면서도, 유세장에서든 토론장에서든 경쟁자에 대한 비방이나 폄하발언을 한 기억이 없다. 자신에게는 냉혹하고 엄격한 잣대를, 타인에게는 이해와 포용의 잣대를 적용했다.
이미 각오한 길이었기에, 어렵고 힘들 때마다 ‘처음처럼’을 되뇌었다. 국회 등원 100일을 넘기면서, 10년 전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 번 초발심을 되새겨 본다.
아름답고 푸른 김해, 역사문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김해를 사람내음과 신명이 가득한 고장으로 가꾸고 싶다. 당리당략보다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 싸워서 빼앗아 내기보다 대화와 조정을 통해 함께 결과를 만들어 가는 정치를 실현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정치를 하면서도 저렇게 할 수 있구나, 김정권은 믿을 수 있는 정치인이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다. 우리 정치를 대립에서 상생으로, 갈등에서 통합으로 바꾸어가는 국회의원, 국민에게 힘과 희망을 주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 그리하여,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나라, 너와 내가 아니라 온 겨레가 하나 되어 세계를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는 대한민국을 이룩하고 싶다. |
첫댓글 김정권 의원님 홧팅!!
초심을 잃지 마시고 열심히 하십시오! 힘 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