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지젤의 탄생
프랑스의 낭만시인이자 비평가인 테오필 고티에는 독일 시인 하이네가 독일 전설에 관해 쓴 연구서 ‘독일로부터’를 읽고 ‘윌리’의 전설을 발레화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윌리는 결혼식 전날 죽은 처녀의 영혼으로 춤추는 것을 광적으로 좋아한다. 애초에 고티에는 이 작품 1막의 배경을 화려한 귀족 무도회장으로 설정한 후, 빅토르 위고의 시 ‘유령’에 등장하는 젊은 미녀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녀가 무도회장에서 온통 춤에만 정신이 팔려 밤새도록 춤추는 내용으로 그려보고자 했다.
그러나 공동으로 대본을 집필한 베르누와 드 셍 조르쥬와 대본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설득력 있고 극적인 부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대폭 바꾼다. <지젤>의 배경은 귀족의 무도회장에서 독일 라인강 유역의 농촌으로, 젊은 미녀는 순박한 시골 처녀 ‘지젤’로, 밤새도록 춤을 추는 장소는 무도회장에서 인적 드문 숲 속으로, 젊은 미녀가 밤새도록 춤을 추다 차가운 바깥 기온에 목숨을 잃는다는 내용은 지젤이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으로 충격 받아 죽는 것으로 바뀐다.
원안무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는 프티파 버전의 지젤 1841년 초연된 <지젤>은 당시 파리오페라극장의 발레마스터였던 장 코랄리가 대부분을 안무하고 솔로 부분은 쥘 페로가 안무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보는 <지젤>의 모습은 1860년 러시아로 건너간 이후부터이다. 당시 마린스키 극장의 예술감독 마리우스 프티파는 1막에 지젤을 위한 솔로 춤을 삽입하고, 2막에 있던 각 나라 윌리의 춤을 없애는 대신 윌리들을 하나의 군무로 묶어서 윌리들의 여왕 미르타의 춤,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2인무와 함께 ‘윌리들의 춤’을 구성했던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면모로 재탄생된 프티파판 <지젤>은 그 전까지 세계 도처에서 인기 레퍼토리로 사랑받던 코랄리와 페로의 <지젤>을 무너뜨리고 오늘날까지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초연 때의 안무본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초연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 처녀로서의 순진무구함과 인간성을 지닌 1막과 죽은 정령으로서의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요구하는 2막의 구성은 어떤 발레단에서나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막에서 보여주는 사랑에 빠진 순진한 처녀에서 배신당한 아픔, 죽음까지의 감정변화를 보여줘야 하는 인간으로서의 모습과 죽은 상태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는 정령 윌리로서의 상반된 2막의 분리된 표현은 발레리나의 깊이를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지젤의 대표적인 춤 1막에서 볼만한 춤은 알브레히트와 지젤의 파드되와 수확축제의 왕과 여왕으로 뽑힌 농부 한 쌍이 추는 페전트 파드되를 들 수 있다.
2막의 중간은 발레단마다 큰 차이가 없지만 시작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각기 아이디어를 발휘해 상당히 특색이 있다. 첫 장면은 윌리의 여왕 미르타의 솔로로 시작하거나, 숲 속에서 눈을 빛내고 있는 윌리들의 모습, 혹은 피아노줄을 이용해 윌리들의 너울이 공중을 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무덤이 돌아가면서 사라지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지만 지젤이 땅속으로 꺼지거나 공중으로 떠버리는 것도 있다. 또한 2막은 윌리들의 여왕인 미르타의 솔로, 윌리들의 군무, 힐라리온의 죽음으로 가는 춤,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파드되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화려하진 않지만 낭만적인 환상을 자극하는 춤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명성을 남긴 지젤과 알브레히트 초연 때 지젤을 맡았던 카를로 그리지는 이 발레를 통해 천상의 춤을 추는 마리 탈리오니와 가장 인간적인 춤을 춘다는 파니 엘슬러의 특성을 동시에 지녔다는 찬사를 받게 되었다. 이 두 무용수는 당시 파리를 사로잡았던 스타 발레리나로, 카를로 그리지는 이 작품을 통해 그들과 같은 명성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 후 당시 스타 발레리나들인 파니 엘슬러, 화니 체리토, 뤼실 그란도 이 작품을 자신의 레퍼토리에 포함시켜 성공을 이어나갔다.
여주인공 지젤은 세계 모든 발레리나들이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와 함께 가장 선망한다는 배역이다. 왜냐하면 청순하고 순박한 시골 소녀에서 사랑의 배신으로 광란의 춤을 추며 자결하는 비련의 여인, 겉으로는 싸늘한 영혼이지만 마음속에는 숭고한 사랑을 간직한 윌리로 시시각각 이미지 변화를 해야 하는 매력 때문이다. 원 안무자인 쥘 페로는 런던 공연 때 직접 알프레히트를 맡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명성을 날린 지젤은 카를로타 그리지, 마고트 폰테인, 갈리나 울라노바, 에카테리나 막시모바, 나탈리아 마카로바, 카를라 프라치 등 이다. 유명한 알브레히트는 바슬라프 니진스키, 아톤 돌린, 세류쥬 리파, 루돌프 누레예프, 안소니 도웰,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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