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국산 중어뢰 ‘백상어’ 개발
국산 중어뢰 ‘백상어’.
1998년 7월 6일 잠수함에 탑재돼 적의
수상 함정이나 잠수함을 공격할 수 있는 중어뢰 ‘백상어’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됐다.
가격은1발당9억5천여만원이다.당시 실전
배치돼 있는 일부 209형 잠수함은 1발당 22억원에 달하는 독일제 어뢰 ‘수트’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개발로 모두 2천여억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백상어’는 ‘수트’가 잠수함에서 선으로 유도하는 유선 유도 방식인데 비해 적 함정의 소리를 스스로 추적해 공격하는 첨단 능동형 음향 호밍 어뢰이다.
TNT 폭약 3백70kg에 버금가는 강력한 파괴력도 갖고 있다.1990년 국방과학연
구소의 주도 아래 lg정밀 등 13개 업체와 연구소 등이 참여해 개발에 착수했으며 국산화율이 94.3%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
졌다.
주요 제원은 사정거리 30여km, 최고 속도 35노트(시속 65km),길이 6m,무게 1.1t,직경 19인치(4백83mm)이다.
➡️201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123차 IOC 총회에서 2018년 동계 올림픽의 개최도시로 대한민국의 평창이 결정되었다.
➡️2009년 미국,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핵무기 감축에 합의).
➡️2009년'베트남전 기획자' 맥나마라 전 미국 국방장관 별세
➡️2005년싱가포르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2012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런던 확정
➡️2004년최후의 마에스트로(거장) 카를로스 클라이버 타계
➡️2004년런던 하이드파크에 다이애나 추모 분수 제막
➡️2004년주간조선, 국내 첫 신문사 발행 시사잡지 ‘신조선’ 창간호 발견해 일반에 공개
👉🏿 2004년 7월 6일 주간조선이 국내 언론사가 발행한 최초의 잡지 ‘신조선(新朝鮮)’ 창간호 원본을 찾아내 일반에 처음 공개했다.
조선일보사가 1927년 2월 10일자로 발간한 이 잡지는 안재홍 당시 조선일보 주필의 ‘20년 후의 극동정세’를 비롯, 정치·경제·사회·이데올로기·문예·과학·역사·스포츠·어린이 관련 기사·해설을 50쪽 분량으로 보도했다. 가격은 10전(錢)이었다.
‘신조선’은 지금까지 신문사가 발간한 최초의 잡지로 인정받아온 동아일보사의 ‘신동아(新東亞)’(1931년 11월 1일자)보다 4년여 앞서 발행된 것이다.
‘신조선’ 창간호에는 ‘일장기 말소사건’의 주역 이길용, 조선일보 편집고문 문일평,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 최초의 러시아 특파원 김준연 등 일제하 애국지사들이 필자로 참여했다.
정진석 한국외대 교수(언론사학)는 “신조선 발행은 연구자들 사이에 알려져 있었으나 창간호 실물을 본 사람이 나오지 않았고, 창간 후 지속적으로 발간됐는지 여부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아 ‘한국 언론사 첫 잡지’란 사실을 공인받지 못했다”며 “이번 발견으로 조선일보사가 국내 언론사 중 처음으로 시사잡지를 발행했다고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2002년 아프가니스탄 부통령 피살… 정정 혼미.
