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가까운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것들, 정말 온갖 것들을 끊임없이 보고 듣는다.
게다가 이제는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까지 보고 듣는다. 이 허구의 가상세계를 어떤 때는 현실로 착각할 때도 있지만, 내 곁에서 함께 웃고 울고 느끼는 현실은 분명히 아니다. 스위치를 켜면 만나고 스위치를 끄면 헤어지는 <사이버 인연>이다.
그러나 현실이든 가상세계든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이 (원치 않아도) 내 기억속에 꾸역 꾸역 입력, 저장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머리속이 컴퓨터 메모리칩이다.
컴퓨터 하드 디스크에 저장된 내용을 삭제시키는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나 순 엉터리다.
어떤 컴퓨터 전문가가 실험으로 중고 컴퓨터를 구입해 전 소유자의 하드 디스크를 점검해 보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의 하드 디스크에 저장된 내용을 모두 삭제하고 팔았다고 생각한 사람의 <비밀>을 컴퓨터 전문가는 다 읽을 수 있었다. 그 사람의 민망한 연애편지, 혼자만 보고 읽고 싶은 사진과 글들, 개인정보, 은행통장의 잔액 등등...
프라이버시 전부가 노출된 것이다.
<개인의 자유의지에 대한 간섭을 의미하는 개인 자율의 침해, 개인에 대한 평가나 신뢰의 훼손, 개인의 가장 심오한 곳에 내재하는 자아의 신성불가침성의 교란 등 개인에게 정신적 고통이 되는 일체의 행위가 배제되어야 한다. 고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감정을 지니고 정신적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자유를 의미하므로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 헌법 제 17조 -
이제 우리는 컴퓨터라는 첨단과학문명의 덕을 보는 만큼 프라이버시권의 침해는 감수해야하는 것인가? 그것이 첨단과학적 인과응보인가?
그러나 희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 하드 디스크에 저장된 내용을 '영구삭제'하는 방법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정확히 <삭제>라는 말은 틀리다.
왜냐하면 방법은 저장된 내용 위에 아주 난해하고 어지러운 암호의 프로그램을 덮어씌워 이미 있는 내용들을 못 읽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마치 신문지 위에다 아주 진하고 굵은 싸인펜으로 마구 낙서를 해 놓으면 바탕글씨를 읽지 못하는 경우와 똑 같다. 그러나 한 번 저장된 내용을 완전히 삭제해서 깨끗이 <백지화>시키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사람도 한 번 몸으로 말로 생각으로 지은 업은 백지화시킬 길이 없고 무한대 용량 '마음'이라는 하드 디스크에 즉시 입력, 저장된다는 점에서 컴퓨터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유익한 정보보다는 스팸이 더 많은 내 마음컴을 생각하면 찜찜하고 두려운 일이다.
새로 개발된 하드 디스크 삭제방법처럼 더 강하고 선명해서 눈에 띄는 '멋진 낙서'를 덮어씌워 과거의 업을 희미하게 분산시키거나 보완시키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컴퓨터는 대단하고 인터넷은 신기하다.
사람은 컴퓨터, 인터넷이 못하는 작용까지 하니 더 대단하고 더 신기하다.
안다. 느낀다!
감정이야말로 내가 어떤 사실을 보고 듣고 체험했다는 유일한 증거이자 피드백이다.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분노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사실 우리들의 느낌 즉 감각이란 것이 100% 순수한 것만은 아니다.
느낌에는 과거에 내가 이 대상을 싫어했거나 좋아했다는 경험이 포함되어 있고 이 경험을 전제로 대상에 반응하는 것이니 절대적 순수인식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오염된 인식이라 할지라도 느끼는 그 순간은 나의 온 세포, 저 깊은 곳 내 마음의 뿌리까지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는 산다는 것의 근거가 <느끼는 것>외에는 없는 것 같다.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내가 지금 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겠는가?
복잡하게 순수인식이니 오염인식이니 하는 이론은 접어두고 그냥 우리가 말하는 감정, 느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느낀다는 것, 이 감수작용은 외부의 자극으로 부터 들어온 것이다.
그 느낌에 대한 감정표현은 자연스럽게 나가는 반응이다.
들어온 만큼 나가야 정상이다.
들어온 것이 나가지 못하면 정체현상, 즉 머리속이 변비상태가 되어버릴 것이다.
목석이 아닌 사람이 어떤 것에 감동을 받고 그 느낌을 밖으로 표현, 표출을 하지 못한다면, 울지도 웃지도 화내지도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마음껏 그 때 그 때 자신의 느낌을 솔직히 표현할 수 있다면 후련하고 편할 것이다.
그러나 이성이란 엄격한 검열관이 늘 지키고 있다.
이성은 이렇게 무분별하게 주책없이 나오려고 하는 감정을 잘 계산, 판단해서 제어하고 정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성은 논리적이고 지적인 사고를 통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또 필요한 것이긴 하나 때로는 인정사정없이 매정하다.
차가운 머리는 말한다.
"깊이 생각해 보고 현명하게 판단하라. 제발 냉정해져라."
동시에 뜨거운 배와 타는 가슴은 끈질기게 보챈다.
"화가 난다. 화가 나니 괴롭다. 싫다. 좋다."
이 두 고집스러운 이성과 감성은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려는 연인들처럼 싸우다 화해하고 타협했다가 또 싸운다. 둘 중에 하나가 지쳐 포기하면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그 둘은 깨끗하게 미련없이 헤어질 수도 없는 사이다.
이건 한 예지만...
심리학자들은 인간 신체의 허리부분을 중심으로 배 위쪽에서 머리까지를 이성, 배에서 발끝까지를 감성으로 구분한다. 이성과 감성의 지배를 받는 신체부위가 다르다는 것이다.
감성과 이성간에 심한 갈등이 생겼을 때, 즉 자신이 느끼고 감수하는 것들이 엄격한 이성에 억눌려 솔직히 감정으로 표출되지 못할 때 허리부위는 마치 복잡한 중앙 사거리에 신호등 고장으로 자동차들이 뒤죽박죽 체증현상을 일으키는 것과 같이 혼란에 빠진다고 한다. 그 혼란은 대개 통증으로 나타난다. (MRI 촬영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다른 병리학적 이유도 전혀 없는데 자주 심한 허리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경우는 신경외과의사도 속수무책이다.)
치료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고 한다.
당분간 이성(프로이드가 말하는 초자아, 융이 말하는 페르조나)을 좀 쉬게 내버려 두고 아니 이성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느끼는대로 솔직히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길 밖에 없다. 무엇으로든지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단지 그 표현방법이 남한테 피해, 상처를 주지 않고 또 파괴적인 방법이 아니라면 다 옳은 것이라 생각된다.
숲속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그러면 사거리 교통은 다시 원활해질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간단하고 돈이 안 드는 치료법은 의심하고 시도해 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현명한 정신분석가는 그런 환자를 위해 하루 3번 복용할 약을 준다. 그 약의 성분은 설탕이나 포도당일 뿐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각설탕이나 왕사탕을 몇 개 주었어도 상관없다. 그런 약을 'Placebo' 라고 한다. 환자는 의사가 시키는 대로 억눌린 감정덩어리를 발산시키는 심리치료를 하면서 약도 열심히 복용한다. 아무 이유도 없이 허리가 아팠던 그 환자가 어느 날 거짓말처럼 허리통증이 말끔히 사라지면 그는 그 <신기한 알약> 때문이었다고 믿는다.
...
오늘은 이성의 위대함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인간의 이성이 인류문화와 현대과학문명에 기여한 공로는 인정하나 그다지 호감만 가는 것은 아니다. 그 똑똑하고 냉철한 이성때문에 특히 인간관계에서는 많은 비극도 발생한다.
그렇다고 빛나는 두 지성과 이성의 만남 쟝 폴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부와르의 계약결혼이 비극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성은 따지고 계산하고 궁리하고 판단하는 건 잘 하는데 느끼지를 못한다.
이성은 자비심, 연민심을 생각할 수는 있으나 느끼지는 못한다.
시인이 시를 이성으로 쓴다면 그건 학위논문이다. 아무도 그 시를 읽지 않을 것이다.