➡️2000년 북아일랜드 신교도-군경간 폭력사태
➡️2000년사법사상 최초의 대법관 인사청문회
👉🏿 2000년 7월 6일~7일 양일에 걸쳐 사법사상 최초의 대법관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박재윤 이강국 강신욱 배기원 이규홍 손지열 대법관 제청자를 상대로 열린 인사청문회는 국회의원들의 준비부족과 정파적 이해 그리고 인사청문회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후보자 역시 자신들의 철학보다는 핵심을 비켜가는 답변으로 일관, 인사청문회의 운영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대법관 후보들의 답변이 대체적으로 형식적이어서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점과 활발한 논쟁과 토론이 부족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물론 진솔하고 자기반성적인 답변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대법관 후보들의 답변이 너무 정치적이다 못해 눈치보기식이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1998년미국 영화배우 ‘카우보이의 왕’ 로이 로저스 사망
➡️1995년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 방한
➡️1989년카다르 헝가리 전 공산당 서기장 사망
➡️1983년서울 IPU(국제의회연맹) 중국가입 제의
➡️1982년미소전략무기감축협상(START) 개시
➡️1982년12회 대한국제회의 개막
➡️1978년통일주체국민회의 선거로 제9대 대통령에 박정희 당선
➡️1976년중국 인민해방군 ‘건군의 아버지’ 주덕 사망
➡️1975년코모로, 프랑스로부터 독립
➡️1974년시인 신석정 사망
➡️1971년재즈의 황제 루이 암스트롱 사망
➡️1970년미국, 주한미군 감축 정식통고
➡️1966년말라위, 영국연방내 공화국으로 독립
➡️1964년소련, 유엔 가맹국에 유엔 상비군 설치를 제안
➡️1964년키프로스 비무장지대 설치 위해 유엔군이 그리스 무장해제
➡️1962년한국-모로코 국교 수립
➡️1962년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 사망
➡️1961년북한, 소련과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 조인
➡️1960년콩고, 레오폴드빌서 군대반란
➡️1959년프랑스, 자르 관리권을 서독에 반환
➡️1953년유네스코(UNESCO) 한국지부 설치
➡️1952년세계평화평의회, 베를린서 특별총회
➡️1950년부산에한미연합해군방위
사령부 설치안 가결(총사령관에 맥아더)
➡️1950년조선일보사 사장 방응모 피랍
➡️1947년미국 뉴멕시코주 로스웰 지역에 UFO 잔해로 추정되는 물체 발견
➡️1935년제14대 달라이 라마 출생
➡️1933년미국 프로야구 첫 올스타전 개막
➡️1931년카보런덤 발견, 흑연 제조방법을 완성한 미국의 발명가 애치슨 사망
➡️1929년중화민국, 신국도를 남경으로 결정
➡️1928년미국 워너브라더스사, 세계최초의 발성영화 `뉴욕의 등` 제작
➡️1923년소련연방, 연방국 헌법 제정
➡️1921년몽고 인민혁명정부 수립
➡️1917년영국장교 Th.E.로렌스가 지휘하는 아랍반군이 터키군의 요충지 아카바를 점령
➡️1915년대만의 대남서 항일봉기
(서래암사건) 일어남
➡️1914년선린고교 한국학생, 일본학생과 충돌
➡️1909년일본 각의, 한일합병 실행에 관한 건 의결
➡️1908년로버트 피어리 북극 탐험 위해 뉴욕 출발
➡️1907년광복회 안휘성에서 봉기 실패
➡️1907년호남학회 창설
➡️1906년궁금령(宮禁令) 발포
➡️1905년이승만, 윤병구. 미국 대통령을 방문하고 한국독립청원서 제출
➡️[1599년] 권율장군 사망
👉🏿 행주대첩의 영웅 권율장군이 1599년 7월 6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62세였다. 장군은 1537년(중종 32년) 영의정 권철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45세인 1582년 식년 문과에 응시하여 병과에 급제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광주 목사로 부임한 권율은 전라도 방어사 곽영의 휘하에 들어가 군사를 모집, 곽영, 이광 등과 함께 4만명의 군사로 경기도 용인에서 왜군과 싸웠으나 패하고 말았다.
광주로 되돌아온 권율은 의병을 다시 모집, 3천여명으로 충남 이치에서 적과 싸워 고바야카와의 대부대를 참패시켰다. 이 승리로 왜군들은 그후 다시 전라도 지방을 넘보지 못했으며, 이 싸움은 임진왜란 7년에 걸친 전투중 육군의 3대첩의 하나로 손꼽힌다. 권율은 전라도 순찰사로 승진, 군사와 승병 8천여명을 이끌고 서울 탈환에 나섰다. 서울로 향하던 중 수원의 독왕산성에서 왜군을 물리친 권율은 경기-충청-전라도의 관군 및 의병 총지휘관이 되어 1593년 2월 28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한강을 건너 행주산성으로 들어갔다. 이때 왜군들은 북쪽에서 서울로 퇴각 중 경기 벽제관에서
명나라 군사에 승리한 터라 사기가 드높은 때였다.
마침내 2월 12일 왜군들은 3만여명의 군사로 행주산성에 쳐들어왔다. 왜군은 이날 하루에만 9회에 걸쳐 산성을 공격했으나 모두 실패, 2만4천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물러갔다. 권율의 행주대첩은 김시민의 진주대첩,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 승리로 권율은 도원수의 자리에 올랐다.
https://youtu.be/-R_9y7eA3wA