행복은 느끼는 것이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 박사인 골먼은 감성지수(EQ, Emotional Quotient)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파악할 수 있고 긍정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능력, 또는 좌절이나 장애에 굴하지 않는 낙천적이고 꿋꿋한 인성 등을 총칭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즉 나의 느낌과 상대방의 느낌을 감지하는 감수성, 혼란스런 감정에 휘말리지 않는 능력이며 한 사람의 감정적인 성숙도이다.
감정지수는 그 사람의 성공, 출세와 비례한다기보다는 행복감을 느끼는 행복지수와 비례한다. 지능지수(IQ)가 높고 영리해 성공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감정지수가 높은 것은 아니다.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더 만족함을 모르고 불행해 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감정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깊은 물이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희로애락에 쉽게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곧 감정지수가 높다는 것은 깊이 느낄 줄 알고 또 자신이 느낀 것을 솔직히 그리고 성숙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행복한 사람 아닌가?
느끼는 것 그리고 그 느낌을 표현하는 것, 나는 이것을 사는 것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내 눈앞에 펼쳐지는 온갖 세상을 경험, 체험하고 끊임없이 느낀다. 또 느낀 것들을 표현한다.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표현하는가?
사람마다 이것이 다를 뿐이다.
만약 내가 어떤 것에 온 세포가 진동할 정도로 깊이 감동하고 절실히 느낀다면, <그 사건>은 분명히 내 인생을 바꾸는 큰 계기가 될 것이다.
첫댓글 이 아침에 웬 선물입니까? 무위자님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어제 합창연습시간에 노래 부르기 직전에 지휘자가 웃기는 말을 한 마디 했는데 저는 웃느라고 노래도 못 부르고 또 제대로 웃지도 못해서 한참동안 쩔쩔매었습니다. 나중에 제 옆의 사람이 참는 모습이 더 웃기더라고 하더군요. 하루 하루 즐겁게 살아갑니다.
수경심님, 웃음 바이러스에 걸리면 치료약도 없는데... 감염도 무척 빠르고요. ㅎㅎㅎ...
저도 무위자님께서 주신 선물 감사한 아침입니다...온 세포가 진동할 정도로 깊이 감동하고 절실히 느끼면서 내 인생을 바꾸는 큰 계기가 될 그런 사건이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_()()()_
깊이 감동하고 절실히 느낀다면..... _()_
오늘 세포가 진동할 정도는 아니지만 감동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문득 심리학자는 진리 깨침에 유리하실것으로 엉뚱한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논문처럼 깊이있고 많은 내용 준비해 주심에 다시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_()_
예, 송천님, 엉뚱한 생각이십니다.
오랫만애 경란님과마주 앉았다 갑니다. 고맙습니다_()_
소중하신 말씀 깊이 새겨갑니다..고맙습니다.._()()()_
비오고 춥고 바람불고 어둡고... 아무튼 날씨가 심난해서 독일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공포의 11월이 다가옵니다.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차를 마시며 책이나 읽으면 딱 좋은 날씨요. 도반님들은 한국의 청명한 11월을 즐기시길... 고맙습니다.
무위자님, 오랫만에 뵙습니다...님의 글을 보니 님을 뵌듯 넘 반갑습니다..깊이 있는 내용의 글 한참을 머물다 갑니다. 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 "幻인줄 알고 놓아버리라"는 이 공부도 의식으론 "방하착"하지만, 귀신같이 들어와 하나의 실체로 하드디스크에 자리를 잡으니, 제상태가 요즘 묘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두루뭉수리 바보" 그 자체입니다. 무위자님 글 읽으며 마음 되짚어봅니다. "열심히 공부해야쥐~"^^*
고민과 사유가 깊이 묻어나오는 글...나누어주셔서 진짜루 고맙습니데이.^^_()()()_
그 둘은 깨끗하게 미련없이 헤어질 수도 없는 사이다.... 無位子님 감사드립니다. ^^* _()()()_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무엇을 어떻게 느끼냐에 따라 또 어떻게 표현하는가? 사람마다 이것이 다를 뿐이다... 무위자님 반갑고 고맙습니다._()_
감성과 이성의 양극 사이에 지혜로움이 깃들면 참 좋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가져가서 자주 읽겠습니다._()_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